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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지국 진왕의 왕력

백제사 조회 수 886 추천 수 0 2015.05.29 13:31:59
一道安士 *.82.74.94


목지국(목지가 미추의 다른 표기임은 천관우선생 이래로 통설임)은 비류에 의하여 아산만 일대 미추홀에 건국되었습니다.

마한으로부터 왕권을 탈취한 후 진왕(대왕)이 되는데 진왕의 시기는 그가 어디에 도읍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3기로 나뉩니다.


[1기] 백제시대 4백년

1.비류 --------------------------------- 12.여구 - 13.여수 - 14.여휘

[2기] 왜국시대 80년(396-477)

15.응신 - 16.인덕(찬) - 17.이중(미) - 18.반정(진) - 19.윤공(제) - 20.안강 - 21.웅략(무, 여곤)

[3기] 백제시대 2백년

22.동성(여대) - 23.무령(여융) - 24.성명(여명) ---------------- 의자왕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응신때 한반도를 나갔다가 웅략때 다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진왕은 고구려 광개토왕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나갔다가 장수왕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백제의 왕통이 끊기자 다시 돌어왔습니다. 그리고 왜국에 있었던 [2기] 80년 동안 중국 사서에 왜5왕으로 출현합니다.

[1기]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중부이하 한반도, 즉 삼한의 통일과정입니다. 2세기에 고구려의 정권이 바뀌자 태조왕때 요서에 마한군을 파견하는 등 서로 화해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압력이 사라지자 중부 이하 한반도 통일에 나서서, 227년에 가야제국, 298년에 신라를 마지막으로 통일합니다.

신라의 통일이 늦어진데는 고구려-위나라 전쟁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구려와의 옥저전투에서 패한 위나라 기마군단이 동해안을 타고 낙동강유역에 들어오는데, 신라에도 들어와 용병으로 활동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신라의 왕권을 장악하니 신라의 태조대왕으로 불리는 미추이사금의 출현입니다.

진왕은 [1기]에 적어도 한번 왕통이 바뀌는데 3세기까지는 목지국 왕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4세기에 영산강유역에서 옹관묘 쌓던 집단이 진왕을 배출하니 이것이 백제 부여씨의 출현입니다(삼한사의 재조명 2. 참조). 4세기에 요서에 나타나는 부여씨도 이들입니다.

가장 연구되어야 하는 시기는 [1기]겠지만 앞으로 한국 사학계는 앞으로 [2기] 80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올 것입니다. 단순히 삼국사기처럼 처리할 수 없는 이유가 삼국사기는 [2기]도 빼버렸지만 삼한사인 [1기]도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만일 영국정부가 17세기 쯤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사가서 식민지 개척을 하고, 한 백년 후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면, 미국이나 캐나다에 있었던 영국정부 백년을 영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반대로 캐나다나 미국은 이 백년 동안의 영국정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또 이런 가정도 가능합니다. 미래에 우리 정부가 남극대륙에 한 백년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리 후손들은 남극대륙 백년사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아니면 지금의 스페인은 중남미 식민지시절을 어느 나라의 역사로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댓글 '4'

푸른등선

2015.06.03 13:01:38
*.199.123.89

정말로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약간 딴 얘기인지만 좀 극단적인 단순화를 가해서 이곳에 올리신 많은 글들을 읽고 개인적으로 이해한 바를 풀자면 고대 한반도에 만주인 [고구려인 or 말갈인?] / 일본인 [백제인?] / 한국인 [신라인?]이 서로 아웅다웅 다툼으로 하다가 결국 한반도는 한국인 [신라인]들이 장악을 하고 백제인들은 일본열도로, 말갈인들은 만주로 흩어져 갔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물론 각나라 민중들의 유전자는 한반도 내부에 대부분이 남아있었겠지만 정치체계(왕가)나 문화적 체계 측면에서만 보자면 말이지요....이런 극단적인 가설이 언제쯤이나 한중일 역사학계에서 제안되고 이성적으로 검토가 가능할까 한번 상상해봅니다...역사를 현재의 입장에서 아전인수로 해석하지 않고 과거의 있었던 일 그대로로 해석하는 방식말이죠...

글쎄요

2015.06.18 20:39:37
*.178.39.98

글쎄요.... 일도안사님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신거 같네요. 신라가 '한'을 대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일도안사님이 말하는 '한'이란 '부여' '고구려' '백제' '일본'을 포괄하는 의미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역사의 일부, 또는 일본인의 일부'죠.

글쎄요

2015.06.18 21:44:55
*.178.39.98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사는 당연히 스페인 역사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과거의 스페인 식민지들에서 유래한 현재의 중남미 국가들을 스페인으로 생각할 수는 없죠. 다시 말해 엄연히 다른 나라, 다른 국민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식민지 개척 당시의 스페인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이죠. 그 사람들이 식민지에 20 ~ 30년 있다가 가족을 이끌고 다시 스페인 본국으로 돌아오더라도 여전히 스페인 사람이죠.

일도안사님의 글 중 인덕 천왕릉 등 고분 발굴에 관한 글을 게시판에서 읽었는데...
정신적 충격, 사회적 파장 부분에 대해 공감합니다.

일본이 지금까지도 고분 발굴을 하지 않아왔는데, 앞으로라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생각이네요.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발굴에 나설 가능성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글쎄요

2015.06.18 23:15:45
*.178.39.98

그리고 16세기 당시 스페인은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empire)으로 봐야겠죠. 실제로 그 당시 스페인이 역사에 제국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나요?

한일 고대사 부분이 좀처럼 안풀리는 이유는 사료나 증거 부족도 있지만 거기에 극한적 감정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극한적 감정은 논리나 이성으로, 또는 시간이 가면 극복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듯하구요. 즉 지속적인 영향을 남긴다는 것이죠. 그러면 일본이 고분 발굴을 왜 그렇게 꺼리는 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그리고 자립위왕이나 담로를 부정적으로 보시던데, 어떻게 보면 이들은 공화정의 특성을 가진 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사전적 의미는 아니구요. 그리스도 로마도 공화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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