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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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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
2008.06
박제상 2. 백제본기가 기록한 미사흔의 귀국배경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20873 2008.06.02 21:27:58 (*.68.174.111) 신라사1 Comments 1253 Views
만일 신라본기 눌지왕 2년조에 나오는 미사흔 왕자의 귀국 사건을 슬쩍 눌지 2년조가 아닌 다른 해로 고친다면 이것이 거짓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는 다음처럼 간단히 알 수 있다.
박제상이 고구려에 가서 복호왕자를 데려온 것은 당시 신라에 친고구려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일이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도 인질을 더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당시 적국상태였던 왜국에 사람 한두명을 보내 인질을 빼올 수 있을까? 왜국은 그리도 멍청한 바보인가?
상식적인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미사흔왕자가 돌아올만 하니까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눌지왕 2년(418년)에 동아시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백제본기가 하고 있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전지왕 14년(418), 여름,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흰 포목 10필을 보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왜국은 모두 가야사로서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인들 국가이고 단 몇개만 일본열도의 가야인들의 기록이다. 반면에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왜국은 백제사로서 모두 일본열도의 왜국이다.
신라인에게 왜국이란 국초에 나타났다가 6세기 초에 사라지는 나라이고, 백제인에게 왜국이란 잔국토벌 다음해인 397년에 나타나 5세기 초까지 약 30년간 존재한 나라이다. 백제본기는 왜국에 대하여 단 몇개만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이 옷감보낸 기록이 왜 그리 중요한지 백제본기는 이를 기록하고 있다.
옷감보내는 일은 대개 여인과 관계된 일이고, 이는 왜국에 경사스런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백제 정부에게 이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었다면 단 한가지 뿐이다. 왜국의 통치자가 왕후를 맞는데 그 왕후가 자신들 집안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결국 전지왕 14년의 이 기록이 미사흔 왕자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백제인의 답변이다. 당시 왜국 분위기가 축제분위기였다는 뜻이다. 즉 사람 몇명 가서 데리고 나올만한 분위기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사흔왕자의 귀국은 반드시 눌지왕 2년조(418년)에 나와야하지 다른 곳에 나오면 삼국사기의 자체모순이 된다.
박제상이 고구려에 가서 복호왕자를 데려온 것은 당시 신라에 친고구려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일이다. 고구려의 입장에서도 인질을 더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당시 적국상태였던 왜국에 사람 한두명을 보내 인질을 빼올 수 있을까? 왜국은 그리도 멍청한 바보인가?
상식적인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미사흔왕자가 돌아올만 하니까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눌지왕 2년(418년)에 동아시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백제본기가 하고 있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전지왕 14년(418), 여름,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흰 포목 10필을 보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왜국은 모두 가야사로서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의 가야인들 국가이고 단 몇개만 일본열도의 가야인들의 기록이다. 반면에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왜국은 백제사로서 모두 일본열도의 왜국이다.
신라인에게 왜국이란 국초에 나타났다가 6세기 초에 사라지는 나라이고, 백제인에게 왜국이란 잔국토벌 다음해인 397년에 나타나 5세기 초까지 약 30년간 존재한 나라이다. 백제본기는 왜국에 대하여 단 몇개만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이 옷감보낸 기록이 왜 그리 중요한지 백제본기는 이를 기록하고 있다.
옷감보내는 일은 대개 여인과 관계된 일이고, 이는 왜국에 경사스런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백제 정부에게 이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었다면 단 한가지 뿐이다. 왜국의 통치자가 왕후를 맞는데 그 왕후가 자신들 집안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결국 전지왕 14년의 이 기록이 미사흔 왕자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백제인의 답변이다. 당시 왜국 분위기가 축제분위기였다는 뜻이다. 즉 사람 몇명 가서 데리고 나올만한 분위기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사흔왕자의 귀국은 반드시 눌지왕 2년조(418년)에 나와야하지 다른 곳에 나오면 삼국사기의 자체모순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