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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백제 담로의 후신(後身)으로 보이는 구변국(久邊國)> (2)편에서

"구변국은 백제 때 지어진 담로 - 필리핀, 보르네오섬 - 가 본국과 연락이 끊겨진 채 살아남아 독립왕국으로 살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다시 한반도와 교역한 나라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라고 적었는데요, 나라 이름 자체가

久 : 오랠 <구>

邊 : 가 <변> (변방의 '변')

그러니까 '오랫동안 (어느 나라의) 변방이었던 나라'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 가설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음을 밝힙니다(백제의 해외 담로도 - 금강 유역에서 보면 - '나라의 변방'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그 글에서

"주목할 점은 총정 대신을 부르는 명칭이 "야고무(也古無)"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이두문입니다. 고무(古無)는 지배자, 임금을 가리키는 우리 옛말인 '곰','금','감'이라고 읽을 수 있으며 야고무란 '예구마', '옛 구마', ‘옛 검’, ‘옛 군주(지배자)’ 라고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설이 옳을 경우 ‘야고무’는 백제의 왕성王城을 고마固麻라 한다는 『양서』「백제전」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백제인이 지배자를 ‘고무’, ‘고마’라 불렀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광개토왕 비문에도 백제의 왕성을 '고모나라' 라고 불렀고『일본서기』는 웅진을 ‘고마나리’라고 부르며 웅진(熊津)을 뜻으로 풀어서 읽으면 '곰나루'이므로, 야고무는 옛날 왕족, 옛 지배자라는 뜻으로 '옛 고마', '옛 곰' 이라고 읽었던 것이 발음이 바뀌어서 야고무가 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죠.

백제에서 왕의 친동생이나 왕족을 최고의 벼슬인 좌평佐平에 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본국 백제에서처럼 백제 담로도 담로왕의 친족이나 친척을 담로왕 다음 자리에 앉혀서 담로를 이끌어갔고, 그런 지배 체제가 구변국에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 백제가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夫餘)로 바꿀 당시(그러니까 서기 6세기경)에는 백제의 왕성王姓이 부여夫餘(줄여서 '여餘'. 여씨는 나중에 성을 서徐씨로 바꿈. 부여 서씨들은 이들의 후손이다)씨였지 이李 씨는 아니었는데 왜 구변국의 임금은 부여 씨가 아닌 이씨였는지를 제대로 설명해 드리지 못했어요.

(『조선왕조실록』에는 구변국 임금의 이름이 "이획李獲"이라고 나와 있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왕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대신이 '옛 임금'이라는 뜻인 '야고무(옛 고마, 옛 검)'로 불린단 말입니다.

그제서야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죠.

야고무는 원래 구변국이 백제의 담로이던 시절에 (담로국을 다스리는) 왕족이었고, 이후 이李 씨에게 권력을 빼앗겨(당시 백제에는 고高씨나 왕王씨처럼 한식漢式 성씨를 쓰는 사람들이 살았음) 재상 격인 총정대신(摠政大臣 : 이 이름 자체가 '나랏일을 모두 맡은 큰 신하'라는 뜻임)자리로 물러났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단 말입니다.

이씨들은 서기 7세기 이후(남부여가 무너진 시기)에 군사를 일으켜 담로의 왕족이던 부여씨에게서 왕권을 빼앗았을 것이며 대신 그들에게 왕족 다음으로 많은 권력을 지닌 총정대신이라는 자리를 줌으로써 불만을 달래고 타협했겠죠(언제 적이 될 지 모르는 세력들이 둘러싸고 있고, 본국이 무너져 도와줄 세력이 사라졌으므로 담로 안에 사는 사람들끼리 타협해서라도 나라의 힘을 다져야 했을 것입니다).

이후 그들은 남아있던 백제의 담로들과 교류하거나(『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구변국과 유구, 중국 남부와의 교류) 주변 세력과 교류하면서 살다가, 조선 초기에 조선이 보낸 사신과 접촉하면서 다시 우리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상이 제가 추리한 구변국 야고무의 정체와 백제 해외담로의 독립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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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19 Mon 23:32:38에 올림 → 2004/01/19 Mon 23: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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