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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원사료 편찬자의 고민

백제사 조회 수 356 추천 수 0 2016.09.11 23:12:32
一道安士 *.223.174.2

삼국사기 원사료라면 구삼국사를 비롯하여 해동고기, 삼한고기 등 여러 가지 사료가 있을 것이다. 김부식을 비롯한 삼국사기 편찬진은 이전 사료를 중국사료와 비교하면서 정리했을 뿐이다. 이들은 일본사료는 보지 않았다.


삼국사기 편찬진은 유교적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구사료를 정리했을 뿐 큰 고민은 없었다고 본다. 김부식이 원사료를 조작했다던가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삼국사기를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본기에 금강유역이 처음 출현하는 것은 475년 웅진천도이고 영산강유역이 처음 출현하는 것은 498년 무진주 출병이다. 즉 건국 후 5백년이 지난 시점이다. 5세기 후반 웅진천도 이전에는 한반도 남부 거의 전체가 기록의 공백이다. 웅진천도 이후에야 한반도 전체가 삼국사기에 출현한다.


그러면 5세기 이전의 기록의 공백지대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화려한 유물들이 발굴되며 중국사료에는 삼한과 이를 통치하는 진왕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은 조선의 5백년 수도 이전에 백제의 5백년 수도였다. 그런데 일본에도 백제라는 지명이 아직도 무수히 많이 남아있는 반면에 정작 수도인 5세기 이전 한강유역에는 백제라는 지명이 거의 없고 대부분 고구려계 지명이다. 유물 또한 마찬가지로 백제를 상징하는 환두대도와 금동모는 한반도 남부 전역에서 출토되는데 한강유역에는 안 나온다. 5세기 이전 한강유역에는 고구려계 유물들이 출토된다. 심지어 백제 왕릉지로 추정되는 석촌동 백제고분군도 고구려계 무덤이다.


신라는 박혁거세부터 쓴다. 박혁거세 이전에 몽골초원을 장악하고 중국 진한 왕조를 위협하던 동호족과 오환족의 역사를 잘라버리고 한반도에 들어온 다음부터 신라본기에 기술하기 시작하였다. 석씨도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을 잘라버렸고 김씨도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을 잘라버렸다.


신라 금석문에 출현하는 진골왕통의 시조 성한왕은 성골만 나오는 삼국사기 왕력에 출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구태여 연결시키자면 김알지나 그 아들 정도에 해당한다.


만일 신라가 중간에 중국대륙이나 일본으로 한 백년 쯤 천도했다가 돌아왔다면 삼국사기가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는 백제본기에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삼국사기를 읽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는 백제의 천도에서 발생하였다. 국가가 무엇이냐의 정의를 두고 삼국시대에도 고민한 것이다. 


백제란 본래 고구려에서 왕권다툼에 밀려난 사람들이 요서에서 선단을 이끌고 남하하여 아산만에 상륙하면서 한반도에 나타난 국가다. 주류는 한반도 중남부의 중심인 부근의 금강유역에 자리를 잡고 남았으나, 다른 그 한 갈래는 북상하여 한강유역으로 갔다. 백제왕을 중국사서는 진왕이라 하였다. 이들이 마한의 왕권을 탈취하여 한왕제도를 종식시키고 진왕제도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백제가 4세기에 고구려와 전쟁하다가 광개토왕에게 패하여, 한반도에서 14왕이 4백년을 보내고, 396년에 왜국(일본열도)으로 천도한다. 그러면 이 나라는 백제인가? 왜국인가? 


삼국사기는 이를 왜국으로 기록하였다. 이것이 4세기 말-5세기 초에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왜의 실체다. 5세기의 왜국 왕릉을 열어보면, 그래서 지석이 나온다면 거기에 백제왕으로 적혀있을까? 아니면 왜왕으로 적혀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475년에 장수왕에게 한성백제가 멸망당하자 백제가 왜국에서 7왕 81년을 지내고 다시 백제로 천도한다. 그리고 동성왕-무령왕-성왕-...의 왕통이 이어진다. 이때는 삼국사기가 그대로 기록한다. 곤지는 일본서기에서는 웅략천황이나 삼국사기에서는 백제의 내신좌평이다. 원사료의 편찬자가 왜국으로 천도한 백제를 백제가 아니라 왜국으로 기록하기로 원칙을 정하면서 백제왕인 곤지를 백제왕이 아니라 내신좌평으로 기록하게 된 것이다.


[[ 백제왕력 ]]


1.비류 ------------------------------------ 12.여구 - 13.여수 - 14.여휘- 15.응신 - 16.인덕(讚) - 17.이중(彌) - 18.반정(珍) - 19.윤공(濟) - 20.안강 - 21.웅략(武, 여곤) - 22.동성(여대) - 23.무령(여융) - 24.성명(여명) - 25.위덕(여창) - 26.혜 - 27.법 - 28.무(서명) - 29.의자 - 30.풍


부여씨는 영산강유역 옹관묘 집단으로 4세기 여구 또는 그 직전에 왕통이 시작한다. 여구가 근초고왕이라던가, 여휘가 진사왕이라던가 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사서 분석능력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30년에 비미호에게 칠지도를 보낸 사람은 약 8대 정도로 추정되는, 아직 자립위왕하지 못한 진왕이다. 응신-웅략 사이는 19대 윤공(문주왕, 삼근왕과 같이 신라계 모씨)만 제외하고 모두 부여씨로 추정된다. 일본왕실은 26대 혜왕부터 시작하는 백제말기의 왕통으로 28대 무왕의 후손이다.


왜국으로 천도해간 백제를 삼국사기에 쓰지 않기로 하다보니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 고구려와 백제의 사신 교환기록 같은 고구려-백제의 접촉이 모두 사라졌다. 예를 들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광개토왕비문의 고구려-왜 전쟁이 없는 것이 그 이유다.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접촉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니 5세기 이전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읽기가 어려운 것이다.


