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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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어(朝鮮語)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수도 평양. 이하 ‘조선 공화국’. 실제로 조선노동당도 자신의 나라를 ‘공화국’이라고 부른다)의 인민이 쓰는 말
* 일본어 : 이 글에서는 야운쿠르(아이누) 족과 유구(琉球. 오키나와)인의 말이 아니라, 일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야마토 민족의 말을 가리킨다.
일본이 서기전 200년에 달아난 원(原) 한국인들(한국의 원주민들)과, 서기 2세기에 건너간 진한/신라/가야 사람들과, 서기 4세기 말 고구려군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삼한백제 사람들과, 서기 7세기 중반에 신라에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달아난 고구려/남부여(南夫餘) 사람들이 만든 나라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어/조선어와 일본어에는 비슷한 낱말이 있다.
일본어로 ‘가(が)’는 한국어/조선어로 ‘~가’라는 뜻이고, ‘히(ひ)’는 ‘해(태양)’라는 뜻이며, ‘우스(うす)’는 ‘소(牛)’라는 뜻이고, ‘다(だ)’는 ‘~다.’라는 뜻이다. 또 ‘야마(やま)’는 ‘산(山)’이라는 뜻인데, 산은 순우리말로 ‘뫼’이므로 이것도 두 언어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증거일 수 있다. ‘카미(かみ)’라는 일본어는 신(神)이라는 뜻인데, 신은 옛 우리말로 ‘고마’/‘거무’다. ‘곰’이라는 뜻을 지닌 ‘쿠마(くま)’라는 일본어 낱말도 세 언어가 비슷함을 시사한다. 일본 동북(東北) 지방의 사투리로 ‘만즈(まんず)’는 ‘먼저’라는 뜻이라는 것도 지적해야겠다.
하지만 일본어가 한국어/조선어와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낱말 가운데는 확실히 다른 것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키(き)’는 일본어로 ‘나무’라는 뜻인데, 이 두 낱말은 발음이 완전히 달라 얼핏 보면 다른 근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하하(はは)’는 일본어로 ‘어머니’라는 뜻인데, 이 말도 한국/조선어의 ‘어머니’와는 많이 다르다. 또 ‘나라’라는 뜻을 지닌 ‘쿠니(くに)’는 한국어/조선어 낱말인 ‘나라(국가國家)’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것 같다. ‘토끼’라는 뜻을 지닌 ‘우사기(うさぎ)’도 발음이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말인데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역사적인 경험에서 찾는다. 서기 668년 이후 신라인/고려인/조선인이 겪은 일을 일본인이 겪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조선어와 일본어가 달라진 것이다.
서기 698년(이 해에 진, 즉 발해가 세워지고 양국시대 - 남북국시대 - 가 시작됨) 이후의 역사를 간단히 훑어보자. 신라인의 땅(발해 남쪽의 신라 뿐만 아니라 남부여가 망한 뒤 소속을 신라나 당나라로 바꾼 옛 백제 담로도 포함된다)에는 아랍인 무슬림이 건너왔다. 아랍 무슬림 학자가 쓴 중세 이슬람 문헌에는 신라임이 분명한 ‘알(Al) - 실라(Silla)’라는 땅에 많은 무슬림이 건너가서 사는데, 그곳의 기후가 좋고 땅이 아름다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이 신라로 망명한 아랍인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경주에는 아랍인과 비슷하게 생긴 무인(武人)이 돌에 새겨져 있는데, 이 석상은 실제로 아랍인을 보지 않았다면 만들어질 수 없다(내가 5~6년 전 잡지에서 읽은 글에 따르면, 한국에 온 팔레스타인 시인은 그 석상을 보고 ‘서西아시아 사람 같다.’고 말했다).
사람이 건너왔다면 당연히 그들이 쓰는 말도 건너왔을 테고, 그렇다면 원주민이 이민자의 말에 영향을 받아서 그들이 쓰는 말을 바꾸거나 이민자가 - ‘적응’하려고 - 원주민의 말을 빌려 쓰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신라어와 아랍어가 섞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아랍어 낱말에는 한국어/조선어 낱말과 발음/뜻이 똑같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예)
- ‘아부(Abu)’ : (~의) 아버지 (아랍어)
- 움미/움므 : (~의) 어머니 (아랍어)
- 아얀 : 아파요 (아랍어)
- 와(wa) : ~와/과 (아랍어)
- 사바흐 : 새벽 (아랍어)
‘아부’와 경상도 사투리인 ‘아부지(아버지)’가 비슷하고, ‘움미’는 한국어/조선어에서 어머니를 일컫는 말인 ‘엄마’와 비슷하다. 또 한국인/조선인도 아플 땐 “아야!”라고 외친다. ‘와’는 발음과 뜻이 모두 아랍어와 같다(사바흐와 새벽이 발음이 비슷하고 뜻이 같다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신라/고려인이 아랍어 낱말을 빌렸거나, 아랍인이 신라어/고려어 낱말을 빌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텐데, 아랍인이 신라나 고려에 찾아왔다는 기록은 있어도 신라인이나 고려인이 대식국(大食國 : 아랍)으로 찾아갔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으므로 일단은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한다.
양국시대(남북국시대)에 영향을 미친 말이 아랍어였다면 고려와 조선왕조의 말에 영향을 미친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말이 키타이(거란)어와 주션(여진女眞을 주션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알고 싶은 사람은 이 누리집의 <기타> 카테고리에 있는「▩여진(女眞)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을 참고하라)어라고 생각한다.
