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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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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기록사진은 『신미양요 기록사진집』(강화군청, 2000.4)의 사진자료를 스캔받아 올린 곳입니다.
따라서 이 사진자료들의 저작권은 강화군청과 사진제공자인 Thomas Duvernay에게 있습니다.
사진자료의 이용에 관해서는 강화군청(문화관광과[032-930-3031])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신미양요 개요

설명 조회 수 3081 추천 수 0 2008.07.02 10:40:52
1866년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통역담당 선교사 토마스, 영국인,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등 24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서해상의 백령도를 거쳐 평양으로 접근하므로, 조선정부에서는 문정관을 보내 떠날 것을 요구하였으나, 장마철이라 비가 계속 내려 며칠동안 배에서 머무르는 사이, 중군 이현익이 작은배를 이용하여 셔먼호에 접근하다 승무원들에게 발각되어 붙잡히자 이를 계기로 셔먼호에서는 금, 은, 인삼 등을 요구하였으나 조선정부에서는 이를 무시하였다.
식량 등이 부족한 승무원들은 밤에 마을에 침입 약탈 행위를 일삼자 조선군은 셔먼호를 불태워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 고종 8년(1871) 4월 24일 아세아함대 사령관 로저스가 5척의 전함과 1,230명의 병력을 이끌고 셔먼호사건에 대한 진상규멍과 통상을 체결하려는 목적으로 강화해협으로 접근하므로, 우리측 수비군은 진무 중군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수비군이 열세한 병기와 적은 병력으로 미군과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우리측 수비군들은 총, 칼, 화살이 떨어지면 흙과 맨주먹으로 백병전을 전개하며 끝까지 용전분투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전원 순국하게 된다.

신미양요 전투에 참가했던 미 해군장교 브레이크 중령의 戰史기록을 보면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 48시간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다고 술회할 정도로 그 당시 광성보 전투는 치열했다고 한다.

우리측 수비군은 어재연 장군 이하 약 350여 명 모두 전산한데 비해 미국은 맥키 중위를 비롯한 3명의 전사자와 7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이다.

미국은 당시 광성보 전투에서 노획한 우리측 사령관 기(旗)를 미 해군사관학교 바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국난극보의 현장과 우리 선조의 살신호국 정신을 길이 되살리고자 강화군에서는 매년 음력 4월 24일 광성제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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