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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세계도(世系圖)

목록·도표 조회 수 3977 추천 수 19 2004.02.16 10:25:44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나오는 백제전세지도(百濟傳世之圖)입니다.

같이 나오는 내용은....
최씨는 보(溥)는 이렇게 적었다.
"시조는 바로 동명(東明) 의 아들인데, 태자에게 미움을 받아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이 한 구절은 고이(考異)에 틀리게 보인다.
난을 피하여 도망하였는데, 험난한 길에 고생이 많았으며, 하남(河南) 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였다. 비록 모든 일이 초창이기는 하였으나, 병(兵)을 엄히 하여 굳게 지켜 낙랑(樂浪) 과 말갈(靺鞨) 을 방어하였으며 마한(馬韓) 을 병탄(倂呑) 하여 멸망시키고, 또 고구려와 대항하고 신라와 대적하여 세 나라가 동등한 세력을 형성하여 7백 년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 호걸스런 임금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ㆍ 다루(多婁)는 도전(稻田) 을 쳐 궁한 백성을 구원하고 대신(大臣) 을 예우하여 군왕(君王) 의 풍도가 있었으나, 신라와 틈이 생겨 조그마한 한 성(城)을 가지고 다투어 수십 년 동안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이루(已婁)는 신라와 수호를 맺어 교린(交隣)의 의를 실현하였다. 개루(盖婁)는 비록 역사에는 ‘공순(恭順) 하다’고 칭하였으나 반신(叛臣)을 받아들여 이웃 나라와의 화평을 깨뜨렸고 소민(小民)을 속여 그의 처(妻)에게 난행하였으니, 무엇을 족히 말할 수 있으랴! 초고(肖古)ㆍ구수(仇首)는 재위 햇수는 길지만 한 일이 없다. 고이(古爾)는 사냥질을 좋아해서 금황(禽荒)의 실책을 면치 못하였으나, 굶주리는 백성을 구원하고 조(租)ㆍ조(調)를 면제시켰으며, 관제(官制) 를 정하고 장리(贓吏) 를 막았으며 교린(交隣) 을 맺었으니 잘한 일이다. 책계(責稽)ㆍ분서(汾西)는 천승(千乘) 의 높음으로 스스로 신중하지 않아서, 하나는 적병에 죽고 하나는 역적의 손에 죽었으니 슬픈 일이다. 비류(比流)는 오랫동안 민간에 있어서 백성들의 질고(疾苦)를 잘 알아, 즉위하자 궁핍한 백성을 구제하였다. 역사에서는 ‘관인하여 백성을 사랑하였다’ 하였으나, 41년 동안에 재변이 자주 나고 기근이 거듭 이르러 백성이 살 수 없었으니 어인 일인가!
계왕(契王)은 재위(在位)가 겨우 2년이다. 비류(比流)가 분서(汾西)를 대진하여 즉위하였다가 종말에는 분서의 아들 계왕(契王) 에게 전하고, 계왕(契王) 은 비류(比流)를 대신하여 즉위하였다가 종말에는 비류(比流)의 아들 근초고(近肖古)에게 전하였으니, 겸손한 풍도가 있었다. 근초고(近肖古)는 고구려와 실화(失和)하여 임금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으며, 원한을 사고 화를 불러 대대로 원수가 되어,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근구수(近仇首)는 재위 10년으로서 대략 나라를 보전하였다. 침류(枕流)는 불법(佛法) 을 처음으로 믿어 호승(胡僧) 을 불러다 절을 짓고 중을 길러 복을 구하려 하였으나 1년도 넘기지 못하고 훙(薨)하였으니, 불(佛)이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진사(辰斯)는 토목(土木) 의 일과 사냥을 좋아하고 궁실ㆍ지소(池沼)를 사치하게 하고 진기한 물건을 모아 가지고 놀다가 본심을 잃었고, 구원(狗原) 에서 사냥하기를 10일도 하고 한 달도 하다가 마침내 행궁(行宮) 에서 사(死)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아신(阿莘)은 공훈을 탐내어 거의 매년 병을 남용하니, 백성이 전쟁에 지쳐 많이 적국으로 도망쳤고, 경솔히 세자를 섬오랑캐에게 인질로 보내어 후사를 잇지 못할 뻔하였다.
전지(ㆍ支)는 오랫동안 밖에 볼모로 잡혔다가 왕이 훙(薨)하여 나라에 내란이 있자 돌아와 나라를 차지하였으니 어찌 그런 다행이 있으랴! 구이신(久爾辛)은 비유(毗有)에게 전하고, 비유는 개로(姜鹵)에게 전하였는데 개로는 교사(驕奢)스럽고 혼암하였다. 상국(上國 당시 중국의 위(魏)나라)에 청하여 강한 고구려를 치려 하였으며, 적의 간첩을 믿어 가까이하고 유희를 즐겨 크게 노역(勞役) 을 일으켰고, 오직 궁실과 대사(臺■) 만을 높이고 장식하여, 흙을 구워 성을 쌓고 강을 따라 제방을 만들고, 돌을 채석하여 곽(槨)을 만드는 데 이르렀으며, 이 때문에 인력이 다 소모되고 창름(倉■)은 텅 비게 되었는데도, 적국의 술수에 넘어간 것을 몰랐다. 그리하여 나라 형편이 고기 썩은 것 같이 되어 적병이 갑자기 들어오니 후회막급이었고, 자신도 남의 손에 죽었으니 누구를 탓하랴! 전(傳)에 이르기를,

