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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왕무(倭王武)가 백제 무령왕이라는 논거

백제사 조회 수 349 추천 수 0 2016.12.08 19:36:53
과연 백제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흔쾌히 송나라 순제에게 올릴 상표를 몇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정성들여 수정보완을 거듭하여 완성하니, 마침내 역사에 길이 남을 상표문이 완성됐다. 
옛 적의 상표문(472년 개로왕이 위나라에 보낸 것)그대로 황제의 가슴을 울릴 명문이었다.
 
그가 정성스레 작성한 외교문서를 왜왕무 앞에서 꺼내 보이니, 과연 3년 전의 비극을 구구절절 잘도 묘사한 글이었다. 왜왕무(사마왕자)는 노고에 격려를 한 후 곧바로 사신을 보냈다. 아울러 백제가 한반도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그전의 규정과 달리 왜지의 백제분국에 대해서도 지배권을 요구하였으나, 역시 송나라는 전례를 들어 백제 분국의 통치권을 빼고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마한) 육국에 대한 지배권만 승인했다.
 
당시 왜왕무가 보낸 상표문은 송나라 순제 승명2년(478년)에 도착하였는바, 
그때 보낸 외교문서가 중국『송서』에 남아 전하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봉국(封國-송의 책봉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신하국을 의미)은 구석지고 먼 곳으로 밖의 번국이 되겠습니다. 
저의 부친(여경)과 할아버지(여비)는 옛적부터 스스로 갑옷을 입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기에 휴식을 취할 여가도 없었습니다. 동쪽으로 모인(毛人:아이누민족)을 정복하기 55국, 서쪽 중이(西服衆夷:큐우슈우 지역의 여러 국가) 66국, 바다건너 북쪽(한반도 남부)을 평정하기 95국. 왕도는 융성하고 태평하며, 땅을 넓혀 왕도도 엄청 넓혔습니다. 
오랫동안 (우리)조종은 매년 (조공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봉국편원(封國偏遠), 작번우외(作藩于外), 자석조네(自昔祖禰), 궁환갑주(躬擐甲胄), 발섭산천(跋涉山川), 부황녕처(不遑寧處). 동정모인 오십오국(東征毛人五十五國), 서복중이 육십육국(西服衆夷六十六國), 도평해북 구십오국(渡平海北九十五國), 왕도융태(王道融泰), 곽토하기(廓土遐畿), 루엽조종(累葉朝宗), 부건우세(不愆于歲). 


신은 비록 어리석지만, 선대를 이어 나라 통솔을 평안하게 하고 있으며, 천극(天極:원뜻은 북극성이나 여기서는 송나라황제 순제를 의미)을 받들어 모십니다(歸崇). (천극에 가는)길은 백제를 통해서 가야하기에 배를 타고 가야합니다.
 
신수하우(臣雖下愚), 忝윤선서(胤先緖), 구솔소통(驅率所統), 귀숭천극(歸崇天極), 도경백제(道逕百濟), 장치선방(裝治船舫), 

그러나 구려(고구려)는 무도하여 우리를 보면 집어삼키려하고 변방을 침략하고 약탈하여, 근심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늘 일이 막히고 지체되니, 그럼으로써 좋은 풍속을 잃게 되고, 비록 나아갈 길은 있다 해도, 그 길이 혹은 통하기도 하고 혹은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구려무도(而句驪無道), 도욕견탄(圖欲見呑), 약초변례(掠抄邊隸), 건류불이(虔劉不已), 매치계체(每致稽滯), 이실양풍(以失良風). 수왈진로(雖曰進路), 혹통혹불(或通或不). 


신의 죽은 아비 제(臣亡考濟:제는 개로왕으로 본국 백제왕으로 즉위하기 전의 왜국 내 분국왕으로서의 ‘왜왕제[倭王濟]’를 말함)를 생각하면, 실로 (고구려) 침략자 원수를 분히 여기나 (우리 사신이) 중국으로 가는 길은 옹색하게 가로막히니, 활을 당기는 백만(고구려를 치자는 백만 병사의)의, 의로운 소리에 감격하여, 바야흐로 군사를 크게 일으키고 싶으나, 별안간(한 순간에) 아비와 형을 잃어(奄喪父兄:475년 아차산성에서 고구려 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개로왕:여경과 왜왕 흥:여기) 상중에 있으므로, 이루려는 공(功)이 흙 한 삼태기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군사 백만으로 고구려를 치려던 계획이 부형의 죽음으로 그 공을 이루지 못함).
 
