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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이사금의 시호가 지닌 뜻

신라사 조회 수 428 추천 수 0 2016.07.22 15:28:14
▷◁조약돌 *.167.243.146

제가 10년 전에 꺼낸 가설과, 6년 전부터 생각했던 것들과, 올해(서기 2016년 현재) 생각해낸 것을 한 데 엮어서 올립니다.


먼저 글 한 편을 인용 하겠습니다 : ↓


(인용 시작)


내물마립간의 성과 이름은?


“그야 삼국사기에 성은 金이라고 했으니까 김씨고, 이름이야 내물왕이니까 내물이겠지.”하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김이라는 성과 내물이라는 시호는 훗날 신라사를 쓸 때 받은 것이지 당시의 이름은 아니다. 그러면 당시의 내물마립간의 성과 이름은 무엇인가?


(힌트) 답이 이미 나왔음.


<삼국사기 : 내물이사금, 삼국유사 : 내물마립간>


내가 “내물마립간”이라고 한 이유는 우리 학계의 정설이 삼국유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그 나라의 국가원수의 이름을 물어보며 안부를 교환하는 것이 외교의 상례이다.


신라는 제 17대 내물이사금 26년(A.D 381) 신라사 최초로 중국에 사신을 보낸다. 다음의 이야기는 신라 사신 衛頭가 당시 북중국의 패자였던 秦(前秦)왕 符堅(부견)을 만나서 나눈 대화 내용을 알기 쉽게 극화한 것이다.


“海東의 사정이 예와 같지 않다니 어찌된 일인가? 시대가 바뀌면 명칭도 바뀌는데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 신라왕의 이름은 무엇인고? 예, 마 립간(樓寒)이라 하옵니다.<通典>”


이것을 종래의 학계는 아시아 촌구석 시골나라(계림국 - 옮긴이) 사신이 최초로 북중국에 나갔다가, 왕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그만 왕에 대한 호칭을 물어보는 것으로 착각하여 東問西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신라사신은 동문서답하지 않았다. 내물왕의 성과 이름은 마립간(모루한)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나중에 신라사를 기록할 때 모루한과 비슷한 발음을 가지는 한자들 중에서 모(麻)씨로 세운(立) 왕(干)이란 뜻을 가진 마립간을 선택한 것이다.”


- 김 상,『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 240 ~ 242쪽 


(인용 끝)


이 글에 따르면 내물이사금(내물마립간)은 원래 김씨가 아니고, 이름도 내물이 아닙니다. 그의 성은 ‘모’씨고 이름은 ‘루한’입니다. ‘내물’은 그가 죽은 뒤 받은 시호입니다.


그럼 모루한은 왜 ‘내물(奈勿)’이라는 시호를 받았을까요? 제가『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아래 ‘『네티즌 고대사』’로 줄여서 부름)와『삼한사의 재조명 1』을 읽어보았는데, 일도안사 님도 이 의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셨더군요. 그래서 제가 수수께끼를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삼국유사』와『삼국사기』를 읽어 봅시다.『삼국유사』「기이」<내물왕과 김제상>조를 보면, 내물이사금이 나밀왕(那密王)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사금’과 ‘마립간’과 ‘왕’은 셋 다 ‘군주/임금’을 일컫는 말이므로, 여기서 건질 수 있는 것은 ‘내물’을 ‘나밀’이라고도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신라본기」<내물이사금>조를 보면, “내물(奈勿)은 혹은 나밀(那密)이라고도 한다.”는 주석이 나옵니다.


이 두 시호의 뜻이 무엇일까요? 한자말일까요? 그렇다면 한자의 뜻을 살펴봐야 하겠지요. 자전(字典)을 뒤져봅시다. 두 시호에 쓰인 한자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내(奈) : 어찌(이 경우에는 ‘나’로 읽는다)/어찌할꼬/능금나무/대처하다/대응하다/견디어 내다/지옥이나 나락(이 경우에도 ‘나’로 읽는다)/왜(까닭)


- 물(勿) : (~하지)말다/말라/말아라/아니다/깃발/아니하다/근심하는 모양/부지런히 힘쓰는 모양/분주한 모양/(먼지를)털다(이 경우에는 ‘몰’로 읽는다)/문지르다/쓰다듬다/깃발/급작스러운 모양/없다/정성스럽다


- 나(那) : 어찌/어떻게/어찌하랴/어떻게 하느냐/나라 이름(西夷[西戎]의 하나)/어느/어떤/많다/편안하다/어조사(이 경우 ‘내’로 읽는다)/무슨/무엇/많다/땅 이름/아름답다/저/저것/도읍/크다/다하다


- 밀(密) : 빽빽하다/촘촘하다/조용하다/고요하다/깊숙하다/그윽하다/자세하다/은밀하다/숨기다/편안하다/가깝다/가만하다/차근차근하다


만약 한자의 뜻을 따를 경우, 내물(奈勿)은 ‘어찌(奈) (~ 하지) 말라고 하겠는가?’나 ‘능금나무(奈)가 아니다(勿)’라는 뜻이 되고, 나밀(那密)은 ‘어찌 (이리) 빽빽한가?’나 ‘어떻게 하느냐? 고요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한마디로 시호로 쓰이기는 어색한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두 시호는 한자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한자의 소리를 빌려서 배달민족의 말을 적었다는 것뿐인데요, 만약 이것들이 이두(이 말은 편의상 빌려온 것입니다. 저도 이두를 정리한 사람이 통일신라시대와 양국시대[남북국시대]에 살았던 설총이라는 건 알아요)라면, 도대체 어떤 말을 옮겨 적은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 이번에는 한자의 발음을 살펴보겠습니다. 


