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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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여(餘)씨가 성을 오(吳)씨로 바꾼 까닭에 대한 고찰
일도안사님의 글(<나주 吳씨의 기원>)을 읽고 나니, 나주 오씨의 역사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글을 읽고 느낀 것(그리고 추리한 것)이 있어 여기에 올립니다.
일도안사님께서는
“부여씨들은 백제 멸망 후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백제 멸망 후 많은 숫자는 영산강유역을 떠났겠지만 상당수는 그대로 남아 신라의 탄압을 피하여 성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통상 글자가 비슷한 (예를 들면 徐씨) 성으로 바꾸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글자의 성으로도 바꾸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나주 吳씨가 아닌가 생각한다.”
고 하셨지요. 물론 저는 그들이 일본열도(서기 8세기에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이라고 고치기 전에는 남부여[南夫餘]나 백제[百濟]라는 이름을 썼음. 이는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기 전에는 ‘잉글랜드의 일부’라서 ‘뉴잉글랜드’로 불린 것과 같다)로 달아났다고 생각합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시는 분들이 많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그리고 성을 글자가 비슷한 한자로 바꾸는 건 개성 왕(王)씨가 이성계의 탄압을 피하려고 옥(玉)이나 전(全)이나 - 옆에 두 획만 덧붙이면 되는 - 전(田)씨로 성을 바꾸었다는 야사(野史)가 있으므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餘와 전혀 다른 모양이고 뜻도 다른 글자로 된 성씨인데, 만약 그들이 오(吳)라는 성씨를 골랐다면 왜 그랬을까요? 사람의 심리상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명을 쓰더라도,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나 자신의 사연이 담긴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는 말하려고 든다는 이야기지요.
한 예로 재일동포 가운데 어떤 분은 자신의 아들 이름을 ‘승일(勝一)’이라고 지으셨는데, 이는 ‘일본을 이긴다.’는 뜻도 담고 있는 ‘승일(勝日)’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일본어로는 두 낱말 모두 ‘쇼이치’죠. 그런데 일본사회에 살면서 일본(日本)을 줄인 말인 일(日)자를 이긴다는 뜻을 담은 이름을 쓸 수는 없다 보니, 발음이 같은 일(一)자를 쓰신 겁니다(제가 16년 전에 읽은 책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열도의 식민지로 달아나지 못하고 신라의 지배를 받게 된 부여씨 - 줄여서 여[餘]씨라고도 함 - 들은 탄압을 피해 성씨를 바꿀 때, 못해도 자신들의 역사가 담긴, 그리고 그것과 관련이 있는 한자를 골라 성씨로 삼았을 겁니다.
저는 오(吳)라는 한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까닭은 吳가 중국 남부, 특히 남경(南京)시와 강소성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오월(吳越)이라는 이름으로 주산군도/절강성/상해/남경을 묶어서 부르기도 했지요. 따라서 이 한자를 성씨로 삼은 사람들은 옛 오나라와 월나라 땅에서 왔거나, 아니면 어버이나 선조가 그 쪽 사람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지역들과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이 지역들은 서기 4세기 이후 백제인들이 건너와 식민지를 세운 지역입니다. 더 정확히는 동진(東晋) 시절부터 양(梁)나라 말기까지 백제가 다스린 곳이지요. 그렇다면 여씨들이 성을 오씨로 바꾼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오랫동안 다스린 곳이고, 우리와 관련이 있는 땅을 잊어버리지 않겠다. 우리가 그곳을 다스리고 그곳에 건너가서 산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뜻을 담아 오(吳)라는 한자를 골랐단 말이지요.
독자 여러분은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나주오씨의 공식 기록인 족보에는 “신라 지증왕 1년에 우리나라에 온 중국 사람인 오첨”이 시조라고 나오지 않느냐고 물어보실 것입니다. “족보에 따르면 원래 오첨은 남제南齊의 수군대도독이었는데, 그가 탄 배가 난파되어서 서기 500년 - 또는 서기 501년 - 남해 바닷가에 표착했고, 신라로 끌려가 신라 귀족의 딸과 혼인한 뒤 22년간 살다가 남제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 때 그를 따라가지 않고 신라 땅에 남은 막내아들이 오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나주오씨를 신라가 아니라 남부여(백제)와 연결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남제(남중국)에서 배를 타면 제주도나 전라도로 올 가능성이 높지 “남해 바닷가”와 가까운 경상북도 동남부로 올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며, 외국의 수군 대도독인 오첨이 귀족의 딸과 혼인했다면 꽤 비중이 있는 일이라『삼국사기』에 나와야 하는데, 제가『삼국사기』「신라본기」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 일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시말해서 그 유래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뒤 오씨로 성을 바꾼 여씨들이 신라 왕실의 탄압과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신라의 박(朴)씨와 김(金)씨들에게 ‘우리는 신라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말하기 위해 ‘면피용’으로 내세운 이야기란 말이지요.
사족을 달자면 하필이면 다른 사람들을 다 놔두고 중국 남조(南朝)인 남제(南齊) 출신이었던 사람을 시조로 내세운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역사서에 따르면 남제는 백제와 친했고, 그 왕조를 세운 사람도 백제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제가 볼 때는 이것도 ‘우리는 남중국과 관련 있는 우리의 역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주오씨들의 ‘말 없는 증언’입니다.
* 또 다른 사족 :
일도안사님께서 이야기하신 제주도의 성씨 가운데, 부(夫)씨와 양(良)씨가 마음에 걸립니다. 부여(夫餘)씨를 줄여서 여(餘)씨로 만들었다면 반대로 부(夫)씨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良)씨가 문제가 되는데, 저는 양(良)과 - 왕조의 이름인 - 양(梁)의 발음이 같으므로, 자신들이 양나라에서 건너왔다는 뜻으로(또는 양나라와 관련이 있다는 뜻으로) 양(梁)씨라고 성을 정했다가, 나중에 발음이 같고 좋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쓰기도 훨씬 편한 양(良)으로 성을 바꾼 게 아닌지 의심합니다. 실제로 포석정의 포(鮑)도 발음이 비슷한 포(砲)로 바뀐 적이 있습니다(그곳에서 나온 신라시대의 기왓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임).
나주 오씨 종친회 사이트에서 자신들이 부여씨의 후계라고 주장한다는 것을 읽고 가능성이 크다고 싶어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