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신라본기 눌지왕 2년조에 나오는 미사흔 왕자의 귀국 사건을 슬쩍 눌지 2년조가 아닌 다른 해로 고친다면 이것이 거짓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는 다음처럼 간단히 알 수 있다.

박제상이 고구려에 가서 복호왕자를 데려온 것은 당시 신라에 친고구려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일이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도 인질을 더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당시 적국상태였던 왜국에 사람 한두명을 보내 인질을 빼올 수 있을까? 왜국은 그리도 멍청한 바보인가?

상식적인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미사흔왕자가 돌아올만 하니까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눌지왕 2년(418년)에 동아시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백제본기가 하고 있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전지왕 14년(418), 여름,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흰 포목 10필을 보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왜국은 모두 가야사로서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인들 국가이고 단 몇개만 일본열도의 가야인들의 기록이다. 반면에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왜국은 백제사로서 모두 일본열도의 왜국이다.

신라인에게 왜국이란 국초에 나타났다가 6세기 초에 사라지는 나라이고, 백제인에게 왜국이란 잔국토벌 다음해인 397년에 나타나 5세기 초까지 약 30년간 존재한 나라이다.  백제본기는 왜국에 대하여 단 몇개만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이 옷감보낸 기록이 왜 그리 중요한지 백제본기는 이를 기록하고 있다.

옷감보내는 일은 대개 여인과 관계된 일이고, 이는 왜국에 경사스런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백제 정부에게 이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었다면 단 한가지 뿐이다. 왜국의 통치자가 왕후를 맞는데 그 왕후가 자신들 집안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결국 전지왕 14년의 이 기록이 미사흔 왕자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백제인의 답변이다. 당시 왜국 분위기가 축제분위기였다는 뜻이다. 즉 사람 몇명 가서 데리고 나올만한 분위기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사흔왕자의 귀국은 반드시 눌지왕 2년조(418년)에 나와야하지 다른 곳에 나오면 삼국사기의 자체모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