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Resources about Korean History

디지털의 옷을 입은 역사자료. 이제 史料는 공유되어야 한다.

VIEW

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GO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MORE

History through images & Photos, Maps

이미지와 사진, 그리고 지도로 본 역사

VIEW

오늘:
221
어제:
398
전체:
1,225,515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천관우의 목지국의 위치

백제사 조회 수 2602 추천 수 0 2010.03.18 22:46:26
一道安士 *.147.80.208
목지국(월지국)은 삼한을 통치하던 진왕의 직할지이다. 그런데 그 목지국의 위치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목지국을 마한영역에서 찾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천안과 익산사이의 금강유역으로 본다. 다만 고고학자인 최몽룡 선생님은 영산강유역으로 본다.

최몽룡 선생님이 영산강유역으로 보는 이유는 이 지역이 마한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가장 웅장한 유적(고분군)이 펼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생님 견해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시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진왕이란 삼한을 존재를 전제로 성립하는데 영산강유역이 웅장한 고분군을 이룩한 것은 후한서와 삼국지와 진서의 시대인 4세기 이전이 아니라 삼한이 사라진 5세기 이후라는 것이 문제이다.

목지국에 대한 내 견해는 광개토왕이 영락 6년에 토벌한 금강유역의 중심인 웅진지역이다. 삼한백제가 비류시기에는 인주지역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다가 아무리 늦어도 2세기 이후에는 웅진으로 옮겨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주장은 천관우 선생의 견해다. 그는 목지국이란 미추홀의 한자표기라는 것이다. 놀라운 식견이 아닐 수 없다.

千寬宇, 1979, <目支國考> <<韓國史硏究>> 24, p. 28.

 
어떻게 해서 미추홀의 발음이 한자로 목지국으로 표시되는 지를 모르겠다. 한 번 찾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댓글 '3'

불사조

2010.03.18 23:29:29
*.176.8.227

저도 목지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당동 유적-청동제 곡봉형 대구와 금박 유리구슬, 성남 화성리-청자 반구호(盤口壺), 성남 용원리-여러 점의 환두대도, 금동관모 등 으로 목지국이 천안 성남면에 있었을 거라는 추측하는 중앙일보 조한필기자의 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한에 대해 좀 더 많이 알 수 있다면 우리의 고대사를 좀 더 잘 알 수 있을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kbongso

2019.08.15 18:03:43
*.205.189.201

目支國의 원래 발음은 [mok:zhi] 목지라 발음하는 것이 아니고, [mu:zhi] 무지라고 발음하여야 합니다. [mu:zhi] 무지를 한사군 관리가 音借 표기한 것입니다. 예로 조그만 중학생녀석이 자기보다 큰 고등학생 형들을 팔씨름해서 모두 이겼어 아! 조그만놈이 팔힘이 무지하게 쎄구나에서 쓰이는 무지입니다. Latin語로 MAXIMUS입니다. 월지국은 라틴어로 변환하면, MAXIMUS의 뜻이 나오지 않아서 기록 오류입니다. 무지무지한 권력, 무지하게 높으신 분에 쓰입니다. 무지는 일본의 천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삼한에서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臣智는 [sin:zhi] 신지라고 발음한 것이 아니고, 삼한 시대에서는
[sen:zhi] 센지라고 발음하였습니다. 풀이하면 臣은 (힘)센이며, 智 지는 벼슬아치에서 쓰이는 치 즉 존칭접미사입니다. 한자로 쓰면 强者라고 표현하면 맞습니다. 音借 표기입니다.
사람을 가르키는 존칭접미사 치, 지가 고려시대 원나라 영향으로 고려에 전해졌다는 이론은 틀린 것입니다. 오래전
한반도에서도 쓰여 왔습니다. 邑借(읍차)는 마한,변한에서 쓰이던 지도자 호칭입니다. 訓借 표기와 音借 표기가 병행해서 기록하여 그동안 해석하는데 어려웠습니다. 즉 邑은 고을, 골을 나타내는 訓借 표기이며, 나중에 시대가 흐르면서 된음으로 발음되어 꼴이라 발음하게 되었습니다. 借 (차)는 音借 표기입니다. 발음은 [zhi, 또는 gie ] [지, 찌에,찌] 비슷하게 발음됩니다. 둘을 연결하며 邑借 읍차 발음이 고을지, 나중에 꼴찌로 발음됩니다. 지금도 발음이 살아 있는 단어입니다. 서열에서 맨 나중을 꼴찌라합니다. 꼴찌를 한사군 관리가 훈차, 음차 병행해서 邑借라 기록한 것입니다.
고로 邑借(읍차)는 꼴찌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마한에서 고을 지도자는 제일 높은 호칭이 목지 (무지) ..한반도에서 오직 한사람. 臣智(신지) 센지 또는 쎈치 그리고 마지막 서열이 邑借 꼴찌입니다. 무지, 센지,꼴찌

