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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천황

백제사 조회 수 19086 추천 수 231 2004.02.21 10:00:44
一道安士 *.232.248.48

11년; 7월, 조칙을 내려 “금년에 큰 궁궐(백제궁)과 큰 절(백제대사)을 만들어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百濟川 옆을 궁궐터로 하여 서쪽의 백성은 궁궐을 짓고 동쪽의 백성은 절을 지었다. 12월, 百濟川 옆에 9층탑을 세웠다.

12년; 10월, 百濟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13년; 10월, 百濟宮에서 죽었다. (百濟)宮의 북쪽에 시신을 모셨다. 이것을 百濟大殯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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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것을 읽어본다면 백제의 어느 왕의 기록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7세기 초 일본서기의 서명천황인데 아주 특이한 인물입니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재위 13년 동안에 倭나 日本이란 글자가 전혀 안 나온다.
- 백제란 글자만 무성하게 나오지 왜나 일본은 그림자도 없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왜국왕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일본서기에 10년 이상 재위한 천황 중에 유일합니다.

2) 온천을 좋아한다.
-  서명은 재위 13년 동안 온천에 자주 들릅니다. 피부가 안 좋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익산 왕궁리에도 왕궁온천이 있습니다.

3) 소아씨 세력을 누른 실세다.
- 왜국은 계체천황과 안한천황 이후에 왕권이 약해져 정권이 소아씨에게 넘어갑니다(이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소아씨 세상의 중간에 등장한 서명이 실세천황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4) 서명이 죽자 의자왕이 조문사를 파견한다.
- 왜국 천황이 죽어서 고구려나 신라가 조문을 오는 경우는 있어도, 백제가 조문사를 파견하는 경우는 이전에 없었습니다.

. 선화천황, 흠명천황:  양대에는 소아도목이 실제 왜왕입니다. 소아도목이 죽자 흠명천황도 死합니다. 흠명의 모델을 백제 성왕에서 찾는 경우도 있으나 오히려 소아도목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민달천황, 용명천황, 숭준천황, 추고천황: 4대에는 소아마자가 실제 왜왕입니다. 백년만에 수나라에 사신을 보낸 것도 소아마자입니다. 소아마자가 죽자 추고천황도 死합니다. 민달-추고에 이르는 4왕은 실제로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성덕태자를 포함하여 실제로는 있으나마나 했습니다.

. 서명천황: 소아하이가 왜왕입니다.

. 황극천황: 소아입록이 왜왕입니다.

서명천황대에는 소아하이가 실제 왜왕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서기는 출신도 애매한 서명천황이 소아하이를 누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본서기를 따르면 서명천황은  무왕처럼 몰락왕족 출신입니다. 그는 이미 구 왕통이 소아마자에게 토벌되어 사라진 후에 즉위한 인물로 권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당시 일본열도에서는 누구도 소아가문에 도전할 수 없었습니다.

또 서명 사후 소아하이의 아들인 소아입록이 실권을 행사하므로 서명시대의 왜왕은 서명이 아니고 소아하이임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서명을 실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부여 풍이라면 그를 누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왕과 서명천황의 공통점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1) 무왕이 권력을 상실할 때 서명이 즉위한다.
- 무왕은 630년 경에 권력을 잃는 것으로 보이는데 서명은 629년 혹은 630년에 즉위합니다. 1년의 융통성을 두는 이유는 일본서기는 629년이라 하였으나, 631년에 당에 사신을 보낸 사건을 일본서기가 서명 3년(631년)이 아닌 서명 2년(630년)에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도에 2가지의 가능성을 지닙니다.

2) 무왕이 죽자 서명도 死한다.
- 무왕은 641년 3월에 死합니다. 그리고 서명은 7개월 후인 641년 10월에 死합니다.

3) 당에 사신을 여러 차례 보낸다.
- 무왕은 백제에서 여러 차례 당에 사신을 보내는데, 왜국은 소아마자가 수나라에 사신을 보낸 후 서명에 의해 당(631년)과 본격적인 외교가 시작됩니다.

4) 학문을 숭상한다.
- 무왕은 41년째 자제들을 당에 보내 국학에 입학할 것을 청합니다. 서명은 당나라에서 학문승들을 초빙하여 크게 강연회를 엽니다.

그러면 이제 무왕이 백제에서 어떤 행위를 할 때 동시에 서명도 왜국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지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양쪽에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무왕이 삼국사기에 나타난 기록
- 630년 2월, 7월; 632년 7월; 634년 2월, 3월; 636년 3월; 638년 3월(백제본기에서 무왕의 마지막 기록)

서명천황이 일본서기에 나타난 기록(629년을 서명 1년으로 추산)
- 630년 10월; 631년 9월, 12월; 636년 6월; << 백제본기에서 무왕의 마지막 기록>> 638년 10월; 639년 1월, 7월, 12월(대 건축의 해); 640년 4월, 10월

이를 비교해보면 무왕이 백제에 나타날 때는 왜국에 서명천황이 없습니다. 그리고 왜국에 서명천황이 나타날 때는 백제에 무왕이 없습니다. 즉 두 사람이 교대로 사서에 나오지 동시에 출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무왕의 마지막 기록은 638년 3월입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를 보면 백제에서 무왕이 사라진 다음부터 4년 동안 왜국에 서명이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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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서명은 의자왕자 세력에게 권력을 뺏기고 신 수도 건설이 수포로 돌아가자 대신 소아하이가 통치하던 왜국에 건너가 왜국에 신 수도를 건설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즉 서명천황은 630년 이후 무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궁과 백제사 건립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사람은 왕자 풍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소아가문은 무왕의 아들들에게 모두 타도되고 결국 일본서기에서 천황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무왕(서명천황)의 사망시점은 삼국사기의 3월이 맞는다고 봅니다. 무왕은 백제에서 3월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의자왕자 세력과 교기왕자 세력 사이에 대란이 벌어집니다. 여기서 승리한 의자왕자가 패배한 교기세력을 모두 왜국으로 추방하는데 무왕의 시신은 일본서기에서 서명이 죽었다는 10월에 왜국으로 건너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제대빈은 무왕의 시신을 모신 곳이며 무왕의 장사는 왜국에서 치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 풍장왕자나 교기왕자를 의자왕의 아들로 보기도 하는데 저는 모두 무왕의 아들들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야 대란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왕은 왕비가 여럿 있었을 것입니다.

무왕은 마지막까지 의자왕자에게 왕위를 주지 않으려고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다시 나오겠는데 이후 교기가 왜국의 정권을 잡습니다. 그리고 13년만에 형제간에 화해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13년; 가을 8월, 왕이 왜국과 우호를 맺었다(王與倭國通好).
- 통호의 주체가 왕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 간에는 그 동안에도 아주 친했습니다.

Comment : 3,  Read : 79,  IP : 203.232.248.32
2004/02/09 Mon 20:55:55 → 2004/02/11 Wed 15:44:40
▩조약돌  ...알겠습니다. 친절하게 대답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04/02/12
一道安士  저도 100%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확답을 드리기는 어려우나 서명의 기간에 소아하이를 누르고 왜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사람은 왕자 풍장이라고 봅니다. 풍장이 의자왕의 배다른 동생인지 아니면 의자왕의 아들인지도 불확실하지만 저는 전자라고 보는 것이고요.
  2004/02/11
조약돌  그렇다면 일본서기에서 서명이 다스린 해로 나오는 서기 631년은 실제로는 의자왕의 아우인 부여풍장 왕자가 다스린 해라는 말씀인가요?
  200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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