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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기 仇知王(구지왕)

조회 수 4755 추천 수 0 2008.04.29 08:45:31
백제왕기 仇知王(구지왕)

http://mf.history.go.kr/Pdf/MF0020000/00322340.pdf (19p~ )


諱伯古 己婁王第七子 而盖婁王之異母弟也 寬仁有聖德 國人敬慕之曰“仇臺王復來矣” 時盖婁王同母弟皆持寵 擅威不得人心 盖婁王深疾之 臨崩謂其后沙氏曰 “吾弟雖多唯?伯古最賢 吾死而汝子皆幼 若諸弟得志 必不利於汝子 未若迎伯古以爲汝繼夫” 沙氏乃以深夜密納宮中 是夜雪深丈餘 諸王弟皆不能知

휘는 伯古(백고), 기루왕의 7번째 아들이며 개루왕의 배다른 동생이다. 너그럽고 인자하며 성덕이 있으니 나라사람들이 그를 敬慕(경모)하며 말하길 "仇臺王(구대왕)이 다시 왔구나"라고 하였다. 이때 개루왕의 同母(동모) 동생들이 모두 왕의 은총을 믿고 위세를 마음대로 하여 인심을 얻지 못하였다.
개루왕이 이를 심히 싫어하였다. 죽음에 임하여 왕후 沙氏(사씨)에게 말하기를,“내 아우들이 비록 많으나 오로지 백고가 제일 현명하다. 내가 죽고 나면 너의 아들들이 모두 어리니, 만약 여러 아우들이 뜻을 얻게 되면 필시 너의 아들들에게 불리할터이니 백고를 맞아 들여 너의 繼夫(새남편)로 삼음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후 사씨가 이내 깊은 밤에 몰래 백고를 궁중으로 맞아드렸다. 이날밤 눈이 수 장넘게 내려서, 여러 왕의 동생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元年 戊辰 十二月 以沙氏爲后 立母屹氏爲太后 王潛邸時納舍人賈杞妻苩氏 生子仁及女苩花甚有寵 至是命復歸賈杞 命杞子其?子女.

원년(AD188) 무진 12월 사씨를 왕후로 삼고, 어머니 屹氏(흘씨)를 태후로 삼았다. 왕이 潛邸(잠저)할때 舍人(사인)인 賈杞(가기)의 처 苩氏(백씨)를 맞아들였는데, 백씨가 아들 苩仁(백인)과 딸 苩花(백화)를 낳으니 총애를 많이 받았다.  이때에 이르러 賈杞(가기)에게 복귀를 명하였고 杞(기)의 아들에게 명하여 왕의 자녀들과 어울리도록 하였다.(왕이 賈杞의 자녀를 왕의 자녀로 삼았다)

*구지왕의 원년은 AD188년.
*구지왕이 賈杞의 자녀를 취해 왕의 자녀로 삼은 듯합니다.
*賈=가,고 ㉠성(姓)의 하나 ㉡값 ㉢나라 이름 ⓐ장사 (고) ⓑ장수, 상인 (고) 등등.
*命復歸賈杞
아마도 왕은 賈杞에게 복귀를 명한 걸로 봐서 賈杞는 자기 아내를 가로챈 일에 대해 반발했었나 봅니다.

二年 己巳 二月 遣使于新羅 遼東太守公孫度王遣使請和 王亦遣胞弟大知獻方物.

2년(AD189) 기사 2월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 요동태수 공손탁왕이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였다. 왕 역시 胞弟(포제:동복 동생) 大知(대지)를 보내어 방물을 바쳤다.

三年 庚午 三月 公孫度王以女宝婁歸王曰 “聞王未有室家 故敢以賤息往 奉巾櫛 幸勿棄焉” 王乃以白馬三雙爲幣以娶焉. 十月 王助遼富山之軍 大獲捷利.

3년(AD190) 경오 3월 공손탁왕이 딸 宝婁(보루)를 구지왕에게 시집보내며 말하기를 “왕이 室家(실가)가 없다고 들었는데 고로 감히 천한 자식을 보내니 아내로 삼고 행여나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내 백마 3쌍을 폐물로 삼고 宝婁(보루)를 취하였다. 10월 왕이 멀리 富山(부산)의 군대를 도와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室家=실가, 가정(家庭), 일가(一家)
*歸=귀, [동사] 여자가 시집을 가다. (중국어 사전에 나와 있음.)
*賤息=천식, 천한 자식.
*巾櫛=건즐, 수건과 빗 : 여자가 아내나 첩이 됨.
*勿=물, 부사로서 동사앞에 쓰여.. "~하지말라" 금지나 충고를 나타냄.
*후한말, 요동태수 공손탁은 백제와 혈연으로 맺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四年 辛未 四月 獵于漢山.