신망고제(臣亡考濟) 실분구(實忿寇)讎, 옹새천로(壅塞天路), 공현백만(控弦百萬), 의성감격(義聲感激), 방욕대거(方欲大擧), 엄상부형(奄喪父兄), 사수성지공(使垂成之功), 부획일(不獲一)簣. 


(이로부터) 신은 양암(빈소)에 거처하였기에,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3년 상이 끝나기 전에는 전쟁을 않던 관습 때문에), 그들을 싸워 이기지 못했습니다. 

거재양암(居在諒闇), 부동병갑(不動兵甲), 시이언식미첩(是以偃息未捷).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병기를 연마하고 군사를 훈련하여, 부형들의 뜻을 펴보고자 하옵는데, 의롭고 용맹스러운 군사들이, 문무를 가릴 것 없이, 공을 나타내려 합니다.
(이제) 눈앞에 흰 칼날이 번쩍이는 다급함이 있더라도, 또다시 되돌아다볼 필요는 없사옵니다. 

지금욕련갑치병(至今欲練甲治兵), 신부형지지(申父兄之志), 의사호분(義士虎賁), 문무효공(文武效功), 
백인교전(白刃交前), 역소불고(亦所不顧). 


만일 부재(위에서 덮어주는 하늘과 아래에서 실어주는 땅의 음덕)와 같은 황제님의 덕을 입는다면, 이 강한 적을 꺾어 없애고, (상대하기) 어려운 무리들을 이기시어 조용하게 하시면 전대의 공에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약이제덕복재(若以帝德覆載), 摧차강적(此强敵), 극정방난(克靖方難), 무체전공(無替前功). 

(왜왕무) 삼가 스스로 가(假:임시로) 개부의동삼사의와 그 나머지 모두의 (부하)에게도 관작의 제수를 원하였다. 
그로써 충성스런 절개에 (더욱) 힘쓴다했다. 이에 (왜왕)무에게 조서를 내려 사지절도독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마한) 육국 제군사 안동대장군 왜왕을 제수했다. 

절자가개부의동삼사(竊自假開府儀同三司), 기여함각가수(其餘咸各假授), 이권충절(以勸忠節). 
조제무사지절(詔除武使持節)·도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육국제군사(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안동대장군(安東大將軍)·왜왕(倭王)

 
封國偏遠, 作藩于外, 自昔祖禰, 躬擐甲胄, 跋涉山川, 不遑寧處. 東征毛人五十五國, 西服衆夷六十六國, 渡平海北九十五國, 王道融泰, 廓土遐畿, 累葉朝宗, 不愆于歲. 臣雖下愚, 忝胤先緖, 驅率所統, 歸崇天極, 道逕百濟, 裝治船舫, 而句驪無道, 圖欲見呑, 掠抄邊隸, 虔劉不已, 每致稽滯, 以失良風. 雖曰進路, 或通或不. 臣亡考濟 實忿寇讎, 壅塞天路, 控弦百萬, 義聲感激, 方欲大擧, 奄喪父兄, 使垂成之功, 不獲一簣. 居在諒闇, 不動兵甲, 是以偃息未捷. 至今欲練甲治兵, 申父兄之志, 義士虎賁, 文武效功, 白刃交前, 亦所不顧. 若以帝德覆載, 摧此强敵, 克靖方難, 無替前功. 竊自假開府儀同三司, 其餘咸各假授, 以勸忠節. 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
    
 
     
이처럼 472년 개로왕이 위나라에 보낸 국서와 478년 왜왕무가 송나라에 보낸 국서가 비슷한 내용으로 문체도 흡사함은 바로 백제인이 두 외교문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인 역사학자 토오마 세이타(藤間生大)도 이 두 국서를 비교하여, “일본과 백제의 관계로 보아 상표문의 제작기술은 공통이었을 것으로 본다.”고 갈파했을 정도다.
 
두 상표문은 한 사람이 작성한 흔적이 보이니, 472년 개로왕이 위나라에 보낸 상표 내용 중의 ‘당솔소통(當率所統)’이란 구절과 478년 왜왕무가 송나라 순제에게 보낸 상표문 중의 ‘구솔소통(驅率所統)’이란 문구만을 비교해 보아도 앞 글자인 ‘당’ 과 ‘구’ 자만 차이가 날뿐이다. 두 글이 ‘마땅히 거느린 군사들을 이끌고’ 라는 의미의 같은 말로보아 무방하다.

그뿐 아니라, 개로왕의 상표에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 감응하여’ 라는 의미의 ‘신지수감(神祇垂感)’ 이란 문구와 후자의 ‘약이제덕복재(若以帝德覆載)’ 란 문구 중 ‘복재(覆載:위에서 덮어주는 하늘과 아래에서 실어주는 땅의 음덕)’ 란 글의 뜻이 거의 같은 의미라는 것에서도 입증된다. 

