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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96년 백제 태자 전지 인질 사건

백제사 조회 수 174 추천 수 0 2016.11.28 06:06:40
8. 396년 백제 태자 전지 인질 사건
 
백제 태자 전지의 인질에 대하여 삼국사기와 일본서기는 각각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참고로 비문과 백제본기는 연대는 1년차이가 난다

(백제본기 아신왕 6년, 5월 삼국사기 397년, 비문기준 396) 
여름 5월에 왕이 왜국과 더불어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인질로 보냈다. 

(일본서기 應神 8년, 일본서기 397년, 비문기준 396) 
<백제기>에 말하기를 아화왕(아신왕)이 독립(立)하여 貴國(진왕)에 무례를 했기 때문에 우리(진왕)의 침미다례 및 현남, 지침, 곡나, 동한의 땅을 빼앗았다. 그래서 백제는 왕자 직지(전지)를 天朝(진왕)에 보내 先王의 우호를 지킬 것을 약속했다. 


(광개토왕 비문 396년)
“왜(진)가 신묘년(391년)이래 바다를 건너고 백잔(백제) [가라, 신]라를 쳐 부시고 그들의 신민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호태왕은 병신년(396년)에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제국을 토벌했다. 대군은 백잔(백제)의 국경을 넘어, 수많은 성을 공격해 빼앗으면서 백잔(백제) 수도로 핍박해갔다. 

 
아신왕 6년은 삼국사기 연표에 의하면 397년이지만 비문에 의하면 396년의 일로 보아야 한다. 1년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396년 백제의 아신왕은 그해 겨울 광개토왕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영원히 奴客이 되겠노라고 맹세를 했다. 
그런데 바로 이전에 여름 5월 아신왕은 왜국(진국)과 손을 잡고 태자 전지를 (진국으로) 인질로 보냈다. 

왜 아신왕은 태자를 인질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백제의 아신왕이 ‘귀국(진국)’에 무례를 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일본학자들은 일본서기를 근거로 하여 왜(삼한)의 군대가 249년에 가라7국을 평정한 뒤 전라도 소재의 땅을 백제에 할양해주었으며 백제의 초고왕(과 그의 아들 구수왕)은 이를 감사히 여기며 백제가 영구히 왜의 번국이 되어 조공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396년 여름 5월 아신왕이 이 약속을 어기고 왜(삼한)에 대항하여 독립(立)하려 하였기 때문에 왜가 자신들과의 약속의 준수를 요구하여 침미다례 등의 땅을 회수하고 전지태자를 인질로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후 396년 가을에 고구려는 백제를 침략한다.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본다. 

六年夏五月(육년하오월) : 6년 여름 5월,
王與倭國結好(왕여왜국결호) : 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以太子腆支爲質(이태자전지위질) : 태자 전지를 인질로 보냈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
大閱於漢水之南(대열어한수지남) :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하였다.

태자 전지를 왜국에 인질로 보낸 뒤 한수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영하고 있다.


七年春二月(칠년춘이월) : 7년 봄 2월,
以眞武爲兵官佐平(이진무위병관좌평) : 진무를 병관 좌평으로 삼고
沙豆爲左將(사두위좌장) : 사두를 좌장으로 삼았다.

三月(삼월) : 3월,
築雙峴城(축쌍현성) : 쌍현성을 쌓았다.

秋八月(추팔월) : 가을 8월,
王將伐高句麗(왕장벌고구려) : 왕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하여
出師之漢山北柵(출사지한산북책) : 군사를 출동하여 한산 북쪽 목책에 이르렀다.
其夜大星落營中有聲(기야대성낙영중유성) : 그 날 밤에 큰 별이 떨어졌는데 진영에서 소리가 났다.
王深惡之(왕심오지) : 왕은 이를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여
乃止(내지) : 공격을 중지하였다

九月(구월) : 9월,
集都人(집도인) : 서울 사람들을 모아
習射於西臺(습사어서대) : 서대에서 활쏘기를 연습하게 하였다.


일본서기에는 249년의 가라7국 평정에 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있다.

