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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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조선 고대사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과 대응책
일도안사님의 말씀에 95% 동의하며, 제가 느낀 몇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이번 일은 어쩌면 ‘예고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사회의 주류 인종인 유럽계(특히 WASP)와, 실권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동(東)아시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곳을 ‘일본과 중국(그들은 항상 일본을 앞세운다)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세계’로 이해하지요.
그들은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을 통해 한국과 조선(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줄여서 ‘조선 공화국’. 수도 평양)을 이해하며 - 이는 우리가 12년 전까지 서양의 학자나 자료를 통해 서(西)아시아나 북아프리카 사회를 이해한 것과 같습니다 -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관련이 없는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정한 ‘사료 비판’을 하지 않지요(쉽게 말해, 책에 적힌 것을 그대로 믿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한국/조선 인식(역사에 대한 인식 포함)은 미국을 통해 자료를 얻는 다른 나라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독립국으로서의 야마토 조정이 한국 남부를 식민지로 지배했다.’거나, ‘최초의 코리아 왕조는 중국인이 만들었다.’는 제 3국 사람들의 인식(바라트[인도]의 독립투사인 자와할랄 네루도 자신의 책에서 단군조선을 언급하는 대신 기자동래설을 긍정함)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이 ‘틀’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기 19세기 말, 프랑스인이나 영국인들은 자기네 나라 말로 옮긴『일본서기』와 중국 역사서의「동이전」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배웠고, -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결과지만 - ‘고대 야마토 왕조의 신라 정복’과 ‘기자동래설’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두 나라에게서 - 특히 영국에게서 - ‘바통’을 이어받았던 거죠.
서기 1978년 이후 팔레스타인 출신 지식인인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가『오리엔탈리즘』이나『문화와 제국주의』를 써서 서구사회의 지식이 침략과 인종주의와 성차별과 식민주의를 지지하는 것임을 폭로하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했듯이, 오늘날의 우리는 중국과 일본 학자들의 주장에 익숙한 제 3국 - 예컨대 브라질이나 이란 - 을 바탕으로 우리의 역사책을 소개하고 그것을 다른 나라의 책과 비교/분석하여 기존의 역사 인식을 도마 위에 올려야 합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이 문제를 놓고 미국 학자들과도 논쟁해야 하고요.
덧붙이자면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역사관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해에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앵글로 색슨족인 교수가 한국인 기자를 만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기자가 교수에게 “도대체 왜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 역사란 말입니까?”라고 묻자, 그 교수는 “우리는 어느 나라의 역사를 판단할 때, 그 나라가 있던 땅이 지금 누구의 땅이냐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역사를 연구할 때에는 ‘인간집단의 이동과 정복과 정착’이라는 사실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텐데, 그런 ‘기본 법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을 제 귀로 직접 확인한 셈이라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고대사, 특히 우리 역사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고대사를 연구할 때 이 역사관이 우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들을 고려하면 미국 정부의 보고서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편을 드는 건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느냐고 물어보시겠지요. 저는 ‘대답’까지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생각해 둔 것 가운데 두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가령 우리 고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그걸 파르시(이란의 표준어) 자막을 달아서 이란 방송국에 파는 걸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CNN이나 BBC나『르몽드』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알자지라> 방송국의 기자를 모시고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한국인이나 조선 인민이 쓴 역사책을 힌디어나 드라비다어나 벵골어나 우르두어나 표준 인도네시아어나 말레이어나 스와힐리어나 카스티야어(에스파냐의 ‘공용어’. 중남미 여러나라에서도 공용어로 쓰임)나 포르투갈어(브라실[영어 이름 브라질]의 공용어)로 옮기는 작업도 고려할 만합니다. 세계엔 영어를 못 하는 사람이 많고, 한국어와 조선어를 모르는 사람은 더 많으니까요.
2. 이라크인이나 미스르(영어 이름 이집트)인이나 과테말라인(마야의 후손) 학자를 모셔와 단군조선의 역사를 함께 연구하면, 그들의 이론으로 우리의 고대사를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들을 통해 그들의 고국으로 우리의 고대사가 알려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밖의 다른 문제는 이제부터 천천히, ‘냉정하게’ 생각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학계와 조선 공화국의 학계는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