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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부라는 낱말에 담긴 당 지배층의 발해 인식

발해사 조회 수 855 추천 수 0 2014.03.02 21:54:07
▩조약돌 *.118.123.150

발해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발해 사람들은 자신의 군주를 “대왕(大王)”이나 “황상(皇上)”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중국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한자말뿐 아니라 발해 말(그러니까 한어[漢語]가 아니라 한국어와 조선어의 조상인 말)로 된 명칭도 갖고 있었다.

 

“발해 말로 왕(王)을 ‘가독부’, 또는 ‘성왕(聖王)’, 그리고 ‘기하(基下)’라고 한다.”

 

-『신당서』「열전」제 114 <북적(北狄)> 발해 조(이하『신당서』「발해전」)

 

성왕(聖王)은 한자 뜻 그대로 ‘거룩하신(聖) 임금(王)’이라는 뜻이니 딱히 분석할 필요는 없고, ‘기하’는 ‘전하(殿下 : 제후를 부를 때 쓰는 말)’나 ‘폐하(陛下 : 천자를 부를 때 쓰는 말)’와 마찬가지로 신하가 임금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니(이 게시판의 글인「▩[답변]발해 왕실이 호칭에 집착한 까닭」을 읽어볼 것. 글의 카테고리는 [발해사])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없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가독부’가 한자로는 ‘可毒夫’라는 사실이다. 발해 말의 낱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를 ‘가차[假借]’라고 한다. 프랑스를 ‘불란서[佛蘭西]’라고 적는 것이 한 예다)임이 확실한 이 말에 왜 ‘독(毒)’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것일까?

 

자전(字典)에 따르면, 독(毒)은 이런 뜻을 갖고 있다.

 

- 1. 독하다/나쁘다

 

- 2. 해치다

 

- 3. 아프다

 

- 4. 괴롭다

 

- 5. 한스럽다

 

- 6. 미워하다

 

- 7. 기르다

 

따라서 ‘가독부(可毒夫)’는 - 비록 가차(假借)문자지만 - 한자의 뜻대로라면 ‘나쁘다[毒]고 (말할 수) 있는[可] 사내[夫]’나 ‘해칠 수 있는 사내’, 또는 ‘미워할 수 있는 사내’라는 뜻을 지닌 낱말이다.

 

게다가 ‘부(夫)’라는 한자도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임금(천자/제후 = 황제/왕)의 신하를 “대부(大夫)”라고 일컬었고, 이 한자에는 ‘여인의 벼슬’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만약 이 뜻까지 고려해서 풀이한다면 가독부는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천자의) 신하’, ‘해칠 수 있는 신하’, ‘미워할 수 있는 신하’라는 뜻이 된다.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남성에게 “여자 같다.”거나 “(남자인데도) 여인의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모욕이었으므로(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도 남자에게 “계XX 같다.”고 말하는 것은 싸움이 일어날 만한 까닭이 된다),『신당서』를 쓴 구양수와 송기는 (그리고 그들이 참고한 역사책을 쓴 당[唐]나라의 사관[史官]은) 일부러 이 한자를 씀으로써 독립국가의 군주이자 천자인 발해의 임금을 ‘당나라의 신하이자, 남자라고 부를 수도 없는, 여인네가 하는 일이나 맡고 있는 자’로 깎아내렸음이 분명하다.

 

그럼 도대체 왜 당나라의 사관은 이 두 한자를 써서 ‘곳부/곳보’(「▩[답변]발해 왕실이 호칭에 집착한 까닭」참고)라는 발해어 낱말을 적었을까? 중국 사관이 이민족의 말을 적는 관행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와 싸우거나 사이가 나쁜 나라의 이름은 뜻이 나쁜 한자를 써서 적고,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싸우지 않은 나라는 그 나라의 정칭(正稱 : 바른 호칭)을 적거나 뜻이 좋은 한자를 써서 적었다.

 