“나라는 스스로 친 후에 남이 친다.”
하였으니, 아마 개로를 두고 할 말일 것이다.
문주(文周)는 장자로서 왕통(王統)을 이었으니, 와신상담(臥薪嘗膽) 의 때임이 분명하였으나, 우유부단하여 강한 신하에게 제재를 당하여 그 몸도 보존하지 못하였다. 삼근(三斤)은 어린 나이로 장수를 명하여 적(賊)을 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귀신과 사람의 분을 풀었으니, 칭찬할 만하였으나 향년(享年)이 짧았으니 애석하다. 동성(東城)은 나라의 흉년을 당하여 백성이 굶주림은 구하지 않고 임류각(臨流閣) 을 지었는데, 장려(壯麗)함이 지극하였다. 제 마음대로 노는 것을 좋아하여 궁문을 닫고 간신(諫臣) 을 물리치고는 사냥에 몰두하여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다가 적신(賊臣) 에게 시해(弑害) 당하였다. 무령(武寧)은 백가(ㆍ加) 를 목베어 토적(討賊)의 대의를 얻었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도를 잃어 위로하고 편히 살게 하지 못하여, 백성을 적국으로 가게 한 꼴이 되었는데도 그전 역사에서 그를 ‘인자(仁慈)하고 관후(寬厚)하였다.’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ㆍ
성왕(聖王)은 즉위한 처음에 큰 일을 결단하여 사람들이 성스럽다고 칭하였으나, 말년에 가서 신라와 고구려를 치려고 모의하였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매, 옛우호를 배신하고 분노의 군사를 일으켜 드디어 창끝에 죽으니, 실로 하루아침의 분노가 일신을 망친다는 말이 이것이다. 위덕(威德)은 비록 덕 있는 정치는 없었으나, 나라를 누린 것은 꽤 오래였다. 혜왕(惠王)은 즉위한 지 2년만에 훙(薨)하였다. 법왕(法王)은 장자로서 왕위를 이었다. 불교를 숭상하여 짐승의 도살을 금지하며 새매를 날려 보내고, 어구(漁具)나 사냥도구를 불태워 버렸다. 절을 창건하고 중에게는 도첩(度牒) 을 주었는데, 아마 오래 살기 위함이었던 듯하나 몇 해 안 가 훙하였으니, 그 미혹됨을 잘 말하여 준 것이다.
무왕(武王)은 강함을 믿고 교만하였으며 신라를 침략하여 편안한 해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서로 교대로 침략하여 죽은 시체가 들을 메웠는데, 중국의 황제가 싸움을 그만둘 것을 권유하였으나 겉으로는 감사히 여기는 체하였지만 안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만년에는 궁 남쪽에 못을 파고 망해루(望海樓) 를 짓고 사비하(泗ㆍ河)에서 놀았다. 절제없이 놀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니,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의자(義慈)는 태자로 있을 적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가 있었으며, 즉위하여는 죄수를 염려하며 죄를 용서하여 주었으니, 그 정치가 조금은 볼 만하였다. 그러나 큰 사리에는 어두워서 심원한 지혜와 계략이 없어 신라와는 순치(唇齒)의 형세임을 모르고 경망하게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병탄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금년에 성(城) 하나를 빼앗고 명년에 또 성 하나를 빼앗아, 연승의 위세를 의지하여 교만한 기색이 갑자기 넘치어, 신라를 낭중(囊中)의 물건으로 보아 그를 취하려는 마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중국 황제의 조서를 어기고 분란을 풀려는 마음도 없이 고구려와 결탁하여 중국에의 조공길을 끊었다. 그러고도 음란하여 놀기를 좋아하며 충간(忠諫)을 끊으니, 위에서 하늘이 노하여 재이(災異) 를 여러 번 보여 간곡히 알려 주었으나, 깨닫지 못하고 태연스레 방자하였다. 그리하여 탄현(炭峴) 과 백강(白江) 의 요새도 보지(保持)하지 못하고, 당나라 군사가 이르매 사직(社稷) 이 폐허가 되어 부여(扶餘) 씨가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었으니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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