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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덕능 지석 글자 예측

백제사 조회 수 229 추천 수 0 2016.01.07 07:18:39
一道安士 *.202.72.51

 

아주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이 백제 무령왕릉 지석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무령왕은 죽음에 천자의 죽음을 기록하는 崩을 쓴 사람인데 무엇이 아쉬워 양나라로부터 책봉 받은 것(영동대장군)을 무덤 속까지 가져갑니까?”

 

(왕)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 年六十二歲 癸卯年 五月 丙戌朔七日壬辰 崩

到 乙巳年 八月 癸酉 朔十二日甲申 安厝登冠大墓 立志如左

 

(왕비)

居喪在酉地 己酉年 二月 癸未朔十二日甲午 改葬 還丙午年 十二月 百濟國王大妃 壽終

大墓 立志如左」

 

여러분은 어떻게 답변하셨는지요?


===========================================

 

전해 내려오는 인덕능이 실제로 일본서기의 인덕릉이고 만일 지석이 나온다면 다음 5가지는 기본으로 나옵니다.


(1)나라이름, (2)왕이름, (3)죽을 때 나이, (4)죽은 날, (5)죽음을 표시하는 글자, (6)지석을 묻고 장사지낸 날(葬),

 

마지막으로 중원왕조 책봉여부는 어떤 경우에 나오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인덕이 통치한 나라는 백제, 자신의 이름은 궁월입니다. 따라서 (1)과 (2)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1)百濟, (2)弓月王

 

죽을 때 나이는 70대로 나이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이 생기면 다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3) ??


인덕은 58년(425)년 5월에 죽었으므로 乙丑年입니다. 해와 달만 하고 날은 핵심이 아니므로 생략합니다. 403년에 응신이 죽은 후 409년에 즉위하였으므로 17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일본서기는 8월에 양자강 하류의 오국과 고구려가 (조문)사절을 보내왔다고 하는데, 바다 건너에 죽음이 알려지고 사신이 오는데 보통 3개월이 걸리므로 이 사절기록은 믿을 만 합니다.

 

(4)乙丑年, 五月

 

인덕의 비는 “황후”로 기록되었으므로 본즉위를 하였고 따라서 崩입니다. (2)에서 王世子라고 나오면 틀립니다.

 

(5)崩

 

부여씨 왕실은 죽은 지 2년 3개월 후에(무령왕를 지석) 장사지내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428년 8월에 지내야 합니다.

 

(6)戊辰年, 八月, 安厝

 

인덕이 죽고 장사지내면 후계자가 옥새를 받습니다.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는 백제왕실의 여인을 비로 세운 자가 후계자가 됩니다. 인덕 사후 장사지낼 때까지의 공위기간에 절대적 강자가 없었던 왜국은 여자들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한 내전이 벌어집니다.

 

백제본기 毗有王 02年(428), 春二月, 王巡撫四部, 賜貧乏穀有差. <倭>國使至, 從者五十人.

 

왜국에서 누가 보냈는지 사신이 50여명의 대규모 일행을 데리고 백제에 왔습니다. 급했습니다. 왜 왔을까요? 이로부터 약 30년 뒤에 왜국에 다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461년에 또 한 명이 백제로 옵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428년에 왜 왜국 사신이 왔는가를 추정합니다.


인덕 사후 내전이 벌어지고 반정(아지사주)의 지지로 승리한 이중이 왕위에 오릅니다. 따라서 428년이 이중천황 원년입니다. 하지만 반정의 눈치를 보는 힘 없는 왕입니다.

428년에 백제에 사신을 보낸 사람이 성공적으로 왜왕이 되었을까요? 저는 실패했다고 봅니다. 만일 성공했으면 곤지처럼 일본서기가 승리한 사람의 백제 사신기록을 남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왕권의 정통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국 사절단은 비유왕에게 가서 백제왕실의 여인을 데려오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만일 지석에 왕의 대수가 나온다면 비류에서 시작하는 16대 백제왕이므로 건국자의 15세손이라고 씁니다.

