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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지도으로 보는 우리역사 가지고 있는 사진·지도자료 혹은 데이터베이스 서비스하는 이미지자료를 중심으로 조금의 코멘트를 더해 정리한 자료입니다.

김옥균의 머리

그림 조회 수 1049 추천 수 0 2015.03.09 17:52:19
김옥균.jpg



1894년 8월 12일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The Morning Call이라는 신문에 실린 김옥균의 캐리커쳐 일러스트이다.

기사 제목은 "Cause of The Korean Trouble"(한국문제의 기원)이고 작성자는 Frank G. Carpenter이다.


이 기사에 흥미를 가진 것은 기사의 내용 보다도, 일러스트로 나온 김옥균 때문이다.

물론 이 기사에는 김옥균을 비롯하여 King's Father라고 나온 흥선대원군의 일러스트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여인네의 일러스트도 있다. 그럼에도 김옥균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위의 사진 오른쪽에 있는 또다른 김옥균의 일러스트이다.


오른쪽 그림의 일러스트의 경우 관리로 보이는 사람이 김옥균은 아니고, 캡션에 나온 내용으로 이사람은 King's Messenger이다. 이 이사람이 들고 있는 頭가 김옥균의 頭이고, 이점이 다른 기사보다도 눈길을 띠게 된 것이다.

김옥균에 대한 2가지 일러스트가 나온 것은 김옥균에 대한 내용을 그의 활동부터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은 필자의 엉성한 영어능력으로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주요 자료를 통해 얼추 맞춰 나가보면,

1894년 3월 28일 상하이에서 죽게된 김옥균의 사체가 여차여차해서 결국 한달만인 4월 28일에 조선에 도착하게 된다.

조선에 도착된 김옥균의 사체는 이미 죽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양화진에서 다시한번 능지처참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를 이미 죽은 사람에게 다시한번 징벌한다는 의미에서 부관참시라고까지 이야기 하기도 한다.


위키를 보면, 죽은 다음에 효수된 김옥균을 사진으로 전하기도 한다.

아래 링크를 누르면 위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8%A5%EA%B7%A0#mediaviewer/File:Beheaded_Kim_Okgyun.png


이 기사가 같은 해 8월 12일에 나온 것이니, 김옥균의 죽음과 당시 한중일의 복잡하고 다단한 국제관계, 그리고 당시 각국이 갖는 내정의 속사정을 미국 기자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최근 알게된 미쿡의 某 정보검색시스템 찾게 된 것이다.

이미지 자료의 검색 서비스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진작부터 제공되고 있었으나,

신문 이미지에 대한 하이라이팅(전문) 등 최근 우리나라도 많이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쨋거나 디비 강박증에...


HiSTOPiA™ 2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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