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백제와 7백년을 공존하며  교섭하였는데 그 기간의 대 백제관계는 크게 3부분으로 구분됩니다. 1.전기 전쟁기-2.평화기-3.후기 전쟁기입니다. 구체적인 시기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탈해 8년(64) 10월, 백제가 와산성을 공격함.

<< 전기 전쟁기: 약 2백년 >>

2) 미추 22년(283) 10월, 백제가 괴곡성을 에워싸므로 일길찬 양질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 평화기: 약 2백년 >>


3) 진흥 14년(553) 7월, 백제의 동북 변경을 빼앗아 새로 주를 설치하고 아찬 무력으로 군주를 삼았다.

<< 후기 전쟁기: 약 백년 >>

4) 태종 7년(660) 7월, 백제왕 의자가 태자와 함께 웅진성에서 나와 항복하였다.



1)번과 2)번 사이에 위치한 전기 전쟁기는 백제가 삼한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세력다툼입니다. 3세기 신라의 인구는 백만명이 넘었습니다. 이미 2세기 후반에 아달라 이사금은 한강유역을 공격하는데 3만에 가까운 대병력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3세기 초 내해이사금은 포상팔국과의 전투를 벌이는 데 구출한 포로만 6천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가야지역이 백제의 변진한에 포함되는 등 삼한체제가 완성된 이후 신라는 백제에 굴복하고 4세기 전반에는 왜(임나가야)의 담로국이 됩니다. 약 2백년동안 전쟁이 없는 이유는 백제에 눌려(부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라는 왜(임나가야)에는 저항해도 백제에게는 저항하지 못합니다. 즉, 신라가 백제의 부용국이던 기간이 3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인 것입니다.


이 기간 중에 유일하게 백제가 신라의 변경을 공격한 사건이 한 번 있는데 실성 2년조(403)입니다. 이는 예외적인 사건으로 삼국사기만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를 보면 이유가 나옵니다. 응신 사후 왜국이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하여 신라가 바다를 건너 왜국을 공격한 것입니다. 백제는 자신의 일파가 건국한 왜국을 구하기 위하여 신라의 변경을 친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은 이 다음해인 404년에 목협만치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삼한체제가 무너지는 동안 국력을 회복한 신라는 백제와 대등한 국가가 되어 백제를 격파하고 가야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약 백년 후 마침내 백제마저 멸망시킵니다.
그러면 3세기 후반에 백제에 부용국이 된 신라가 평화기 중간에 언제 어떻게 힘을 키워 후기 전쟁기를 승리로 이끌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질문과 통하는 문제입니다.

4세기 초에 신라는 경주지역과 김제지역으로 국가가 둘로 나뉩니다. 따라서 경주지역은 인구도 절반으로 줄게 됩니다.
그러다 4세기 중반에 고구려-전연 전쟁 중에 전연에게 동원된 중앙아시아의 흉노계 선비족이 신라에 들어와 신라를 왜국(임나가야)의 담로국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이때 들어온 인구를 최대 10만으로 잡는데 이 숫자로는 백만의 인구를 회복하지는 못합니다. 신라가 백만의 인구를 회복한 것은 4말5초에 광개토왕이 내려오면서부터라고 봅니다. 이때 신라의 인구가 대폭 증가하고 강국이 되는데 2가지 요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고구려의 잔국토벌로 백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피난민이 신라 땅에 운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락 9년의 광개토왕비문은 신라 땅에 왜가 가득하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삼국사기 역시 영락 9년(아신왕 8년)에 백제가 고구려를 치려고 군사를 징발하자 백성들이 신라로 달아나 호구수가 줄었다는 기록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백제 궁월군과 아지사주의 지휘아래 바다를 건너 왜국으로 망명하고 나머지는 그냥 신라 땅에 정착하여 신라인이 됩니다.


두번째 요소는 그 다음해인 영락 10년입니다. 신라 땅에 운집한 백제 피난민을 몰아내기 위하여 중무장한 고구려 5만대군이 신라 땅에 내려왔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신라 땅에 주둔하였습니다. 이들이 신라 땅에 주둔한 것은 고고학적으로도 구명됩니다. 그들의 상당수가 결국 신라에 귀화하여 흡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수서 신라전을 보겠습니다.

 

(가) 其先 附庸於百濟 (신라의 선대는 백제에 부용하였는데, : 3세기 후반 유례 이사금 이후를 일컬음)


(나) 後因百濟征高麗, 高麗人不堪役, 相率歸之 遂致强盛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자 고구려인이 군역을 이기지 못하고 신라에 귀화하니 강성하여졌고, : 4말5초의 사건으로 보임)


(다)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 (이로 인하여 {최근에} 백제를 습격하고 가야를 부용국으로 삼았다. : 후기 전쟁기가 시작되는 6세기 중반 진흥왕때로 보임)


왜가 신라의 대외관계에 아주 중요한 존재인 듯 보이나, 왜와의 관계는 수서 신라전에 나오지 않는데 이는 정확한 기록이라 생각됩니다. 백제와 가야만 있었고 왜는 없었습니다. 결국 수서가 써질 때를 기준으로 과거 약 3-4백년 전인 3-6세기 신라사 중 대외관계(백제,고구려, 가야 관계)와 관련된 부분을 요약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