kbongso

2019.08.15 18:29:01
*.205.189.201

목지국의 위치는 경기도 남부를 벗어나면 안됩니다. 온조 일행이 목지국 무지를 만나서 살 곳을 청하자, 목지국에 동북 백여리 떨어진 곳에 살라고 하여 그 곳의 땅을 떼어 주었습니다. 그 받은 땅이 지금의 송파구 일대입니다. 그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편에 있는 기록입니다. 동북 백여리 떨어진 곳에 살게 하였다는 기록은 중요합니다. 역으로 풀어서 해석하면, 송파구에서 남서부에 백여리 떨어진 곳에 목지국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편 기록을 신뢰하면, 목지국의 위치는 경기도 남서부에 있게 되며, 고로 직산,천안설은 송파구에서 백여리가 넘으므로 위치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목지국의 위치에는 근처에 바다 갯벌이 있어야 삼국사기 온조왕편에 서술된 비류의 고생한 이야기에 일치합니다. 즉 짠물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말은 바닷가 갯벌 지역을 말합니다. 고로 직산,천안설은 바닷가에서 너무 멀어서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목지국 근처에 바다 갯벌이있던가 큰하천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하천과 바닷물이 교차되는 지역이여야 합니다. 목지국은 교통이 사통팔달과 해운, 육운 , 하상운 모두 교차하는 지역에 있을 것입니다.
농산물과 해산물이 교역되기 쉬운 지역에 있을 것입니다. 필수적으로 포구가 근처에 있어야 합니다. 너무 내륙에 있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아산설, 목천설,익산설,금강유역설은 송파에서 너무 멀어서 기록에 벗어나 있습니다. . 목지국은 경기도 남부에 있어야 삼국사기 기록에 일치합니다. 目支는 두가지 뜻으로 쓰였는데, 하나는 통치자 호칭이고, 하나는 나라 이름입니다. 마치 왕검과 왕검성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미추홀 위치는 목지국 위치만 판별되면 오류를 잡을 수 있습니다. 미와 무, 추와 지 또는 치 사이의 발음 관계는 ? 무지, 무치 = 미추, 홀은 고을, 골의 중국식 음차입니다. 미추홀과 목지국은 동일 장소로 추정합니다. 미추, 목지 서로 음차의 차이라고 추측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63886

기타 [日本書紀] 신공황후 52년 - 해석 오류. [1]

  • 2020-02-09
  • 조회 수 14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五十二年(壬申 二五二)九月丙子《十》◆   五十二年 秋九月 丁卯朔 丙子。久氐等從千熊長彦詣之。則獻七枝刀一口。七子鏡一面。及種種重寶。仍啓曰。臣國以西有水源。出自谷那鐵山。其邈七日行之不及。當飮是水。便取是山鐵。...