4년(AD191) 신미 4월 한산에서 사냥을 하였다.

*개로왕 4년조와 동일.
* 60년 차이가 납니다.
(四年 夏四月 王獵漢山
4년(131년) 여름 4월 왕이 한산(漢山)에서 사냥하였다. )

五年 壬申 二月 築北漢山以備高句麗. 八月 新羅王逸聖立 遣使來貢.

5년(AD192) 임신 2월 고구려에 대비하여 북한산(성)을 쌓았다. 8월 신라왕 逸聖(일성)이 즉위하였다.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개로왕 5년조와 동일.
(五年 春二月 築北漢山城
5년(132년) 봄 2월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쌓았다.)

七年 甲戌 二月 王后沙氏崩 王請婚于新羅. 七月 新羅以近宗女勿氏歸我 勿氏母乃新羅先王祗摩之女密華夫人也. 其容色秀於國中 勿氏亦色之尤者 王大喜之厚待其使小光而歸.

7년(AD194) 갑술 2월 왕후 沙氏(사씨)가 죽었다. 왕이 신라에 청혼하였다. 7월 신라가 가까운 종실의 딸, 勿氏(물씨)를 우리에게 시집보냈다. 勿氏(물씨)의 어머니는 신라의 선왕이였던 祗摩(지마)의 딸, 密華夫人(밀화부인)이다. 容色(용색)이 나라안에서 빼어났으며, 勿氏(물씨) 역시 빼어난 사람이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며 그 사신 小光(소광)을 후대하여 돌려 보냈다.

十年 丁丑 五月 麗延優逐其兄而奪其嫂 公孫度王欲問罪 命我出兵 王謝 以 同祖之國不忍相殘 公孫度王不悅. 十月 勿氏生王子餘勿 遣使新羅告慶 新羅以勿氏胞兄吉宣來賀獻物 王以私女苩花妻吉宣 苩花年才十一 未能當夕 王使其母苩氏當之 吉宣乃率其母女而歸 苩氏夫賈杞爲之心疾而死 人皆憐之.

10년(AD197) 정축 5월 고구려의 延優(연우;산상왕)가 그의 형(발기)을 내쫓고, 그 형수(우씨)를 빼앗았다. 공손탁왕이 죄를 묻고자 우리 군대가 출병하도록 명령하였으나, 왕이 같은 조상의 나라끼리 서로 죽이는 것은 잔인하지 않은가하며 사죄하였다. 공손탁왕은 불쾌해 하였다.
10월 勿氏(물씨)가 왕자 餘勿(여물)을 낳았다.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경사를 알렸다. 신라는 勿氏(물씨)의 胞兄(포형;같은 어머니로서 오빠)인 吉宣(길선)을 보내어 축하하고 선물을 보냈다. 왕이 私女(사녀)인 苩花(백화)를 吉宣(길선)의 처로 삼게 하였으나, 백화의 나이가 11세라 아직 잠자리를 할 수 없으므로, 그 어머니인 백씨로 대신하게 하였다. 길선이 이내 그 모녀를 데리고 돌아가자, 苩氏(백씨)의 남편이였던 賈杞(가기)가 마음에 병을 얻어 죽었다. 사람들이 그를 불쌍하게 여겼다.

*197년, 丁丑, 후한(後漢) 건안(建安) 2년
*奪=빼앗을 탈.
*延優(연우)= 고구려 산상왕, 즉위년은 197년으로 기년 확인에 있어, 두번째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고구려본기
산상왕 원년 (197년)
山上王 諱延優 一名位宮 故國川王之弟也
산상왕의 휘는 延優(연우)이며, 일명 位宮(위궁), 고국천왕의 동생이다.)

十七年 甲申 九月 公孫度王薨 太子康立 王遣使吊慰之.

17년(AD204) 갑신 9월 공손탁왕이 죽었다. 태자 공손강이 즉위하였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고 위로를 하였다.

二十二年 乙丑 十月 麗延優移都丸都 卑詞請和 王畏公孫康王 不敢顯待 而令太子苩仁密待其使於境上 以送之.

