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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의 태자 책봉

백제사 조회 수 6108 추천 수 200 2004.02.21 09:56:14
一道安士 *.232.248.48

무왕은 600년에 백제왕이 되어 641년에 죽었으므로 무려 42년을 재위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의자는 재위 33년(632년) 정월에 태자가 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그저 封元子義慈爲太子 라 하여 간략히 적고 있으나 왜 이렇게 늦게 태자가 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무왕 33년이면 의자왕자는 이미 장성하여 나이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나 차자가 아니고 원자라는 것도 이상합니다. 의자왕은 즉위 후 4년째 태자를 세우는데 이것이 정상입니다.

이에 대하여 일본서기는 중요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의자왕자가 태자가 되기 바로 전해인 631(또는 632)년 3월조의 일본서기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명천황 3년(631 혹은 632년); 3월, 百濟王 義慈入王子豊章爲質 - 일본서기

백제왕 의자가 왕자 풍장을 왜국에 인질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백제왕이 '의자'라는 이 기록을 무왕의 오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의자왕의 태자책봉은 무왕이 한 것이 아니라 의자왕이 스스로의 힘으로 올랐을 가능성입니다. 의자왕자에 의해 왜국으로 추방된 왕자 풍장은 의자왕자에게 밀린 무왕의 다른 왕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무왕은 왕비가 여럿이었을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부여 풍에 대하여 '古王子'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왕의 아들이라느 말인지 의자왕의 아들이라는 말인지 혼란이 옵니다.

의자왕자가 태자에 오를 정도의 권력을 장악한 것은 무왕 31년인 630년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무왕 31년(630년)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봄 2월, 사비의 궁을 중수하였다. 왕이 웅진성에 갔다. 여름에 가뭄이 들어 역사를 중지하였다. 가을 7월, 왕이 웅진성에서 돌아왔다.

630년 2월과 7월 사이에 왕이 수도를 비운 사이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그리고 632년에 의자왕자 태자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직전인 631년에 태자 즉위의 걸림돌이 되는 풍장을 왜국으로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후 무왕은 별로 힘이 없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후의 무왕 행적은 정치를 떠나 유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왕 33년 7월, 왕이 생초 벌판에서 사냥을 하였다.

.무왕 35년 2월, 왕흥사가 준공되었다. 그 절이 강 언덕에 섰으며 채색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왕이 매양 배를 타고 절에 들어가 향을 피웠다. 3월, 대궐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 밖의 물을 끌어들여 사면 언덕에 양류를 심고, 물 가운데 섬을 쌓아 방장선산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무왕 37년 3월, 왕이 측근 신하들을 데리고 사비하 복쪽 포구에서 잔치를 베풀고 놀았다. 포구의 양쪽 언덕에 기묘한 모양의 바위와 ... 8월, 왕이 망해루에서 여러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무왕 39년 3월, 왕이 왕비와 궁녀들을 데리고 큰 못에서 배를 띠우고 놀았다.

.무왕 42년 3월, 왕이 죽었다.

즉, 630년을 기준으로 무왕의 행적이 바뀝니다. 630년 이전에는 사냥도 없습니다. 신라에 대해 힘으로 밀어 부칩니다. 하지만 630년 이후에는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 같습니다.

Comment : 1,  Read : 65,  IP : 203.232.248.48
2004/02/06 Fri 14:02:30 → 2004/02/11 Wed 20:23:59
조약돌  그렇다면 무왕은 조선 태조처럼 '이름뿐인 군주'였고, 실권은 - 태종 이방원처럼 - 의자 왕자가 쥐고 있었다고 봐야겠네요(혹시 즉위하기 전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는 신하들도 죽이거나 내쫓아 버린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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