한 예로 훈누(훈나) 제국은 서한(전한)과 오랫동안 대립했고 전쟁도 여러 번 치렀으며 서한 초기에는 서한이 훈누에게 공물을 바쳤기 때문에, 한족 사관은 훈누족에 대한 반감을 담아 훈누를 ‘시끄러운(匈) 종놈(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인 ‘흉노(匈奴)’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란에 있던 ‘아르사크(서양쪽 사료에서는 ’파르티아‘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왕조는 ‘편안하게(安) 쉬는(息) 나라’라는 뜻인 ‘안식국’으로 불렀다(‘안식’이 ‘아르사크’와 발음이 비슷하고, 중국과 페르시아는 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발해의 임금을 ‘可毒夫’라 부른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당나라의 사관은 고구려 출신인 대씨들을 도저히 좋게 볼 수 없었을 것이고(고구려는 오랫동안 수/당과 싸웠다), 걸걸중상과 대조영이 당의 포로로 살다가 당을 뛰쳐나와 고구려의 옛 땅으로 달아난 뒤 천문령에서 당군(唐軍)을 깨뜨린 것을 이를 갈며 기억했을 것이며(‘우리의 포로가 달아나서 멋대로 나라를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 군사에게 대든 걸 용서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조영이 당의 적국인 괵튀르크(튀르크 말로 ‘하늘 튀르크’라는 뜻. 중국 사서에는 ‘돌궐’로 나온다) 제국과 손을 잡은 것, 그와 그의 후계자들이 계속해서 고구려의 옛 땅과 유민들(흑수말갈과 철리말갈을 뺀 나머지 “말갈”들)을 흡수하고 당나라를 여러 번 친 것, 대씨들이 자기 마음대로 연호를 만들어 쓰고 스스로 “황상”이라 일컬으며 배우자를 “황후(皇后)”라고 부르고(이 게시판에 있는 글인「▩역사스페셜에 나온 발해 황후의 묘비 - 발해의 국가 성격에 대한 간단한 고찰」을 읽어볼 것. 글의 카테고리는 [발해사]) 궁전에 태극전을 만들고 궁궐 칸 수도 당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많이 지은 것(이론상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천자의 특권이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해의 지배층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발해가 중기에는 당나라와 화친을 맺고 당나라도 발해의 곳보를 “발해군왕”으로 책봉(당나라가 발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발해와는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해와 싸웠던 사실 자체를 잊은 것은 아니었으며, 발해는 당나라와 화친을 맺은 뒤에도 (못해도 나라 안에서는/또는 당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국서를 보낼 때에는) 자신이 천자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기에, 당의 사관은 일부러 나쁜 뜻을 지닌 두 한자(毒/夫)를 써서 발해와 발해의 임금(곳보)을 깎아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글자로 복수를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신당서』「발해전」의 이 구절은 발해가 당과 오랫동안 대립한 나라라는 기록과 발해가 당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천문령 전투의 승리나 고구려 유민 흡수나 등주 공격이나 천자국으로 행세한 일)을 했다는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독자 여러분은 “그렇다면 발해 사람들은 곳보를 뭐라고 적었을까요? - 아마 ‘곳보’의 발해식 발음은 ‘갓보’였을 것이다 - ”라고 물어볼 것이다. 나는 발해의 기록을 직접 읽지는 못했으니, 그 질문에 대답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다. ‘毒’자와 ‘夫’자 대신, 발음은 같지만 뜻은 좋은 ‘督’자와 ‘父’자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임금과 스승은 아버지와 같다(한자로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거나 ‘임금은 모든 씨알[백성]의 어버이시다.’라는 사상이 있었고, ‘督’자에는 ‘감독하다/살피다/살펴보다/거느리다/우두머리/통솔하는 사람/가운데’라는 뜻이 있고 이것이 ‘임금은 [나라와 씨알을] 살피는/감독하는/거느리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들어맞기 때문이다.

 

가독부(可督父)는 ‘[나라와 씨알을]감독할(督) 수 있는(可) 아버지(父)[같은 분]’나 ‘살필 수 있는 아버지’, ‘거느릴 수 있는 아버지’,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 ‘통솔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임금에게 어울리는 한자말이다.

 

이 추리대로라면 ‘可毒夫’는 원래 ‘可督父’인데, 발해 사람들의 외교문서를 읽은 당나라의 지배층이 사관에게 “(발음이 같지만 뜻은 나쁜) 可毒夫로 고쳐 써라!”라고 명령했다는 추리를 할 수 있다. 이는 신(新)나라의 황제인 왕망(王莽)이 고(高)구려를 하(下)구려로 바꾸고 그 임금의 명칭도 왕(王)에서 - 그보다 더 등급이 낮은 지배자를 일컫는 말인 - 후(侯)로 바꿔 버린 것과 비슷하다.

 

나는『발해고』나『요사』나『신당서』에 나오지 않는 “황상”과 “황후”라는 명칭이 발해의 무덤에서 나왔듯이, ‘가독부(可毒夫)’의 발해식 표기(그러니까 진짜 표기)도 언젠가 발견될 발해 사람들의 기록에서 나올 것임을 믿는다.

 

※참고 자료

 

-『한글 동이전』(김재선/엄애경/이경 옮기고 엮음, 서문문화사 펴냄, 서기 1999년)

 

-『漢韓大辭典』(張三植 지음, ‘도서출판 교육도서’ 펴냄, 서기 1992년)

 

 


댓글 '2'

방카이

2014.03.03 17:39:32
*.105.5.253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윗글을 읽고, 조약돌님께서 그간 쓰신 발해 관련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항상 발해 이야기만 나오면 근본적으로 드는 의문이 2가지가 있습니다.

1. 도대체 말갈은 무엇인가??

- 고구려 평민 = 말갈인이라면, 결국 발해인 = 말갈인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고,
훗날 말갈족이 여진족으로 불리게 되었다면, 결국 여진족 역시 발해인(고구려인)이 되는 것이 맞고,
그렇다면, 금나라 건국 후, 굳이 여진인과 발해인이 다른 서열을 갖거나 하는 부분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 만약, 고구려인 = 발해인 = 말갈족 = 여진족이라면,금나라 및 청나라 자체가 결국엔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던 것이고...
- 이 경우엔, 동북공정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서북 공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인데....

- 아울러, 고려시대 고려인들의 여진족에 대한 인식도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당시 고려인들이 여진족을 동족으로 인식했었다면 좋을 것이나,
제가 교과서에서 배운 바로는 그들을 일개 북방 오랑캐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물론, 이는 시간이 흘러서 민족이 분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삼국시대에는 일본과 말갈이 같은 민족이었을지라도, 시간이 흐른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조선인과 일본족 및 여진족은 엄연히 다른 민족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니까요)


2. 발해 250여년동안 발해와 신라와는 왜 무력 충돌이 없었는지...

암튼, 조약돌님과 일도안사님께서 항상 좋은 글들을 올려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조약돌

2014.03.04 18:24:21
*.118.123.150

제 글에 관심을 기울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방카이 님이 제기하신 의문들(주션[여진]족이 발해인이냐는 의문/고려시대 고려인들의 주션족에 대한 인식/남북국 시대 내내 발해와 신라 사이에 전면전이 없었던 까닭)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릴 겁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고려 조정에 왜 주션족과 적이 되었느냐는 것인데, 우선은 그 의문부터 풀고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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