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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의 성과 이름에 대해….

Q&A 조회 수 4223 추천 수 0 2008.11.11 18:14:44
삼국사기를 보면 왕들을 표기할 때 거의 이름으로 표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백제본기 근초고왕을 보면 고국원왕을 사유라고 표기했고, 신라본기 진흥왕을 보면 성왕을 명농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신라본기 파사이사금에 나온 수로왕도 이름일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김해김씨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보면 태조왕, 도왕, 양왕 등 가야국 왕들의 시호(또는 묘호)가 따로 있습니다.
게다가 삼국유사 왕력을 보면 수로왕부터 구형왕까지 전부 김씨라는 단어가 붙어있습니다.
고구려는 건국자에게만 고씨를 붙인 반면 가야에는 전부 김씨를 붙였습니다. 가야도 고구려나 백제처럼 건국자에게만 김씨를 붙이면 될텐데….
이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조약돌 님과 일도안사 님의 답변을 듣고싶습니다.

댓글 '1'

一道安士

2008.11.12 05:08:19
*.68.174.111

신라사를 보면 미추왕이 최초의 김씨 왕이고 다음 김씨 왕이 내물왕부터 이어지는 왕력입니다. 미추왕은 3세기에 고구려를 공격하던 관구검군대에 참전했던 북방 선비/오환계 인물로서 성이 없습니다.  내물왕 역시 4세기 고구려를 공격하던 모용황군대에 참전했던 북방 흉노/선비계 출신으로 성이 없습니다. 단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4세기에 신라에 들어온 유목민족의 지배층이 흉노계 선비족 모부 출신이었다는 것정도입니다.

내물왕은 4세기 인물이고 미추왕은 3세기 인물인데 삼국사기는 장인-사위로 연결해 놓았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아무 관련도 없고 약간의 가능성을 준다면 내물왕이 미추계열의 여인을 왕비로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정도입니다. 이는 신라본기의 사위가 무엇이냐는 용어의 정의 문제로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백제본기의 제2자는 부자관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신라에서 왕통이 바뀔 때 정통성의 확보를 위하여 앞의 왕통과 장인-사위 관계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내물왕의 경우에 이전의 왕들인 흘해, 기림, 유례와는 연결이 불가능합니다. 이 3왕은 모두 왕비 기록이 없는데 이는 삼한의 다른 소국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삼국사기 편집원칙상 왕비를 기록할 수 없는 것이고, 그러면 자식도 없으니 사위로 연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추왕과 내물왕이 김씨를 성으로 쓰기로 결정한 것은 당사자가 한 일이 아니고 6세기 법흥왕때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며 결정한 일입니다. 이전에 신라에 들어왔던 여러 북방 유목민족들 중에 김알지 계통과 가장 가깝다고 보고 김씨로서 왕성을 결정한 것이지요. 즉 성은 자신들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문화적인 산물입니다.

남가야 왕력은 수로왕부터 이시품왕까지의 1-5대와, 좌지왕에서 구형왕까지의 6-10대는 같은 지역에 살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5대 이시품왕이 6대 좌지왕의 아버지가 아닌 것은 꼭 같이 백제라는 국호를 쓰지만 의자왕이 견훤왕의 아버지기 아닌 것과 같습니다. 

남가야가 김씨를 왕성으로 결정한 것은 신라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영락 17년의 고구려 공격으로 삼한백제가 완전히 무너지고, 그 결과 삼한백제의 영역이었던 가야지역이 정치적인 독립을 하는데 좌지왕은 과거 남가야 지역에서 독립을 이룬 인물입니다. 5세기 이후 가야지역에 신라의 강한 문화적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부터 남가야의 6-10대 왕들이나 지배층도 북방에 기원을 둔 세력이었을 가능성을 줍니다. 3-4세기의 임나가야 왕통도 미추왕계열인 북방계입니다. 즉 3-4세기에 신라를 공격하던 왜군은 관구검 전쟁 직후 북에서 내려온 선비족 기병부대입니다. 5세기 이후는 신찬성씨록을 참고하면 신라와 마찬가지로 선비족 모부가 아니었는가 생각합니다.

선후관계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신라가 김씨를 왕성으로 정하며 가야도 역시 김씨를 왕성으로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6대 좌지왕을 180년 전에 멸망했던 5대 이시품왕에 연결시키다보니 수로왕을 포함한 1-5대왕도 자동적으로 김씨 성이 배정된 것이지요.

수로왕가야가 어디서 왔는지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고고학자인 김병모선생님은 중국 서북부로 추정하시지요). 단지 한반도의 가야계 지명이 압록강 중류에서부터 서해안으로 죽 남하하고, 또 신라보다 한반도에 먼저 들어왔다는 것으로부터 가야계는 위만조선 멸망 직후이자 민족 대이동기인 BC 1세기 정도에 만주에서 압록강 중류를 건너 한반도로 들어왔고, 최종적으로 농업과 상업에 모두 유리한 낙동강 하류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반도에서는 마한과 결합하여 그 지배를 받다가 서기 42년에 마한이 백제에게 멸망하자 독립국가로 건국한 것이고. 다시 227년에 망하여 백제의 변진한에 들어갔다가 5세기 초인 407년에 삼한백제가 완전히 망하자 가야가 재건국되고. 그러다 백제의 성왕이 신라에게 대패하여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자 신라에게 통합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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