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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람들의 환경파괴와 해외 식민지 건설

백제사 조회 수 4490 추천 수 250 2004.02.21 13:29:57
▩조약돌 *.153.157.85
그저께(2004년 2월 19일)에, 한국방송(KBS)의「역사스페셜」(<백제사 최대 미스터리, 한성백제의 왕성은 어디인가?>)을 보다가 갑자기 ‘혹시 백제가 해외 식민지(:해외 담로)를 만들기 시작한 까닭은 단순히 왕족에게 나눠줄 땅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파괴가 심각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납토성의 성벽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되살린 모습을 보고 ‘그 커다란 성벽을 나무판자로 만든 틀로 연거푸 찍어내서 만들었으니, 주변에 있는 나무를 마구 베어냈을 것은 당연한 이치요, 그러다보니 환경이 피폐해지지 않았겠느냐? 그렇다면 백제가 삼한체제를 이루었을 무렵에는 목재가 모자라서 많은 곤경을 겪었을 것이다. 어쩌면 백제 사람들은 그 때문에라도 바다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라고 판단한 것이죠.

아시다시피 백제는 서기 298년(이 해에 해양신라[:석씨족이 다스리던 신라]가 망함.『삼국사기』「백제본기」책계왕 13년조에 보면 “왕은 가을 9월에 한漢나라[:서진]가 맥인(貊人)과 함께 쳐들어오므로 (몸소) 나가서 막다가 적병에게 죽임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있다. 책계왕은 음력 9월에 죽었고 유례이사금은 서기 297년에 항복한 뒤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백제는 신라를 완전히 굴복시킨 뒤 서진과 싸웠음을 알 수 있다)에 삼한을 통일하고,

서기 304년(:추정)에 요서를 점령합니다.

예성강 이남을 통일한 뒤 해외식민지를 얻으려는 전쟁을 일으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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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설명 : 필자가 백제의 요서/절강성 점령 연도를 서기 304년으로 본 까닭

『양서』「백제전」에 “고구려는 진(晉)나라 때 이미 요동지방을 차지하였고, 백제는 요서와 진평을 점거(점령)하고 백제군을 설치하였다.”는 구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조의 역사서인『주서(周書)』와『북사(北史)』는 백제가 “진(:동진)/송(:남조 유송)/제(:남제南齊)/양(梁)나라 때”에 강좌우(‘강’은 장강長江[:우리가 흔히 ‘양자강’이라고 부르는 강은 장강의 지류 가운데 하나일 뿐, 장강 전체를 일컫는 말은 아니다]이며, 강좌는 “강소성 남부 및 절강성 북부(김성호 박사의 설명)”이고 강우는 “안휘성/강서성(江西省 : 절강성/복건성과 호남성 사이에 끼여있는 성 - 옮긴이) 일대(김성호 박사)”다 - 옮긴이)에 “웅거”하였다는 구절이 나오므로

백제가 “진 나라 때”에 요서와 진평(황유복 교수는 진평이 광서장족 자치구에 남아있는 백제향이라고 주장한다), 강좌/강우에 ‘한꺼번에’ 식민지를 세웠음을 알 수 있죠. 다만 서진西晉 시절에는 진나라의 힘이 아직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진 말/동진 초에 쳐들어가 식민지를 세웠으리라고 보는 것입니다(:서진은 서기 291년부터 서기 306년까지 ‘8왕의 난’이라는 내전에 시달림).

