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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왕의 국서

백제사 조회 수 233 추천 수 0 2016.12.13 12:55:37
개로왕 455~475

468 十四年冬十月癸酉朔(십사년동십월계유삭) : 14년 겨울 10월 초하루 계유일에
日有食之(일유식지) : 일식이 있었다.

469 十五年秋八月(십오년추팔월) : 15년 가을 8월,
遣將侵高句麗南鄙(견장침고구려남비) : 왕이 장수를 파견하여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공하였다.
冬十月(동십월) : 겨울 10월,
葺雙峴城(즙쌍현성) : 쌍현성을 수축하고,
設大柵於靑木嶺(설대책어청목령) : 청목령에 큰 목책을 설치하고,
分北漢山城士卒(분북한산성사졸) : 북한산성의 병졸들을 나누어
戍之(수지) : 그곳을 수비하게 하였다.

472 十八年(십팔년) : 18년,
遣使朝魏(견사조위) : 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예방하고
上表曰(상표왈) : 왕이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臣立國東極(신립국동극) : "제가 동쪽 끝에 나라를 세웠으나,
豺狼隔路(시랑격로) : 이리와 승냥이 같은 고구려가 길을 막고 있으니,
雖世承靈化(수세승령화) : 비록 대대로 중국의 교화를 받았으나
莫由奉藩(막유봉번) : 번방 신하의 도리를 다할 수 없었습니다.
瞻望雲闕(첨망운궐) : 멀리 천자의 궁궐을 바라보면서
馳情罔極(치정망극) : 달려가고 싶은 생각은 끝이 없으나,
凉風微應(량풍미응) : 북쪽의 서늘한 바람으로 말미암아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伏惟皇帝陛下(복유황제폐하) : 생각하건대 폐하께서는
協和天休(협화천휴) : 천명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不勝係仰之情(불승계앙지정) : 존경하는 심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謹遣私署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근견사서관군장군부마도위불사후) : 삼가 본국의 관군장군부마도위불사후
長史餘禮龍驤將軍帶方太守司馬張茂等(장사여례용양장군대방태수사마장무등) : 장사 여례와 용양장군대방태수사마 장무 등을 보내어
投舫波阻(투방파조) : 험한 파도에 배를 띄워
搜徑玄津(수경현진) : 아득한 나루를 찾아,
託命自然之運(탁명자연지운) : 목숨을 자연의 운명에 맡기면서
遣進萬一之誠(견진만일지성) : 저의 정성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내고자 하옵니다.
冀神祇垂感(기신기수감) : 바라건대 천지신명이 감동하고
皇靈洪覆(황령홍복) : 역대 황제의 신령이 크게 보호하여,
克達天庭(극달천정) : 이들이 폐하의 거처에 도달하여
 
