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Resources about Korean History

디지털의 옷을 입은 역사자료. 이제 史料는 공유되어야 한다.

VIEW

삼국유사 | 三國遺事

고려시대 일연에 의해 작성된 한국 고대 문화사의 최고 원천.

GO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고등학교 7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MORE

History through images & Photos, Maps

이미지와 사진, 그리고 지도로 본 역사

VIEW

오늘:
18
어제:
35
전체:
1,235,083

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 조선어(朝鮮語)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수도 평양. 이하 ‘조선 공화국’. 실제로 조선노동당도 자신의 나라를 ‘공화국’이라고 부른다)의 인민이 쓰는 말

 

* 일본어 : 이 글에서는 야운쿠르(아이누) 족과 유구(琉球. 오키나와)인의 말이 아니라, 일본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야마토 민족의 말을 가리킨다.

 

일본이 서기전 200년에 달아난 원(原) 한국인들(한국의 원주민들)과, 서기 2세기에 건너간 진한/신라/가야 사람들과, 서기 4세기 말 고구려군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 삼한백제 사람들과, 서기 7세기 중반에 신라에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달아난 고구려/남부여(南夫餘) 사람들이 만든 나라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어/조선어와 일본어에는 비슷한 낱말이 있다.

 

일본어로 ‘가(が)’는 한국어/조선어로 ‘~가’라는 뜻이고, ‘히(ひ)’는 ‘해(태양)’라는 뜻이며, ‘우스(うす)’는 ‘소(牛)’라는 뜻이고, ‘다(だ)’는 ‘~다.’라는 뜻이다. 또 ‘야마(やま)’는 ‘산(山)’이라는 뜻인데, 산은 순우리말로 ‘뫼’이므로 이것도 두 언어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증거일 수 있다. ‘카미(かみ)’라는 일본어는 신(神)이라는 뜻인데, 신은 옛 우리말로 ‘고마’/‘거무’다. ‘곰’이라는 뜻을 지닌 ‘쿠마(くま)’라는 일본어 낱말도 세 언어가 비슷함을 시사한다. 일본 동북(東北) 지방의 사투리로 ‘만즈(まんず)’는 ‘먼저’라는 뜻이라는 것도 지적해야겠다.

 

하지만 일본어가 한국어/조선어와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낱말 가운데는 확실히 다른 것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키(き)’는 일본어로 ‘나무’라는 뜻인데, 이 두 낱말은 발음이 완전히 달라 얼핏 보면 다른 근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하하(はは)’는 일본어로 ‘어머니’라는 뜻인데, 이 말도 한국/조선어의 ‘어머니’와는 많이 다르다. 또 ‘나라’라는 뜻을 지닌 ‘쿠니(くに)’는 한국어/조선어 낱말인 ‘나라(국가國家)’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것 같다. ‘토끼’라는 뜻을 지닌 ‘우사기(うさぎ)’도 발음이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말인데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역사적인 경험에서 찾는다. 서기 668년 이후 신라인/고려인/조선인이 겪은 일을 일본인이 겪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조선어와 일본어가 달라진 것이다.

 

서기 698년(이 해에 진, 즉 발해가 세워지고 양국시대 - 남북국시대 - 가 시작됨) 이후의 역사를 간단히 훑어보자. 신라인의 땅(발해 남쪽의 신라 뿐만 아니라 남부여가 망한 뒤 소속을 신라나 당나라로 바꾼 옛 백제 담로도 포함된다)에는 아랍인 무슬림이 건너왔다. 아랍 무슬림 학자가 쓴 중세 이슬람 문헌에는 신라임이 분명한 ‘알(Al) - 실라(Silla)’라는 땅에 많은 무슬림이 건너가서 사는데, 그곳의 기후가 좋고 땅이 아름다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이 신라로 망명한 아랍인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경주에는 아랍인과 비슷하게 생긴 무인(武人)이 돌에 새겨져 있는데, 이 석상은 실제로 아랍인을 보지 않았다면 만들어질 수 없다(내가 5~6년 전 잡지에서 읽은 글에 따르면, 한국에 온 팔레스타인 시인은 그 석상을 보고 ‘서西아시아 사람 같다.’고 말했다).

