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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
신라의 건국 3.박씨족과 오환족(조약돌)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14593 2008.04.04 14:01:11 (*.147.81.66) 신라사0 Comments 556 Views
일찍이 김상님이 “B.C 2 ~ A.D1세기는 민족의 대 이동기(『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 이하『네티즌 고대사』)”이며 “서라벌국의 원주지는 북만주나 바이칼호 동쪽의 몽고초원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셨는데, 그 때 그분이 “선비족과 오환족이 왕을 가사, 거세, 거수 등으로 불렀다(『네티즌 고대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박혁거세 “거서간”의 이름도 이들의 왕명이라는 주장을 덧붙이셨죠.
이는 고(故) 김원룡 교수님이『한국문화의 원류』에서 신라를 건국한 이가 북방 기마민족 출신이었다고 추론하시고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에 말[馬]이 등장한다는 점과, 신라 귀족들이 반드시 말을 탔던 것을 보더라도, 신라 건국자가 북방 기마족과 관계 있음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주장하신 점이나, 김성호 박사님이 박씨족의 상주도읍 때 고타군주가 파사왕에게 헌상한 ‘청우(:푸른 소)’가 바로 박씨왕가에 출가한 최초의 김씨왕비 사성부인을 은유한 말이며 이것이 바로 박씨족의 시조신화로서 이것은 비단 박씨족에 한한 것이 아니라 거란족이던 요국(遼國)의 시조신화도 바로 이와 같다고 지적하신 점,
최초의 박씨 왕 때에는 왕비의 국구(왕비의 아버지)만을 갈문왕으로 추봉하여 거란족의 국구장제와 동일하며, 박씨족과 거란족은 시조신화뿐만 아니라 국구장제까지 일치하여 동족이었음이 확실하다는 연구결과와 비슷해 주목되는데, 저는 언어와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보았을때 그분들의 견해가 옳다고 여겨 제 주장을 그분들의 논지를 보충하는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거란은 퉁구스(:동호)인 계통인데, 홍기문 선생이 인용한 정인보 선생의 견해를 따르면 신라의 관명 아찬(阿粲)은 곧 동호어(東胡語)의 형(兄)이라는 아간(阿干)과 같은 말(홍기문 선생의 책인『洪起文 朝鮮文化論選集』에서)이며
『거란국지(契丹國志)』세시잡기(歲時雜記) 속에 3월 3일날 거란인들은 나무로 새긴 토끼를 과녁으로 삼고 편을 갈라서 활쏘기를 내기하면서 그날을 도리화(淘裏化)라고 부르는데, 도리(淘裏)는 토끼라는 말이요, 화(化)는 활이라는 말이라고 한 대문이 있고(『삼국지』진한 조와『삼국유사』진한 조를 따르면, 진한인들은 활을 ‘호’라고 불러 거란어와 비슷함을 알 수 있음. ‘활’은 진한인의 말인 ‘호’가 바뀐 말로 보인다),
홍기문 선생이 인용한 시라토리(鳥居) 박사의 여행기에는 동몽고 일대(거란 - 키타이 - 족이 살았던 곳)에서 고적(古蹟)을 ‘신라인의 자취’라고 부르고 있다는 구절이 나와 이들과 서나벌 왕족이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또한 중국 사서에 따르면 선비족은 동생을 ‘아우’라고 부른다는 구절이 나와, 선비족의 말이 신라인의 말에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퉁구스계로 알려진 민족 가운데 오환족과 신라의 풍습이 비슷하다는 점은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죠. 한 인간집단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제사의식이나 장례식에서 오환족과 - 신라인의 문화를 이어받은 - 한국/조선(:이북)의 그것이 비슷한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환(烏桓)의 장례의식에는 한국의 자리걷이(씻김군)과 유사한 습속이 보이고(박원길의 책『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마니즘』에서. 이하『초원제국의 샤마니즘』), 음식을 먹기 전에 일정량을 떼어 하늘과 땅 및 조상에게 바치는 행위(고수레)가 오환족에게서도 나타나며(『초원제국의 샤마니즘』에서),
한국/조선 사람은 장례식 때 죽은 사람의 물건을 태우는데, 오환족에게서도 물품을 태우는 ‘툴레시(Tuleshi)’라는 습속(박원길 연구원의 말에 따르면, 툴레시는 순장과 더불어 북방민족의 대표적인 풍습 가운데 하나라고 함)이 발견되기 때문에, 오환족과 우리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단 말이죠.
게다가 박연구원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오환족의 거주지는 적산인데, 적산(赤山)이라는 명칭은 고대 한국의 불거내 ․ 불함산이나 고대 몽골의 보르킨산(Burkhan Khaldun)과 의미가 매우 유사하다는 데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 오환의 적산은 “붉은 빛을 내는 산”이라는 점에서 어원적으로 불함산이나 Burkhan Khaldun과 큰 차이가 없다고 간주할 수 있으므로(『초원제국의 샤마니즘』에서), 저는 종래 한국학계가 막연하게 ‘북방 유이민’이라고 불러온 서나벌 건국세력의 정체가 오환족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것입니다.
또한『삼국지』「오환전」에는
“문자가 없고 나무에 (부호를) 새겨 신표로 삼은 뒤 읍락(邑落)마다 (그것을) 전한다 (刻木爲信, 邑落傳行, 無文字)”.
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로부터 3세기 뒤의 신라 상황을 전하는『양서(梁書)』「신라전」에 나오는
“(신라는) 문자가 없어서 나무에 (부호를) 새기고 그것을 신표로 삼았다”.
는 구절과 비슷하여 관심을 끕니다.
오환족은 서기 207년 오환의 기마군단을 탐낸 조조가 20여만명에 이르는 오환의 부중을 중국의 내지로 이주시켜 군호(軍戶)와 편호(編戶)로 흡수함으로서 역사상에서 사라져 갔고, 신라의 풍습은 그로부터 300여년이 지난 뒤에야 중국 남부에 알려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요?
이는 신라가 고구려/백제를 뛰어넘어 몽골초원 동남부에 살던 오환족과 만났거나, 아니면 오환족이 어떤 시기에서건 신라에 들어와 자신들의 풍습을 남겼다고 추리할 때에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 기록과 고고학 유물로 미루어보았을 때 전자일 가능성은 별로 없으므로, 저는 후자를 골라 오환족이 서기 207년 이전에 경상북도로 내려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게다가『삼국지』「오환전」에는 오환족이 각 마을 하나하나를 ‘부(部)’로 불렀다(數百千落自爲一部)고 적혀 있는데, 이 기록은 그동안 ‘후대에 조작된 기록’으로 알려진『삼국사기』「신라본기」유리이사금 조(條)의 기록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단 말입니다. 「신라본기」는 서기 32년 유리이사금이 혁거세가 정복한 6촌(村)의 이름을 각각 양<부>, 사량<부>, 점량<부>, 본피<부>, 한기<부>, 습비<부>로 바꾸었다고 적어 오환족이 마을(:村) 하나하나를 부(部)로 불렀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죠.
혁거세의 후손인 유리이사금을 오환족 출신으로 볼 경우, 유리이사금 조의 기록은 지배자인 유리이사금이 피지배자인 6촌을 오환족의 풍습대로 뜯어고친 사실을 적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한국/조선의 역사학자들이 거의 살펴보지 않은『삼국지』「오환전」의 기록이 혁거세의 출자와 서나벌 왕실의 출신을 간접적으로 설명해준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