일본서기를 본다

神功49년(249) 3월에 (神功황후는) 荒田別. 鹿我別을 장군으로 삼아 신라 원정군을 일으켰다. 그들이 구저(백제장수)와 함께 卓淳國에 이르러 신라를 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말했다. ‘병력이 부족하여 신라를 칠 수가 없다. 沙白蓋盧를 보내 증원군을 요청하자.’ 그래서 그들은 본국으로 가 증원군을 요청했으며 (神功황후는) 木羅斤資. 沙沙奴跪에게 정병을 주어 보냈다.... 이들은 신라를 쳐부수고..... 가라 7국을 평정한 뒤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고계진에 이르렀다. 
이어서 남만(남쪽 오랭캐) 침미다례를 도륙하고 이를 백제에 양도했다.... 비리. 벽중. 포미지. 반고 등 4읍이 자진 항복하였다.... 초고왕은 千熊長彦에게 백제가 영구히 왜의 번국을 칭하고 조공할 것을 맹세했다.

神功50년(250=>370) 5월, 千熊長彦. 구저 등이 백제에서 돌아왔다. 神功황후는 구저에게 물었다. “바다 서쪽의 諸韓은 이미 다 너희나라에 하사했다. 지금은 무슨 일로 왔는가?”
 
249(=>369)년에 왜(진)가 신라를 격파하고 가라7국을 평정하고 전라도 지방을 복속시켰다는 것이다. 
荒田別. 鹿我別은 진국(왜) 장군이고, 구저는 백제장군의 이름이었다고 본다. 
 
사실 일본서기에는 이 원정군이 일본의 야마토정권의 군대라는 明文은 없다. 
이 기사가 神功紀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뿐이다. 
神功황후는 240년대의 실제인물인 왜국의 여왕 히미코를 모델로 만든 가공인물이다. 
이것은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일본서기 神功 49년(249) 조는 진씨가 주역이 되어 목씨, 사씨 등의 병력과 함께 출동하여 가야제국의 복속을 재확인한 뒤 전라도지방을 정복하고 귀환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이것은 침미다례(강진?)를 남만이라고 한 것에서도 명백하다. 침미다례가 어떻게 일본의 남쪽이란 말인가? 침미다례는 백제에서 볼 때 남쪽인 것이다. 
 
391년 12월에 진사왕이 왜(진국; 당시 진왕은 여휘:386~416)에 독립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구원에서 피살되고, 이때 즉위한 백제의 아신왕도 396년 여름 5월에 왜에게 독립하고 더 강한 고구려와 화친하기 위해 위해 고분분투하다가 결국 태자 전지를 왜에 인질로 보내게 된다. 그 결과 고구려 광개토왕의 반격을 받고 396년 겨울에 오히려 58성 700촌을 잃고 말았다. 

이때 아신왕은 항복을 하고 앞으로 고구려와 화평을 할 것을 광개토왕에게 맹세했다. 

그럼 396년 여름 ‘우리(진국)의 침미다례 등의 땅을 빼앗았다’(故奪我枕彌多禮...)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침미다례 등이 우리 땅이라고 했으니 이 땅들은 249(=>269)년 전라도 침미다례(마한)를 복속시킨 이후 부터 왜국의 소유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는 자신의 영지를 기반으로 하여 토착세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광개토왕비문의 <왜>는 바로 <진국>이며 비문에서는 <왜>로 불린 것이다. 

<백제기>는 이것을 ‘귀국(삼한)이 침미다례 등의 땅을 빼앗았다’고 표현한 것이다. 

근초고왕 대부터 진정처럼 왕실의 외척이었고 대대로 조정의 宰相職을 이어온 진씨가문은 연이은 패전으로 약체화한 백제왕실 해씨보다 우세했으므로 백제왕실은 그 독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려나 신라가 삼한의 국명을 ‘왜’라고 한 것은 가야지방의 여러 소국을 연맹체로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렇게 <왜>로 불리운 <삼한>은 372년 여구, 386년 여휘에 의해 중원으로 부터 백제왕을 칭하게 되고 또한 중원으로부터 백제왕으로 책봉되기도 한다. 

진씨(여씨)는 백제에게 先代 초고왕의 약속 (왜와 백제가 연합하여 고구려에 대처한다는 것) 을 지켜 끝까지 고구려에 항전하여 失地를 회복할 것을 요구하며 그 담보로 태자 전지를 데려간 것이라고 본다.
 
