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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반도 길두리에서 5세기 금동관(모) 발견

백제사 조회 수 11309 추천 수 254 2006.03.26 06:18:28
一道安士 *.169.52.182
전남 고흥반도에서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발굴되었는데 그곳에서 이전 5세기 백제영역에서 나온 것과 유사한 형태의 금동관이 발굴되었습니다.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안동(雁洞·기러기동네) 고분 >

1) 이 고분은 지름 34미터, 높이 6미터 가량의 봉토를 갖춘 원형분으로, 전남 남해안 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입니다. 도굴로 무덤 천장을 이루는 덮개돌이 뜯겨져 있기는 하지만 무덤안 석실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고분은 직경 34m, 높이 6m의 원형 무덤이다. 봉토 정상부에 돌로 쌓은 무덤방(玄室)을 만들었다. 길이 320㎝, 너비는 무덤방 출입구가 딸린 서쪽이 130㎝, 동쪽이 150㎝인 사다리꼴이다.

2) 출토된 유물은 반구형 장식이 달린 금동관을 비롯하여 금동신발, 청동거울, 철제 갑옷 외에도 둥근고리 큰 칼(환두대도) 3점, 쇠투겁창 2점, 철제 투구, 철 화살촉, 유리소옥 등이 발굴됐다. *금동판을 도려내어서(투조·透彫) 만든 금동관은 충남 공주 수촌리, 충남 서산 부장리 등에서 나온 백제 금동관과 제작 방식이 같다.

3) 지름 10.5센티미터 크기인 청동거울에는 자손들이 길이 번창하라는 의미인 '長宜子孫’(장의자손)'이란 4자 명문과 8자 명문이 각각 새겨져 있다. 거울에는 이 밖에도 8자가 더 적혀 있지만 아직 판독되지 않았다.


무덤의 주인이나 위세품 전달 배경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데 2가지만 잠시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1] 왜인 백제 관료(용병)설 : 백제에서 관료나 용병으로 일하던 왜인의 무덤일 것이다.

- “사다리꼴 모양의 무덤방은 규슈 등 일본에서 자주 발굴되기 때문. 토기가 없이 갑옷과 투구, 칼, 투겁창, 철 화살촉 등 무기류가 많다는 점도 그렇다. 일본 지배층 무덤은 백제와 달리 무기류가 많다. 대신 우리나라와는 달리 토기는 잘 넣지 않는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토기가 많은 무덤이 발굴되면 한반도에서 건너 온 사람의 무덤이라고 평할 정도다.”

이 왜인이 과거 고구려에게 망한 삼한백제를 말한다면 이는 맞습니다. 하지만 용병관계는 틀렸다고 봅니다. 삼한백제의 진왕이 한성백제의 군사력을 이용한 것이 주로였기 때문에 구태여 용병관계를 말한다면 반대입니다. 자체 군사력이 약했던 왜왕(백제 진왕)이 백제(삼국사기의 백제)의 군사력을 이용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 가야와 마한 견제설

“안동고분은 5세기 전반, 전남 고흥지역에 강력한 토착 정치세력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유적이라며, 이 세력이 전남 순천까지 영향력을 떨쳤던 가야나 영산강 유역의 마한을 견제하기 위해 백제를 끌어들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전남지역에 강력한 토착세력이 존재하였고 이들을 포섭하려 했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백제가 가야나 마한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들을 포섭하였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백제는 당시 새로 건국된 가야를 지원하여 왜국의 통치에서 분리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또 고흥은 영산강문화권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고흥반도 세력도 마한세력의 일부일 것입니다.
http://histopia.new21.org/zero/zboard.php?id=neo&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keyword=사지비궤&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49


과거에 이곳에 올린 5세기 백제 금동관과 관련된 글을 잠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http://histopia.new21.org/zero/zboard.php?id=ne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keyword=수촌리&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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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충남 서산 수촌리에서 나온 것은 금동모인 듯합니다. 관이나 모나 둘 다 모자의 일종이지만 관 안에 쓰는 것이 모입니다. 유명한 신라금관은 모두 관입니다. 과거 나주 옹관묘에서 나온 것은 금동관으로 국보 29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5세기 백제지역에서 발굴된 금동모와 금동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475년 웅진남천을 경계로 달라집니다.

(가) 5세기 웅진남친 이전
1. 충남 공주 수촌리; 5세기 초반
2. 전북 익산 입점리; 5세기 중반
3. 일본 구마모토(熊本) 후나야마 고분; 5세기 추정
4. 충남 서산 음암면; 5세기 초중반 추정

(나) 5세기 웅진남천 이후
1. 전남 나주 신촌리; 5세기 후반

1.번에서 4.번까지는 양식이 같습니다. 그러면 백제의 중앙정부에서 제작하여 지방에 나누어준 위세품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 지역 세력의 권위를 인정해주면서 자신들의 영향 하에 두려는 포섭정책의 일환입니다. 반면에 5.번은 금동관으로 양식이 다릅니다. 상당히 독창적이라서 독자적으로 만든 것으로 봅니다.

*(가)에 이번에 발굴된 고흥 고분이 추가될 것임.

이 문제는 백제가 5세기에 지방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였느냐의 문제입니다. 5세기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광개토왕 전쟁이 끝나는 407년(영락 17년)부터 동성왕이 나주 일대에 가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498년 사이로 약 90년간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475년의 웅진천도가 있습니다.

이 사이에 <전지왕-구이신왕-비유왕-개로왕-|-문주왕-삼근왕-동성왕>의 7명의 백제왕이 있었는데 단 한명도 자연사하지 못했습니다. 이때는 백제왕의 권한이 도전받던 시기로서 혼란기였다는 뜻입니다. 이 사이에 왕실이 왜국으로 쫓겨 간 삼한백제의 영토를 흡수하는데 그 방식이 웅진천도를 경계로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흡수하는 지역은 후나야마 고분에서 보듯이 한반도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본열도도 모두 포함하였습니다.

따라서 5세기에 전국에 금동모를 내려 보낸 백제왕은 웅진천도 이전의 왕인 전지왕에서 개로왕까지로 보이는데, 전지왕 3년에 삼한백제계열인 부여씨가 한성백제에 최초로 등장하며 정권을 잡으므로 실질적으로는 부여씨 정권이 행한 것입니다.

웅진천도 이전에는 위세품을 보내주며 포섭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하였으나, 웅진남천 이후에는 직접 통치에 나선 것으로 판단됩니다. 천도의 혼란이 수습된 동성왕대부터는 군사력 이용(영산강유역)과 동시에 예전의 혼인을 통한 담로통치방식(신라)을 병행하였고, 6세기 무령왕 이후에는 담로방식은 폐지하였습니다.

이 5세기 금동모 및 금동관 출토에 관해서는 삼국사기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백제의 지방세력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세력이 이를 삼국사기에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누가 위세품을 내려 보내고 누가 이를 받았는가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위세품이 갔는가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백제는 지방 세력가가 필요로 하는(좋아할) 물건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방 세력가 역시 자신들의 특산품을 중앙에 보내는 방식으로 답례하였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먼저 사신을 보내고 그 다음 약 1년 후에 위세품이 갑니다.


백제 비유왕; 가을 7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백제 비유왕; 8년 봄 2월,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좋은 <말> 두필을 보냈다. 가을 9월, 다시 흰 <매>를 보냈다. 겨울 10월, 신라에서 좋은 <금>과 <구슬>을 답례로 보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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