22년(AD209) 을축 10월 고구려왕 延優(연우)가 丸都(환도)로 도읍을 옮겼다. 卑詞(비사)가 화친을 청하였다. 왕이 公孫康王(공손강왕)을 두려워하여 감히 들어내어 대접을 못하고, 태자 苩仁(백인)에게 명하여 그 사신을 은밀히 국경에서 접대하게 하고, 이로써 돌려보냈다.

*卑詞=선비의 대신?
*词臣 [명사] 문학 시종 대신(文學侍從大臣).

二十四年 辛卯 七月 吉宣以其妹勿氏年過三十 而多産子女 色漸褪?耗 請以其女田氏媵之 王大喜納之 田氏母彭田領來館于龜宮 王密詣龜宮 不能待期而先通 田氏皃似勿氏 而尤美 王沈惑之 乃拜吉宣爲佐平 彭田爲國夫人 賜以莊園奴婢 如王子例 彭田亦有色而善媚 王兼通之 時人多惜之曰 “吾王之好色也 何易卵而換母邪" 盖以苩花母女易田氏母女故也 田氏年才十五 而頗知政事.

24년(AD211) 신묘 7월, 吉宣(길선)이 그의 여동생, 勿氏(물씨)의 나이가 30이 넘어 자녀를 많이 낳아 아름다움이 점점 퇴색해지므로, 그의 딸 田氏(전씨)로서 첩을 삼도록 청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며 맞아들였다. 田氏(전씨)의 어미 彭田(팽전)이 데리고 와 龜宮(구궁)에 묵으니, 왕이 구궁에 몰래 들어가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씨와 먼저 밀통했다.
田氏(전씨)의 얼굴은 勿氏(물씨)와 비슷하고 더욱 아름다우니, 왕이 매우 혹하여 이내 길선을 배하여 좌평으로 삼고, 彭田(팽전)은 國夫人(국부인)으로 삼아, 장원과 노비를 내려 왕자와 같은 예우를 하였다. 팽전도 역시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왕이 또한 밀통했다. 그때 사람들이 매우 애석히 여겨 이르기를, "우리 왕이 색을 밝히나니. 어찌 알을 바꾸듯이 어미를 바꾸는가!" 하였다. 백화모녀를 전씨모녀로 바꾼 까닭이다. 전씨의 나이가 겨우 15세이지만 정사를 사못 알았다.

*王密詣龜宮에서 詣예=이르다,도달하다 정정.
*褪耗=퇴모
*媵=줄 잉,
(3) [명사] 옛날, 시집갈 때 데리고 가던 하인이나 몸종.
(4) [명사] 첩(妾).
* 盖[동사] 가리다. 감추다.
用手盖上; 손으로 가리다
(2) [조사]【문어】 구(句)의 첫머리에 놓여 어기(語氣)를 표시한다. [위의 문장에서 말한 것을 이어 받아 이유나 혹은 원인을 나타냄]
盖天下万物之萌生, 靡不有死; 이 세상 만물이 태어나면 죽지 않는 것이란 없다
才= 재, 겨우,

二十五年 壬辰 二月 羅王逸聖薨 王遣弟古尸吊之 送賻如例.

25년(AD212) 임진 2월 신라왕 逸聖(일성)이 죽었다. 왕이 동생 古尸(고시)를 보내어 조문하였는데, 예와 같이 부의를 보냈다.

二十七年 甲午 四月 田氏生王子素古 王酷愛之欲立爲太子 重用龜宮屬.

27년(AD214) 갑오 4월 田氏(전씨)가 왕자 素古(소고)를 낳았다. 왕이 그를 매우 사랑하여 태자로 세우고 싶어하여, 龜宮(구궁)의 전속들을 중용하였다.

*素古(소고)=肖古王(초고왕)

三十年 丁酉 三月 公孫康王始稱帶方王 更以其妹宝皐媵之 時朝廷頗用漢人多 依遼東王 以此重宝婁宝皐 而無子.

30년(AD217) 정유 3월 공손강왕이 대방왕이라고 칭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그의 여동생 宝皐(보고;공손탁의 막내딸)를 (구지)왕에게 시집보냈다. 이 때 조정에는 한인을 등용함이 자못 많았는데 요동왕을 많이 따랐다. 이 때문에 宝婁宝皐(보루와 보고)를 아꼈으나 아들이 없었다.

