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9년 전(서기 2000년)  <역사 21>에 올린 것이다. 비록 모자라는 점이 많은 글이기는 하지만, 기자족의 역사를 알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여겨 내용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 조약돌 

*기자 서여(기자)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기자조선(箕子朝鮮)」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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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상(商. 우리가 흔히 은殷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참 이름. 은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나라를 '상商'이라고 불렀다)나라가 무너진 뒤 상(商)나라의 신하이고 기(箕)땅에 봉(封)해진(기 땅을 다스리도록 임명된) 사람인 '자 서여'(자子 가 성이고 '서여'가 이름이다)가 그의 일족을 이끌고 '상나라 동쪽 땅'인 '조선(朝鮮)'에 가서 세운 나라를「기자조선」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기자(箕子)'라는 칭호를 얻은 사람이 '조선(朝鮮)'땅에 가서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세운 사람 칭호와 나라를 세운 땅 이름을 따서 '기자가 세운 조선'이라는 뜻으로「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이름은 과연 바른 이름인가? 다시말해서 자 서여(기자의 이름. 기자는 기[箕] 땅에 봉해진 제후라는 뜻이며 '자[子]'는 선생,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기자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기자조선」이나「조선」인가?(조약돌의 덧붙임 : 그러나 기자의 '자'는 '자작'을 줄인 말이다. 따라서 나는 이 때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글을 썼던 것이다)



"기자가 세웠으니까 기자조선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나라를 세운 사람의 이름이나 시호가 그 나라의 이름이 된 적은 없다. 자 서여가 세운 나라의 이름을 '기자조선'이라고 부르는 일은, 왕건이 세운 고려를 '태조 고려'라고 부르고, 이성계가 세운 조선을 '태조 조선'이라고 부르는 일과 같다(조약돌의 덧붙임 : 지금 생각해 보니 이 구절은 완전히 잘못된 구절이었다. 로마는 '로물루스'의 이름을 본따서 나라를 세웠고, 셀주크 튀르크는 '셀주크'라는 족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며, 오스만 튀르크는 '오스만'이라는 족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솔한 생각을 여과하지 않고 떠드는 잘못을 저질렀다).


따라서 기자조선이라는 말은 옳은 말이 아니다. 정 부르려면 '기자'를 빼 버리고 그냥 '조선'이라고만 불러야 한다.


또, 자 서여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 '조선'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자 서여는 '상나라 동쪽「조선」땅'으로 갔다고 적혀 있지 동쪽으로 가서 나라 이름을「조선」이라고 적혀 있지는 않다. 다시말해서 「조선」이라는 이름은 자 서여가 그곳으로 달아나기 전에 이미 있었다는 얘기다. 자 서여는 이미 [조선]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던 땅으로 달아났지, 그 땅에 달아나서 땅 이름을 [조선]이라고 짓지는 않았다. 또 주 무왕(武王)인 희발(주 무왕의 이름)도 자 서여가 동쪽「조선」땅으로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자 서여를「조선」에 봉한다고 말했으나, 자 서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시말해서 그는 희발의 신하가 되지 않았고(제후가 되지 않았고)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음을 뜻한다.(만약 조선 땅에 봉한다는 말을 받아들이고 봉해졌다고 적혀 있으면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썼다고 말할 수 있으나. 사마천의『사기』에는 자 서여가 희발의 봉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적혀 있으므로 그가 세운 나라 이름이 '조선'일 수는 없다)


연(燕)나라는 연(燕) 땅에 봉(封)해졌기 때문에(제후로 임명받았으므로) 연나라라 하고, 진(晉)나라는 진(晉) 땅에 봉(封)해졌기 때문에 진나라라 하며, 송(宋)- 상나라의 유민들이 만든 나라. 주나라의 제후국이 되었다 - 나라는 송(宋) 땅에 봉해졌기 때문에 송나라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箕)땅에 봉(封)해진 자 서여는 나라 이름을 뭐라고 지었을까?


