내가 용성국(해상신라의 전신前身)이 서나벌/원 가야인과 함께 백제와 맞서 싸웠다고 주장한 까닭은, 석씨족이 서기 24년 이후에 본거지인 전라북도 남원을 떠나 동쪽으로 달아나기 때문이다(『삼국유사』와『수서』). 만약 용성국이 삼한백제의 편을 들었다면 달아날 까닭이 없다(해상무역으로 부富를 쌓았던 용성국은 원 가야인이 백제에 반기를 들었을 때, 군자금과 군수물자를 대 주었을 것이다. 반 백제 동맹군이 패하자, 용성국은 삼한백제의 보복을 두려워했고, 이 때문에 탈해이사금은 일족을 이끌고 달아난 게 아닐까?). [숭선전지]에 나오는 "신라도 삼한으로부터 나왔다."는 구절로 미루어볼 때, 용성국 지배층과 마한 왕실 또한 혼인을 통한 동맹을 맺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사족 : 탈해이사금의 아버지인 함달파 용왕(龍王)과 원 가야인의 군주인 이비가 왕의 아버지(이름은 알 수 없다)가 반(反) 백제 동맹을 맺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렇다면 함달파의 아들인 탈해이사금과 원 가야인 군주의 손자인 뇌실청예[수로왕] 왕이 싸운 까닭은 윗 세대의 동맹이 깨졌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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