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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음악사연구

신라사 조회 수 21 추천 수 0 2020.11.09 14:40:30

안녕하세요. 김상님.


김성혜 저, '신라음악사연구,2006,민속원'에 김상님의 신라 마립간 시기 북방민족유입설을 방증하는 연구 결과가 있어 소개합니다.

문화(음악)사적으로도 민족과 문화의 뚜렷한 교체 양상을 서술하는 연구 결과입니다.


'삼한사의 재조명3' 발간을 고대합니다.





「신라음악사 연구」2006 김성혜, 2006. 민속원

 

 

제1기는 356년 이전 시기로서 청동기시대와 진한시대를 말한다.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이며, 진한시대는 고고학에서 말하는 초기철기시대로서 대략 기원전 1세기에서 356년까지이다.

진한은 신라토우의 주악상이 나타나기 이전으로 청동 타악기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현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마립간麻立干시대가 열리기 이전의 이사금尼師今시대이다.

즉 신라의 모체가 된 사로斯盧가 활동하던 시대를 말한다.

또한 진한음악의 이해를 위해 진한 이전의 청동기시대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제1기는 청동기시대와 진한시대를 말한다.

제2기는 토우의 주악상이 출현하는 시기인 356년부터 시작되는 마립간시기이다.

즉 법흥왕(法興王, 514-540) ∙ 진흥왕(眞興王, 540-570) 때 병부兵部 ∙ 상대등上大等 ∙ 사정부司正部 등 관료제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이전 시기, 즉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500-514) 때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토우의 주악상이 집중적으로 출현하는 때이며, 고대국가의 성립기로 국가 차원에서 음악이 정비되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3기는 514년부터 676년까지이다. 토우의 주악상이 더 이상 출토되지 않으면서 향가가 등장하고, 불교의 유입과 대가야음악의 수용 및 수 ∙ 당음악이 유입되어 주변국 음악의 수용이 두드러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p.19

 

 

 

광주 광역시 신창동新昌洞 현악기와 경북 경산시 임당동林堂洞 현악기의 칠기 흔적을 바탕으로 ... ... 기원전 1세기 후반대의 영 ∙ 호남지역의 음악문화가 거의 동일하며, 상호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추론했다.

..........................................................................................................p.23

 

 

간두령 ∙ 쌍두령 ∙ 팔주령 ∙ 조합식 쌍두령은 중국의 동북지역과 일본지역에서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데, 이것은 한반도 내에서만 특수한 목적으로 제작 사용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반도 중에서도 충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권(대전 괴정동 ∙ 예산 동서리 ∙ 전 논산 ∙ 전 덕산)과 전남지역권(대곡리 ∙ 호포리), 그리고 경북지역권(전 상주 ∙ 전 낙동강 ∙ 대구 신청동 ∙ 경주 죽동리와 입실리) 등 삼한 지역에 밀집되어 있음이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지역의 문화가 요녕지방의 청동기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녕의 청동기문화요소를 받아들인 결과로 본다.

이렇게 청동 타악기가 한반도 중부 이남지역에 몰려있는 사실은 삼한 가운데 마한과 진한지역과 연결된다.

..........................................................................................................p.56

청동기시대와 진한시대 음악 관련 고고학자료를 종합해 보면, 진한의 음악문화는 마한보다 후진문화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청동타악기의 출현과 현악기의 출현 등이 마한지역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출현하기 때문이다.

..........................................................................................................p.72

 

 

한편, 최근 여기현呂其鉉(여기현, 『新羅音樂相과 詞腦歌』(서울 : 도서출판 월인, 1999), 15~141쪽)은 앞의 내용을 포함한 『삼국사기』잡지 악조에 있는 18곡의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신라사회의 음악문화 양상을 밝힌 바가 있어 주목된다.

위의 사료에서 제시한 「회악會樂」 ∙ 「신열악辛熱樂」 ∙ 「돌아악突阿樂」 ∙ 「지아악枝兒樂」 ∙ 「사내악思內樂」은 모두 ‘무슨 樂’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때 ‘樂’은 악 ∙ 가 ∙ 무樂歌舞가 종합적으로 연행된 음악으로서 국가에서 제정한 음악이며, 궁중의 국가적 행사에서 연행된 것으로 보았다.

 

 

① 회악과 신열악은 유리왕 때 지은 것이고, 돌아악은 탈해왕 때 지은 것이고, 지아악은 파사왕 때 지은 것이며, 사내악[사내는 시뇌라고도 썼다]은 나해왕 때 지은 것이다.

 

 

② 가무(笳舞)는 나밀왕(356-401) 지은 것이고, 우식악은 눌지왕 때(417-457)지은 것이다. 대악은 자비왕 때(458-478)의 사람인 백결선생이 지은 것이고, 우인은 지대로왕 때(500-513)의 사람인 천상욱개자가 지은 것이다. 미지악(美知樂)은 법흥왕(514-540) 때 지은 것이고, 도령가(徒領歌)는 진흥왕(540-576) 때 지은 것이다. 날현인(捺鉉引)은 진평왕(579-632) 때 사람인 담수가 지은 것이고, 사내기물악(思內奇物樂)은 원랑도(原郞徒)가 지은 것이다.

