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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
고구려의 수도 이동과 지방 세력의 독립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17668 2008.05.05 12:20:39 (*.68.174.111) 고구려사0 Comments 870 Views
영국의 수도 런던은 대륙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섬을 통치하기 가장 유리한 곳에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초기 이민자들의 정착촌 중앙에 위치한다. 일본의 수도 동경은 본주의 중심이다. 대륙에서 오는 문물도 해로를 이용하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수도는 통치에 가장 유리한 곳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한반도 전체를 보면 중심은 한강유역이나 남한만 보면 금강유역이고 북한만 보면 대동강유역이다.
영토가 넓은 나라는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특히 교통과 통신이 어려웠던 과거에는 더 그랬다. 중국왕조의 수명이 짧았던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영토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신라가 중앙집권적인 정치제도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나라가 작았기 때문이다. 백제는 담로제라는 지방분권적 통치제도를 통하여 넓은 나라를 통치하였다. 그러면 삼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가고 있었던 고구려는 어떠했을까?
고구려의 수도는 5세기 초까지는 만주에 위치하였고 5세기 중반이후에는 한반도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5세기 초 이전에는 만주의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권은 유지하나 한반도의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권은 유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5세기 초 이전에 고구려의 지방 세력이 자립하였다면 그 장소는 고구려 남쪽의 한반도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5세기 중반 이후 지방 세력이 자립하였다면 그 장소는 고구려 북쪽의 만주지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3세기에 고구려의 지방 세력은 한반도 중부에 2개의 나라를 세운다. 하나가 대방국이고 다른 하나가 한성백제다. 이후 대방국은 고구려에, 한성백제는 백제에 흡수된다. 좀 더 엄밀히 따지면 한성백제가 백제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고 백제를 흡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구려의 지방 세력이 중국왕조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내왔다면 그 시기만 으로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즉 5세기 초 까지는 오지 않다가 5세기 후반에 중국왕조에 나타난 세력이 있다면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의 고구려 북쪽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성백제는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최초로 중국왕조에 사신을 보낸다.
고구려 근방(?)에 있는데 읍락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으며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들은 굳세고 흉폭 하여 동이 중에서 제일 강하며 언어도 그들만이 다르다. ... 그 사신이 와서 말하기를 “그 나라에서 먼저 고구려의 10부락을 쳐부수고 비밀리에 백제와 함께 모의하여 수로를 따라 힘을 합쳐 고구려를 치기로 하고,...”
이 정도 나오면 그 사신이 언제 어느 곳에서 왔는가는 쉽게 알 수 있다. 5세기 중반 이후에 고구려 북쪽에서 온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사이가 좋지 않고,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말갈인의 국가였던 한성백제가 백제를 흡수할 무렵이면 웅진남천 이후이다. 따라서 더 좁혀 가면 말갈사신이 5세기 후반에 온 것이다.
이 기록은 북사 물길전에 나오는 太和 연간(477-499)에 북위에 왔었다는 물길사신 을력지의 기록이다. 5세기 후반 북위에 온 물길사신을 기록한 북사 물길전이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말갈관련 기록인데, 이 직전에 고구려의 중심이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동했고 그 결과 고구려 중앙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은 커졌으나 만주지역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