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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왕의 집권과 계왕의 실각

백제사 조회 수 15958 추천 수 0 2010.11.17 09:45:52
一道安士 *.179.164.205

 

계왕은 분서왕의 長子로서 재위 3년 만에 죽는데 그 주변의 왕통변화가 다음과 같다.

1) 비류왕 → 계왕 →근초고왕
2) 구수왕 → (제2자) 비류왕 → (제2자) 근초고왕

 

분서왕이 갑자기 죽자 한성백제의 왕권이 분서왕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말갈왕통을 벗어나 비류왕으로 가는데 그는 구 왕통인 구수왕의 제2자라 하였다. 따라서 구수왕 가문과 비류왕 가문 사이에는 어떤 여인이 다리를 놓아 연결되고 있었을 것이다. 비류왕과 근초고왕 사이도 근초고왕이 제2자라 하였으므로 부자관계는 아니지만 어떤 여인이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을 것이다.


말갈백제의 창업자인 고이왕을 계승한 책계왕과 분서왕이 연이어 전사하자 삼국사기 기록대로(及<汾西>之終 雖有子皆幼不得立 是以 爲臣民推戴 卽位) 왕통을 이을 직계 왕자가 너무 어려 구 왕족으로서 평판이 높던 비류왕이 집권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류왕이 왕이 되었으나 고이왕계인 왕족 優福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비류왕의 승계에 조건이 있었던 듯하다. 비류왕은 비상시에 집권한 임시직 왕으로서 차기 왕권을 고이왕계에게 돌려주기고 한 것으로 보인다. 병권을 담당하는 병관좌평 解仇는 비류왕과 마찬가지로 해씨로서 비류왕의 즉위 및 우복의 내란 진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재위 18년째에 우복을 수상격인 내신좌평으로 삼을 때 차기의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재위 24년째에 우복의 반란이 일어났다고 본다. 비류왕 사후 왕권이 비류왕이 아니라 분서왕의 아들인 계왕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보아 비류왕이 말년에 권력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누구에게 권력이 있었을까?


 우복의 반란이 진압되었으나 재위 28년째에는 큰 흉년이 들고, 재위 30년(333)째에는 왕궁이 불탄 후 眞義가 내신좌평에 임명된다. 이후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비류왕의 행적이 사라지는데 그 이유는 동시대의 신라본기로부터 추정이 가능하다. 마치 신라의 흘해이사금은 명목상의 군주이고 아찬 급리가 자기 가문의 여인을 변진한지역 최고 권력자인 왜왕에게 시집보내고 그 권세를 바탕으로 신라를 통치하듯이, 한성백제의 비류왕은 명목상의 군주로 물러나고 내신좌평 眞義가 자기 가문의 여인을 마한지역 최고 권력자인 백제 진왕에게 시집보내고 그 권세를 바탕으로 한성백제를 통치한 것이다. 결국 왕궁이 불타던 비류왕 30년에 정변이 발생하여 眞義가 권력을 장악하고 이후 眞씨가문은 삼한백제 진왕의 왕후를 배출하면서 대대로 한성백제를 통치하는 삼한의 臣智가 된 것이다.


 비류왕은 자립위왕하고 싶어도 마땅한 상대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신라는 과거의 막강한 신라가 아니라 국가가 경주지역과 김제지역으로 둘로 나뉘고 군사력도 없는 그런 평범한 변진한 속의 1국이어서 자립위왕의 상대가 못 되었다. 비류왕대는 신라의 친선사절 방문을 제외하고는 외교관계가 없다. 당시 금강유역의 삼한백제는 요서를 장악하는 등 전성기를 맞고 있었지만, 한강유역의 한성백제는 영역이 굉장히 축소되어 비류왕조에 나오는 북쪽지명은 북한성이고 남쪽지명은 <狗原>이듯이 그 사이가 통치영역이었을 뿐이었다.

 

*狗原: 진사왕조에 왕이 사냥하던 行宮이라 하므로 남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산이 있는 곳이다. 수도가 같이 서울이었고 교통이 더 발달한 조선시대에 화성에 행궁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수원-화성 정도로 추정된다.

  
 비류왕이 죽고 구 말갈왕통이자 분서왕의 아들인 계왕이 즉위하였는데 그는 명목상의 한성백제왕 자리를 거부하고 그의 선조였던 《고이왕-책계왕-분서왕》같은 실권을 가진 지위를 고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왕제하에서는 재위 2년째까지 자립위왕을 못하면 3년째부터는 권력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계왕이 재위 3년째에 실각하는데 이런 정치적인 문제가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재위 2년째에 권력을 내놓는 대신에 자신이 직접 臣智가 되어 진왕과 혼인을 하고 국가를 통치하려 하거나, 아니면 아예 강력한 소국과 혼인을 맺고 자립위왕하려 한다면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계왕의 실각을 본 근초고왕은 재위 2년째에 권력을 臣智의 지위를 계승한 조정좌평 眞淨에게 내어주고 명목상의 통치자로 물러나게 된다.

 

 자립위왕하지 못한 근초고왕은 재위 2년째를 마지막으로 20년 기록공백에 들어간다. 이 기록공백은 어떻게 깨져야 하는가? 자립위왕과 관련되어 공백이 깨지고 기록이 나타난다면 그 기록은 타국과의 혼인관계가 될 것이므로 외교관련기록이 나타나야 할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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