 

十五世孫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왕비의 신분이 后와 夫人으로 2가지입니다.

 

책계왕조; 대방왕녀 보과 위 夫人

침류왕조; 아이(미)夫人

근초고왕조; 王后

전지왕조; 팔수夫人


일본서기를 보면 왕비의 신분은 '후'와 '부인' 사이에 '비' 하나가 더 있어서 3가지입니다.: 后, 妃, 夫人.

3가지가 다음처럼 다름니다.


1. 后가 가장 신분이 높아 왕권이 탄탄하므로 책봉이 불필요합니다.

2. 妃는 왕권이 약간 불안해 책봉이 있으면 좋습니다.

3. 夫人은 왕권이 아주 불안하여 책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4. 왕이 가즉위만 하고 본즉위를 못한 왕세자 신분이라면 책봉에 목숨을 겁니다.

 

일본서기는 응신-인덕-이중-반정-윤공에 이르는 5왕 약 60년 기록을 120년 늘려 약 180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응신, 인덕, 윤공의 3명은 재위기간을 대폭 늘려주었는데 이중과 반정은 안 늘려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중과 반정은 비의 신분이 비(황비)와 부인(황부인)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5세기에 왜국 5왕이 중원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는데, 비가 “황후”로 기록된 인덕(찬)은 책봉을 요구하지 않고, 비가 “황부인”으로 기록된 반정(진)은 책봉을 요구하는데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송서의 왜 5왕 기록은 왜국 내부의 권력투쟁의 산물입니다.

 

가장 심각한 사람이 본즉위를 못해서 대외적으로 '세자'자를 붙여야 하는 興인데, 송에 보낸 사신이 책봉 받아 가지고 왜국에 도착하기 직전에 백제 왕실의 여인(무령왕 어머니)을 데려온 웅략(곤지, 무)에게 죽습니다. 본즉위에 실패한 흥은 천황의 시호와 대수를 못 받고, 그의 재위기간 5년은 웅략의 재위기간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웅략이 477년에 백제 웅진으로 천도하며 백제의 왜국시대가 끝납니다.


왜국이 무 다음에는 왜 중국왕조에 사신을 안보내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보냅니다. 동성왕, 무령왕, 성왕,... 죽 보냅니다. 이름만 왜국에서 백제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4세기까지 백제에 있었을 때는 여구, 여휘 등이 백제 간판을 달고 사신을 보내다가, 5세기 이후 왜국으로 건너간 다음에는 왜국 간판을 달고 사신을 보내고, 5세가 말에 다시 백제로 온 다음에는 백제 간판을 달고 사신을 보내는 것 뿐입니다. 7세기에는 왜국이 자립하여 백제 목씨(소아씨)왕조가 잠시 사신을 보내는 것입니다.
 

비가 “황후”로 기록된 인덕은 중국왕조 책봉을 받았건 안 받았건 지석에 책봉기록은 안 나올 것입니다.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덕이 동진에 사신을 보내는 것은(찬) 418년에 팔전황녀를 새 "황후"로 세우고 정통성을 확립한 다음입니다.

 

책봉 기록 없음

 

무령왕릉은 비가 무엇으로 기록되어 있습니까? 百濟國王大妃라 하였는데 왕보다 나중에 죽어서 죽을 당시에는 왕비가 아니라 왕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합니다. 신분은 妃입니다. 그러면 책봉 받은 사실이 있으면 무조건 나와야 합니다.

 

만일 무왕의 능이 발견되고 지석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미륵사지석탑 해체할 때 사리봉안기가 나왔는데 王后였습니다. 따라서 비의 신분이 后이므로 무왕의 무덤 지석에는 책봉기록이 안 나와야 합니다. 무왕은 죽은 다음에 시신을 왜국으로 실어갔기 때문에 지석이 나온다면 일본에서 나올 것입니다.


진짜로 인덕능의 지석이 발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예측과 비교해보고 싶어서입니다.
 

댓글 '1'

역사를바로알자

2016.01.13 16:55:25
*.142.176.234

우연히 소개 받아서 보게 됐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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