게다가 백제의 분서왕은 서기 304년 “봄 2월에 군사를 몰래 내어 낙랑의 서쪽 고을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겨울 10월에 왕은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어 세상을 떠났(『삼국사기』「백제본기」분서왕조)”는데,

이는 남조의 역사서에 나오는 “백제가 요서를 침략하여 빼앗았다”는 구절과 비슷하여 관심을 끄는 바, 이로 미루어볼 때 중국 역사서가 백제의 식민지 건설을 “진 나라 때”라고 애매모호하게 적은 까닭은 식민지 건설이 책계왕대부터 분서왕대까지 ‘서서히, 차근차근’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8왕의 난은 서진의 힘을 떨어뜨렸고 서진은 그 내전이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어 멸망했으며[서기 316년] 서진이 멸망하자마자 오호십육국시대가 열렸으니, 백제는 그 때를 틈타 점령지를 넓혔다고도 볼 수 있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또한 서기 317년에 세워진 동진은 약했기 때문에 백제의 식민지 건설을 막지 못했겠죠.

그래서 백제가 해외식민지를 넓히기 시작한 해를 서기 304년으로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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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에는 왜 백제가 적극적으로 식민지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문득 백제가 서기 9년(마한 왕실이 무너진 해임)부터 서기 297년(해양신라가 무너지고 삼한체제가 완성된 해임)까지 무려 289년 동안 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말갈(:고구려)이나 가야, 서라벌, 신라(:해양신라), 위나라와 싸웠다는 사실이 생각나 전쟁 때문에 자원이 다 떨어져서 그걸 보충하려고 바다 밖으로 나간 건 아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활이나 창, 화살, 도끼, (성벽을 올라갈 때 쓰이는) 사다리, 방패, 군선(軍船 : 군함),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수레, 농기구는 모두 나무로 만드는 물건이잖아요? 화살촉이나 창날, 도끼날, 칼날, 갑옷은 모두 쇠로 만드는 물건인데, 이것들을 만들려면 많은 나무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펴 철광석을 녹여야 하고(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며 자원을 한꺼번에 ‘낭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

게다가『삼국사기』「신라본기」에서 해양신라의 이사금이 “왜병”에 대비해 “군선”을 손질하라는 명을 내리는 걸로 봐서는 담로에 속해있던 “왜병(임나가야병)”도 많은 “군선”을 가지고 있었을 터이고, 당연히 다른 담로국들도 왜병 못지않게 많은 군선을 만들었을 것이니 당시의 목재 소비량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고 봐야죠.

또한 당시에는 숲의 나무를 베고 불을 질러서 논밭을 마련했기 때문에, 국가의 농업 장려나 백성들의 개간도 삼한(:백제)의 환경을 피폐하게 하는 데에 한몫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서기 298년에는 목재가 많이 사라지고 그만큼 환경도 피폐해져(숲은 파괴하기는 쉬우나 되살리기는 어려움) 농업생산량이 떨어져요.

백제의 지배층은 이 난국을 풀기 위해 해외식민지를 만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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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설명 2 :

담로제도를 유지하는 바탕이 되는 군사력은 주로 수군[:해군]이었는데, 수군은 배가 있어야 유지되므로 큰 군선을 만들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나무가 많고 땅이 기름진 곳’을 찾아야 했죠. 그래서 백제는 자신들과는 별다른 연고가 없는 중국 남부나 동남아시아, 남아시아로 눈을 돌렸겠죠.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제가 해외 식민지를 둔 곳은 - 북중국 일대는 빼고 - 대부분 나무가 많은 곳입니다.

송상용 한림대학교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침미다례 왕국이 있던 제주도는 원래 숲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13세기에 몽골군이 침입하여 삼림을 불태우고 나서는 초지로 바뀌었다(『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실린 송교수의 글 「환경과 역사」에서)”고 해요.

