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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왕은 해씨인가? 아니면 부여씨인가?

백제사 조회 수 858 추천 수 0 2015.11.08 02:33:30
一道安士 *.202.72.51
동진은 전지왕의 이름을 여영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성이 없고 이름만 있는데 '영'입니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중국기록을 다 비교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씨로 쓰지 않은 것은, 삼국사기 원사료가 중국기록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둘이 다를 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예를 들어 고구려 태조왕조의 마한기록) 당사자의 기록을 선택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407년에 고구려와 전쟁한 왜가 북상하여 한강유역 백제와 손을 잡으니 이것이 백제본기 부여씨의 출현입니다. 바로 여신입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상좌평이라는 직책을 만들고 완전히 정권을 장악합니다. 구이신왕으로 해씨 왕통이 끝났습니다. 웅진으로 천도한 다음에 해씨가 난을 일으키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억울한 것입니다. 

정권을 장악한 부여씨는 동진에 사신을 보냅니다. 당연히 실세인 부여씨가 사신으로 갔겠지요. 백제왕의 책봉을 받는데 이것이 백제사 최초의 책봉입니다. 

부여씨 사신은 자신들을 설명하면서 처음이 아니라 이전에 목지국 부여씨 왕들의 계승을 이야기했겠지요. 자신들이 처음 책봉받는 것이 아니라, 여구왕, 여휘왕 들의 뒤를 잇는 세력임을 주장하면서요. 그러니 중국 사관은 이름 영 앞에다 부여씨의 여를 추가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학과 시험에 "전지왕은 해씨인가? 아니면 부여씨인가?" 이런 문제가 나왔을 때 이렇게 답변을 쓰면 점수가 안 나옵니다. 역사는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고 누가 보더라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역사학과에서는 다음처럼 써야 점수를 받습니다.
 
----------------------------------------------------------------------------------
고대의 성씨는 지금과 다르게 부족이나 혈연적 관련성을 가지는 주도세력의 의미가 있다. 중기 이후 신라에서 김씨가 왕성이 맞다는 것은 당시의 주요 관료들이 김씨였다는 것으로부터 확실하다. 만일 김씨 관료가 단 한명도 없다면 김씨가 왕을 배출할 수 없다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왕성을 김씨 대신에 황씨나 백씨나, ... 등등으로 고쳐도 이것이 거짓임을 바로 알 수 있다. 황씨관료나 백씨관료가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백제는 4세기까지 해씨와 진씨가 양대 지배세력이었고 부여씨는 단 한 번도 출현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안 나오는 부여씨가 왕을 배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부여씨는 5세기에 전국의 지방 세력이 출현할 때 한강유역이 아닌 영산강유역에서 나온다.(예: 여고 등)
 
해씨와 진씨가 양대 지배성인데 진씨는 왕비를 배출하였다. 그러면 왕은 양대세력의 다른 한 편인 해씨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동진의 여영이라는 기록은 부여씨 사신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일 뿐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전지왕의 이름은 해영이라고 보아야 합당하다.
----------------------------------------------------------------------------------  

[복습문제 1] 삼국사기를 훤히 꿰고 있었던 국사이자 당대 최고 지식인이었던 일연 대선사는 백제의 왕성에 대하여 삼국사기와 다르게 적었다. 어느 쪽이 맞는가?
 
(가) 삼국사기: 그의 조상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같이 나왔기 때문에 '부여'를 성씨로 삼았다.
(나) 삼국유사: 그의 조상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같이 나왔기 때문에 '해'를 성씨로 삼았다.
 
답: 둘 다 맞다. 삼국사기는 목지국(미추국) 기록이고, 삼국유사는 위례국 기록이다.
  

[복습문제 2] 최초로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가) 진서: 372년에 여구왕이 동진으로부터 받았다.
(나) 삼국사기: 416년에 전지왕이 동진으로부터 받았다.
 
답: 둘 다 맞다. 진서는 목지국(미추국) 기록이고, 삼국사기는 위례국 기록이다.

