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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이 님의 질문을 읽고 제 가설을 다시 검토했습니다. 백제 말을 다룬 책을 읽어보니, 그 책에 님이 던지신 첫 번째 질문과 비슷한 가설이 나오더군요.

 

도수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서기 1999년 현재. 이하 도 전 교수로 부름)님이 “백제어와 신라어는 계통적으로 다른 출발을 한 것이다. 설령 두 언어가 동일 기원이라 할지라도 황산벌 전투 때까지는 거의 700년 동안이나 서로 다른 언어발달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서로 몰라보게 다른 언어로 변천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나아가 도 전 교수님은 “황산벌 전투를 치를 당시는 백제어와 신라어가 700년 동안이나 서로 다르게 발달한 단계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유로운 언어 소통은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단일 언어의 현대적 편견 때문에 1343년 전(도 전 교수님은 서기 2003년에 글을 쓰셨음 - 옮긴이)의 언어까지 단일하였을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도 전 교수님은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백제어 낱말들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드시는데요, 그 낱말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三(3) : 밀(백제어)

 

- 三(3) : 셋(오늘날의 한국어/조선어)

 

- 七(7) : 나는(백제어)

 

- 七(7) : 일곱(오늘날의 한국어/조선어)

 

- 川 : 매(백제어)

 

- 川 : 내(오늘날의 한국어/조선어)

 

- 山 : 달(백제어)

 

- 山 : 뫼(근세 조선어)

 

- 高 : 달(백제어)

 

- 高 : 높음(오늘날의 한국어/조선어)

 

이처럼 백제어(남부여어 포함) 낱말은 신라어를 이어받은 것으로 보이는 오늘날의 한국어/조선어 낱말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런 사실만 놓고 본다면 님과 도 전 교수님의 견해가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헌을 뒤지면 백제어와 신라어가 비슷하다는 증거도 나옵니다. 몇몇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 大 : 근 → 큰 (백제어)

 

- 大 : 건 → 큰 (신라어)

 

(신라의 도읍을 ‘건모라’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고, 서나벌을 세운 오환족의 말로도 ‘大’는 ‘건’임. 또 백제 임금의 시호인 ‘근초고왕’이나 ‘근구수왕’의 ‘근’은 일도안사 님이 고증하셨듯이 ‘大’라는 뜻일 가능성이 큽니다)

 

- 건길지 (백제어)

 

(백제 씨알[백성]들이 임금을 ‘건길지’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나옴. ‘건’이 ‘큰’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학설을 따른다면, 백제의 지배층은 ‘근’이라는 말을 썼지만, 씨알들은 신라와 마찬가지로 ‘건’이라는 말을 썼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 京 : 사비/소부리 (백제어)

 

- 京 : 서벌/서라벌 (신라어)

 

- 村 : 무라 → 물/말 → 마을 (백제어)

 

- 村 : 모라 → 몰/말 → 마을 (신라어)

 

(서기 663년, 일본열도의 남부여 식민지에서 온 남부여 부흥군과 당군이 지금의 금강 하구에서 싸웠는데, 이곳이『삼국사기』와 중국 역사서에는 백강[白江]으로,『일본서기』에는 백촌강[白村江]으로 나옵니다.

 

백강은 흔히 백마강[白馬江]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이름이 백촌강과 비슷합니다. ‘馬’는 ‘말’이라는 뜻이지만, 백마강의 ‘馬’는 동물이 아니고, 말 또는 몰이라고 해서 ‘마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남경태 씨의 주석에 따르면, 서기 1995년에도 한국의 시골 사람들은 ‘윗 마을’을 ‘윗말’, ‘아랫마을’을 ‘아랫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백마강은 백‘말’강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어로는 村이 ‘무라’고, 말/몰/무라는 필경 같은 어원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강 - 백마강 - 백촌강은 모두 같은 말이 달리 적힌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참고로 중국 사서의 신라전에는 신라 사람들이 도읍을 ‘건모라’라고 불렀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모라’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큰 마을’ = ‘도성’이라는 뜻이로 풀이하는 것이죠[도시는 마을이 커진 것이니까요])

 

