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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5왕은 누구인가?

백제사 조회 수 212 추천 수 0 2016.11.30 20:21:12
왜5왕은 누구인가?



여구 (1대:372~386)
여휘 (2대:386~416)
413년 찬 (여영, 3대손) 416~427
438년 진 (여비, 3대손) 427~443 => 일본 규슈에서 왜5왕 역임, 백제에서 비유왕(427~455)으로 역임
443년 제 (여경, 4대손) 443~455 => 백제 개로왕(455~475)으로 등극
462년 흥 (여기, 5대손) 455~475 => 475년 한성에서 개로왕과 함께 사망
477년 무 (여융, 5대손) 475~502 => 백제 무령왕(501~523)으로 등극

 

왜5왕은 400년 경자년 광개토태왕의 대원정 이후 김해 임나가라에서 일본 규슈로 이동한 왜가 413년부터 501년 까지 왜5왕으로 왕위를 이어갑니다. 
이렇게 백제는 근개루왕(개로왕)대에 이르러 하나의 백제로 통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400년에 남하하여 왜를 무찌릅니다. 
왜의 본거지인 <임나가라>까지 점령하여 안라국 등 가야 여러나라도 구원하게 되죠.
 
404년에는 백제와 왜가 힘을 합쳐 옛 땅이였던 대방고지를 공략하지만 광개토왕에 의해 참패하고 참살탕진당하고 맙니다.
이후 왜의 일부는 일본 규슈지방으로, 일부는 대가야로, 또 일부는 한반도 남부 영산강유역에 남아 왜5왕 시대를 502년까지 이어갑니다.

이후 장수왕 때에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의해 백제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475년 한성에서 백제와 왜를 통합한 개로왕을 죽이게 됩니다.
 
이후 동성왕(말다)때까지 나제연맹으로 고구려의 남하정책을 방어하지만
무령왕(왜5왕 무) 이후 성왕과 위덕왕때에 신라 진흥왕은 553년 북한산주를 빼았고 554년 관산성 전투의 승리로 신라의 국력이 점점 강성해 집니다. 

532년경 신라는 일부 금관가야를 병합하고 562년 삼한백제(왜)가 차지하고 있었던 대가야를 완전 병합하게됩니다.
 
660년 나당연합에 의해 백제가 무너지자..
일본에 분국을 건설한 야마토 왕조는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 2만 7천여명과 400척의 배를 백제 금강으로 보내지만 
결국 실패하여 백제는 패망하게 됩니다. 이후 왜는 일본 야마토로 계속 세력을 키우며 지내게 됩니다. 

720년경 왜는 일본서기를 만들지만 일본서기의 내용은 일본 본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한반도에 관한 내용으로 백제와 임나가라의 관계 또는 신라와 임나가라의 관계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일본서기는 삼한백제의 역사서이기도 합니다.
 
이중 413년 부터 501년까지  왜5왕을 중심으로 왜가 그 이전에는 한반도 남부 임나가라에 위치하였지만  400년 광개토태왕의 공격을 받은 이후 왜는 일부 도해하여 일본열도인 규슈로 건너가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삼한백제는 이미 370~380년대 부터 호무다 와케라는 왕족 장군을 일본에 파견하여 대략 390년경 야마토 왕조를 세우면서 후에는 일본에 완전히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5왕은 줄기차게 使持節(사지절) 都督(도독) 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 (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六國 諸軍事(6국제군사) 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 倭王(왜왕)에 제수되는데, 
이는 왜(삼한백제)가 일본 규슈에 거주하면서, 한 떼 자신들이 점유하였던 신라와 임나, 가라, 진한(경상도), 모한(전라도) 지방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의 외교문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왜5왕의 기록을 남김니다.

 
찬(贊) [편집]
晉安帝時,有倭王贊 遣使朝貢。[1]
진 안제때, 왜왕 찬이 사신을 보내 조공함
 

高祖 永初二年,詔曰:「倭贊萬里修貢,遠誠宜甄,可賜除授。」[2]
고조 영초이년, 조서에 이르길 : 왜왕 찬이 만리먼길에서 (송에) 조공을 보내옴. (송나라 무제가) "멀리서 온 정성이 크므로, 제수(除授)를 내려야 할 것이다."라고 함
 

 
太祖 元嘉二年,贊又 遣司馬曹達 奉表 獻方物[2]
태조 원가2년, 왜왕 찬이 또 사마(관등) 조달(曺達)을 사신으로 보내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침
 

진(珍)
贊死,弟珍立,遣使貢獻。自稱使持節、都督 倭 百濟 新羅 任那 秦韓 慕韓 六國 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表求除正,詔除安東將軍、倭國王。珍又 求除正倭隋等十三人 平西、征虜、冠軍、輔國將軍號,詔並聽。[2]
왜왕 찬이 죽고 그의 동생 진이 계승하여 스스로 칭하길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 함.
정식으로 임명해주기를 요청함. 하지만, 진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송나라 문제는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는 관직만을 제수함. 송나라 문제는 왜왕 진의 신하들에겐 平西(평서)征虜(정로)冠軍(관군)輔國(보국)將軍(장군)이라는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달라는 요청을 허락함
 

제(濟)
二十年,倭國王濟 遣使 奉獻,復以爲安東將軍、倭國王。[2]
20년, 왜국왕 제(개로왕)가 사신을 보내어 봉헌하므로,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으로 삼음
 

二十八年,加 使持節、都督 倭 新羅 任那 加羅 秦韓 慕韓 六國諸軍事,安東將軍如故。
28년, 왜왕 제가 安東將軍(안동장군)과 더불어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에도 임명됨.
 

