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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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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2019.07.06 15:49

일도안사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그동안 안녕하셨지요?.. 카오스입니다.
여전히 의욕적인 연구를 지속하시는 것 같아 부럽기도하고 또 크게 성원드립니다.
모처럼 웹 검색하다가 ‘4말5초, 복호와 미사흔의 인질기간’에 대해서 안사님께서 곤란을 겪으시는 것 같아, 외람되지만(?) 아이디어 한가지 소개 드립니다. 한번 참고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우선,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보고있는 ‘통설’에서 ‘잘 못 해석한 부분’을 먼저 지적해 두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즉, ‘삼국유사/紀異第一/奈勿王,金堤上/나물왕이 셋째 아들 미해를 일본에 보내다’란 내용의 원문,... “(전략)...長壽王又留而不送...至十年...乙丑王召集群臣及國中豪俠親賜御宴,...(후략)”에서 중간의 ‘至十年’은 앞문장[長壽王又留而不送]에 포함시켜 해석해야 하는데, 통설에서는 뒷문장[乙丑王召集群臣及國中豪俠親賜御宴]에 포함시켜 해석함으로서 첫 단추부터 삼천포로 빠지고 있습니다.

즉 이 문장[至十年]은, 앞문장에 붙여서 ‘장수왕이 또한 (寳海=복호)를 10년이 되도록 억류하고 돌려보내지 아니하였다[실제로는 복호가 419년에 돌아왔었으므로 (402~419=18년간;十數年) 억류된 것임]’로 해석하여야 하는데, 뒷문장에 붙여서 ‘19눌지10(426)년, 을축(425년)에...(이하생략)’으로 해석하게 되니 엉뚱한 ‘426년’이 갑자기 등장하게 되어서 스토리가 미궁속으로 빠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참고 : 그리고 또, 바로 뒤의 ‘乙丑’은 425년인데, 이는 앞의 ‘至十年’을 426년으로 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틀린 기록을 삽입한 것입니다. 머리좋은 일연선사의 친절함(?)에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일도안사께서는 내공이 있으시므로 그냥 통설을 따라 가지 않고, 슬그머니 무시해 버린 것 같더군요.]

(2) 다음, 왜왕(응신)이 ‘(백제가 지은 죄?) 때문에, 신라왕자 한분을 (인질로) 보내라’고 요구한 것은 17내물36(391=신묘)년이 맞지만, 신라17내물왕이 셋째아들 美海(미사흔,당시4歲:393生~433年41歲卒)를 왜국에 인질보낸 시기는 391년이 아니라 396년이고 왜국도착이 367년인데, 417년에 신라로 귀환했었으므로 [397~417=31년=30년?간 왜에 억류]된 것이 맞습니다.
[참고 : {백제가 지은 죄? = 백제17아신왕의 요청으로 백제로 파견되어 신라지역에 주둔하게 될 #2次열도응신군의 안전보장을 위함}이고, {美海年十歲 = ‘미사흔의 나이가 당시 10살’이란 말이 아니고, ‘미사흔은 (아직 인질로 보내기에 충분한 나이가) 아니다’라는 의미(일종의 反語法)임, 그래서 미사흔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言辭動止) 內臣朴娑覽을 副使로 함께 보냈었다는 것임]

(3) 안사님께서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17내물왕의 #2왕자 寶海(복호)는 18실성왕이 즉위하는 402년에 고구려로 인질 보내져서, 19눌지왕 즉위원(417)년 왜국에서 #3왕자 美海(미사흔)을 데리고 귀국한 박제상이 418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寶海(복호)를 귀국시키려 했었지만, 장수왕의 반대로 실패하자 무리하게 寶海(복호)를 몰래 탈출시키고 박제상 자신이 고구려에 남아서 ’제방 위(堤上)‘에서 화형당한 것임, 따라서, 寶海(복호)의 인질기간이 [402~419=19년間(十數年)]이 되는 것임
또, {朴娑覽(박사람)=朴氏집안사람=사실상 朴堤上을 말함}으로 추정되므로 박제상은 396년 처음부터 4살짜리 주인 美海(미사흔)을 모시고 왜국에 인질갔었다가 큰형인 7내물왕의 장자 19눌지가 왕으로 즉위하자 바로 왜국을 출발해서 417년에 신라로 돌아 온 것임. 물론 美海(미사흔)가 왜국에서 결혼한 아내[왜왕應神의孫女?]와 자식들이 바로 뒤따라 신라로 들어왔으며, 이후 美海(미사흔)과 박제상의 후손들이 신라조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들을 하게 된 것임

(4) 결국, 삼국사기, 일본서기, (심지어 남당유고 까지도) 한통속이 되어서 ‘4말5초, 복호와 미사흔의 인질기간’에 대해 왜곡된 기록을 남기고 잇지만, 13C에 이런 내막을 잘 아는 일연이 삼국유사에다가 ‘아주 교묘하게 꾸며진 스토리’를 삽입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實史를 알려주고 있는 것임.
[참고 ; 그러면, 왜 ‘이런 복잡한 왜곡을 하게 된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을 것인데...그것은, 중후기 신라사에서 ‘복호계와 미사흔계의 피비린내나는 동족상잔의 역사’에서 유추할 수 있음, 즉, 후대에 왜곡역사서를 펀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왕 왜곡해서 편찬하는 왜곡역사서이므로 그 흔적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었다고 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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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곱씹어 보시면,... 우리 후손들은 삼국유사를 남기신 일연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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