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신라 왕성인 박씨의 기원에 대하여 고몽골족의 일파인 오환족과 유사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김성호이다(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이후 조약돌님의 연구에서 보듯이 더 이상 의심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면 박씨가 언제 몽골초원에서 남하하였을까? 이 문제는 신라의 건국연도와 관련된 것이므로 중요하다.

우선 사료를 보기 전에 상식적인 것부터 따져보다.

1. 오환족이 몽골초원에서 한반도로 남하하였다면 남하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전쟁에서 대패하였다든 가 하는 그런 것이다.
2. 오환족의 남하시기가 신라의 건국(BC 57)보다 먼저야지 만약 뒤라면 이는 모순이다. BC 57년의 건국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반도 중부로서 북한강 유역으로 추정한다.
3. 신라의 건국시기가 오환족의 남하시기보다 나중이어야 하지만 백년 쯤 된다든가 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어색하다.

BC 3세기에 바이칼호 동쪽은 주로 동호족이, 서쪽은 주로 흉노족이 거주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동호족이 몽골초원을 지배하였다. 그런데 BC 3세기 말인 209년 경에 흉노에 모돌이라는 선우(흉노족의 왕명)가 나타나 흉노를 통일하고 동호를 공격하여 몽골초원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또한 흉노는 전한을 공격하여 위기에 몰아넣는다. 흉노와의 전쟁에 패한 동호는 선비족과 오환족으로 나뉘게 된다. 오환족은 전쟁에서 패하고 내몽고의 오환산으로 물러간 동호족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약 백년 동안 힘을 기른 오환족은 BC 87년에 몽골초원을 지배하던 흉노에 대하여 대 반격을 개시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패한다. 이후 오환족은 대거 북중국으로 남하하여 전한에 투항하고 중국역사에 흡수된다. 이들이 모두 북중국으로만 남하한 것이 아니라 일부는 부여족이 살던 만주로도 남하하였을 것이다. 만주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겠으나 만주는 이미 부여를 비록한 다른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던 때라 결국 상대적으로 힘의 공백지대인 한반도로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BC 87년과 삼국사기가 기록한 신라의 건국연도인 BC 57년 사이에는 약 30년이라는 한 세대의 시간 간격이 존재한다.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한 집단이 왕이 되어 직접 건국하였다면 신라의 건국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 박혁거세가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 때 남하하였다는 뜻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마 흉노와 일전을 치르던 오한족 거수(거세, 거사, 오환족 왕명)였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초대 왕이 되지 못하고 그의 아들이 초대 왕이 되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신라 건국 무렵에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30년으로 약 한 세대 간격이 상당히 타당하다.

박혁거세가 건국하기 직전의 신라는 흉노, 전한 등과 쟁패하던 북방의 강자였다. 이성계가 신석기나 청동기를 가지고를 가지고 조선을 건국한 것이 아니라 고려청자와 금속활자를 만든 문화민족 출신이듯이, 박혁거세 집단 역시 신라를 건국할 무렵에 이미 철기로 무장한 동아시아 최강국 출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