396년, 아신왕은 괴로운 입장에 처했을 것이다. 아신왕은 왜로 부터 독립(立)하려는 의지를 왜(삼한)의 압력에 또다시 굴복하고 왜국에 전지태자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곧바로 대 고구려 강경노선으로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396년 겨울 고구려의 압력에 굴복하여 고구려와의 화평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지의 왜국행에 대하여 백제와 왜국은 입장이 서로 달랐다
<삼국사기>는 전지를 ‘인질’이라고 했지만 
<일본서기>에는 ‘인질’이라는 말은 없다. 
전지는 진씨에게는 외손자인 것이다. 

백제. 신라의 외교사절을 모두 인질이라고 싸잡아 표현한 <일본서기>가 정작 전지는 인질이라고 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본다.
 
왜국에 전지태자를 보내어 왜국과 우호를 맺은 백제는 404년 왜국과 함께 다시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는 각각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본서기 應神 16년, 일본서기 405년, 비문기준 404
이 해, 백제의 아화왕(=아신왕)이 죽었다. 
천황은 직지(=전지)를 불러 말하기를 ‘너는 귀국하여 왕위를 이어라’ 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여 ‘東漢의 땅’을 하사하여 전지를 보냈다. 
是歲, 百濟阿花王薨。天皇召直支王謂之曰, 汝返於國以嗣位, 仍且賜東漢之地而遣之 
 
전지는 왜에 있던 중 父王(아신왕)의 부음을 듣고 슬피 울면서 돌아갈 것을 청하였다. 왜왕은 호위병 100명을 붙여 그를 돌려보냈다. 전지가 이윽고 국경에 들어서자 한성사람 解忠이 와서 알리기를 ‘대왕께서 세상을 뜨신 후 설례왕자가 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습니다. 원컨대 태자께서는 경솔하게 들어가지 마소서.’ 라고 하였다. 
.... 전지가 기다렸더니 國人들이 설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이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비는 팔수부인이며, 아들 구이신을 낳았다. (백제본기 전지왕 원년)
 
아신왕이 죽자 백제의 조정에서는 강경파가 아신왕의 둘째아들 훈해를 임시 왕으로 내세우고 전지태자의 귀국을 기다렸으나 화평파는 훈해를 살해하고 막내 설례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한편 왜국의 여휘왕은 인질 전지에게 마치 자신의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하게 ‘너는 귀국하여 왕위를 잇도록 해라’ 라고 말한다. 

그리고 백제의 요구도 없는데 아무 조건 없이, ‘인질’을 신변안전을 염려하여 100명의 호위병을 붙여 정중하게 귀국시킨다. 더욱이 그의 귀국에 맞추어 왜국은 백제에 東漢의 땅을 반환하고 있다. 이것은 전지가 인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지태자에게 東漢의 땅을 하사했다는 것은 왜국이 일본열도라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왜국이 백제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나는 당시 일본서기에 나오는 應神천황은 야마토를 건국한 왕으로 보고, 
임나가라에 있었던 삼한백제(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당시 진씨인 여휘라고 생각한다. 

진씨는 백제조정에서 반 왜국파가 득세하자 전지태자를 서둘러 귀국시켜 백제의 왕위에 앉히고자 했던 것이다. 
東漢之地의 반환은 백제가 전지를 왕으로 앉힌다는 조건부였을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술로 보아 전지는 귀국 전에 이미 진씨왕족과 결혼을 하여 아들 구이신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팔수부인을 진씨왕족의 딸이라고 보며, 진씨가 정략적으로 자신의 딸을 전지태자와 결혼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씨가문은 근초고왕 대부터 대대로 왕비를 배출했다.
 
전지의 귀국에 관한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정황상 전지일행은 일본열도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한성까지의 먼 뱃길여행을 한 것 같지 않다. 한반도 어느 지점에서 한성까지의 여행길이라면 딱 어울리는 정황인 것이다. 

백제의 호족 解忠이 국경으로 태자를 맞이하러 나왔다는 것은 해충이 태자의 귀국일정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전지일행이 육로로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왜국이 일본열도라면 해충은 태자의 일정을 알 수 없었을 것이며 또 그들이 일본에서 海路로 왔다면 국경으로 마중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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