“그것만으로는 두 나라의 말이 비슷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하시겠죠.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분의 연구결과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서기 1993년부터 서기 1994년까지 고대 일본의 시집인『만엽집(萬葉集)』을 연구하신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님(서기 2009년 현재. 이하 이 교수님으로 부름)의 연구에 따르면, 서기 7~8세기(서기 600년 ~ 서기 700년)에 만들어진 『만엽집』의 노래들은 대부분 오늘날의 전라도 사투리나 경상도 사투리로 풀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오늘날의 한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죠(저는 서기 1994년 이후에 이루어진 이 교수님의 연구는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 이전의 연구는 비교적 가치 있는 가설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후자를 소개하는 바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엽집』의 노래 구절인 ‘知波夜夫流(지파야부류)’

 

→ ‘치하야부루’로 읽을 수 있음. 현대어로는 “치바야부르”이며 그 뜻은 “임금(치)을 베어버려(바야부르).”입니다. ‘바야부르’의 ‘부르’가 전라도 사투리인 ‘~해 부르(~해 버려).’와 같습니다.

 

-『만엽집』권 16에 실린 제 3887번 노래의 구절인 ‘天爾有哉(천이유재)’

 

→ ‘아메 니 아루야(あめ に あるや)’로 읽을 수 있음. 이것을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아메 니 알라.”가 되는데(이 교수님은 ‘아루야’가 ‘알제’라고 풀이하셨습니다만, 저는 ‘알라’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에는 ‘가야’를 ‘가라’나 ‘가락’으로 읽은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야’를 ‘라’로도 읽었습니다. 따라서 ‘아루야’도 ‘아루랴’로 읽을 수 있고, 이는 ‘아루라’, 즉 ‘알라’/‘알거라’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니”는 오늘날의 경상도 사투리인 ‘니’와 완전히 똑같고, “알라”는 ‘알그라’(경상남도 사투리)와 비슷합니다. ‘아메’는 ‘하늘’/‘임금’(“하늘처럼 높은 분”이 임금이기 때문임)이라는 뜻을 지닌 옛 말이니, 이 말은 “임금아, 니는 알그라.”, 즉 경상도 사투리로 “임금아, 너는 알거라.”라는 뜻입니다.

 

-『만엽집』권 1에 실린 제 7번 노래의 구절인 ‘借五百磯(차오백기)’

 

→ ‘가리 이 온게’로 읽을 수 있음. ‘가리’는 ‘칼이’로, ‘이’는 ‘잇따라’의 줄임말로, ‘온게’는 ‘오니까’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를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칼이 잇따라 온께.”가 됩니다. ‘온께’는 ‘오니께’라고도 하고, 전라도 사투리로 “오니까”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이 노래는 일본열도의 남부여 식민지로 건너온 무왕의 둘째 왕비인 제명천황이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합시다.『만엽집』에는 서기 7세기의 남부여어(백제어)와 신라어가 나옵니다.

 

- 부르 : 남부여어(전라도 사투리) → (~해)버려

 

- 비야 : 남부여어(전라도 사투리) → 베어

 

- 니 : 신라어/가야어(경상도 사투리) → 너

 

- 아루야 : 신라어/가야어(경상도 사투리) → 아루라 → 알라 → 알거라

 

- 온게 : 남부여어(전라도 사투리) → 오니까

 

이 가운데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신라어/가야어)인 ‘뿌리라’(~해 버려라)와 발음이 비슷하고, ‘바야’는 ‘베’/‘비어’(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합니다. ‘니’는 말할 것도 없이 ‘너’와 비슷하고, ‘아루야’는 “알라”라는 뜻이지만 “알어야”라는 전라도 사투리와 비슷합니다(‘알어야’는 ‘아느냐?’라는 뜻임).

 

그러니까 “삼국 시대의 말”은 “요즘의 사투리보다 약간 더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통하는 한 민족의 언어였다.”는 이 교수의 “확신”은 못해도 서기 7세기의 남부여어와 신라어에는 적용할 수 있는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이야기지요.

 

두 언어의 다른 점은 오늘날의 충청도/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더 정확하게는 경상북도의 사투리)가 드러내는 다른 점과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보다 그 다른 점이 더 뚜렷하고 컸겠지만요.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둘은 계통이 다른 말이었죠. 백제어는 고구려어와 마찬가지로 부여어였고, 신라어는 오환어(박씨족) + 진한어(진한 유민) + 훈누(흉노/김씨족)어 + 선비어가 섞여서 이루어진 말이었어요(석[昔]씨족의 뿌리인 용성국의 말이 어느 계통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오환어나 훈누어는 아니고, 용성[龍城]이라는 땅 이름이 오늘날의 요서지방에 있는 걸 보면 원래 용성국[龍城國]이 기[箕]나라 - 흔히 기자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 - 땅 안에 있었던 것 같으니 크게 보아 고조선 계통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단군조선 계통일까요?).

