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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일본서기가 왜 중요한가?

백제사 조회 수 313 추천 수 0 2015.12.13 16:40:32
一道安士 *.202.72.51

만일 삼국사기가 없다고 가정해봅시다우리의 과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특히 정부기록인 왕력이 없어진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그러면 한국사에 일본서기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봅시다다음은 중부 이하 한반도의 가장 많은 부분을 통치하였던 백제 30왕 7백년 역사입니다.

 

[1백제시대 4백년

1.비류 ------------------------------------ 12.여구 - 13.여수 - 14.여휘

[2왜국시대 80(396-477)

15.응신 - 16.인덕() - 17.이중() - 18.반정() - 19.윤공() - 20.안강 - 21.웅략(여곤)

[3백제시대 2백년

22.동성(여대) - 23.무령(여융) - 24.성명(여명) - 25.위덕(여창) - 26.혜 - 27.법 - 28.무 - 29.의자 - 30.

 

우리는 불행히도 1기와 2기 왕력이 없습니다. 1기는 중국사료를 보고 추정합니다어떤 사람이 여구가 근초고왕이고 여휘가 진사왕이라고 합니다그러면 제가 삼한 78국 중에 어느 나라 왕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봅니다그리고 문제를 냅니다.

 

[다음은 4세기 중국왕조에 사신을 보낸 두 백제왕의 기록이다맞은 것은 어느 것인가?

1) 백제왕 여구백제왕 여휘

2) 백제왕 여구백제왕세자 여휘

3) 백제왕세자 여구백제왕 여휘

4) 백제왕세자 여구백제왕세자 여휘

 

답변을 못하고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위 문제를 풀려면 진서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고 삼국사기를 보고 압니다진서는 저 문제의 이유에 답을 못합니다여구는 한성백제와 혼인하여 백제왕이나 여휘는 혼인을 못하여 백제왕세자이기 때문입니다.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여구가 근초고왕이라고 하는 사람이나 여휘가 진사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적어도 전문가 중에는 거의 없습니다. 영산강유역 옹관묘 집단인 부여씨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5세기 초(407)입니다. 광개토왕비문과 일치합니다. 삼국사기를 읽는 첫걸음은 삼국사기에 나올 수 있는 기록과 나올 수 없는 기록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못 읽으니 초기기록이 틀렸다고 합니다. 

 

백제왕력 2기는 다행히 일본서기가 상세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2기를 보고 1기 백제사를 추정합니다정말로 중요한 기록들입니다예를 들어 신묘년(391)조의 달을 비롯하여 광개토왕비문의 기록들을 일본서기로 체크합니다그 외에 5세기 말 백제북위전쟁을 공부하려면 일본서기를 보아야 합니다전쟁에 참전한 백제군 당사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아직 일본서기 가지고 백제-북위 전쟁을 기술한 책은 제 책 뿐이지만, 곧 일본서기 없이는 백제-북위 전쟁을 기술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일본서기는 역사사로도 중요하지만 사서를 보는 기본 능력을 시험하는 잣대로도 중요합니다. 5세기 이전 일본서기의 기년을 얼마나 정확히 읽느냐가 사학도가 사서를 분석하는 능력의 시금석이기 때입니다우리 선조들이 일본서기를 쓰면서 후손들에게 사학도의 능력을 체크하는 잣대로 사용하라고 선물을 주었습니다.


댓글 '6'

부여씨

2015.12.13 20:32:20
*.178.97.158

온조와 비류는 형제니까 온조가 해씨라면 비류 또한 해씨여야 하지 않나요? 비류가 건국한 나라의 이름은 목지국(월지국)이니까, 한성 백제하고 무관한데, 왜 비류의 나라가 목지국이라는 이름 대신 백제왕이라는 칭호와 백제라는 국명에 집착했을까요? 다른 이름도 얼마든지 있을텐데요. 말씀대로라면 한성백제는 마한에 속한 소국이고, 3기 백제는 마한의 다른 이름이네요. 목지국(마한)이 백제라는 국명, 백제왕이라는 칭호를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이게 좀 이상하네요.

그리고 한단고기라는 사서는 믿을만한 사서인가요? 한단고기에 따르면 요서지역에 있던 서부여의 의려왕이 선비와의 싸움에서 패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대연맹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396년 이전의 일본 서기 기록은 삼한백제(마한)와는 무관한 기록인가요?


그럼

一道安士

2015.12.13 23:49:07
*.202.72.51

비류와 온조가 형제라고 하였는데 형제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같은 형제, 어머니가 같은 형제, 의형제, 사료 상의 형제,... .

일본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나이가 더 많은 인덕이 더 적은 응신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4번째 아들입니다. 그 이유는 일본서기는 왕력에 입적한 순서로 왕자에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인덕은 응신의 아들로 입적된 순서가 4번째인 것입니다.