宣暢臣志(선창신지) : 저의 뜻을 전하게 할 수 있다면,
雖旦聞夕沒(수단문석몰) : 비록 이를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더라도
永無餘恨(영무여한) : 길이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又云(우운) : 표문에서 또한 말했다.
臣與高句麗源出扶餘(신여고구려원출부여) : "저와 고구려는 조상이 모두 부여 출신이므로
先世之時(선세지시) : 선조 시대에는
篤崇舊款(독숭구관) : 고구려가 옛 정을 굳건히 존중하였는데,
其祖釗(기조쇠) : 그의 조상 소가
輕廢鄰好(경폐린호) : 경솔하게 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親率士衆(친솔사중) : 직접 군사를 거느려
凌踐臣境(릉천신경) :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왔습니다.
臣祖須(신조수) : 우리 조상 수가
整旅電邁(정려전매) :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같이 달려가
應機馳擊(응기치격) : 기회를 타서 공격하니
矢石暫交(시석잠교) : 잠시 싸우다가
梟斬釗首(효참쇠수) : 소의 머리를 베어 효시하였습니다.
自爾已來(자이이래) : 이로부터
莫敢南顧(막감남고) : 감히 남쪽을 돌아보지 못하다가
自馮氏數終(자풍씨수종) : 풍씨의 운수가 다하자,
餘燼奔竄(여신분찬) : 그의 잔적들이 고구려로 도망해온 이후로
醜類漸盛(추류점성) : 추악한 무리가 차츰 세력을 쌓아 갔던 것입니다.
遂見凌逼(수견릉핍) :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우리를 무시하고 침략을 하게 되었습니다.
構怨連禍(구원연화) : 원한을 맺고 전화가 이어진지
三十餘載(삼십여재) : 30여 년이 되었으니,
財殫力竭(재탄역갈) : 재정은 탕진되고 힘은 고갈되어
轉自孱踧(전자잔축) : 나라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若天慈曲矜(약천자곡긍) : 만일 폐하의 인자한 생각이
遠及無外(원급무외) : 먼 곳까지 빠짐없이 미친다면,
速遣一將(속견일장) : 속히 장수를 보내
來救臣國(래구신국) : 우리 나라를 구해 주소서.
當奉送鄙女(당봉송비여) : 그렇게 해준다면 저의 딸을 보내
執掃後宮(집소후궁) : 후궁을 청소하게 하고,
幷遣子弟(병견자제) : 자식과 아우를 보내
牧圉外廐(목어외구) : 외양간에서 말을 기르게 하겠으며,
尺壤匹夫(척양필부) : 한 치의 땅, 한 명의 백성이라도
不敢自有(불감자유) : 감히 저의 소유로 하지 않겠습니다."
又云(우운) : 표문에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今璉有罪(금련유죄) : "지금 연은 죄를 지어
國自魚肉(국자어육) : 나라가 스스로 남에게 잡아 먹히게 되었고,
大臣彊族(대신강족) : 대신과 호족들의
戮殺無已(륙살무이) : 살육 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罪盈惡積(죄영악적) : 그들의 죄악은 넘쳐나서
民庶崩離(민서붕리) :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으니,
是滅亡之期(시멸망지기) :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멸망할 시기로서
假手之秋也(가수지추야) : 폐하의 힘을 빌릴 때입니다.
且馮族士馬(차풍족사마) : 또한 풍족의 군사와 군마는
有鳥畜之戀(유조축지련) : 집에서 키우는 새나 가축이 주인을 따르는 것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고,
樂浪諸郡(락랑제군) : 낙랑의 여러 군은
懷首丘之心(회수구지심) :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天威一擧(천위일거) : 황제의 위엄이 한번 움직여
有征無戰(유정무전) : 토벌을 행한다면 전투가 벌어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臣雖不敏(신수불민) : 저는 비록 명민하지는 않으나
志効畢力(지효필력) : 힘을 다하여
當率所統(당솔소통) : 우리 군사를 거느리고
承風響應(승풍향응) : 위풍을 받들어 호응할 것입니다.
且高句麗不義(차고구려불의) : 또한 고구려는 의롭지 못하여
逆詐非一(역사비일) : 반역하고 간계를 꾸미는 일이 많으니,
外慕隗囂藩卑之辭(외모외효번비지사) : 
겉으로는 외효가 스스로 자신을 변방의 나라라고 낮추어 쓰던 말버릇을 본받으면서도,
內懷凶禍豕突之行(내회흉화시돌지행) : 속으로는 흉악한 화란과 행동을 꿈꾸면서,
或南通劉氏(혹남통유씨) : 남쪽으로는 유씨와 내통하기도 하고,
或北約蠕蠕(혹북약연연) : 북쪽으로는 연연과 맹약을 맺어
共相脣齒(공상순치) : 강하게 결탁하기도 함으로써
謀凌王略(모릉왕략) : 폐하의 정책을 배반하려 하고 있습니다.
昔唐堯至聖(석당요지성) : 옛날 요 임금은 지극한 성인이었으나
致罰丹水(치벌단수) : 단수에서 전투를 하여 묘만을 벌 주었으며,
孟嘗稱仁(맹상칭인) : 맹상군은 어질다고 소문이 났었으나
不捨塗詈(불사도리) : 길가에서 남을 꾸짖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涓流之水(연유지수) : 작게 흐르는 물도
宜早壅塞(의조옹새) : 일찍 막아야 하는 것이니,
今若不取(금약불취) : 지금 만약 고구려를 치지 않는다면
將貽後悔(장이후회) : 앞으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去庚辰年後(거경진년후) : 지난 경진년 후에
臣西界小石山北國海中(신서계소석산북국해중) : 우리 나라 서쪽 경계의 소석산 북쪽 바다에서
見屍十餘(견시십여) : 10여 구의 시체를 보았고,
並得衣器鞍勒(병득의기안륵) : 동시에 의복, 기물, 안장, 굴레 등을 얻었는데,
視之(시지) : 이를 살펴보니
非高句麗之物(비고구려지물) : 고구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後聞乃是王人來降臣國(후문내시왕인래항신국) : 