이로 볼 때 두 외교문서는 분명 한 사람에 의해 작성됐다고 밖에 볼 수 없음이다. 그 문서 작성자가 바로 개로왕이 사마왕자를 가르치게 배려한 백제인에 다름 아니다.
 
전체적인 상표 내용은 과장이 너무 심한 문장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왜왕무가 올린 상표문 중에 ‘도평해북95국(渡平海北九十國(바다를 건너 바다북쪽을 평정하기 95국)’ , ‘공현백만(控弦百萬-활을 당기는 백만[병사]) 등 당시 왜국 사정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과장의 표현이 다수 들어가 있다. 일본학자들은 도평해북 95국을 한반도 남부의국가라 한다. 당시에 한반도 남부에는 약 78개국의 나라가 있었다. 삼한시대인 마한 54국에 진한, 변한 합쳐 24개국으로 총 78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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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왕무가 사마왕이라고 단정적으로 결정할 수 있음은 전술한 바와 함께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자신의 죽은 아버지가 왜왕제(신의 죽은 아비 제 : 臣亡考濟)라 밝힘으로써 왜왕제가 개로왕임을 아는 동시에 왜왕무가 유일한 개로왕의 생존 왕자인 사마왕자란 사실까지 알려주고 있다.
 
둘째:상표문에 별안간(한 순간에) 아비와 형을 잃었다((奄喪父兄)고 했는데, 이는 오로지 475년 아차산성에서 고구려 군에 죽임을 당한 개로왕과 왕세자 흥과 다른 왕자들 뿐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인 학자들이『일본서기』에 나오는 웅략이 바로 왜왕무라 하는데 그 형인 안강의 죽음은 서기 456년이요, 부친이라는 리중은 405년인 바, 형과 부왕이 별안간 갑자기 한날 한시에 죽었다는 왜왕무의 상표문과는 너무나 동떨어지기에 일본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왜왕무=웅략천황이라는 공식이 깨어짐은 물론이요, 왜왕무가 곧 사마왕자요 무령왕임을 증명한다.
 
셋째:백제가 한반도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그전의 규정과 달리 왜지의 백제분국에 대해서도 지배권을 요구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본국 백제를 염려하여 그 지배권을 개로왕의 유일한 생존 왕자로서 그 백제 왕 계보를 왜국에서 이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유일한 개로왕의 생존 왕자인 왜왕무가 바로 사마왕자 뿐이었음을 이 상표문은 명백히 증명한다. 
 
넷째:상표문에 왜왕무는 백제를 통해서 송나라에 사신을 보낸다 했음을 볼 때 친 백제계 인물이 틀림없다는 점이다. 그와는 반대로 폭군 웅략은 백제가 바친 공녀 지진원을 자신의 신하와 불륜을 저질렀다하여 “불에 태워 죽였다.”했을 정도로 포악했음을 볼 때 백제 왕권에 부탁하여 왜 사신을 중국에 보내줄 정도로 우호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토록 백제를 살리기 위해 애쓰며 친밀함을 가진 왜왕무인데, 어찌 백제왕실에서 보낸 공녀를 불태워 죽일 수 있었을까? 전혀 다른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때문에 왜왕무와 웅략은 절대 같은 인물이 아니란 것이 이 상표문으로 알 수 있다.  왜왕무는 백제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마왕자일 뿐임을 상표문 내용은 재삼 확인시켜 준다.
 
다섯째: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상표문과 문구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개로왕이 보낸 상표문의 ‘당솔소통(當率所統)’과 왜왕무가 송나라 황제에 보낸 ‘구솔소통(驅率所統)’ 또한 ‘신지수감(神祇垂感)’ 과 ‘복재(覆載)’ 란 단어사용이 거의 같은 뜻으로 이는 두 외교문서 작성자가 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증거로 개로왕과 왜왕무 간의 밀착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여섯째:사마왕 붕어 후 시호가 무령왕인 점이다. 이는 왜지 분국의 왕으로 있을 때 왜왕무(倭王武로) 있었음을 나타내는 입증자료로 볼 수 있다. 즉 왜왕무에서 ‘무(武)’ 자를 따오고, 양나라로부터 받은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에서 ‘령(寧)’ 자를 따와 시호가 무령왕(武寧王)으로 정해졌다는 점이다. 
 
이상으로 왜왕무가 사마왕자요, 그가 곧 무령왕임을 본 상표문 하나로써도 충분히 입증됨을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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