 

하지만 서기 1세기에 서나벌이 삼한백제와의 전쟁에서 지자 많은 오환족이 전라도로 흘러들어갔고, 김씨족(모씨족)과 뿌리가 같은 훈누족(흉노계 선비족)은 서기 5세기 이전에 백제 땅에 들어왔습니다(그 증거로 훈누족의 벼슬 이름인 ‘좌현왕’이 백제 담로의 담로주가 - 백제 진왕을 통해 - 중국 남조의 황제에게 요구하는 벼슬 이름으로 나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또 서기 4세기 말 삼한백제가 고구려군에게 망하고 그 난민들이 신라 땅에 가득 찼을 때, 대부분은 일본열도 서부로 달아났지만 일부는 신라의 씨알이 되었습니다.『삼국사기』에는 아신왕이 한성백제의 성을 고쳐 쌓으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한성백제의 씨알들이 신라 땅으로 달아나 한성백제의 호구 수가 줄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서기 3세기 말 석씨족이 다스리던 사로국이 삼한백제에게 망했을 때, 삼한백제 왕실은 사로국 유민들 가운데 많은 수를 오늘날의 전라북도로 끌고 갔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백제에서 신라로, 신라에서 백제로 옮겨갔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원래는 서로 다른 말이었던 두 나라의 말은 서서히 섞였으며, 서기 7세기에는 비슷한 점이 있는 말들이 된 것입니다(삼한백제가 사로국을 신라라는 이름으로 지배하는 동안, 사로국 사람들은 백제어를 쓸 것을 강요당했으므로 이 때 백제어가 신라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도 빼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두 언어의 낱말은 다르지 않느냐? 내 질문은 낱말에 대한 것이었지, 언어의 성격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씀하시겠죠. 그 반박에 대해 해명해야겠습니다.

 

만약 ‘내’를 신라어로 인정하고(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을 백제어 ‘매’와 견주어본다면, 이 두 낱말은 지역에 따라 자음의 발음이 달라지는 사투리일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이는 서울 말인 ‘괜찮아’와 평안도 사투리[서기 1930년대]인 ‘괜티안하’ 사이에 ‘ㅊ’과 ‘ㅌ’이라는 발음 차이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둘 다 모음은 ‘ㅐ’고 뜻도 ‘川’으로 같으니까요.

 

그리고 ‘밀’과 ‘셋’이 다른 것은 - ‘三’의 뜻이 ‘석’이고 이것이 한자 발음인 ‘삼’과 비슷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 원래는 ‘석’이 아니라 다른 말을 썼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 문화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강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삼’의 발음이 바뀐 ‘석’이나 ‘셋’을 쓰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다시말해서 오늘날의 한국/조선어인 ‘셋’은 신라어가 아니라 한자어가 발음이 바뀌어서 한국/조선어에 들어온 것이 아니냐고 추측하는 것입니다(저는 ‘붓’이 순우리말이 아니라 원래는 ‘筆’의 옛 한자어 발음이었고, ‘종이’는 ‘紙’의 옛 한자어 발음이 바뀐 것이라는 학설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석/셋’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이 두 낱말은 백제어와 신라어가 달랐다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 저는 ‘나는’과 ‘일곱’이 다른 것은 원래 계통이 달랐던 두 언어의 자연스러운 차이점이 일종의 ‘파편’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특성이 화석이 된 셈이지요.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간단히 줄여서 말해봅시다. 서기전 1세기(백제와 서나벌이 세워진 때)에는 - 그리고 서기 4세기 중엽(계림국이 세워진 때)에는 - 두 나라의 말이 달랐지만, 서기 7세기에는 두 나라의 말이 비슷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서기 7세기에는 남부여 본국과 신라의 말, 그리고 일본열도 서부의 남부여 식민지(훗날의 일본)가 쓰던 말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는 제 가설(그리고 이 교수님의 확신)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방카이 님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대답해 드리자면, 저는 기록에 나오는 ‘말갈’을 두 부류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倭)가 임나가야(『삼국사기』「신라본기」에 나오는 ‘왜’)와 일본열도의 백제 식민지(『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오는 ‘왜’)로 구분되듯이, 말갈도 고구려의 씨알로 살았던 맥인(貊人)과 발해에 끝까지 맞서 싸우고 흡수되기를 거부했던 흑수말갈로 구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전자는『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 ‘말갈’로 나오고, 후자는 중국 역사서에 ‘숙신/물길/흑수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광개토왕 비문에도 숙신으로 보이는 ‘백신’이 나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훗날 주션(여진)족이 된 부류는 후자지 전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아무르강(흑룡강) 동북쪽에서 살다가, 발해가 요나라에게 무너지고 그 유민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권력의 공백지대’가 된 ‘남쪽 땅’, 그러니까 연해주나 길림성으로 내려가 살게 되었고, 신라가 고려에게 망할 때 항복을 거부하고 ‘북쪽 땅’으로 올라온 신라 유민들(신라의 왕족/귀족들)과 섞여 ‘흑수말갈’에서 주션족이 되었습니다(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고찰할 것입니다). 즉 이들은 “고구려”와 “동일한 언어”를 썼을 가능성이 적으며, 계통 자체가 다릅니다.