 

사람이 건너왔다면 당연히 그들이 쓰는 말도 건너왔을 테고, 그렇다면 원주민이 이민자의 말에 영향을 받아서 그들이 쓰는 말을 바꾸거나 이민자가 - ‘적응’하려고 - 원주민의 말을 빌려 쓰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신라어와 아랍어가 섞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아랍어 낱말에는 한국어/조선어 낱말과 발음/뜻이 똑같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예)

 

- ‘아부(Abu)’ : (~의) 아버지 (아랍어)

 

- 움미/움므 : (~의) 어머니 (아랍어)

 

- 아얀 : 아파요 (아랍어)

 

- 와(wa) : ~와/과 (아랍어)

 

- 사바흐 : 새벽 (아랍어)

 

‘아부’와 경상도 사투리인 ‘아부지(아버지)’가 비슷하고, ‘움미’는 한국어/조선어에서 어머니를 일컫는 말인 ‘엄마’와 비슷하다. 또 한국인/조선인도 아플 땐 “아야!”라고 외친다. ‘와’는 발음과 뜻이 모두 아랍어와 같다(사바흐와 새벽이 발음이 비슷하고 뜻이 같다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신라/고려인이 아랍어 낱말을 빌렸거나, 아랍인이 신라어/고려어 낱말을 빌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텐데, 아랍인이 신라나 고려에 찾아왔다는 기록은 있어도 신라인이나 고려인이 대식국(大食國 : 아랍)으로 찾아갔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으므로 일단은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한다.

 

양국시대(남북국시대)에 영향을 미친 말이 아랍어였다면 고려와 조선왕조의 말에 영향을 미친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말이 키타이(거란)어와 주션(여진女眞을 주션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알고 싶은 사람은 이 누리집의 <기타> 카테고리에 있는「▩여진(女眞)이라는 이름에 대한 고찰」을 참고하라)어라고 생각한다.

 

키타이족은 고려 초에 강감찬 장군에게 패해 포로가 되거나, 고려 중기에 고려로 내려와 약탈하다가 고려군에게 패한 뒤 고려 땅 안으로 뿔뿔이 흩어졌고(<기타>에 있는「한국사의 요나라 계승」참고), 주션족은 흑수말갈로 불리던 시절 고려에 투항하거나(<기타>에 있는「▩고려의 흑수말갈족/달고족 동원」참고), 고려 말 조선 초에 남쪽으로 내려왔다(『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초기에 주션족이 조선에 투항했다는 기사가 여러 개 나온다. 나는 본명이 퉁 두란티무르인 이지란 뿐 아니라 이성계도 주션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들이 고려에서는 화척(禾尺)이라고 불리고 조선에서는 백정(白丁)이라고 불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먼저 들어온 아랍인과는 달리 차별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지만, 토박이들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따라서 말(언어)을 포함한 이들의 문화는 이 땅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는 네 언어(한국어/조선어/키타이어/만주어)를 견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

 

- 네리/너리 : 날(日) (키타이어) -> 너리 -> 널 -> 날?

 

- 타으 : 다섯(5) (키타이어) -> 타으 -> 다우 -> 다수 -> 다섯?

 

- 위 : 일 (키타이어) -> 위 -> 이 -> 일?

 

- 알가스 : 살갗 (키타이어) -> 알갓 -> 살갗?

 

- 수두리 : 역사 (키타이어) -> ‘사람들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 -> 수다?

 

(글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집안의 내력이나 옛 일을 한 사람이 통째로 외운 뒤,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함으로써 널리 알렸다. 이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크게 떠드는 일은 자신이 겪은 일이나 보고 들은 일이나 아는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역사를 말하다’ -> ‘크게 떠들다’라는 뜻으로 ‘수다’라는 말이 뿌리내린 것으로 보인다)

 

- 장끼(주션어) = 수컷 꿩

 

- 어전 : 낮은 벼슬아치(만주어) = 아전(衙前)

 

- 암반(amban) : 대신(大臣) - 만주어 (‘양반[兩班]’이 ‘암반’과 비슷하다는가설을 접한 적이 있음)

 

- 무커 : 물(水) - 만주어

 

- 물 : 한국/조선어

 

- 교로(gio ro) : (씨족[氏族]) - 만주어

 

- 겨레 : 집안/씨족/일족 (조선어)

 

- 이 : ‘~의’(of) - 만주어

 

- 의 : 한국/조선어

 

- 가타이 : 갑자기(만주어)

 

- 부스부스 : 부슬부슬(만주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볼 때, 한국어/조선어의 변화는 단순히 새 낱말이 옛 낱말을 대신하는 선에서 그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양국시대부터 있었던 말들이 새로 들어온 말들과 섞였고, 그럼으로써 전혀 새로운 말이 나타났다. 나는 언어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내 가설을 입증할 만한 사례로 몇몇 낱말을 보여줄 수는 있다.

 

우선 아랍어와 신라어가 섞여서 만들어진 낱말이 있는지 살펴보자. 일본어가 한국어/조선어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을 괴롭힌 문제는 세 언어에 나오는 기본 낱말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 예로, 父를 뜻하는 일본어는 ‘오야지(おやじ)’인데 한국어/조선어로는 같은 말이 ‘아버지’다.