그렇다면 백제의 침미다례 정복은 단순한 ‘터 다지기’가 아니라, 나무라는 ‘자원’과 교역로라는 ‘이익’을 얻기 위한 행위였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백제가 침미다례를 정복한 해는 서기 227년이니, 어쩌면 삼한의 ‘본국’에서는 이 때부터 나무가 모자라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가설도 제기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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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제 가설은 이시 히로유키(石弘 之. 석홍 지. 동경東京대학 대학원 교수, 환경학 전공)/야스다 요시노리(安田 喜憲. 안전 희헌.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 환경고고학 전공)/유아사 다케오(湯淺 赳男 탕천 규남. 도키와대학 교수. 비교문명사/경제인류학 전공) 씨가 함께 쓴『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이하준 씨가 우리말로 옮김, ‘경당’에서 펴냄)를 읽고 나서「역사스페셜」(<백제사 최대 미스터리, 한성백제의 왕성은 어디인가?>)을 보다가 떠올린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의 190 ~ 191쪽을 읽어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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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 :

무엇이 유럽의 대외진출(:해외 식민지 건설과 침략전쟁 - 옮긴이)을 초래했는가(불러왔는가 - 옮긴이) 하면, 저는 서유럽에서의 자원, 특히 삼림 고갈을 들고 싶습니다. 동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고 남에는 이슬람 세력이 있어서 서유럽은 육지의 양쪽을 완전히 봉쇄당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서쪽으로 향하든가 아니면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해서 동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환경을 괴멸적으로까지 파괴한 유럽 세계의 팽창의 원형은 극히 초기단계, 그러니까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스파냐 - 옮긴이)이 대서양이나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15세기에 먼저 아조레스, 마딜라, 카나리아, 카보베르데 등, 북대서양과 아프리카 서해안의 여러 섬들을 정복했어요. <그 목적은 우선 선박에 사용할 굵은 목재를 구하는 데 있었다고 봅니다. 두 나라 모두 국내의 목재자원은 이미 고갈되고 없었기 때문이죠>.

(< >는 옮긴이)

유아사 : 돛대(마스트)로 사용할 만한 나무는 대체로 15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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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대목이 나오고, 같은 책의 193 ~ 194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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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 : 이러한 식민지 정복이나 경영에는 수많은 선박이 필요한데, 당시에는 대형선박의 건조에 사용할 만한 큰 나무를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유아사 : <돛대용은 더구나 상당히 길어야 하는데, 그런 나무는 간단하게 재생산할 수가 없지요>. 선박용 목재를 마련하려고 지중해 연안을 모조리 베어낸 뒤, 최후에는 발트 해까지 가게 됩니다. 대항해시대의 스페인, 포르투갈 선박은 단치히(지금의 폴란드 그다인스크)에서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도 일부러 단치히 근처까지 가서 배를 만들도록 했던 겁니다.

(< >는 옮긴이)

이시 : 대포를 120문이나 갖춘 일급함선은 36미터가 넘는 거대한 메인 마스트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그런 거목은 일찍 모습을 감춰버렸죠. 그래서 가령 영국 해군은 (나무를 - 옮긴이) 국내에서 조달할 수 없게 되자 처음에는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발트 해 연안지방(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가 자리잡은 곳 - 옮긴이)에서 구했다가 거기서도 동이 나자 아메리카(미합중국 - 옮긴이)나 캐나다에서까지 수입하게 됩니다.

유아사 : 그래요. 하나의 중요한 ‘도구’(예컨대 배 - 옮긴이)를 만들기 위한 목재의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만큼 재생산이 불가능합니다. 귀중품이기 때문에 멀리까지 구하러 갈 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포르투갈은 인도(바라트 연방공화국 - 옮긴이)의 고아에서도 배를 만들었습니다. 소재는 티크였고요. 저는 선박용 목재와 에너지원으로서의 목탄은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5세기에는 먼저 선박용 목재가 고갈되었고, 18세기에는 목탄용 목재(:연료로 쓸 목재 - 옮긴이)가 부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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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어쩌면 백제도 이런 문제에 부딫혀서 해외 식민지를 만든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었거든요. 그런데 <역사스페셜>을 보다 보니 성벽을 쌓을 때에도 나무가 쓰인다는 설명이 나와서 ‘그렇다면 내 가설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구나.’라고 판단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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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백제 사람들의 환경파괴와 해외 식민지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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