답은「기(箕)」나라이다. 기(箕) 땅을 다스리도록 임명받았으므로 그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 이름은 기(箕)나라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에서는 이렇게 간단한 사실이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다. 동쪽으로 달아난 자 서여는 주(周) 무왕(武王) 희발이 준「조선후(朝鮮侯)」라는 작위를 받지 않았다. 즉 옛 표현대로라면 "무왕(희발)이 기자(자 서여)를 '조선(朝鮮)'에 봉(封)했으나 기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신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기자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조선」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면 자 서여가 따로 나라 이름을 정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상(商)나라에 있을 때부터 쓰던 나라 이름을 그대로 썼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자 서여가 동쪽「조선」땅으로 달아나서 세운 나라의 이름은「기(箕)」이고, 이 나라는 조선(단군조선)의 거수국(제후국)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살다가 한(漢)나라 초기 연(燕)나라에서 망명해 온 위만(衛滿)에게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그 증거가 있습니까?" 있다. 고고학 유물이 내 추측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서기 1973년(단기 4306년) 요령성 서쪽 객좌현에서 나온「기후(箕侯)」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들을 보라. 그 청동기들은(학자들이 살펴본 결과) 상(商)나라 끝 무렵에 만든 것들이었다. 자 서여는 상나라가 무너지자마자 일족과 기[箕] 나라의 백성들을 이끌고 '동쪽'의 [조선]땅으로 달아났다. 따라서 이 청동기들은 자(子)씨 일족(기자족)이 가지고 온 것이다.(상나라가 무너지자마자 가지고 온 청동기라면, 못해도 상나라 끝 무렵 - 상나라가 무너지기 전에 - 만든 것이어야 한다)


이런 청동기에는 '어느 나라 어느 군주의 것'이라는 명문을 새겨 누구 것인지 뚜렷이 밝히기 마련이다. 보통 어느 나라의 군주라고 적는다. 그런데 이 청동기에는「기후(箕侯)」라고 새겨져 있다. 이 경우「기(箕)」를 땅 이름으로, 「후(侯)」를 직위로 보아야 한다.「후(候)」는 좁은 곳을 다스리는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기후(箕侯)」는 '기(箕) 땅의 제후'라는 뜻이다.



자 서여가「기(箕)」땅에 봉해졌기 때문에 「기자(箕子)」라는 칭호를 얻었다는 기록을 떠올려 보라. 이 청동기들은 고향인 상나라에 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상나라의 신하이면서 기(箕) 땅의 제후였던 자 서여는, 조선 땅으로 달아날 때에도 그 청동기를 가지고 달아난 것이다.


"물론 상나라에 있을 때에야 '기' 나라의 제후였겠죠. 하지만 동쪽 [조선]땅으로 달아난 뒤에도 옛 이름을 썼을까요?" 그렇다. 자씨 일족은 조선 땅으로 달아난 뒤에도 [기]라는 나라 이름을 썼다. 어떻게 아느냐고? 산동성에서 [기후箕侯]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서기 1951년(:단기 4284년), 산동성 황현(黃縣) 남부촌(南埠村)에서 8점의 청동기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기기(箕器)]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단, 실제로는 '기'가 '乙'이 '其'의 머리 위에 있는 모양이다. 이 글에서는 - 한글 3.0 에서 한자를 찾아내지 못했으므로 - 어쩔 수 없이 모양이 비슷한 기箕 자를 쓴다) 또 서기 1969년(:단기 4302년)에는 산동성 연대시(烟臺市) 남쪽 교외에서 기후(箕侯)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 솥(기후정箕侯鼎 이라고 부른다)이 나왔다.


조사 결과 산동성에서 나온 청동기들은 서주(西周) 후기부터 춘추시대 말기까지의 것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자 서여의 후손들은 대대로 하북성에 정착해서 살았고, 상나라 말기부터 살았으므로 이들 청동기는 산동성으로 내려오기 전에도 썼을 것이다. 당연히 「기후(箕侯)」라는 명문은 그들이「기(箕)」땅의 제후(후.「侯」)임을 밝히고 있고 서주 후기부터 만든 청동기라면 그 이전인 주나라 때에도 그들은 [기]땅의 제후였다는 얘기가 된다.(자씨 일족이 하북성에서 산동성으로 내려온 과정은 이른바 '기자조선'에 대해 다룬 내 글들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자. 정리해 보자.


상(:은)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의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 : [기후箕侯]



주나라 말기부터 춘추전국 시대까지의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 : [기후箕侯]


따라서 주나라 초기부터 주나라 말기까지 자(子) 씨 일족(:'기자족')이 살았던 나라의 이름은 - 중간에 나라 이름을 바꿨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 [기(箕)]이다. 그리고 자씨 일족은 그 작은 '국(國)'을 다스리던 거수(:제후)였다.


『한서』「지리지」연지(燕地)조에 “연 지역에서 미(尾)와 기(箕)는 그 변두리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 나오는 "기(箕)"는 자씨 일족(:기자족)이 세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가 될 수 없다.(여기서 '나라'란 은, 주 시대 제후국만한 작은 성읍城邑인 '국國'을 가리키지, 한漢 나라처럼 커다란 '국가國家'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하북성에 자리잡은 연(燕) 나라의 "변두리"인 [기(箕)]이기 때문이다.