 

내 생각으로는 원래 신라인도 ‘오야지’라는 말을 썼으나, 신라 후기에 아랍어 ‘아부(Abu)’가 들어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두 말이 뒤섞여 ‘아부(Abu) + 지(じ)’ -> ‘아부지’ -> ‘아버지’라는 말이 된 듯하다.

 

키타이어에도 이와 같은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키타이어로는 토끼가 ‘퇴리’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지만 고려 초기까지는 ‘우사기’라는 말이 쓰였는데, 키타이인이 들어온 뒤로는 ‘퇴리’라는 말도 쓰였고, ‘퇴리 + 우사기의 기(ぎ)’ -> 퇴기 -> 퇴끼 -> 토끼의 순으로 말이 바뀐 것 같다.

 

주션어(훗날의 만주어)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만주어로 나무(木)는 ‘무(moo)’고 일본어로는 ‘키(き)’인데, 조선 초기의 문헌에는 나무가 “남가”로 나온다. ‘키’가 ‘남가’와 같은 뿌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남가’라는 말이 있었는데, 나중에 고려와 조선에 들어온 주션족의 말인 ‘무’가 그 말과 경쟁했고, 남가의 ‘가’가 탈락하고 대신 ‘무’가 들어와 ‘남가’ + ‘무’ = ‘나무’가 된 것은 아닌지.

 

(할하 몽골어가 고려의 말에 영향을 끼쳤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일부러 다루지 않았다. 사족이지만 나는 고려 말기에 들어온 위구르어도 우리말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동東 투르키스탄[중국 이름 신장]을 다녀온 한국인의 말에 따르면 위구르인들은 ‘여’나 ‘이봐’라는 뜻인 ‘어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일본은 서기 8~9세기에 하이(蝦夷. 일본어로는 ‘에미시’)의 땅(일본 본주本州 동북부)을 정복하고 그들을 서일본으로 끌고 온 것을 빼고는 외부세계와 접촉한 경험이 없었고, 당나라나 북송과 교류한 것은 일시적이었기 때문에 신라나 고려나 조선처럼 말이 완전히 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세 언어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서기 7세기에 결별한 뒤 다른 길을 걸었고, 정치적/군사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오늘날에는 완전히 다른 언어가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정치사나 전쟁사는 언어를 포함한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댓글 '6'

一道安士

2013.02.01 00:42:20
*.179.113.186

한국어를 우랄알타이어로 딱 잘라 분류할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엇습니다. 결국 이런 지속적인 사람들의 이주와 교류가 만든 복합적 요소들이 한국어를 일본어보다 더 다양한 어휘와 표현을 품은 언어로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조약돌

2013.02.01 16:09:55
*.118.123.7

저 또한 그 학설(한국어/조선어가 우랄 -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는 학설)에 의문을 품습니다. 설령 뿌리가 그 어족에서 갈라져 나왔다 하더라도, 역사적인 경험(교류와 이주와 정착과 혼합)이 원래의 어족과는 다른 말을 만들어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 남부의 입말(구어口語)들 - 예컨대 절강어나 남경어나 광동어나 복건어(민남어) - 도 우리말과 함께 견주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제인이 이 지역에 건너가서 살았거나, 아니면 교류했으니까요. 불행히도 제가 그 말들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이 글에서는 실례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방카이

2013.02.24 09:53:34
*.83.153.194

쓰신글의 기본 가정은,

고대 삼국시대 언어 : 고구려어 = 백제어 = 신라어 = 일본어
남북국 시대이후
- 한반도 : 삼국시대 언어 + 각종 정치/사회/문화적 교류로 인한 변수
- 일본 : 고대 삼국시대 언어 유지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방카이

2013.02.24 10:09:00
*.83.153.194

혹시, 상기 가정 중에서.....

고구려어 = 백제어 ≠ 신라어 였을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신라어가 고구려 및 백제어와 완전 다르지는 않았겠지만, 고구려 및 백제와 신라간에는 지배층의 태생이 달랐기 때문에

신라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와는 어순 및 문법은 동일하나 다른 단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거 같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저는 궁금한게,

만주어(주션어)관련해서요....

말갈족 --> 여진족 --> 만주족으로 변화해 왔다는 가정하에서 보면,

말갈어 --> 여진어 --> 만주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말갈이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민족, 고구려의 평민, 고구려의 일부 등의 관점으로 이해되는 점을 감안하면,

말갈과 고구려는 동일한 언어를 썼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솔직히 말갈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되는 의문인 것 같습니다.