후에 들으니 이는 바로 황제의 사신이 우리 나라로 오다가
長蛇隔路(장사격로) : 고구려가 길을 막았기에
以沉于海(이침우해) : 바다에 빠진 것이라 합니다.
雖未委當(수미위당) : 비록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深懷憤恚(심회분에) : 매우 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昔宋戮申舟(석송륙신주) : 옛날 송 나라가 신주를 죽이니
楚莊徒跣(초장도선) : 초 장왕이 맨발로 다녔으며,
鷂撮放鳩(요촬방구) : 새매가 풀어준 비둘기를 잡아 요리를 하니
信陵不食(신릉불식) : 신릉군이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克敵立名(극적립명) : 적을 이기고 이름을 세우는 것은
美隆無已(미륭무이) : 대단히 아름답고 훌륭한 일입니다.
夫以區區偏鄙(부이구구편비) : 작은 변방도
猶慕萬代之信(유모만대지신) : 오히려 만대의 신의를 생각하는데
况陛下合氣天地(황폐하합기천지) : 하물며 폐하께서는 천지의 기를 모으고,
勢傾山海(세경산해) : 세력이 산과 바다를 기울일 수 있는데
豈令小竪(기령소수) : 어찌 고구려와 같은 애숭이로 하여금
跨塞天逵(과새천규) : 황제의 길을 막게 합니까
今上所得鞍(금상소득안) : 이제, 북쪽 바다에서 얻었던 안장을 바쳐
一以實驗(일이실험) : 증거로 삼고자 합니다."
顯祖以其僻遠冒險朝獻(현조이기벽원모험조헌) : 
위 나라 현조가 백제의 사신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조공을 바쳤다 하여
禮遇尤厚(례우우후) : 융숭하게 예우하고,
遣使者邵安(견사자소안) : 사신 소안으로 하여금
與其使俱還(여기사구환) : 그들을 데리고 백제로 가게 하였다.
詔曰(조왈) : 이 때 조칙을 내려 말했다.
得表聞之(득표문지) : "글을 받고
無恙甚善(무양심선) : 아무 일 없이 지낸다는 말을 들으니 매우 기쁘다.
卿在東遇(경재동우) : 그대가 동쪽 한 구석,
處五服之外(처오복지외) : 5복의 밖에 있으면서
不遠山海(불원산해) : 산과 바다를 멀리 여기지 않고
歸誠魏闕(귀성위궐) : 위 나라 조정에 정성을 바치니,
欣嘉至意(흔가지의) : 그 지극한 뜻을 가상히 여겨
用戢于懷(용집우회) : 가슴 속에 기억해 두리라.
朕承萬世之業(짐승만세지업) : 내가 만대에 누릴 위업을 계승하여
君臨四海(군림사해) : 사해에 군림하면서
統御羣生(통어군생) : 모든 백성들을 다스리니,
今宇內淸一(금우내청일) : 이제 나라는 깨끗이 통일되고
八表歸義(팔표귀의) : 8방에서 귀순하기 위하여
襁負而至者(강부이지자) : 어린아이를 업고 이 땅에 이르는 자들이
不可稱數(불가칭수) : 헤아릴 수 없이 많다.
風俗之和(풍속지화) : 평화로운 풍속과
士馬之盛(사마지성) : 성대한 군사는
皆餘禮等親所聞見(개여례등친소문견) : 여례 등이 직접 듣고 보았다.
卿與高句麗不穆(경여고구려불목) : 그대는 고구려와 불화하여
屢致凌犯(루치릉범) : 여러 번 침범을 당하였지만
苟能順義(구능순의) : 만일 정의를 따르고
守之以仁(수지이인) : 어진 마음으로 방어할 수 있다면
亦何憂於寇讎也(역하우어구수야) : 원수에 대하여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前所遣使(전소견사) : 이전에 사신을 파견하여
浮海以撫荒外之國(부해이무황외지국) : 바다를 건너 국경 밖의 먼 나라를 위무하게 하였으나,
從來積年(종래적년) : 그 후 여러 해가 되도록
往而不返(왕이불반) : 가서는 돌아오지 않으니
存亡達否(존망달부) :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未能審悉(미능심실) : 또는 그곳에 도착했는지 도착하지 못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卿所送鞍(경소송안) : 그대가 보낸 안장을
比校舊乘(비교구승) : 예전 것과 비교하여 보니
非中國之物(비중국지물) : 중국의 산물이 아니었다.
不可以疑似之以生必然之過事(불가이의사지사이생필연지과) : 
의심되는 일을 사실로 단정하는 과오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니,
經略權要(경략권요) : 고구려를 침공할 계획은
以具別旨(이구별지) : 별지에 상세히 밝힐 것이다."
又詔曰(우조왈) : 이 조서에서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知高句麗阻疆侵軼(지고구려조강침질) :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도다. 즉, 고구려는 국토의 지세가 험하다는 사실을 믿고 
그대의 국토를 침범하였으니,
卿上修先君之舊怨(경상수선군지구원) : 이는 자기 선대 임금의 오랜 원한을 갚으려고
棄息民之大德(기식민지대덕) : 백성들을 편안케하는 큰 덕을 버린 것이다.
兵交累載(병교루재) : 전쟁이 여러 해에 걸쳐 이어지니
難結荒邊(난결황변) : 변경을 단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使兼申胥之誠(사겸신서지성) : 그리하여 사신은 신포서의 정성을 겸하게 되고
國有楚越之急(국유초월지급) : 나라는 초, 월과 같이 위급하게 되었구나.
乃應展義扶微(내응전의부미) : 이제 마땅히 정의를 펴고 약자를 구하기 위하여
乘機電擧(승기전거) : 기회를 보아 번개처럼 공격해야 할 것이다.
但以高句麗稱藩先祖(단이고구려칭번선조) : 그러나 고구려는 선대로부터 번방의 신하로 자처하며
供職日久(공직일구) : 오랫동안 조공을 바쳐왔다.
於彼雖有自昔之釁(어피수유자석지흔) : 그들 스스로는 비록 이전부터 잘못이 있었으나,
於國未有犯令之愆(어국미유범령지건) : 나에게는 명령을 위반한 죄를 지은 일이 없다.
卿使命始通(경사명시통) : 그대가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와
便求致伐(편구치벌) : 그들을 곧 토벌하기를 요청하였으나,
尋討事會(심토사회) : 사리를 검토해보아도