- 내(奈) : ‘어찌’나 ‘지옥’이라는 뜻으로 쓰일 경우 ‘나’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 물(勿) : ‘(먼지를) 털다.’라는 뜻으로 쓰일 경우 ‘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 나(那) : 어조사로 쓰일 경우 ‘내’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원칙에 따라 ‘내물(奈勿)’을 읽을 경우 내물은 ‘나물’이나 ‘나몰’이나 ‘내몰’로 읽을 수 있고, ‘나밀(那密)’은 ‘내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내’를 ‘나’로 읽을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또 “물의 우리 옛말은 ‘믈’(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 아래 존칭 생략)”인데, 이는 “신라 계통의 말(이영희)”이고, “고구려 계통의 말은 ‘밀’(이영희)”이며, ‘밀’은 “받침을 지우고 흔히 ‘미’라 했다(이영희).”는 연구결과로 미루어 보면, ‘물’과 ‘밀’은 모음만 다를 뿐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내물’과 ‘나밀’은 같은 말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물’은 ‘나물’, 그러니까 시금치나 콩나물을 일컫는 말일까요? 그건 아닙니다.『삼국사기』나『삼국유사』에 내물이사금이 나물을 특별히 좋아했다는 기록이 없고, 만약 ‘내물’이 나물이라면 ‘내물’ 앞에 ‘좋아하다.’라는 뜻인 ‘호(好)’가 붙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물’은 나물이 아닙니다.


다른 가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내물’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말이 혹시 ‘냇물’이라는 뜻은 아니냐는 의문이 듭니다. 만약 모루한(강세, 내물이사금)이 죽은 뒤 냇물 옆에 있는 땅에 묻혔다면, ‘냇물이 흐르는 땅에 묻힌 임금’이라는 뜻으로 ‘냇물이사금’이라고 불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이웃나라인 고구리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따르면 서기 197년에 세상을 떠난 고구리(고구려) 태왕(太王) 고남무는 “고국천의 언덕”에 묻혔기 때문에 ‘고국천왕’이라는 시호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내물이사금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은 주위에 냇가나 강이 없고, 무덤 둘레에 도랑(주구)이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이 시호는 냇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한자말도 아니고, 나물도 아니고, 냇물도 아니라면 ‘내물’이라는 시호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저는 이 말이 ‘땅 되돌린’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는 ‘나’로 읽을 수 있는데, 이 ‘나’는 고대 배달민족의 말로 ‘땅’이라는 뜻이고, ‘물’은 ‘무르’나 ‘무루’로 읽을 수 있는데, 이는 배달민족의 말인 ‘무르다’의 어근인 ‘무르’와 비슷합니다. 국어사전을 뒤져보면, ‘무르다’는 “샀던 것을 (그 임자에게) 도로 주고 돈을 되찾다.”(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되찾다.’라는 말입니다!)는 뜻입니다. ‘물’이 ‘물리다.’가 줄어든 말이라고 본다면, ‘물리다’에는 “값을 치르게 하다. 손해를 갚게 하다./권리나 재물이나 지위 같은 것을 남에게 내려 주다./사람이 샀던 물건을 도로 주고 돈이나 물건을 되찾게 하다.”는 뜻이 있으므로, ‘내려주다/되찾게 하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물’(나물/나밀)이라는 말은


- 내 : 나 → 땅


- 물 : 되찾은/내려준


이므로 ‘땅을 되찾은’이나 ‘땅을 (후손에게) 내려준’이라는 뜻입니다. 모루한(강제)은 삼한백제의 담로인 신라로 내려와서 임나가야(변한)를 무찌르고 신라가 임나가야와 삼한백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므로(신라의 독립), 신라인에게는 독립영웅입니다. 당연히 신라인은 그를 부를 때 ‘땅’, 그러니까 ‘나라’를 ‘되찾아준’ 이사금이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모루한을 따라온 흉노계 선비족(전연 사람들)은 그가 신라 땅에 만든 나라(계림국)을 이어받습니다. 그들은 나라와 그 땅을 내려준 사람을 ‘땅 내려준 임금’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이로써 내물이사금이 한 일과 그의 시호가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단, 그렇다고 해서 한자의 뜻이 시호나 그 시호를 받은 사람과 완전히 상관이 없지는 않습니다.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내물이사금의 삶이 드러나고,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奈)에는 ‘대처하다/대응하다/견디어 내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평생 임나가야와 삼한백제에 맞서 싸워야 했고, 말 그대로 전쟁을 견디어 내야 했던 내물이사금의 삶을 드러내고, 물(勿)에는 ‘근심하는 모양’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것도 내물이사금이 삼한백제에 맞서고 고구려의 비위를 맞추면서 - 그리고 고구려의 삼한백제 공격으로 한꺼번에 계림국으로 밀려든 백제 난민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 살았던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나밀의 나(那)에는 ‘“서이(西夷)의 하나”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라는 뜻이 있는데, 서이는 서쪽 오랑캐, 그러니까 중국 서북부에 살던 서융(西戎)이라는 뜻입니다. 이 한자는 내물이사금이 서역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 내물(나밀)이라는 시호에는 ‘(적군에)대응하며 (괴로움을) 견디어 낸’이라는 뜻도 있고, ‘근심한’이라는 뜻도 있으며, ‘서역 사람인’이라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그가 서역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무덤에서 사산 왕조의 은그릇이나 로마 유리가 나온다는 것으로 입증됩니다).


신라의 사관(史官)들은 한자의 소리를 빌려 배달민족의 말을 적되, 아무 한자나 고른 게 아니라 시호를 받는 사람의 삶이나 행동과 관계가 있는 뜻을 지닌 한자를 골라서 시호를 지음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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