三十四年 辛丑 七月 帶方王康薨 弟恭立 以康子晃質于漢王 遣使吊問之.

34년(AD221) 신축 7월 대방왕 공손강이 죽고, 동생 공손공이 즉위하였다. 공손강의 아들, 공손황을 한왕에게 볼모로 보냈다. 사신을 보내어 조문을 했다.

*質=질, 볼모로 보냈다. 로 정정.
공손강의 喪에 조문을 감.

三十五年 壬寅 二月 正妃宝婁夫人薨 春秋五十也 后性淸雅容皃端正 御衆以仁 待嬪妾以 道 未甞有妬色 而常恨無子 臨終謂宝皐曰 “吾死爲汝求佳子矣” 王聞之盖悲 葬于烏坂.

35년(AD222) 임인 2월 正妃(정비) 宝婁夫人(보루부인)이 죽으니, 춘추 50살이였다. 왕후의 성품은 청아하고, 용모가 단정하며, 인으로서 무리를 다스렸고, 도리로서 빈과 첩을 대하였고, 일찍이 색을 시샘하지 않았고, 항상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임종에 임하여 宝皐(보고)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너는 좋은 자식을 구하라”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슬픔을 감추며, 烏坂(오판)에서 장례를 치루었다.

*御=어, [동사] 통괄하다. 관리하다. 다스리다.
御下; 아랫사람을 다스리다
御众; 군중을 통괄하다

三十六年 癸卯 二月 以吉宣爲上佐平 委以軍事 吉宣以其妹女歸我 而置大宅妻妾于兩國 往來不常 羅新君疑之 不重用 吉宣自以爲祗摩之孫 當王頗有不軌心 王戒之曰 “王者天命也 非人力可求 勿妄動可也” 然終爲田氏所力勸 委之 以 東路軍事 吉宣大喜而歸.

36년(AD223) 계묘 2월 吉宣(길선)을 상좌평으로 삼고 군사에 관한 업무를 맡겼다. 길선이 그의 여동생과 딸을 우리(백제왕)에게 시집보내고 양국에 큰 저택과 처첩을 두고, 왕래하니 예사롭지 않았다. 신라의 새로운 왕(아달라왕)은 그를 의심하여 중용하지 않았다. 길선은 스스로 祗摩(지마)의 자손이라 하며, 왕을 대함에 자못 不軌(불궤)한 마음이 있었다. 왕이 그를 훈계하며 이르기를, “왕이란 것은 천명이다. 인력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망동하지 말아라” 라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엔, 왕이 田氏(전씨)의 강력한 권고를 받아, 길선에게 東路軍事(동로군사)를 위임해 주었다. 길선은 크게 기뻐하며 돌아갔다.

*當=당, [동사] …을 마주 대하다. …을 향하다.
*然= 연,그러나.
*終= 종,마침내, 결국

三十八年 乙巳 十月 吉宣事敗而逃歸 羅王求之 王答之曰 "爲臣不忠 固可罪矣 而其女爲小國內君幸 爲小國貸其一命” 羅王怒不聽 遣其將大解 來侵不利而還.

38년(AD225) 을사 10월, 吉宣(길선)이 일을 실패하고 도망하여 돌아왔다. 신라왕이 그를 잡아 보내라 하니, 왕이 답하기를, “신하로서 불충함은 물론 죄줄만하다. 그러나, 길선의 딸이 이 나라에서 임금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그 한 목숨을 살리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신라왕이 노하여 듣지 않고, 장군 大解(대해)를 보내 쳐들어왔으나 불리하여 돌아갔다.

*固= 고, 물론. 당연히.
坐车固可, 坐船亦无不可; 물론 차를 타도 되고, 배를 타도 안될 것이 없다

三十九年 丙午 五月 上佐平吉宣卒 年五十五 王痛哀之 以太公禮葬之 吉宣子彭宣田氏之兄也 王以苩花妻彭宣 彭宣言 "苩花與其兄苩仁密通 薄於臣" 王命苩仁 出監北漢軍 苩仁曰 “父王惑於田氏而薄於子弟” 王弟古尸聞之 密告於田氏曰 “諸王子欲與苩仁作亂” 田氏曰 “且將奈何” 古尸曰 “事急矣 不如矯詔發兵 以先制之” 田氏乃出密符 與之令行內外軍事 古尸乃逼王幽於深宮 立素古爲新王 以號令天下 古尸者王之庶弟也 其母甞與王潛通 密告宮中秘事 頗有力於王 故王亦愛古尸如己子 古尸年少而美 密與田氏相通而生子素大 常恐王知 至是苩仁等 欲發其事 故古尸先期捕之 苩仁知計違而奔于末曷 古尸乃與田氏專政 王憂憤而薨 春秋七十二 王以聖君 早有治平之名?而只好內事而不檢閨門 遂爲愛弟寵妻之所制 惜哉 達率燕多鬲閃等 欲伐古尸不克而逃歸 新羅謀再?擧 故古尸不敢自立而立素古 年才十三.

