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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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삼국사기가 없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의 과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특히 정부기록인 왕력이 없어진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면 한국사에 일본서기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봅시다. 다음은 중부 이하 한반도의 가장 많은 부분을 통치하였던 백제 30왕 7백년 역사입니다.
[1기] 백제시대 4백년
1.비류 ------------------------------------ 12.여구 - 13.여수 - 14.여휘
[2기] 왜국시대 80년(396-477)
15.응신 - 16.인덕(찬) - 17.이중(미) - 18.반정(진) - 19.윤공(제) - 20.안강 - 21.웅략(무, 여곤)
[3기] 백제시대 2백년
22.동성(여대) - 23.무령(여융) - 24.성명(여명) - 25.위덕(여창) - 26.혜 - 27.법 - 28.무 - 29.의자 - 30.풍
우리는 불행히도 1기와 2기 왕력이 없습니다. 1기는 중국사료를 보고 추정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구가 근초고왕이고 여휘가 진사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삼한 78국 중에 어느 나라 왕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문제를 냅니다.
[문] 다음은 4세기 중국왕조에 사신을 보낸 두 백제왕의 기록이다. 맞은 것은 어느 것인가?
1) 백제왕 여구, 백제왕 여휘
2) 백제왕 여구, 백제왕세자 여휘
3) 백제왕세자 여구, 백제왕 여휘
4) 백제왕세자 여구, 백제왕세자 여휘
답변을 못하고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위 문제를 풀려면 진서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고 삼국사기를 보고 압니다. 진서는 저 문제의 이유에 답을 못합니다. 여구는 한성백제와 혼인하여 백제왕이나 여휘는 혼인을 못하여 백제왕세자이기 때문입니다.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여구가 근초고왕이라고 하는 사람이나 여휘가 진사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적어도 전문가 중에는 거의 없습니다. 영산강유역 옹관묘 집단인 부여씨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5세기 초(407)입니다. 광개토왕비문과 일치합니다. 삼국사기를 읽는 첫걸음은 삼국사기에 나올 수 있는 기록과 나올 수 없는 기록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못 읽으니 초기기록이 틀렸다고 합니다.
백제왕력 2기는 다행히 일본서기가 상세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2기를 보고 1기 백제사를 추정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기록들입니다. 예를 들어 신묘년(391)조의 달을 비롯하여 광개토왕비문의 기록들을 일본서기로 체크합니다. 그 외에 5세기 말 백제- 북위전쟁을 공부하려면 일본서기를 보아야 합니다. 전쟁에 참전한 백제군 당사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일본서기 가지고 백제-북위 전쟁을 기술한 책은 제 책 뿐이지만, 곧 일본서기 없이는 백제-북위 전쟁을 기술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일본서기는 역사사로도 중요하지만 사서를 보는 기본 능력을 시험하는 잣대로도 중요합니다. 5세기 이전 일본서기의 기년을 얼마나 정확히 읽느냐가 사학도가 사서를 분석하는 능력의 시금석이기 때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일본서기를 쓰면서 후손들에게 사학도의 능력을 체크하는 잣대로 사용하라고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단고기라는 사서는 믿을만한 사서인가요? 한단고기에 따르면 요서지역에 있던 서부여의 의려왕이 선비와의 싸움에서 패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대연맹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396년 이전의 일본 서기 기록은 삼한백제(마한)와는 무관한 기록인가요?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