만약 산동성과 하북성 사이에 자리잡은 자씨 일족의 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면 "기(箕)는 연과 제 사이에 있다."고 적었어야 했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기(箕)"는 흔히 우리가 '기자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중국 기록에는 '조선'과 연나라가 싸웠다고 적혀 있죠? 또, 위만은 왜 '조선'왕에게서 왕위를 빼앗나요?" 중국 기록들은 거수국(제후국)인 기(箕) 나라와 단군조선을 가리지 않고 모두 '조선'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모두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것처럼, 설령 거수국인 '기'나라와 싸웠더라도 기나라와 싸웠다고 하지 않고 '조선'과 싸웠다고 적은 것이다.(다시말해서 '조선'땅의 세력과 싸운 사실을 그냥 '조선'과 싸웠다고 적었거나, 기 나라하고만 싸운 것이 아니라 연나라와 가까운 단군조선의 거수국 - 제후국 - 들이 단군조선의 깃발 아래 뭉쳐서 싸웠기 때문에 '조선'과 싸웠다고 적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이 직접 나서서 연나라와 싸웠기 때문에 - 거수국들이 아니라 - 조선이라고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위만은 자 서여(기자)의 후손인 준왕에게서 나라를 빼앗았다. 또 기록에 보면, 여러 성읍을 쳐서 땅을 넓혔다. 이는 위만이 기 나라를 빼앗은 뒤 단군조선의 여러 거수국들을 병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나라 이름을 바꾸었거나 정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준왕 때까지의 나라이름인 [기]를 그대로 썼을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아니면 스스로 조선왕이라고 칭했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좀더 연구해 봐야겠다)



지금까지 '기자조선'이라고 알려진 나라 이름은 과연 '기자조선'인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자 서여(기자)의 나라 이름은 '기자조선'이 아니다. 자 서여는 이미 '조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던 땅으로 달아났고 주 무왕 희발이 준 '조선 후(侯)'라는 작위도 받지 않았으므로 그가 세운 나라 이름이 '기자조선'이 될 수는 없다. '조선'도 될 수 없다.


둘째. (오늘날의)요서와 산동에서 나온 청동기에 '기후(箕侯)'라고 새겨진 점으로 보아, 자 서여의 후손들은 계속 '기(箕)'나라의 제후를 자처했음을 알 수 있다.『한서』「지리지」연지(燕地)조에 “연 지역에서 미(尾)와 기(箕)는 그 변두리이다.”라고 적힌 점으로 보아 이들 청동기는 연나라의 "변두리"였던 기(箕) 땅에서 나온 것이다. 또 요서에서 나온 청동기는 상나라 말기부터 주나라 초기의 것이고, 산동에서 나온 청동기는 주나라 말기부터 춘추시대 말기까지의 것이다. 따라서 그 중간기간인 주나라 때에도 자 서여(:기자)의 후손들은 자기 나라를 '기(箕)'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자 서여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 '기자조선'이나 '조선'이 아니라 '기'이다.


셋째. 이제 일연이『삼국유사』에서 '기자조선'의 역사를 따로 적지 않은 까닭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한국학계는 고조선(古朝鮮) - 단군조선 - 과 '위만조선(衛滿朝鮮)'은 적어도 그 사이에 끼여 있던 '기자조선'을 적지 않은 까닭을 "자료가 없거나, 중국 기록을 베껴서."라고 생각해 왔다. 중국 기록에 '기자조선'(사실은 [기]나라)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으므로 중국 기록을 참조한 일연도 적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봐야 한다. '기자조선'([기]나라)은 독립국가가 아니었고 단지 고조선의 신하 나라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따로 적지 않았고, 세력이 약하고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연이 살던 고려시대에는 적을 자료가 없었을 뿐이다.


이제 '기자조선'이라는 잘못된 이름은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기나라('기자조선')이 단군조선을 잇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단군조선은 계속해서 역사를 이어나갔다고 가르쳐야 한다. 또 기자조선이 아니라 '기'나라라는 참 이름을 가르쳐야 하고, '기'나라는 조선(단군조선)의 신하였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점도 밝혀야 한다. 잘못 알려진 '기자조선'([기]나라)의 이름을 바로잡는 일은 고조선을 "신화에서 역사로 되돌리는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이다.


- 모자라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