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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후원분 돌아보기

백제사 조회 수 10695 추천 수 482 2005.10.31 22:59:55
一道安士 *.231.160.121
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101&id=312&mode=vote_good인터넷 뉴스를 보니 한강유역에서 전방후원분으로 추정되는 대형고분 10여기를 찾았다고 한다. 대형고분이란 정복자의 상징이다. 한강유역의 정복사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전방후원분을 잠시 살펴보고 가자.

전방후원분을 우리나라는 장고형 고분이라고 부르는데 앞은 둥글고 뒤는 네모지다는 데서 이름을 따왔다. 따라서 이를 열쇠구멍모양 고분이라고도 한다.  통상 앞의 둥근 부분에는 시신을 안치하고, 뒤의 네모난 부분에는 여러 물건들을 부장한다.

일본에는 야마대국이 멸망하는 3세기 후반부터 고분시대가 시작되는데 이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국 사서를 보면 247년에 죽은 왜국의 최고 최장 권력자라는 비미호의 무덤은 원형분으로 전방후원분이 아니다. 이는 그때만 하더라도 전방후원분이 왜국의 지배층 무덤양식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5세기 초가 되면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응신능, 인덕능이라 불리는 초대형 전방후원분이 나타난다. 특히 주변을 살펴보면 그 규모가 더욱 웅장한데, 한마디로 4세기까지의 올망졸망한 고분들 속에 꽝하고 초대형 고분이 주변을 누르며 내려 앉은 꼴이다. 고분이 부장품은 물론이고 규모로도 주변을 월등히 압도한다.

물론 무덤의 외양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 임은 더 말 할 필요도 없다. 아주 옛날 한성백제사 연구한다는 권모 말을 들어보니 자기의 소원이 죽기 전에 응신능과 인덕능을 한 번 열어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중기고분시대, 즉 (傳)응신능과 (傳)인덕능을 비롯한 5세기초 이후에 만들어지는 전방후원분의 부장품은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이전의 전방후원분은 원시적인 농기구나 원시적인 무구 등이 출토되는데 비하여 응신능이나 인덕능에서는 전투적이고 대륙적인 유물이 출토된다. 인덕능에서 나온 청동거울은 6세기 무령왕릉 출토물과 쌍둥이처럼 닮았고, 환두대도는 5-6세기 백제양식이다. 인덕능에서는 금동갑옷도 나와서 그 그림이 전해지는데(삼한사의 재조명, 514쪽) 4세기 가야양식이다. 특히 투구는 가야지역에서 출토되는 투구와 완전히 같다. 유리잔도 나왔는데 5세기 신라고분에서 나온 것과 계통이 같다. 또한 응신능에서 나온 금동 마구는 5세기 가야지역에서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한마디로 응신능과 인덕능의 내부는 4-6세기의 한국이다.  

한반도의 유물을 간직한 초대형 고분의 갑작스런 출현은 곧바로 5세기 초에 일본열도에 대규모의 정복이 있었다는 뜻이고, 또 그 정복자들이 한반도 출신이었을 것이라는 고고학적 근거이다. 마치 영국에서 로마의 정복이 있었고 그 결과 로마유물이 발견되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일본서기의 초대천황으로 정복자이자 건국자인 신무를 5세기 초로 비정한다. 또한 일본 곳곳에 정복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있는데 한결 같이 4말5초이고 응신에 집중된다. 그런데 이 당시의 일본서기에 나오는 천황이 응신이어서 전설이 사서와 일치한다.

한반도에서 전방후원분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곳은 영산강유역인데 5세기의 제4사분기에 집중된다. 이 기간은 475년 백제의 웅진천도부터 498년 동성왕의 무진주 무력시위 사이의 기간에 해당한다. 또한 왜국에서 웅략 사후 웅략계가 몰락하는 시점과 비슷하다. 6세기 초가 되면 영산강유역에서 대형고분이 모두 사라지고 백제식 석실분으로 바뀌며, 고분속에서 백제의 고급관리가 머리에 꽂았다는 은으로 만든 꽃이 출토되기도 한다. 왜국도 마찬가지다. 6세기가 되면 초대형 고분들이 사라지고 백제식 석실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산강유역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네모난 방형분과, 역시 네모나지만 양쪽의 크기가 다른 사다리꼴 고분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파고 물을 채우는 주구묘 역시 원형분에서 발견된다. 이 고분들은 4세기로 올라가나 이보다 발전된 형태인 전방후원분만큼은 현재까지 5세기 후반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영산강유역을 가보면 전방후원분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원형분과 방형분이 붙은 꼴이다.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형식의 고분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그 고분의 재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는 '네티즌 고대사'의 부록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흔히 가야지역을 왜국과 관련하여 어떤 유물이 안 나오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아직 가야지역에서 전방후원분이 나온 적은 없으며 모두 백제지역에서만 나왔다. 일본에서 구주쪽은 주로 3-4세기 이전 가야문화권이고, 기내쪽은 주로 5-6세기 이후 백제문화권이다. 전방후원분의 기원이 기내쪽이라면 가야지역에서 안 나오고 백제지역에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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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홍원탁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712년에 고사기가 편찬 완료되자, 야마도 조정은 즉시 전국에 명을 내려, 각 지방의 토산품, 특이한 동식물, 토지 조건, 지명의 유래, 구전돼오는 이야기 등을 조사하고, 기록을 해 올리도록 했다. 이들 기록은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를 편찬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들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하리마 풍토기(播磨風土記)는, 713-715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믿어진다. 이 하리마 풍토기를 보면, 독자로 하여금 호무다가 야마도 왕국의 시조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수많은 기록들이 있다. 예컨대, 호무다는 수없이 순행과 사냥을 하고, 수많은 지명들이 호무다의 사소한 언행들과 연관 지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다른 왕들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 언급이 없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모든 왕들 중에 유독 공식적 시조 진무와 15대 천황인 오오진(호무다) 만이 큐슈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했다. 진무는 황족의 조상신인 천손 니니기(邇邇藝)가 하늘에서 내려 온지 얼마 후에, 또 오오진은 모친(신공왕후)이 한국으로부터 배를 타고 와서 큐슈에 상륙한 직후에 각기 태어난 것으로 기록된 것이다. 진무는 큐슈에서 東征의 위업을 이루는 장도에 오르는데, 갓난 아기 호무다는 큐슈로부터 모친(신공왕후)과 함께 축소판의 동정을 수행한다.

공식적 시조인 진무와 15대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 호무다(應神)만이, 오로지 야마도 지역의 무뢰한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큐슈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이 두 개의 존재가 바로 야마도 왕국의 시조 한 사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인용한 글이다. Aoki (1974: 35-39)

하리마 풍토기 등에는 호무다(應神)의 공격적인 품성과 전투적인 생애의 기록이 가득 한데도 불구하고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호무다의 호전적인 행동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 ... 이것은 호무다의 바람직하지 않은 면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실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자들은, 호무다가 야마토 왕국의 지배자로서 등장하는 시기를 전후로 한 그의 호전적 행위를 감추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 것으로 보인다. ...

편찬자들은, 호무다가 태어날 때 팔에 弓士들이 사용하는 가죽 팔찌 모양의 굳은 살이 있었다고 기록을 함으로서, 호무다가 강한 전투적 체질을 소유한 인물임을 암시했다. ...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호무다의 호전적인 측면에 대해 침묵을 하는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어쨌든 간에, 오늘날 일본열도의 25,000여 개의 하찌만(八幡)신사에서 전쟁의 신으로 받들어져 오는 것은 진무가 아니라 오오진(호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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