키타이족은 고려 초에 강감찬 장군에게 패해 포로가 되거나, 고려 중기에 고려로 내려와 약탈하다가 고려군에게 패한 뒤 고려 땅 안으로 뿔뿔이 흩어졌고(<기타>에 있는「한국사의 요나라 계승」참고), 주션족은 흑수말갈로 불리던 시절 고려에 투항하거나(<기타>에 있는「▩고려의 흑수말갈족/달고족 동원」참고), 고려 말 조선 초에 남쪽으로 내려왔다(『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초기에 주션족이 조선에 투항했다는 기사가 여러 개 나온다. 나는 본명이 퉁 두란티무르인 이지란 뿐 아니라 이성계도 주션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들이 고려에서는 화척(禾尺)이라고 불리고 조선에서는 백정(白丁)이라고 불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먼저 들어온 아랍인과는 달리 차별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지만, 토박이들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따라서 말(언어)을 포함한 이들의 문화는 이 땅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는 네 언어(한국어/조선어/키타이어/만주어)를 견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
- 네리/너리 : 날(日) (키타이어) -> 너리 -> 널 -> 날?
- 타으 : 다섯(5) (키타이어) -> 타으 -> 다우 -> 다수 -> 다섯?
- 위 : 일 (키타이어) -> 위 -> 이 -> 일?
- 알가스 : 살갗 (키타이어) -> 알갓 -> 살갗?
- 수두리 : 역사 (키타이어) -> ‘사람들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 -> 수다?
(글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집안의 내력이나 옛 일을 한 사람이 통째로 외운 뒤,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함으로써 널리 알렸다. 이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떠드는 일은 자신이 겪은 일이나 보고 들은 일이나 아는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역사를 말하다’ -> ‘크게 떠들다’라는 뜻으로 ‘수다’라는 말이 뿌리내린 것으로 보인다)
- 장끼(주션어) = 수컷 꿩
- 어전 : 낮은 벼슬아치(만주어) = 아전(衙前)
- 암반(amban) : 대신(大臣) - 만주어 (‘양반[兩班]’이 ‘암반’과 비슷하다는가설을 접한 적이 있음)
- 무커 : 물(水) - 만주어
- 물 : 한국/조선어
- 교로(gio ro) : (씨족[氏族]) - 만주어
- 겨레 : 집안/씨족/일족 (조선어)
- 이 : ‘~의’(of) - 만주어
- 의 : 한국/조선어
- 가타이 : 갑자기(만주어)
- 부스부스 : 부슬부슬(만주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볼 때, 한국어/조선어의 변화는 단순히 새 낱말이 옛 낱말을 대신하는 선에서 그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양국시대부터 있었던 말들이 새로 들어온 말들과 섞였고, 그럼으로써 전혀 새로운 말이 나타났다. 나는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내 가설을 입증할 만한 사례로 몇몇 낱말을 보여줄 수는 있다.
우선 아랍어와 신라어가 섞여서 만들어진 낱말이 있는지 살펴보자. 일본어가 한국어/조선어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을 괴롭힌 문제는 세 언어에 나오는 기본 낱말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父를 뜻하는 일본어는 ‘오야지(おやじ)’인데 한국어/조선어로는 같은 말이 ‘아버지’다.
내 생각으로는 원래 신라인도 ‘오야지’라는 말을 썼으나, 신라 후기에 아랍어 ‘아부(Abu)’가 들어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두 말이 뒤섞여 ‘아부(Abu) + 지(じ)’ -> ‘아부지’ -> ‘아버지’라는 말이 된 듯하다.
키타이어에도 이와 같은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키타이어로는 토끼가 ‘퇴리’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지만 고려 초기까지는 ‘우사기’라는 말이 쓰였는데, 키타이인이 들어온 뒤로는 ‘퇴리’라는 말도 쓰였고, ‘퇴리 + 우사기의 기(ぎ)’ -> 퇴기 -> 퇴끼 -> 토끼의 순으로 말이 바뀐 것 같다.
주션어(훗날의 만주어)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만주어로 나무(木)는 ‘무(moo)’고 일본어로는 ‘키(き)’인데, 조선 초기의 문헌에는 나무가 “남가”로 나온다. ‘키’가 ‘남가’와 같은 뿌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남가’라는 말이 있었는데, 나중에 고려와 조선에 들어온 주션족의 말인 ‘무’가 그 말과 경쟁했고, 남가의 ‘가’가 탈락하고 대신 ‘무’가 들어와 ‘남가’ + ‘무’ = ‘나무’가 된 것은 아닌지.
(할하 몽골어가 고려의 말에 영향을 끼쳤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일부러 다루지 않았다. 사족이지만 나는 고려 말기에 들어온 위구르어도 우리말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동東 투르키스탄[중국 이름 신장]을 다녀온 한국인의 말에 따르면 위구르인들은 ‘여’나 ‘이봐’라는 뜻인 ‘어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일본은 서기 8~9세기에 하이(蝦夷. 일본어로는 ‘에미시’)의 땅(일본 본주本州 동북부)을 정복하고 그들을 서일본으로 끌고 온 것을 빼고는 외부세계와 접촉한 경험이 없었고, 당나라나 북송과 교류한 것은 일시적이었기 때문에 신라나 고려나 조선처럼 말이 완전히 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세 언어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서기 7세기에 결별한 뒤 다른 길을 걸었고, 정치적/군사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오늘날에는 완전히 다른 언어가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정치사나 전쟁사는 언어를 포함한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