먼 훗날 사서는 YS와 DJ를 형제로 기록하지도 모릅니다. 후세 사람들은 왜 나이가 적은 YS가 형이고 나이가 많은 DJ가 동생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겠지요.

비류는 미추홀에 처음 도읍하여 그 지역을 미추국(목지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왕의 직할지입니다. 백제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주변을 통합하면서부터가 아니었는가 생각합니다.

2세기에 요서 나가서 고구려와 협력하여 후한과 전쟁할 때는 후한에 의하여 마한이라 불렸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마한 내부에서 왕권이 바뀐 것으로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자신들 스스로는 무엇이라고 칭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3세기 초에 들어가면 미추국은 스로를 백제로 호칭하였습니다. 칠지도가 보여줍니다. 본래 백제란 호칭은 비류계 국호입니다.

5세기 초에 위례국(한성백제)이 백제의 구 영토를 인수하면서 국호도 인수한 것이지요. 위례국 최초로 백제왕의 책봉을 받는 것은 416년 전지왕 때입니다. 이때 백제라는 국호를 계승한 것인데 진왕계인 부여씨가 이미 정권을 잡았고 그들이 동진에 사신을 보내 이전 진왕들의 계승을 주장하면서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것입니다.

396년 8월 이전 응신 기록(390-396)은 한반도 백제왕 기록입니다. 일본열도 기록이 하나도 없습니다. 9월의 대 망명부터 왜국기록입니다.

부여씨

2015.12.14 21:06:24
*.178.97.158

잘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했는데 그럴 경우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니고 오히려 복잡해져 버리네요.

근초고왕 때의 한성백제(위례국)는 백제라는 국명, 백제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네요. 전지왕 이전이고 그냥 위례국이었을 뿐이니까요.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백제 침류왕 때가 아니고 위례국 침류왕 때고....

김부식은 백제본기를 만들 때 전지왕 이전의 기록은 위례국이라는 말을 전부 백제로 고쳤다는 의미이고....

광개토왕 비문에 나오는 '백잔'은 위례국(한성백제)과 아무 관련이 없고 '목지국' 또는 '마한'을 가리키는 말이 되는가요?

一道案士

2015.12.20 06:38:18
*.202.72.51

제가 편의상 미추국에 대응하는 의미로 위례국이라 했지만 백제라는 국가의 성격문제입니다. 백제라는 국가는 여러 소국으로 이루어진 지방분권적 소국연합체제입니다. 그러니 왕이 추대형식을 갖추는 것이지요. 이를 삼국지는 삼한 78국이라 한 것이고 광개토왕비문은 조각국가(잔국)라고 부른 것 뿐입니다.

광개토왕비문의 잔주란 조각국가의 왕이니 응신이고 잔주의 동생이란 응신의 동생입니다. 일본서기에 보면 응신은 형만 있고 동생이 없는데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응신이 396년에 망명하자 아신왕은 백제왕을 칭합니다. 광개토왕비문의 백잔이 증거입니다.

삼한 78국 중 어디에서 사신이 와도 다 백제에서 온 것입니다. 3세기는 백제에 78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호칭이야 신지라고도 하고, 검측이라고도 하고, 읍차라고도 하고,... 후라고 하고, 왕이라고 하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자립위왕하면 백제왕으로부터 사신이 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근초고왕이 368년에 자립위왕 하기 전에 신라에 보낸 국서에는 백제라고 썼으나 백제왕이라고는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자립위왕 하기 전에 백제왕이라고 쓰면 진사왕처럼 강제퇴위되든가, 아니면 아신왕처럼 백제에 태자를 인질로 보내고 사죄하던가 했겠지요.

근초고왕은 368년에 자립위왕하고 백제왕을 쓴 것입니다. 동진에 사신을 보낼 때도 백제왕이라고 썻습니다. 당연히 미추국 여구왕과는 사이가 좋을리 없지요. 이것이 북쪽으로 천도하는 이유입니다. 위례국에서 이전에 백제왕의 호칭을 쓴 왕은 온조왕부터-다루왕-기루왕-개루왕까지입니다.

416년의 최초 백제왕 책봉은 위례국이 백제를 인수하고 이를 대표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김부식이 백제사료를 받았을 때는 미추국 왕력은 이미 없었습니다. 현재 삼국사기 왕력이 그가 받은 백제 왕력입니다.

* 제 책을 보아야 전체적 구도가 잡힙니다. 여기 저기 조금씩 이해하는 것으로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一道安士

2015.12.20 06:51:05
*.202.72.51

만일 삼국사가에서 진왕기록을 삭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일 근초고왕 때 금강유역의 진왕으로부터 사신이 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다음처럼 기록해야 합니다.
*백제 근초고왕 00년; 백제에서 사신이 왔다.