삼국사기 원자료 편찬자는 백제를 빼고 한강유역에 있었던 백제를 구성하는 세력들 중 두 번째로 강한 세력을 백제로 대신 기록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백제에 복속한 말갈인들이다. 우리가 보는 4세기까지의 백제왕력이란 사실은 말갈왕력이다. 이것이 4~5세기 이전 한강유역에서 고구려 문화가 나오는 이유다. 


혹자는 묻는다. 우리가 고구려로부터 무엇을 받았느냐고. 고려-조선 천년동안 한국문화는 서울/경기 지역이 중심이었다. 예를 들면 그 서울/경기지역 말이 한국어의 표준이 되었다. 이는 말갈어, 즉 고구려어가 핵심이다.


저 30명의 백제왕들 중 무덤이 발굴된 것은 공식적으로 23대 무령왕 한 명 뿐이다. 나는 1대 비류부터 14대 여휘 사이의 왕릉이 금강유역 어디에선가 발굴될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15대 응신부터 21대 웅략 사이의 왕릉도 일본 어디에선가 발굴될 날이 올 것이라고 본다.


내가 역사학에 나온 것이 20년이 넘었다. 내가 한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4~5세기 이전 삼국사기 전기기록을 읽으며 그 기록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소개한 것이다. 결과는 90% 이상 기록이 단 한달도 안 틀린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삼국지=삼국사기=삼국유사=광개토왕비문=일본서기=고고학적 사료=... 등이 하나로 일치함을 보였다. 나아가 삼국지 등 중국 기록의 동이전 부분 기록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하나씩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학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인데 중국 사료 어디에 나오므로 맞는다고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그 기록이 맞는지 틀리는지 어떻게 압니까? 진위를 확인부터 하고 믿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사료를 가지고 역사해석을 하기 전에 사료 내용의 진위부터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어떻게 이 역사를 가르쳐야 할까? 나도 고민이다. 내 생각은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가르치고 판단은 후손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댓글 '5'

...

2016.09.14 01:46:46
*.163.254.158

정리 감사합니다. 혹시나 김부식이 이런 편찬과정의 고민이나 본인이 설정한 원칙에 대해 삼국사기 내외에서 ps의 형식으로라도 언급한 흔적은 전혀 없는지요? 그러면 원사료가 소실되었다 하더라도 삼국사기 내용을 재구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만.....

잘보고있습니다

2016.10.08 22:03:07
*.171.19.192

좀 외람되나.

제가보기엔 선생님께서... 언젠가는... 이나라 삼국사 연구의 진짜 시초로 인정받으시지 않을까.
체계나, 여러가지 탁월한 점이 정말 많으십니다.

역사돌이

2016.10.18 23:38:47
*.44.154.122

동감임니다
역사적 상상력이 독보적이네요

초리국왕

2017.07.20 01:48:12
*.42.182.119

님의 글을 며칠 간 밤새며 탐독했습니다. 정말 경탄할만한 주장이며 내용들입니다. 학문다운 학문이 되려면 연역적인 접근법이 돼야 하는 법인데 님은 역사학에 그런 연역적 접근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정말 탁월합니다. 특히 진왕제 가설과 자립위왕 개념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후일 최고의 업적으로 칭송받을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몇가지 동의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 고대사 아니 동양 고대사 전체에서 왜의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푸는 것이 핵심 열쇠라고 보는데 님도 모든 다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같은 왜의 종족적, 국가적 정체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 한 인상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연구하고 내린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왜와 부여는 다른 존재이다, 왜는 우리 한민족 또는 부여족, 예맥족과 처음부터 그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정체성을 달리 한 존재로서 '초기' 가야를 구성한 세력이었다, 왜는 발해만의 하북성 대방고지(이곳이 바로 광개토비문에 나오는, 왜가 공격한 그 대방임)에서 배를 타고 한반도 중부로 상륙, 주로 지금의 경남지방에 정착했다 열도로 건너간 종족이고 이들이 바로 야요이 문화를 연 주체이다, 이들 왜를, 3세기 중반 쯤에 똑같은 코스를 따라 배를 타고 한반도로 들어온 부여계가 정복, 지배한 것이고 따라서 후기 가야는 지배층은 부여계, 피지배층은 왜인들로 구성된 복합국가였다, 이들 부여계는 처음에는 한성백제에 부용하다 김상님의 견해처럼, 나중에는 관계를 역전시켜 백제까지 장악, 새로운 백제왕조를 연 주역이 됐으며 응신 등 왜왕조의 기원도 됐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제의 한성은 결코 지금의 서울이 아니라 북한의 평양지역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기타 중요한 수많은 논점들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만 제 견해를 말씀드리지요.

초리국왕

2017.07.20 01:49:07
*.42.182.119

이상의 결론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요즘 최첨단의 과학적, 주변 학문으로 떠오르고 있는 분자인류학, 언어학, 고고학 등의 성과를 반영한 주장이니 김상님 께서도 깊이 고려해볼만 할 겁니다. D.N.A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분자인류학을 공부해 보면 왜와 우리가 같은 민족이었니 어쩌니 하는 소리 절대 못 합니다. 정밀한 분석에 탁월한 일본인들이 우리 쪽의 역사 주장에 콧방귀를 뀌어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님의 주장의 기본적 얼개는 여태까지 나온 그 어떤 학문적 주장보다 탁월하다고 믿습니다. 앞서 말한 몇몇 논점들을 조금만 수정한다면 아시아 역사학계를 제패하리라 봅니다. 괜찮으시다면 언제 한번 직접 뵙고 의견을 나누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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