理亦未周(이역미주) : 토벌의 이유가 또한 충분하지 않았다.
故往年遣禮等至平壤(고왕년견례등지평양) : 그러므로 지난해에 예 등을 평양에 보내
欲驗其由狀(욕험기유상) : 고구려의 상황을 조사하려고 하였다.
然高句麗奏請頻煩(연고구려주청빈번) : 그러나 고구려가 여러 번 주청하고
辭理俱詣(사이구예) : 그 말이 사리에 모두 맞으니
行人不能抑其請(행인불능억기청) : 우리 사신은 그들의 요청을 막을 수 없었고,
司法無以成其責(사법무이성기책) : 법관은 그들에게 죄명을 줄만하지 못했던 바,
故聽其所啓(고청기소계) : 그들이 말하는 바를 들어 주고
詔禮等還(조례등환) : 예 등을 돌아오게 하였다.
若今復違旨(약금복위지) : 만약 고구려가 이제 다시 명령을 어긴다면,
則過咎益露(칙과구익로) : 그들의 과오가 더욱 드러날 것이므로
後雖自陳(후수자진) : 뒷날 아무리 변명을 하더라도
無所逃罪(무소도죄) : 죄를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니,
然後興師討之(연후흥사토지) : 그렇게 된 연후에는 군사를 일으켜 그들을 토벌하더라도
於義爲得(어의위득) : 이치에 합당할 것이다.
九夷之國(구이지국) : 모든 오랑캐 나라들은
世居海外(세거해외) : 대대로 바다 밖에 살면서,
道暢則奉藩(도창칙봉번) : 왕도가 창성하면 번방 신하로서의 예절을 다하고,
惠戢則保境(혜집칙보경) : 은혜가 중단되면 자기의 영토를 지켜 왔다.
故羈縻著於前典(고기미저어전전) : 
따라서 중국과 예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예전의 법전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楛貢曠於歲時(고공광어세시) : 호시를 바치는 일은 세시에 그쳤다.
卿備陳彊弱之形(경비진강약지형) : 그대가 강약에 대한 형세를 말하였으며
具列往代之迹(구열왕대지적) : 지난 시대의 사실들을 모두 열거하였지만,
俗殊事異(속수사이) : 풍속이 다르고 사정이 변하여
擬况乖衷(의황괴충) : 무엇을 주려 하여도 나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
洪規大略(홍규대략) : 우리의 너그러운 규범과 관대한 정책은
其致猶在(기치유재) :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今中夏平一(금중하평일) : 이제 중국은 통일 평정되어
宇內無虞(우내무우) : 나라 안에 근심이 없다.
每欲陵威東極(매욕릉위동극) : 이에 따라 매번 동쪽 끝까지 위엄을 떨치고
懸旌域表(현정역표) : 국경 밖에 깃발을 휘날려
拯荒黎於偏方(증황려어편방) : 먼 나라의 굶주리는 백성을 구원하며,
舒皇風於遠服(서황풍어원복) : 먼 지방까지 황제의 위풍을 보이고 싶었다.
良由高句麗卽叙(양유고구려즉서) : 그러나 사실은 고구려가 그 때마다 진정을 토로하였기 때문에
未及卜征(미급복정) : 미처 토벌을 도모하지 못했던 것이다.
今若不從詔旨(금약불종조지) : 지금 그들이 나의 조칙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則卿之來謀(칙경지래모) : 그대의 계책이
載協朕意(재협짐의) : 나의 뜻과 맞으니
元戎啓行(원융계행) : 큰 군사가 토벌의 길을 떠나는 것도
將不云遠(장불운원) : 장차 멀다고는 할 수 없다.
便可豫率同興(편가예솔동흥) : 그대는 미리 군사를 정돈하여 함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도록
具以待事(구이대사) : 준비할 것이며,
時遣報使(시견보사) : 때에 맞추어 사신을 보내
速究彼情(속구피정) : 그들의 실정을 즉시 알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師擧之日(사거지일) : 우리 군사가 출동하는 날,
卿爲鄕導之首(경위향도지수) : 그대가 향도의 선두가 된다면
大捷之後(대첩지후) : 승리한 후에는
又受元攻之賞(우수원공지상) : 역시 가장 큰 공로로 상을 받게 될 것이니,
不亦善乎(불역선호) :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所獻錦布海物(소헌금포해물) : 그대가 바친 포백과 해산물은
雖不悉達(수불실달) : 비록 모두 도착하지는 않았으나,
明卿至心(명경지심) : 그대의 지극한 성의는 잘 알겠도다.
今賜雜物如別(금사잡물여별) : 이제 별지와 같이 내가 여러 가지 물품을 보내노라."
又詔璉護送安等(우조련호송안등) : 
또한 고구려왕 연에게 조서를 보내 소안 등을 백제로 보호하여 보내도록 하였다.
安等至高句麗(안등지고구려) : 소안 등이 고구려에 이르자
璉稱昔與餘慶有讎(연칭석여여경유수) : 연이 예전에 여경과 원수를 진 일이 있다 하여,
不令東過(불령동과) : 그들을 동쪽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하므로
安等於是皆還(안등어시개환) : 소안 등이 모두 돌아가니,
乃下詔切責之(내하조절책지) : 위 나라에서는 곧 고구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엄하게 꾸짖었다.
後使安等從東萊浮海(후사안등종동래부해) : 
그 후에 소안 등으로 하여금 동래를 출발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賜餘慶璽書(사여경새서) : 여경에게 조서를 주어
褒其誠節(포기성절) : 그의 정성과 절조를 표창하게 하였다.
安等至海濱(안등지해빈) : 그러나 소안 등이 바닷가에 이르자
遇風飄蕩(우풍표탕) : 바람을 만나 표류하다가
竟不達而還(경불달이환) : 끝내 백제에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王以麗人屢犯邊鄙(왕이려인루범변비) : 왕은 고구려가 자주 변경을 침범한다하여
上表乞師於魏(상표걸사어위) : 위 나라에 표문을 올려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不從(불종) : 위 나라에서는 듣지 않았다.
王怨之(왕원지) : 왕이 이를 원망하여
遂絶朝貢(수절조공) : 마침내 조공을 중단하였다.

