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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호 매금

신라사 조회 수 5794 추천 수 0 2013.07.16 21:23:31
一道安士 *.35.42.114

우연히 인터넷에서 제가 2004년에 쓴 글을 하나 발견하여 일부 손질하여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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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이란 신라 왕호에 대하여 삼국유사는 [내물-실성-...-지증]까지, 삼국사기는 내물과 실성은 이사금이며 [눌지-....-지증]까지를 마립간이라고 불렀다 한다. 또 광개토왕비문의 영락 9년에 나오는 매금은 내물이사금이고 울진 봉평비의 매금은 법흥왕이다. 신라말까지 남아 있던 것은 마립간이 아니라 매금이었다. 따라서 매금과 관련된 왕호가 후대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마립간'은 일찍 사라졌으나 '이사금'은 임금의 어원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다.

매금을 마립간으로 보는 견해는 매금의 사용시기가 마립간의 사용시기와 비슷한 5-6세기라는 것과 '마'와 '매'자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반면에 매금을 이사금으로 보는 견해는 '금'자의 발음이 일치하는 것과, 사료에 나오는 寐錦이라는 한자가 모두 같다는 것을 든다. 어떤 소리를 한자로 적을 때는 처음에는 발음만 같으면 牟卽이나 募秦처럼 여러 가지로 적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가지 글자로 통일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자가 모두 일치한다는 것은 이 단어의 뿌리가 상당히 오래 전에 성립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내물왕 이전인 4세기 중반 이전의 금석문에 매금이 나온 적은 없어서 이사금의 약칭으로 보기는 어렵다.

금석문에 이사금이나 마립간이 나온 적이 없는 것을 들어 寐錦만이 실재했던 신라왕호이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기록한 이사금과 마립간은 허구의 명칭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마립간이 통전의 4세기 기록에도 나오며, 삼국유사는 내물왕부터, 삼국사기는 눌지왕부터 마립간인 점은 이들 두 기록이 완벽하여 이사금과 마립간의 실존은 더 이상 의심할 바가 없다.

본래 마립간은 大王을 뜻하는 내물왕의 이름이다(성이 '마(모)' 이름이 '립간(루한)'). 따라서 삼국유사가 내물왕부터 마립간이라고 한 것은 정확한 기록이다. 반면에 내물왕의 왕호는 흘해왕처럼 아직 이사금이었다. 그런데 내물왕과 다른 계통으로 그와 경쟁관계이던 실성왕이 내물왕의 이름인 마립간이라는 왕호를 쓸 리가 없다. 따라서 마립간은 내물왕의 직계가 왕이 되는 눌지왕부터 써야 한다. 결과적으로 내물왕과 실성왕은 이사금이고 눌지왕부터 마립간이라고 쓴 삼국사기는 무섭게 정확한 기록이다. 그러면 혁거세는 '거서간'이었고 남해는 '차차웅'이었다는 신라본기의 기록 역시 믿을 만 하다. 어느 모로 보나 이사금과 마립간이라는 왕호의 실존은 확실하다.

그러면 일본서기에 나오는 波沙매금이란 기록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일본서기는 중애 9년에 신공이 신라를 정벌하여 항복을 받고 미사흔 왕자를 인질로 잡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신라 제5대 婆娑이사금의 재위기간은 80-112 사이이다. 그런데 중애 9년은 비미호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신라에 화평 사신을 보낸 아달라이사금 20년으로 서기 173년이어서 파사이사금과는 백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더욱이 여기에 실려있는 내용은 신라-가야 지역에 갇힌 백제 120현민의 무사도해를 보장받기 위하여 응신이 군대를 보내 미사흔 왕자를 데려간 실성이사금 원년으로 파사이사금과 무려 3백년이나 차이가 나는 서기 402년이다. 따라서 이 일본서기의 파사매금 기록은 일본서기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의 하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선 신라왕들의 시호는 당시 이름이 아니고 빨라야 6세기 중엽 법흥왕때 새로 만들어 준 것들이다. 1-2세기의 신라왕에게 준 파사이사금이라는 시호 역시 6세기에 만들어 준 것이다.  일본서기는 백제왕력을 가지고 신공과 응신 사이에 벌어진 143년의 왕통공백을 감추려 하였다. 따라서 백제왕의 이름이 보이면 조작의 가능성이 있으나 신라왕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조작할 필요가 없다. 또한 내물이나 실성 같은 시호는 죽은 다음 받는 것이 보통이므로 내물이나 실성의 당시 이름은 다른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서역에서 와서 신라왕이 된 내물이사금을 당시에는 어떻게 불렀을까?  "서역에서 온 신라왕" 아니었을까? 그러면 파사매금이다. 실성이사금도 이민 1대이므로 역시 서역에서 온 신라왕이 된다. 일본서기의 파사매금은 내물이사금이나 실성이사금일 수 밖에 없고,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내물이사금이라고 본다. 그러면 응신의 왕후 기록을 가져다 놓은 신공황후조의 파사매금 기록은 상당히 정확하다.


결론적으로 매금은 마립간이 아니라 이사금에 뿌리를 둔 왕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이사금이 아니고 매금인가? 나는 이것은 확신하지 못하지만 매금이란 왕호가 내물이사금 이후에만 나오는 것을 볼 때, 혹시 <모(마)씨 이사금> 또는 <마립간 이사금>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모금' 또는 '마금'이 '매금'이 되고, 이후 이것이 신라왕의 명칭으로 본래의 뜻과 관계없이 굳은 것은 아닌지 하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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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 신라왕호 매금

  •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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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터넷에서 제가 2004년에 쓴 글을 하나 발견하여 일부 손질하여 다시 올립니다. =============================================================================== 마립간이란 신라 왕호에 대하여 삼국유사는 [내물-실성-...-지증]까지, 삼국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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