기타 삼한사의 재조명 3 서문 [1]

  • 2020-02-07
  • 조회 수 23

1년 내 출간을 목표로 <삼한사의 재조명 3> 집필을 시작하였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책만 쓸 수 없고 틈틈히 시간이 나면 쓰는 것이라서, 초고를 마치는데 보통 6개월 걸리고, 교정하는데 다시 6개월이 걸립니다. 저는 책을 쓸 때 서문을 먼저 씁니다. 서문...

기타 유튜브 역사토론의 가능성과 어려움 [1]

  • 2019-06-16
  • 조회 수 183

요즘에 유튜브가 대세이다보니 역사관련 동영상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사시험 관련이고 일부가 역사를 논하는데 한가지 예가 히스토피아입니다. 거기에 복기대 교수님의 삼국사기 강좌가 있습니다. 삼국사기가 어떤 책이라는 일반론적 이야기입니...

신라사 삼국사기와 다른 삼국유사의 미사흔 볼모 기록 [2]

  • 2019-05-10
  • 조회 수 196

삼국사기를 보면 내물이사금의 아들인 미사흔왕자는 실성이사금이 즉위하던 402년에 왜국에 볼모, 즉 인질로 보내졌다. 403년에 응신이 웅습을 정벌하다 화살에 맞아 죽기 때문에 402년은 응신의 재위기간이다. 인질로 간 이유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잔국토벌로...

신라사 목출도의 위치 file [1]

  • 2019-04-19
  • 조회 수 247

 지금의 김해평야는 1세기에 석탈해가 경주에 도착할 무렵에 김해바다였다. 지금의 김해평야에 있는 산들은 당시에는 섬이었다. 그러다 3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대륙의 평균기온이 낮아지는 한랭화가 찾아온다. 몽골초원의 목초지가 만리장성 남쪽으로 이동하...

가야사 2세기 후반 왜국 대란 2)일본서기 성무-중애-신공의 기록

  • 2019-04-02
  • 조회 수 152

일본서기 고왕조 기록들 중에 본래 일본서기 편자들이 받은 원사료는 무엇이었을까? 다음은 성무-중애조인데 여기서 후대인 5세기 초의 응신기록을 빼면 다음 정도가 남는다. 천황의 시호라든가 대수라든가 연도는 8세기에 일본서기 편자들이 새로 만들어 넣은...

가야사 2세기 후반 왜국 대란 1)아달라이사금과 대란의 원인

  • 2019-04-02
  • 조회 수 166

2세기 후반 왜국 대란의 원인에 대한 일본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를 찾아보고 싶은데 알 수가 없다. 또 우리나라 학계는 이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1) 왜국대란의 시기 후한서: 환제(146~167), 영제(167~189) 삼국지: 환제(146~167), 영제(167~189...

기타 [고찰]배달말의 화석인 일본어 낱말 마츠리

  • 2018-12-16
  • 조회 수 185

※ 축제가 일본어로 마츠리인 까닭 일본어를 배운 사람이라면(또는 일본 문화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일본어로 ‘축제(祝祭)’는 ‘마츠리(祭り[まつり])’다. 그리고 일본어 사전에 따르면, ‘마츠리’는 ‘제사’나 ‘잔치’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백제사 일본서기 신공황후 52년조 읽기

  • 2018-10-03
  • 조회 수 180

과거에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제게 나는 역사공부를 5년이나 했는데 당신은 얼마나 했느냐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30년 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사과를 나온 사람은 역사과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아무리 오래 역사공부를 해도 인정하지 않는 ...

백제사 목지국 진왕력 [5]

  • 2018-08-17
  • 조회 수 278

[1기] 한반도시대 약 4백년 1.비류 ------------------------------------ 12.여구 - 13.여수 - 14.여휘 [2기] 일본열도시대 약 80년(396-477) 15.응신 - 16.인덕(찬) - 17.이중(미) - 18.반정(진) - 19.윤공(제) - 20.안강 - 21.웅략(무, 여곤) [3기] 한반도...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