39년(AD226) 병오 5월 상좌평 吉宣(길선)이 죽으니, 나이 55살이였다. 왕이 애통해 하며 태공의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 길선의 아들 彭宣(팽선)은 田氏(전씨)의 오빠이다. 왕이 苩花(백화)를 彭宣(팽선)의 처로 삼으려 하니, 彭宣(팽선)이 말하길, "苩花(백화)는 그녀의 오빠 苩仁(백인)과 밀통하여, 臣(신)에게 박하게 대합니다." 왕이 苩仁(백인)에게 명하여 북한(산)군에 가서 감독하도록 하였다.

苩仁(백인)이 말하기를 “부왕께서는 田氏(전씨)에게 빠져 아들과 동생에게 박하게 하십니다.” 라고 하였다.
왕의 동생 古尸(고시)가 이 말을 듣고, 전씨에게 밀고하며 말하기를 “여러 왕자들이 苩仁(백인)과 공모하여 난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라고 하였다. 田氏(전씨)가 말하기를,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자, 古尸(고시)가 말하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습니다. (왕의) 詔書(조서)를 고쳐서 군사를 내어 먼저 제압함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田氏(전씨)가 이내 密符(밀부)를 내보내고, 그와 함께 令(령)을 내려, 內外軍事(내외군사)에게 조서를 보내었다. 고시가 이내 왕을 핍박하여 깊은 궁에 가두고, 素古(소고)를 세워 새로운 왕을 삼은 후, 자신이 천하를 호령하였다.

古尸(고시)는 왕의 庶弟(서제)이다. 고시의 어머니는 일찍이 왕과 잠통하여 宮中秘事(궁중비사)를 밀고를 하였다. 그래서, 무룻 왕에게 영향력이 있었다. 왕 역시 古尸(고시)를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였다. 고시는 나이가 젊고 멋있기에, 田氏(전씨)와 은밀히 상통하여 아들 素大(소대)를 낳았다. 항상 왕이 알까 두려워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苩仁(백인) 등이 이를 발설하려고 하자, 고시가 먼저 앞서 그들을 친 것이다. 苩仁(백인)은 그 계교가 어긋남을 알고 말갈로 도망갔다. 고시가 이에 田氏(전씨)와 더불어 정사를 마음대로 하니 왕이 괴로워하다 죽었는데 나이가 72살였다.

왕은 성군으로서 일찍이 治平(치평)의 이름을 얻었으나, 다만 內事(내사)를 좋아하여 부녀자일을 단속하지 않아 사랑하는 아우와 사랑하는 처에게 제압당하였다. 슬픈 일이다. 달솔 燕多(연다)와 鬲閃(격섬) 등을 시켜 고시를 치고자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도망하여 돌아갔다. 신라가 두번째 거사를 모의하니, 그래서 고시는 감히 자립하지 못하고 素古(소고)를 세웠다, 나이 겨우 13살이였다.

*憂憤=우분,[명사] 근심하며 분하게 여김.
*閨門 =규문 , 규중(閨中). 부녀(婦女)가 거처(居處)하는 안방
*鬲 = 막을 격, 솥 력 ㉠막다 ㉡성(姓)의 하나 ⓐ솥 (력)
*密符(밀부)=병란이 일어나면 즉시 군사를 동원할 수 있도록 내리던 병부
*行 행, [동사] 보내다. 전달하다. 송달하다.
行公文; 공문을 보내다 →[行文(1)]

*素古(소고)=백제 초고왕. 구지왕의 5번째 아들.

댓글 '2'

라디오

2008.04.29 08:47:15
*.142.218.27

3년조 王助遼富山之軍  이 부분은 해석을 다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一道安士

2008.05.01 15:53:39
*.68.174.111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보니 제 해석이 이상하네요.
라디오님,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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