 

이는 구체적인 증거로도 드러납니다. 언어를 살펴볼 때 기록에 나오는 고구려어와, 주션족의 후손인 만주족의 언어, 그러니까 만주어가 다르니까요.

 

- 백암(白巖) → 배암 : 뱀(고구려어)

 

(『열하일기』의 <도강록(渡江錄)>에 “고구려시대 방언에 큰 새를 ‘안시’라 하니, 지금[조선 후기 - 옮긴이]도 우리 시골말에 봉황을 ‘황새’라 하고 뱀을 ‘배암[원문에는 백암白巖]’이라 한 것으로 보아, ‘수/당 때에 이 나라[고구려 - 옮긴이] 말을 따라 봉황성[鳳凰城]을 안시성[安市城]으로, 사성[蛇城]을 백암성[白巖城]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자못 그럴싸하기도 하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말을 따른다면 고구려말로 ‘뱀’은 ‘배암’입니다)

 

- 머이허 → 뱀(만주어)

 

이 때문에 저는 흑수말갈(숙신/백신/물길)이 고구려와 같은 계통이었다는 주장에는 회의적입니다. 고구려 사람으로서, 고구려 말을 쓴 사람들은『삼국사기』의 말갈인과 중국 사서의 속말말갈이지, 흑수말갈은 아닙니다(흑수말갈이라는 이름 자체가 외부인이 ‘흑수’로 불리는 아무르강에 사는 ‘말갈’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다시말해서 흑수말갈은 자신을 말갈이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들의 후손이 자신을 ‘주션’이라고 부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 정확한 발음이 ‘쑤션’/‘수션’인 숙신[肅愼]이 이들의 정식 명칭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ㅅ’발음이 ‘ㅈ’발음으로 바뀐 게 아니냐고 추측하는 바입니다). 둘은 엄격하게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제 답변을 듣고 궁금증이 풀리셨기를 빕니다.

 

※참고 자료

 

-『노래하는 역사』(이영희 지음, 조선일보사 펴냄, 서기 2001년)

 

-『상식 밖의 한국사』(남경태 지음, 새길 펴냄, 서기 1995년)

 

-『열하일기』

 

-『만주원류고』

 

-『백제의 언어와 문학』(도수희 지음, 도서출판 주류성 펴냄, 서기 2004년)

 


댓글 '2'

방카이

2013.06.20 11:46:27
*.105.5.253

조약돌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명쾌하시네요...~

암튼, 말갈이라는 표현이 참 애매하긴 하네요.....

일도안사님 글에서도 다루어지긴 했었는데.....

사서 집필자 관점에서 봤을때, 일종의 미개인(?) 또는 피지배계층을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말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별개의 민족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나중에 조약돌님께서 연구해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조약돌

2013.06.27 15:42:30
*.118.123.150

제 글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사실 '말갈'과 관련된 문제는 - 왜와 마찬가지로 - 논리적으로 규명하기가 힘든 문제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이 문제에만 매달리고 싶지만, 그러자니 생계도 제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이 발목을 잡아서요. 그래도 시간을 쪼개고 동원할 수 있는 자료는 다 동원해서 꼭 도전하겠습니다.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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