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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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중은 고조선이 대(大)고조선이었는지 소(小)고조선이었는지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속된 말로 그건 밥도 안 되고 돈도 안 된다. 하지만 역사학과 역사학자들이 거짓말이나 반칙을 일삼는 건 중대한 문제다. 이건 밥이나 돈과 직결된다. 다른 곳도 아닌 역사학계에서 거짓과 반칙이 성행한다는 건 사회일반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사회에서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만 잘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고조선은 조상과 관련되어 있다. 일단 그것은 수천 년 전 조상에 관련된 것이므로 조상이 누구든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누군가 악의적으로 조상을 바꾸려든다면 이때는 심각해진다. 왜 누가 무엇을 위해 그런 일을 하는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이런 일은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 경종을 울린다. 모든 종족이 거의 예외 없이 조상신을 섬겼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위기감은 인간 생리에 뿌리박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상에 대한 거짓과 조작은,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심어진 감각이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조상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정확하지 않다 해도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안 된다. 인간은 근원을 찾는 존재이므로 언젠가는 조상을 알아내려 할 것이되 그러한 채근이 가능한 한 조상이 미상이란 사실은 현재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누군가 혹은 자기 스스로 미지의 조상을 조작하려 든다면 똑같은 위기를 느끼게 된다. 처음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갈수록 불안해지고 밤잠을 못 이루게 된다. 아예 조상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모를까, 아무리 배짱 좋은 현실주의자라도 자기 조상에 대해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의도적인 거짓을 품고 사는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모래 기둥이 바람에 깎이듯 그의 영혼은 서서히 그리고 반드시 붕괴한다.
조상은 옛 문제지만 조상에 대한 거짓이나 위조는 현재의 문제다. 오래전 과거에 발생한 거짓과 위조는 현재의 시점에서 밝혀져야 할 역사지 당장의 거짓과 위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5대조 할아버지가 족보를 조작하여 조상을 위조했다고 하자. 이로 인해 5대조 할아버지는 평생 번뇌하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사실을 알아낸 자손은 5대조 할아버지와는 다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진실을 회복하면 그만이다. 이 경우 그 자손은 거짓이나 위조에 연루된 바가 없다. 반대로 그 자손이 사실을 알고도 외면하려 한다면 그때는 진짜 거짓과 위조가 된다. 이 경우에는 자손 역시 5대조 할아버지처럼 일그러진 모습으로 일생을 보내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일파 후손 문제다. 조상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영혼이 일그러져 있다. 그가 아무리 큰 부자여도 아무리 큰 권력자여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나든 아니든 그의 내면은 항상 몸부림친다. 조상이 아닌 본인의 현재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든 조상에 대한 거짓과 위조는 언제나 현재의 문제다.
결국 고조선의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지금 당장 현재의 진실 혹은 거짓’의 문제다. 고조선에 대해 우리는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으며, 제대로 알았을 수도 있고 어설프게 알았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건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이에 대해서 우리는 신경도 안 쓰고 신경 쓸 이유도 없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어떻게 이 문제를 노상 생각하며 산단 말인가.
그러나 여기엔 양보할 수 없는 전제가 있다. 제대로 알든 그르게 알든, 신경을 쓰든 안 쓰든 우리가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며 거짓과 위조의 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만 분명하다면 우리는 고조선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건 역사학자들이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리 대신 그 일을 하라고 우리는 세금을 내서 그들을 부양한다. 그러니 역사학자와 일반대중이 정직하기만 하다면 만사가 형통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우리의 내면에 모종의 거짓과 조작이 포착된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위기에 빠진다. 혹시라도 그까짓 게 대수냐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산이다. 말했듯 그 거짓은 바람에 깎이는 모래기둥의 커지는 구멍과 같아서 언젠가는 한 개인과 사회를 송두리째 붕괴시킨다.”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김상태 지음, ‘책으로 보는 세상’ 펴냄, 서기 2013년)에서
이 글은 역사를 학교에서『국사』교과서로만 배운 보통사람이나, 역사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 단군조선(고조선)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글이다.
결국 한국인/조선(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인민이 단군조선의 역사를 파헤치는 일은 “누군가 악의적으로 조상을 바꾸려” 드는 일(예컨대 중국 정부와 중국의 학자들이 내세우는 기자동래설이나 동북공정)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며,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교과서에 실리는 ‘지금 당장 현재의 진실 혹은 거짓’을 가리고 원칙을 지키는 학자와 상식을 가진 대중들이 밝힌 ‘현재의 진실’이 이기도록 돕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단군조선의 크기나 유지된 기간이나 단군의 숫자나 재위기간은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다.” 물증(기록과 유물과 유적/단군조선의 역사와 견주어볼 수 있는 다른 나라의 역사)이 심증(단군조선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들어맞는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고 만약 전자가 후자를 입증하지 않으면 후자를 버리고 전자를 따르면 된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왜곡된 인식(식민사학의 고조선 폄하나 동북공정을 통한 단군조선 이해나 신시와 단군조선이 온 아시아를 다스렸다는 국수주의자의 주장)을 고수하면 그에 바탕을 둔 “거짓과 조작”이 “바람에 깎이는 모래기둥의 커지는 구멍”처럼 커져 “언젠가는 한 개인과 사회를 송두리째 붕괴시킨다.”
일제의 한 군현 연구는 “조선인은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남의 지배를 받았으니, 오늘날 우리가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과 점령과 지배를 합리화하지 않았던가? 이는 오늘날 중국정부가 내세우는 요하문명론이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중국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이론의 토대가 되어 중국정부로 하여금 “따라서 조선 공화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은 우리에게 귀속되어야 하며 우리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만든 것과 다를 것이 없다(최악의 경우 이것은 침략전쟁이나 식민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상에 대한 기억을 “거짓”으로 “조작”하는 것이 평화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단군조선의 올바른 역사를 찾고 식민사학과 요하문명론을 해체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 살고 있는 우리들의 평화와 안정과도 관련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