 

위의 사료에서 ①은 제1장에서 언급한 3세기 이전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②는 4-7세기에 해당하는 악곡이다. ②를 보면 기록①과 마찬가지로 ‘무슨 악은 언제 지은 것이고’를 중심으로 나열되었다.

그런데 내용면에 있어서 ①과 ②는 차이가 있다.

①은 신라 초기 기록인데, 유리왕儒理王 → 탈해왕脫解王 → 파사왕破娑王 대까지 3대로서 24년부터 111년까지 87년간의 음악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파사왕 다음 왕인 지마왕祗摩王 → 일성왕逸聖王 → 아달라왕阿達羅王 → 벌휴왕伐休王까지 즉 4대代인 112년부터 195년까지 83년간의 음악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 다음 196년 내해왕대(196-229)의 음악만 있고, 또 다시 그 다음 왕인 조분왕助賁王

→ 첨해왕沾解王 → 미추왕味鄒王 → 유례왕儒禮王 → 기림왕基臨王 → 흘해왕訖解王까지

6대의 기간인 230년부터 355년까지인 125년간의 음악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렇게 기록에 일관성이 결여된 것은 국가가 체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마립간麻立干왕호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내물왕 때부터 체계화 된 점이 주목된다.

.....................................................................................................p.76-78

*) 실성왕, 진지왕과 같이 피살되거나 폐위된 군주시기에는 음악이 없다.

정통성을 잃거나 삼한三韓병합시기와 같이 진왕(辰王)에 종속된 때의 군주는 음악을 제 정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조선시대를 예로하여 조(祖)∙종(宗) 시호의 군주와 ~군(君)의 위상 차이에 따라)

 

 

 

이 기록은 「회악」이나 「신열악」∙「돌아악」∙「지아악」∙「사내악」∙「가무」∙「우식악」등은 모두 당시 신라의 악곡이며, 왕의 재위 순서대로 소개하였다.

이 기록에서 “가무笳舞는 내밀왕奈密王때 지은 것이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笳舞」의 笳가 바로 관악기와 관련이 있는 듯하며, 그것이 내물왕때 지은 것이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재위 기간인 356~402년 동안에 그 관악기가 존재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라토우가 출현하는 4~5세기에 해당하는 신라 관악기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笳舞」란 무엇인가?

........................................................................................................p.176

 

 

*) 마립간麻立干시대의 시작과 함께 신라 최초의 관악기 가笳가 등장한 정황.

 

중국음악학계에서‘笳’는 북방소수민족의 악기로 인식되고 있다.

........................................................................................................p.233

 

문헌기록에서 고구려와 백제에는 관악기‘笳’에 대한 기록이 없다.

...

그렇다면 신라4세기(내물왕 기)「笳舞」음악은 고구려와 백제 및 중국과 그 성격이 다른 독특한 음악으로 볼 수 있으며, 서역음악적 특징을 내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p.234

 

주변국에 모두 琴이 연주됐으나 신라琴처럼 5세기에 양이두가 있는 琴은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으며, 악기 중심부를 연주자 무릎위에 놓거나 바닥에 악기를 비스듬히 세우는 연주자세 역시 신라는 독특한 형태를 지녔으므로, 신라琴은 주변국의 琴과 다른 구조를 지닌 악기로 판단된다. 이렇듯 악기구조와 연주자세가 다른 것은 당시 음악 역시

주변국과 다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신라 특유의 음악을 연주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신라토우의 비파는 고구려∙백제와 그 형태가 다르며, 중국과 특히 호탄지역의 토우비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p.235

 

4`5세기 신라문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볼 때, 토우가 출토된 주된 묘제는 적석목곽분이었다.

적석목관분의 기원에 있어서 적석목곽분의 주인공들이 적어도 토착민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리고 적석목관분에서 출토된 유물의 성격이 유난히 북방미술의 요소를 강하게 반영한다.

........................................................................................................p.236

 

 

 

신라는 6세기에 접어들어 그 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급격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법흥왕(514-540)의 제도적 정비와 진흥왕(540-576)의 정력적인 영토확장 추진에 따른 눈부신 성공이 있었다. 따라서 신라가 왕권을 더욱 강화하여 성숙한 고대국가로 진전되는 것은 6세기 초, 법흥왕과 진흥왕대를 통해서였다. 이때 행해진 일련의 개혁조치들로 인하여 당시의 사회에 새로운 변화가 초래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는 지증왕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일련의 개혁에 의한 것으로 우경牛耕과 수리水利사업은 농업생산력의 발달을 가져 왔으며, 농업 노동력의 확보와 관계가 있는 순장殉葬의 금지도 있었으며, 또한 정치적인 개혁으로 국명 및 왕호의 한화정책漢化政策, 주군제도의 실시, 그리고 중국과의 통교는 상고사회에서 중고사회로의 변화를 예고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p.237


댓글 '1'

一道安士

2020.11.10 08:51:33
*.178.174.155

흥미있는 내용입니다. 삼국사기 등에서 고대 음악관련 기록을 뽑아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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