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o Korean History+새한국고대사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2008.05
▩『숭선전지』에 나오는 "왜"와 수로왕의 관계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17877 2008.05.09 20:59:24 (*.143.129.52) 가야사0 Comments 721 Views
일찍이 일도안사 님은『삼한사의 재조명』에서, "『삼국사기』「신라본기」에 나오는 "왜"는 대부분 지금의 부산에 있던 임나가야다."라고 주장하셨다. 그런데 내가 찾아낸 옛 기록에는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구절이 나온다. 수로왕(뇌실청예)이 "왜倭"에게 신라에서 물러나라는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가라국 태조릉『숭선전지』에,
"백제가 기씨(箕氏 - 마한)를 모질게 멸망시킴에 수로왕은 곧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켰고, 왜倭가 신라를 침범했을 때는 병사를 물리라는 서신을 내렸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을 낳은 나라 금관가야 왕국』(최종철 엮음, '미래문화사' 펴냄, 서기 2006년)
원 가야와 삼한백제와의 관계는 이미 다른 글에서 설명했으니 생략하고, 나는 이 구절에서 수로왕과 왜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선입견을 없애고 구절을 읽어보자. "왜"가 "신라"를 쳐들어왔는데 신라의 왕이 아닌 가야의 "수로왕"이 "병사를 물리라는 서신을 내렸다." 가야 왕은 자기나라의 일도 아닌데 "왜"가 하는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가야와 "왜"가 아주 가까운 관계였거나, 아니면 가야의 왕이 "왜"에게 참견할 수 있을만큼 상하 관계가 아주 분명한 관계였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기 1세기에 일본열도에 살고 있던 야요이 인(원 한국인)은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실어나르는 배를 만들지는 못했으며, 따라서 바다 건너 저 편에 있는 신라로 쳐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이 구절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이론은 일도안사 님의 가설 - "왜"는 일본열도의 구주나 본주 섬의 주민이 아닌 부산의 임나가라라는 가설 - 뿐이다.
의부가라(임나가라는 원래 가야의 일부분이었고, 의부가라라는 이름을 썼다)는 신라와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에 쳐들어 갈 수 있었고, 가야의 왕은 이를 내버려 둘 경우 가야와 신라가 계속 대립할 수밖에 없으며, 삼한백제라는 커다란 적을 앞에 두고 신라(해상신라)와 계속 싸워서는 이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신의 제후국이자 수하인 의부가라(임나가라, "왜")에 서신을 보내 '이제 그만 신라 땅에서 물러가거라.'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록에 나오는 '수로왕'은 진짜 수로왕이냐, 아니면 삼한백제와 싸울 때의 기록처럼 이비가 왕의 기록이 수로왕의 것으로 '둔갑'한 것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나는 이 기록만큼은 수로왕의 것을 그대로 끌어다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의부가라는 가야군이 부산을 점령한 뒤에야 나타난 나라고(「▩만어산의 전설에 나타나는 수로왕의 선주민 정복」참고), 이비가는 충청북도와 경상도 내륙만 돌아다녔으며(「▩원 가야인이 내려온 길 - 경상도 편 (1)/(2)」 참고), 신라와 이해관계가 있는 군주는 수로왕(뇌실청예)이지 이비가가 아니기 때문이다(『삼국유사』와『삼국사기』에 있는 탈해이사금 관련 기사).
나는 이 사건이 서기 48년 이후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며(「▩만어산의 전설에 나타나는 수로왕의 선주민 정복」참고), 그 구체적인 시기는 추후『삼국사기』와『일본서기』의 기록을 비교 고찰해 알아낼 것임을 약속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