만일 근초고왕이 태자를 진왕에게 사신으로 보냈다면 다음처럼 기록해야 합니다.
*백제 근초고왕 00년; 태자를 백제에 보냈다.

만일 진왕과 분쟁이 생겨 전투가 벌어졌다면 다음처럼 기록해야 합니다.
*백제 근초고왕 00년; 군사를 보내 백제를 쳤다.

이것을 읽는 독자는 아마 저자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진왕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부담에서 벗어나므로 쓸 수 있습니다.
*백제 00왕 00년; 왜국에서 사신이 왔다.

하나도 안 이상합니다.


또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름을 바꾸어 둘 다 기록하면 될 것 아니냐? 일견 맞는 말씀입니다. 실체를 기록하면 되지요. 위 3개를 다음처럼 바꾸면 됩니다.

*말갈 근초고 추장 00년; 백제에서 사신이 왔다.
*말갈 근초고 추장 00년; 태자를 백제에 보냈다.
*말갈 근초고 추장 00년; 군사를 보내 백제를 쳤다.

이러면 하나도 안 겹치니 되기는 되는데.... 이렇게 쓸 수는 없지요..

조이

2016.10.28 10:42:21
*.11.71.253

[1기] 삼한백제시대 4백년
1.이진아시(42)~2.수승(84)~3.수인(122)~4.경행~5.성무~6.중애~7.비미호(240년대) - 8. 일여(250년대)------------------------------- 12.여구(372) - 13.여수 - 14.여휘(386) - 여영(416) - 여비(427) - 여경(455) - 여기(462) - (여대:479) - 여융(501) -여명 - 여창 -------- 여풍(천무: 663) 으로 이어집니다.

[2기] 왜국시대 (390 - 2017)
15.응신(390) - 16.인덕 - 17.이중 - 18.반정 - 19.윤공 - 20.안강 - 21.웅략(여곤 456) - 22. 청령 ------ 아키히토

[3기] 대백제시대 2백년
20 비유(여비 427) - 21 개로(여경 455) - 22.동성(여대 479) - 23.무령(여융 501) - 24.성명(여명 523) - 25.위덕(여창 554) - 26.혜 - 27.법 - 28.무 - 29.의자 - 30.풍(천무 663)

[4기] 온조백제 시대
근초고(346) - 근구수 - 침류(384) - 진사(385) - 아신(391) - 전지(404 ) - 구이신(420-427)

비류와 온조가 형제라고 하였는데 친형제는 아닙니다.
대가야의 일여(진왕)는 온조백제와 남가야 신라를 흡수(249)합니다.
진왕의 직할지는 낙동강유역의 고령입니다.

대가야의 진왕이 온조백제를 흡수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왕권이 바뀐 것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왕은 여러 소국들을 연합하여 정권을 유지하였기에 자신들 스스로 "왜"라 불렀고 고구려도 "왜"라 하고 신라도 "왜"라 불렀습니다. 비문의 "왜"란 바로 삼한백제를 말하는 것이며, 신라가 줄기차게 왜라 표현한 세력이 바로 진왕인 삼한백제이죠. 삼한백제란 말은 그저 "왜"를 표현하는 현대식 표현일 뿐입니다.

그런데 4세기말에 들어가면 대가야에서 임나가라로 이미 치소가 옮겨갔는데, 이때 진왕인 여구는 372년 스스로를 백제왕으로 호칭하고 중원으로부터 책봉도 받습니다.

230년에 만들어진 칠지도에 나타난 백제는 본래 본백제인 삼한백제의 국호입니다. 이때 왜에게 칠지도를 하사하게 되는데..
249년경 삼한백제와 왜가 연합하여 결국 하나로 통합됩니다. 그 이름이 왜라고 하고 또는 삼한백제라고 합니다.
백잔이란 국호도 있는데 이는 본백제의 잔재란 뜻으로 비문에 나옵니다. 이 나라가 근초고왕이 다스린 온조백제입니다.

온조백제는 구이신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427년에 삼한백제(왜)는 온조백제를 병합합니다.
그러면서 백제라는 국호도 인수한 것이지요. 온조백제는 백제왕의 책봉을 받는 적이 없습니다.

416년 전지왕 때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국체는 삼한백제입니다.
이때 진왕은 백제라는 국호를 비류백제때 부터 사용한 백제라는 국호를 계승합니다.
진왕계인 여씨가 (실제로는 진씨지만) 백제의 정권을 잡으면서 동진에 사신을 보내 이전 진왕들의 계승을 주장하면서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것입니다.

일본열도의 초대 왕은 390년에 야마토를 건국한 응신입니다. 39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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