댓글 '4'

부여씨

2015.11.15 23:00:51
*.40.49.24

일도안사님

한성백제 왕의 성씨가 해씨라면 구태의 성은 무엇인가요? 사서에 따르면 구태는 부여 사람으로 신망이 두터워 따르는 무리가 많아 대방국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여러 사서들에는 백제의 시조가 구태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구태를 비류라고 정의하셨는데, 비류 백제의 시조인 비류의 성은 무엇인가요? 비류는 백제사에서 3번 나옵니다. 시조인 비류하고, 한성백제 11대왕인 비류왕(304-346), 한성백제 20대왕인 비유왕(427-454)입니다. 시조인 비류는 한성백제 왕 계보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한성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비류’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럼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그리고 한단고기에 따르면 서부여의 의려왕이 선비에게 패하여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대연맹 시대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부여의 의려왕은 구태의 손자로서 선비에게 패하여 자살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구태는 백제왕이 아닌 부여왕 계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위구태-간위거-마여-의려-의라….).

백제 시조 문제는 일본까지 얽혀 있어서 매우 복잡한 듯합니다. 위 사항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一道安士

2015.12.12 06:04:33
*.202.72.51

삼한사의 재조명 2에 있는데 아직 안 보셨군요. 삼한백제에 부여씨기 등장한 것은 3세기에 영산강유역이 진왕에게 통합되면서부터입니다. 이들이 4세기에 진왕권을 장악하고 왕을 배출한 것이 부여씨 왕통의 등장입니다. 부여씨 이전의 진왕 성씨는 모릅니다.

영산강유역의 옹관묘세력이 중앙무대에 진출하며 성씨가 필요해지자 자신들이 부여에서 왔다고 하여 부여로 성을 삼은 것입니다. 부여씨 외에 목씨와 사씨가 영산강유역 성씨들입니다.

한성백제에 출현하는 것은 영락 17년 고구려군과 전투에서 후퇴하는 고구려군을 추격하여 진격하다 한성백제와 결합하면서부터입니다.

한성백제에는 백제 8성대족 중에 해씨와 진씨 2개가 있었습니다. 해씨는 부여계이고 진씨는 말갈계입니다.

한성백제는 또 다른 말갈계인 고이왕계 우씨계를 제외하고는 죽 부여계인 해씨가 왕이었습니다. 구이신왕이 해씨왕조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 다음은 문주왕과 삼근왕을 제외하고는 진왕계인 부여씨입니다.

구태는 비류 아니면 비류의 아버지로 보고 있습니다만 구태의 성씨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부여씨

2015.11.15 23:28:24
*.40.49.24

그리고 온조와 비류가 형제인 경우, 온조가 해씨라면 비류는 자연히 해씨여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버지가 다를 경우라면 꼭 그렇지도 않겠지만….. 그리고 비류와 구태가 동일인이라면 구태는 당연히 해씨가 되겠죠. 아울러 목지국(삼한백제)의 초기 왕들도 해씨였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그래야만 영산강 유역에서 부여씨가 나올 공간이 생기는 거죠. 물론 목지국의 진왕, 영산강 유역 둘 다 부여씨일 수도 있겠죠.

삼국사기에 목지국 기록이 빠져서, 고대사가 필요 이상으로 난해해진 것 같습니다.

조이

2016.10.27 21:57:38
*.11.71.253

[복습문제 2] 최초로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가) 진서: 372년에 여구왕이 동진으로부터 받았다.
(나) 삼국사기: 416년에 전지왕이 동진으로부터 받았다.
답: 둘 다 틀립니다. 진서나 삼국사기에서 "여구" 나 "여영" 은 "삼한백제" 왕으로 책봉을 받습니다.
여구 여수 여휘 여영 여비 여경 여기 여융... 모두 "삼한백제"의 왕으로 책봉을 받습니다.
온조백제는 책봉을 받지 못합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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