475 二十一年秋九月(이십일년추구월) : 21년 가을 9월,
麗王巨璉帥兵三萬(려왕거연수병삼만) : 고구려왕 거련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來圍王都漢城(래위왕도한성) : 와서 수도 한성을 포위했다.
王閉城門(왕폐성문) : 왕이 성문을 닫고 있었다.
不能出戰(불능출전) : 능히 나가 싸울 수가 없었다
麗人分兵爲四道夾攻(려인분병위사도협공) : 고구려 사람들이 군사를 네 방면으로 나누어 협공하고,
又乘風縱火(우승풍종화) : 또한 바람을 이용해서 불을 질러
焚燒城門(분소성문) : 성문을 태웠다.
人心危懼(인심위구) : 백성들 중에는 두려워 하여
或有欲出降者(혹유욕출항자) : 성 밖으로 나가 항복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王窘不知所圖(왕군불지소도) : 상황이 어렵게 되자 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領數十騎(영수십기) :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出門西走(출문서주) :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도주하려 하였으나
麗人追而害之(려인추이해지) : 고구려 군사가 추격하여 왕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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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11대 수인천황의 연도 확인 1 [1]

  •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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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왕조의 창업자인 10대 숭신기록과 11대 수인기록에서 가장 유명한 기록이 다음 기록들입니다. 가야/신라사 연구하는 사람 치고 이 기록을 인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연도가 얼마나 정확한지 한 번 보겠습니다.   *숭신 65(115년), 가을 7월, 임나국(任...

