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못하고 아직도 사무실에서 대기하는 김에 이미지 하나 더 올려본다..
조금 전에는 신한민보의 내용 보다는 외국 사이트에서 찾은 신한민보 사옥 사진이라면, 이번엔 그 무한보고의 신문자료에 찾은 만평 사진이다.
(사진은 아니고 일러스트그림이다. 예전에 류준범 샘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일제 강점기 보다 해방 이후의 신문이 지질 등 여러면에서 뒤쳐졌다고 한다. 그만큼 신문제작의 인프라가 해방과 동시에 풀어졌다고 해야 하나? 지금 강점기 때의 신문을 다시 찾아보니, 직촬한 사진자료 단아하게 정리된 광고 등이 정연하게 편성되었으나, 해방 직후 나온 이 자유신문은 사진은 일러스트로 대치되고, 아직 신문 하단과 중간의 광고도 제대로 없다. 그렇지만 신문의 체제를 갖추기 보다, 해방정국의 소식을 빨리 알리는 것이 당시 신문의 사명이 아니었겠는가?)
몇년전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는데,
1945년 당시의 서울 모처의 딴스홀을 일러스트로 그린 장면에 자유신문에 나왔다.(1945.10.07 2면)
그림의 뒷편 간판 처럼 보이는 곳에는 "社交딴스練習*"라고 쓰여 있고, 한복을 차려입은 남녀 한쌍, 양복(남)과 한복(여)의 2쌍.... 브루스 타임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바닥은 사람이 반사될만큰 반지르 하게 닦여 있고(아마 수많은 딴스로 매끄러워진 마루바닥을 묘사한듯), 천장에는 나름의 휘장도 그려 넣었다.
그 아래에 적혀진 내용을 다시 한번 적어보면...(현대어로 대충 바꿔서 써봄)
氾濫하는 꼴不見
일본이 못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나 다 한번 해보고 싶은 까닭인지
한집 걸러 술집, 두집걸러 [딴스홀]-[짜스](아마 재즈인듯)소리에 귀가 아플지경
서울은 조선 서울이고 외국 서울이 아닐터인데...
뱁새가 황새흉내를 내다가는, 다리가 찟어질 걸!
대충 이런 내용이다.
해방 이후 억눌렸던 감정이 민족해방의 기쁨만으로 표출된 것 만은 아닌가 보다.
사회문제로까지 이야기 될 정도로,
해방 약 1달 반 만에 서울의 중심지에는 댄스홀에서 재즈 소리가 크게 울려나왔다니 말이다.
해방 직후에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우려가 신문지상에 이렇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일러스트로 그려진 한복에 탕건 쓰고 브루스 땡기는 할배의 모습은 우려도 우려겠거니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뭐 어쩌겠는가? 음악과 무용, 즉 예술을 사랑하는 우리민족의 습성을..
지금의 싸이도 뭐 이런 문화전통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ㅋㅋㅋ
2012.10.18 HiSTO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