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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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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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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이 들어있는 달을 맞아, 그에 걸맞은 역사책을 소개한다(원래는 이 글을 개천절에 올리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여러분이 이 때문에 나를 비판하신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바로 정형진 선생(이하 존칭 생략)의 책인『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일빛 펴냄, 서기 2006년)이다.


이 책은 한국 역사학자들이 거의 시도하지 않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천왕에 대한 새로운 풀이를 담은 책이다. 배달민족 역사의 첫머리를 장식함에도 불구하고, 연구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삼국유사』「기이」<고조선> 조가 인용한『고기(古記)』의 기사나『제왕운기』「권하」가 인용한『본기(本紀)』의 기사에 나오는 환웅의 이야기)를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이 분석한 것이다.


정형진의 연구에 따르면, 환웅족은 한국의 국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선조로 여기는 치우(蚩尤)가 아니라, 하(夏)나라가 세워지기 직전인 요순시대(오제五帝가 북중국 내륙을 다스리던 시절)에 황토평원에서 중국 하북성으로 쫓겨난 공공(共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원래 공공족은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뒤, 거기서 다시 북중국 내륙으로 내려와 그곳에 뿌리내렸고, 물을 잘 다루고 곡식을 기르는 솜씨가 뛰어났는데, 헌원(시호 황제黃帝)이 염제 신농(神農)과 치우를 무찌르고 북중국 내륙을 손에 넣자 그에게 억눌리기 시작했고, 갈등은 헌원을 이어받은 요/순의 시대에 터져 나와 공공족은 순임금에 의해 오늘날의 중국 하북성으로 쫓겨났다.


그들이 하북성으로 왔을 때, 바로 옆인 오늘날의 요령성에는 암곰을 신으로 섬기고 모계사회를 이룬 사람들이 있었고, 후자는 전자의 앞선 농업기술과 토목기술을 받아들이려고 해 전자에게 자세를 낮추고 혼인을 통해 동맹을 맺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달민족이 ‘단군조선’이라고 부르는 고조선이 세워졌다는 이야기다.


정형진은 환웅을 다룬 기록에 나오는 “삼위태백”이나 “신단수”는 한반도나 만주가 아니라 북중국에서 찾아야 하며, 기록에 환웅족이 살 곳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난 과정이 애매하게 - 또는 아주 간략하게 - 나오는 까닭은, 그 사실이 글로 적히기 전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내려오면서 세세한 부분은 생략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만약 제 3자가 나에게 이 책의 내용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 이 책이 근거로 삼는 기록이 “너희(신라 - 조약돌) 국왕은 인도의 찰리(크샤트리아 - 조약돌) 종족의 왕인데 … 동이(東夷) 공공(共工)의 족속과는 같지 않다.”는『삼국유사』「탑상」편의 기사고, 둔황(돈황)에 ‘삼위산’이라는 산 이름이 남아있으며 하북성에 ‘공공족의 성’이라는 뜻을 지닌 ‘공공성’이라는 유적이 남아있으므로 -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또 일연이 인용한『고기』에는 환웅천왕과 그가 이끌고 내려온 “무리 3천명”이 “곡식”과 관련된 일을 주관했다는 말이 나오고, 환웅천왕의 신하들도 ‘바람의 신’을 일컫는 ‘풍백(風伯)’이나 ‘구름의 신’을 일컫는 ‘운사(雲師)’나 ‘비의 신’을 일컫는 ‘우사(雨師)’라 그들이 여름지이(농사)와 관계있는 무리임을 알 수 있는데(비구름은 여름지이를 할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성격이 ‘물’을 다스리고 여름지이를 잘 하는 공공 무리의 성격과 비슷하므로 중국 기록이 ‘공공’이라고 부른 무리가 실제로는 환웅족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덧붙이고 싶다(『고기』에 환웅족이 창칼로 곰족과 범족을 짓눌렀다는 대목이 없고, 두 족속이 환웅에게 제 발로 찾아와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대목이 나온다는 점도 정형진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증거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하지만『삼국유사』에는 환웅족이 요순에게 쫓겨났다는 말은 안 나오잖아?”라고 물어볼 것이다. 내 대답은 다음과 같다.『고기』에 환웅족이 황제의 후계자들에 의해 쫓겨났다는 사실이 안 나오는 까닭은, 고구려 정부의 주장을 담은 금석문인 광개토왕 비문에 동명성왕이 동부여에서 왕자들의 숙청을 피해 졸본부여로 달아난 사실이 안 나오고, 죽을 신라 쪽의 전승을 바탕으로 정리한『삼국사기』「신라본기」에 탈해 이사금이 남가라의 수로왕에 의해 쫓겨난 사실이 안 나오며, 가야 쪽의 전승을 바탕으로 정리한『가락국기』에 수로왕의 아버지인 ‘이비가’가 경상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백제(삼한백제)에 반기를 들고 싸우다가 경상도로 밀려난 사실이 안 나오는 것과 같다.


환웅족은 요령성/남(南)몽골의 토착민에게 권위를 내세워야 했는데, 만약 ‘싸움에서 지고 쫓겨났다.’는 걸 그대로 말할 경우 위신에 금이 가고 자신을 ‘천손(天孫)’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자신들이 ‘외부인’이라는 점과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왜’ ‘곰과 범의 동굴이 있는 곳’인 요령성과 하북성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중요한 사실을 슬쩍 덮어버린 것이다)


이 책은 ‘치우’나 ‘동이’나 ‘시베리아’에만 치우친 배달민족의 상고사를 전혀 다른 소재(공공족의 역사)와 전혀 다른 관점(인간집단의 이동)으로 풀이하고, 요령성이나 하북성의 유적(홍산문화나 공공성)/중국 기록에 나온 공공족에 대한 설명을 통해 역사를 설명했기 때문에, 참신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하며, 한국 학계와 한국 사회는 이 책처럼 환웅 시대의 역사를 설명한 성과물을 꾸준히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동북공정과 싸울 수 있고, 중화사상이 재단하고 왜곡한 동아시아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평점 : 100점 만점에 8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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