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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
▩반(反) 백제 동맹군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진 까닭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22814 2008.06.19 16:04:01 (*.143.129.119) 기타0 Comments 1280 Views
나는 올해 4월 30일에는 원(原) 가야인과 백제(삼한백제)가 전쟁을 했다는 주장을 펼쳤고(「▩『숭선전지』에 나오는 원(原) 가야인과 백제의 전쟁」참조), 5월 9일에는 그 전쟁이 마한 왕실과 가야 지배층의 혼인관계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원(原) 가야인이 백제와 싸운 까닭」과「▩마한 왕실의 혼인을 통한 동맹과 백제의 담로제도에 대한 짧은 생각」참조), 5월 15일에는 원 가야인 뿐만 아니라 다른 소국들도 백제에 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마한의 제후국들이 반(反) 백제 동맹을 맺었는지에 대한 간단한 고찰」참조).
이 세 글에 나온 내 가설을 간단히 정리하면, 서기 9년 삼한백제가 마한을 무너뜨리자 마한의 제후국이었던 용성국, 서나벌, 가야, 변한이 마한 유민들과 함께 들고 일어났고, 삼한백제는 한성백제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이들과 싸워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삼한백제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모두 남쪽(전라남도 ․ 제주도)과 동남쪽(경상북도와 경상남도)으로 밀어내고 금강 유역의 지배권을 굳혔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나는 이 글에서 그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을 하고자 한다.
해답을 말하기 전에 먼저 다른 나라의 역사부터 이야기하자.
서기 2세기 말, 동한(후한)의 호족들은 동한의 수도인 낙양을 손에 넣은 동탁(董卓)을 타도하기 위해 자기들의 군대를 한데 모아 근왕군(勤王軍. 왕을 지키는 군대)을 만든다. 근왕군은 한 때는 함곡관(낙양으로 들어가는 관문) 앞까지 쳐들어 갈 정도로 기세등등했으나, 호족들끼리 서로 의심했고, 단결하지 못했기 때문에(그리고 동탁이 흉노족과 강羌[티베트계 민족]족 기마군단을 용병으로 부리며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기 때문에), 결국 장안으로 달아난 동탁을 잡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호족들은 스스로 근왕군을 해산했고, 사소한 이유로 대립하며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동탁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황제의 이름을 빌려 제후들 사이를 중개하거나 싸움을 붙여 그들이 다시는 하나로 뭉쳐서 자신에게 덤비지 못하게 막았고, 이후 자신의 호위 장수였던 여포(呂布)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자신의 정권을 유지했다.
마한이 망한 뒤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서나벌과 원 가야인, 용성국은 '마한의 은혜(망명을 허락하고 살 땅을 내어준 것)를 원수(마한 정복)로 갚은 백제를 응징하자'(또는 '우리의 종가인 마한을 무너뜨린 백제를 벌하자')는 명분을 내걸고 군사를 일으켰을 것이고, 백제와의 전쟁(이하 '마한 수복 전쟁'으로 부름)에서 지자,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동한 호족들의 근왕군이 한 왕조의 존속보다 자신들을 위해 일할 꼭두각시 황제의 선출, 또는 자신이 얻을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겼듯이, 마한의 부흥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생존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그 때문에 전쟁에서 패한 뒤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어제의 동지들'에게 창을 겨누었던 것이다(『삼국사기』「신라본기」에 나오는 가야와 신라의 전쟁,『가락국기』에 나오는 탈해왕과 수로왕의 싸움은 모두 마한이 백제에게 망한 뒤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런데 그게 서기 9년이 지난 직후에 일어나지 않고 40년 내지는 70년이 흐른 뒤에 일어난다).
(진辰의 유민인 진한인은 자신의 나라가 서나벌에게 망했기 때문에 마한 수복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을 것이다)
*보충 설명 : 내 생각이 옳다면, 반 백제 연합군이 진 까닭은 그들이 군대의 지휘권과 전쟁이 끝난 뒤 자신이 받을 '지분'을 놓고 갈등했기 때문이다. 마한 왕자를 모시던 서나벌(『청주 한씨 족보』)은 자기가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테고, 맨 먼저 군대를 일으키고 '태왕원군'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던 원 가야인은 - 마한 왕실과의 오래된 인연까지 들먹이며 - 자기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이런 갈등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고, 연합군이 내부에서 서로 대립하는 동안 백제군은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었을 것이다.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난 군대는 외부의 공격에는 취약하기 마련이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반 백제 연합군의 패배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