나촴

2015.01.23 01:07:19
*.180.40.153

그러니까 왜 자꾸 말을 바꾸냐고... ㅡㅡ;;

ㅋㅋ

2015.03.07 01:06:47
*.163.23.86

아버지같은 아주 기본적인 어휘가
데체 아랍인이 몇명이나 와서 아랍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말을 얼마나 썼길래
그게 바뀝니까?ㅋㅋ

무슨 삼한시대 일부 고립된 몇십명 사는 마을에
아랍인이 신문물을 들고와서 단어를 소개해줬으면 또 모를까...

수백년을 전재왕국으로 살아온 나라에서, 그것도 아주 기본적인 어휘인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가
아랍인 몇십, 몇백명이 왔다고
그게 섞여요??
어이업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63934

백제사 후한서 其南亦與倭接에 대한 생각 [1]

  • 2008-05-30
  • 조회 수 182528

변진의 남쪽에 왜가 있었을까요? 우연히 생각이 난것인데요. 고구려의 변방을 지키는 무리를 말갈이라고 불렀듯이, 삼한의 변방(특히 바닷가)를 지키던 무리를 왜라고 부른 것은 아닐까요? 고구려를 낮추어 말갈이라고 하듯이 광개토왕 비문에 삼한을 낮추어 ...

기타 杵の Special Meaning [1]

  • 박규호
  • 2012-10-13
  • 조회 수 47299

杵の Special Meaning <杵>という字は 特別な意味が あります. その意味は何でしょうか? <杵>は人名に使われる時むやみにちょうど使われる字ではないです. この字は<天皇>を意味します. *きね= 杵 現代日本語発音は [きね]です. 古語発音は [きに]です. *きに=...

기타 공개강연을 마치고 [8]

  • 2010-06-13
  • 조회 수 21789

마립간신라의 기원에 관한 공개강연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비가 와서인지 월드컵이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예상보다 적게 오셨습니다. 포럼 설비 사정상 1시간 가량 늦게 시작하였습니다. 1부는 그림으로, 2부는 삼국사기로 총 1시간 40분 가량 ...

백제사 서명천황

  • 2004-02-21
  • 조회 수 19035

11년; 7월, 조칙을 내려 “금년에 큰 궁궐(백제궁)과 큰 절(백제대사)을 만들어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百濟川 옆을 궁궐터로 하여 서쪽의 백성은 궁궐을 짓고 동쪽의 백성은 절을 지었다. 12월, 百濟川 옆에 9층탑을 세웠다. 12년; 10월, 百濟宮으로 거처를 ...

백제사 비류왕의 집권과 계왕의 실각

  • 2010-11-17
  • 조회 수 15922

계왕은 분서왕의 長子로서 재위 3년 만에 죽는데 그 주변의 왕통변화가 다음과 같다. 1) 비류왕 → 계왕 →근초고왕 2) 구수왕 → (제2자) 비류왕 → (제2자) 근초고왕 분서왕이 갑자기 죽자 한성백제의 왕권이 분서왕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말갈왕통을 벗어나 비...

백제사 전남 고흥반도 길두리에서 5세기 금동관(모) 발견

  • 2006-03-26
  • 조회 수 11327

전남 고흥반도에서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발굴되었는데 그곳에서 이전 5세기 백제영역에서 나온 것과 유사한 형태의 금동관이 발굴되었습니다.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안동(雁洞·기러기동네) 고분 > 1) 이 ...

백제사 전방후원분 돌아보기

  • 2005-10-31
  • 조회 수 10672

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101&id=312&mode=vote_good인터넷 뉴스를 보니 한강유역에서 전방후원분으로 추정되는 대형고분 10여기를 찾았다고 한다. 대형고분이란 정복자의 상징이다. 한강유역의 정복사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전방후원...

기타 동양연표올립니다 file

  • 2010-05-24
  • 조회 수 10300

삼한사의 재조명 뒤에 붙은 동양연표를 약간 업데이트 한 것인데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삼한사의 재조명이 없는 분들을 위하여 올립니다. 일본서기나 가야사 볼 때 유용할 것입니다. 혹시 보시다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거든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삼한사...

기타 ▩한국어/조선어와 일본어가 달라진 까닭 [6]

  • 2013-01-21
  • 조회 수 9413

* 조선어(朝鮮語)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수도 평양. 이하 ‘조선 공화국’. 실제로 조선노동당도 자신의 나라를 ‘공화국’이라고 부른다)의 인민이 쓰는 말 * 일본어 : 이 글에서는 야운쿠르(아이누) 족과 유구(琉球. 오키나와)인의 말이 아니라, 일본 인...



LOGIN

SEARCH

MENU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