並 除所上二十三人軍、郡。[2]
7월에 아울러 23인의 신하들도 군(軍)과 군(郡)을 제수함
 

흥(興)
濟死,世子興 遣使 貢獻。[2]
왜왕 제가 죽고,세자 흥이 사신을 보내 조공함.
 

世祖大明六年,詔曰:「倭王世子興,奕世載忠,作籓外海,稟化寧境,恭修貢職。新嗣邊業,宜授爵號,可安東將軍、倭國王。」[2]
세조 대명6년 조서에 이르길 : 왜왕 세자흥 역시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에 임명함
 

무(武)
興死,弟武立,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2]
왜왕 흥이 죽고 그의 동생 무가 위를 이음. 무는 스스로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七國諸軍事(7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라 자칭함
 

順帝升明二年,遣使上表曰:「封國偏遠,作籓於外,自昔祖禰,躬擐甲胄,跋涉山川,不遑寧處。
순제 승명 2년, 사신을 파견하여 왜왕 무가 표문을 올리기를 신의 나라는 구석지고 먼 곳에 봉 받아 밖의 번신이 되었습니다.
옛 조상 때부터 몸소 갑옷을 입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편히 쉬지 못하였습니다.
 
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衆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王道融泰,廓土遐畿,累葉朝宗,不愆於歲。
동쪽으로 모인 55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중이 66국을 복속시키고, 바다 건너 북으로 95국을 평정하여 왕도가 무륵익어 태평하고, 땅은 서울에서 멀리까지 넓혔으며, 해마다 세공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臣雖下愚,忝胤先緒,驅率所統,歸崇天極,道遙百濟,裝治船舫,
신이 비록 어리석지만, 선대를 이어 나라를 평안하게 통솔하고 있으며, 천극(중국)으로 가는 길은 백제를 통해 가야하기에 배를 타고 가야합니다.
 
而句驪無道,圖欲見吞,掠抄邊隸,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
그러나 고구려는 무도하여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하고 변방을 침략하고 약탈하여 근심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늘 일이 막히고 거슬리는 바람에 어진 풍속을 잃고 있사오니,
 
雖曰進路,或通或不。
비록 나아갈 길은 있지만 그 길이 혹은 통하기도 하고 혹은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臣亡考濟實忿寇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舉,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一簣。
신의 죽은 아비 제(개로왕)는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천자에게 자주 문안드리지 못함을 분통히 여겼으며, 활을 당기는 백만의 의로운 소리에 감격하여, 바야흐로 군사를 크게 일으키고 싶었으나, 갑자기 아비와 형을 잃어, 이루려는 공이 흙 한 삼태기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居在諒暗,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
신은 양암(빈소)에 거처하였기에,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그들과 싸우지 못했습니다.
 
至今欲練甲治兵,申父兄之志,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병기를 연마하고 군사를 훈련하여, 부형들의 뜻을 펴보고자 하옵는데, 의롭고 용맹스러운 군사들이, 문무를 가릴 것 없이, 공을 나타내려 합니다. 눈앞에 흰 칼날이 번쩍이는 다급함이 있더라도, 또다시 되돌아다볼 필요는 없사옵니다.
 
若以帝德覆載,摧此強敵,克靖方難,無替前功。
만일 황제님의 덕을 입는다면, 이 강한 적을 꺾어 없애고, 어려운 무리들을 이기시어 조용하게 하시면 전대의 공에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
삼가 스스로 임시로 개부의동삼사의와 그 나머지 모두에게도 관작의 제수를 원하였다.」
 

이중
 
而句驪無道,圖欲見吞,掠抄邊隸,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雖曰進路,或通或不。
臣亡考濟實忿寇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舉,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一簣。
그러나 "고구려가 무도하여 변예(邊隷 : 백제로 추정)를 노략질하고 … 신의 부왕께서 백만의 대군을 몰아 이들을 토벌하려하였으나 갑자기 부모님과 형님의 상을 당하여(475년) 긴 세월을 상중(喪中)에 있게 되었습니다.

居在諒暗,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至今欲練甲治兵,申父兄之志,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若以帝德覆載,摧此強敵,克靖方難,無替前功。
하지만 지금(478년)에 이르러 때가 되어 다시 병갑(兵甲)을 가다듬고 부형의 유지에 따라 적의 강토를 무찌르겠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
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2]
무가 스스로 開府儀(개부의)同三司(동삼사)라는 문관1품 관직을 임시로 제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당히 가수(假授)한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함. 순제가 무를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王(왜왕)에 제수함


[*]왜왕 무가 요청한 관직중에서 백제가 빠진 것은, 이미 477년 문주왕이 백제를 점유했기 때문이다. 
 

建元元年,進新除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武號爲鎮東大將軍。[3]
 

齊建元中,除武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鎮東大將軍[1]
고제가 왜왕 무를 鎮東大將軍(진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梁武帝即位,進武 號征東大將軍。[1]
4월 무제가 왜왕 무를 征東大將軍(정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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