가야사 10대 숭신천황 연도 확인

  • 2017-05-01
  • 조회 수 172

일본서기에서 10대로 주어진, 고왕조 창업자인 숭신천황에 대한 연도를 점검하겠습니다. 얼마나 제 연도가 정확한가를 확인하면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연도를 점검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글들은 이미 제 책 3권에 다 활자화되어 나오는 내...

백제사 신무천황의 前史 7년

  • 2017-05-01
  • 조회 수 207

일본서기는 연도별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서기 450년을 기준으로 그 앞과 뒤의 날자 역산법이 다릅니다. 이것은제 책 <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보시기 바랍니다. 450년 전은 연도가 엉망이라 이 기록이 서기 몇년인지를 알기 어...

고구려사 고구려 고국원왕이 369년에 근초고왕의 백제를 공격한 이유 [10]

  • 2017-04-13
  • 조회 수 335

왜 고국원왕의 고구려가 369년에 근초고왕의 백제를 공격하였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왜 그것을 제게 물어보십니까? 고국원왕이나 근초고왕에게 물어보세요?” 가 답변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맞는 답이란 것이다. 369년에 고구려의 공격으로 전쟁이...

백제사 왜왕무의 책봉관계 [1]

  • 2016-12-13
  • 조회 수 334

왜왕무의 상표문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63년(475) 9월 왕은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략하여 백제왕이 도읍한 한성(漢城)을 함락시키고 그 왕 여경(餘慶) (개로왕)을 죽이고 남녀 8천 명을 사로잡아서 돌아왔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문주왕 3년...

백제사 개로왕의 국서

  • 2016-12-13
  • 조회 수 233

개로왕 455~475 468 十四年冬十月癸酉朔(십사년동십월계유삭) : 14년 겨울 10월 초하루 계유일에 日有食之(일유식지) : 일식이 있었다. 469 十五年秋八月(십오년추팔월) : 15년 가을 8월, 遣將侵高句麗南鄙(견장침고구려남비) : 왕이 장수를 파견하여 고구려의...

백제사 462년 왜왕 무의 使持節 都督, 七國諸軍事 安東大將軍 倭國王 자칭

  • 2016-12-13
  • 조회 수 319

중국 사서인 송서를 보면 왜왕 무가 2번 사신을 보냅니다. 462년과 478년입니다.   무가 왕이 된 것은 다음 기록에 의해 462년입니다. 이 해에 왜 왕세자 흥을 안동대장군 왜국왕으로 책봉하였는데 흥이 죽고 그 동생 무가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송 世祖...

백제사 웅략의 죽음과 武의 국서

  • 2016-12-09
  • 조회 수 201

아래는 일본서기 웅략천황조 후반부입니다. *웅략 20년(475); 겨울에 고구려가 백제를 쳐 없앰. *웅략 21년(476); 3월 문주왕에게 웅진을 주어 백제를 다시 일으키도록 함. *웅략 22년(477); 1월 백발황자를 황태자로 세움. *웅략 23년(478): (기록공백) *웅략...

백제사 왜왕무(倭王武)가 백제 무령왕이라는 논거

  • 2016-12-08
  • 조회 수 349

과연 백제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흔쾌히 송나라 순제에게 올릴 상표를 몇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정성들여 수정보완을 거듭하여 완성하니, 마침내 역사에 길이 남을 상표문이 완성됐다.  옛 적의 상표문(472년 개로왕이 위나라에 보낸 것)그대로 황제의 가슴...

백제사 왜의 5왕 [2]

  • 2016-12-08
  • 조회 수 273

왜의 5왕 (The Five Kings of Wa)                        3세기이후 147년간 기록이 없다가 서기 413년 중국사서에 일본기록이 나타난다.  조공을 바치고  작위를 받고자 하는 5명의 왕의 이름이 5세기에 나온다.  400년 경자년 광개토왕의 남정이후 규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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