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21사이트에 흥미있는 대화가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고구려의 초기 중심지에 관한 내용인데, 제가 이전에 고구려가 요하상류지역에서 건국하여 3대왕 시대를 거치며 압록강 중류지역으로 동천하였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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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인간 (2004-02-18 14:17:58, Hit : 108, Vote : 0)
민중왕의 석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민중왕조를 보면,
4년(서기 47) 여름 4월에 왕은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하였다. 가을 7월에 또 사냥하다가 석굴을 보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이곳에 장사지낼 것이며, 절대로 새로 능묘(陵墓)를 짓지 말라
5년(서기 48)에 왕이 죽었다. 왕후와 여러 신하들이 유명(遺命)을 어기기 어려워 석굴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민중왕이라고 하였다
이라고 나오죠. 그런데 석굴에 장사를 지내는 풍습이 주로 있는 곳이 어디냐? 압록강 유역의 통구 근처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요동반도의 천산산맥 부근. 이 지역에 묘후산문화라는 것이 있지요.
이 지역일대가 이른바 동굴에 장사를 지낸 예가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른바 요동지역의 태자하 상류지역일대, 본계현 근처에 해당합니다. 본계근처에는 이런 동굴 무덤이 꽤 많은 모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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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습이 정말 태자하 본게근처의 풍습이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실이라면 고구려의 중심지는 민중왕 때까지도 아직 압록강유역에 가지 않았다는 증거의 하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