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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강화성당에서

투고글 조회 수 5332 추천 수 73 2004.02.15 01:13:23
[컬럼]성공회 강화성당에서

지난 겨울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내린 눈은 녹지 않고 길에 수북히 쌓였고, 비교적 큰길에도 아스팔트가 모두 하얗게 보일 정도로 덮여져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답사라는 것을 자주 다니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리 실력은 없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사진 찍기가 취미라면 취미였다. 그 때문인지 온천지가 하얀 눈밭인 것을 보니 갑작스럽게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동(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발한 것이 강화도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그냥 쉽게 가기는 힘든 곳이 아마 강화도 일게다. 물론 서울을 둘러싼 좋은 곳이 꽤 여러 곳 있음은 필자나 글을 읽는 독자 모두 알고있으리라. 그럼에도 ‘가까우니 한번 갔다가 와야지’ 하는 마음은 먹지만, 쉽게 그곳에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 큰 마음을 먹고 눈길을 헤치고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도에 답사라는 이유를 붙여 여러 차례 다녀본 필자가 이번에 선택한 곳은 강화도에 있는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사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소위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추대를 받아온 다른 여타의 지역이 어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이라면, 강화도는 어느 한시대만으로 특징지울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이 길게 늘어선 곳이다.

예컨대 선사시대로부터의 유물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역사적 산물들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흔히 강화도 하면 돈대(墩臺), ○○진(鎭), ○○보(堡) 등의 국방유적과 전등사 그리고 석모도의 보문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강화도에 들어오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쭈욱 늘어선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 국방유적을 둘러보고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전등사를 둘러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아니면 읍내 쪽으로 들어왔다가 지방도를 따라 외포리로 가서 다시 배를 타고 석모도의 보문사로 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말하려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강화도를 많이 다녀보았던 사람도 놓치기 쉬운 감춰진 문화유산이라 말할 수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이 위치한 곳은 강화도의 대표유적인 고려궁지와 그리 멀지 않지만 진입로가 넓지 않기 때문인지 발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이다. 사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제414호로 지정되어서 국가에서 관리하는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강화도의 수많고 유명한 다른 문화재에 묻혀 기억의 편린에 갇힌 것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해 있다. 강화읍내에서 고려궁지 쪽으로 들어가다가 오른쪽으로 향하는 좁다란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정문이 보이고 2000년에 만 100년이 된 오래된 한옥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은 외삼문, 내삼문, 성당 그리고 사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삼문은 정면 3칸으로 이루어 졌는데, 위에는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는 현판이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라는 생각과 사뭇 다른 이채로움을 느끼게끔한다. 현판아래에는 바로 양쪽으로 열리는 대문이 있는데, 보통 한옥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색 계열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문에 큰 원을 그리고 그안에 내접하는 십자가를 그려 넣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으로만은 그리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려진 원과 내접하는 십자가 사이의 여백을 태극으로 장식하고 있어서 빨간색과 파란색이 선명하게 보이는 점이 흥미롭다. 아마 성공회라는 서양종교가 강화도에 들어오면서 서양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표시하던 당시의 정세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려는 겸손한 자세가 ‘서양문화의 한국화’라는 현상으로 보이는 것이라 해석해도 좋지않을까 한다. 아무튼 이런 대문의 양편 윗쪽에 홍살에 삼지창 무늬의 장식살을 덧대어 만든 것도 우리나라의 서양식 건축물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외삼문 안에는 성당건축 당시 강화지역선교의 중심역할을 담당했던 성공회 제2대 주교 터너(端雅德 : A. B. Turner) 주교와 성당건축을 직접 설계‧감독하였던 제3대 주교 트롤로프(趙瑪可 : M. N. Trollope) 주교의 기념비가 있다. 이곳을 통과하여 지나면 내삼문이 위치하는데, 여기에는 1945년 일제에 의하여 징발되어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서양식 종을 대신하여 1989년 새로 제작된 종이 걸려있다. 그런데 이 종의 형식은 우리나라 전통의 범종양식을 띠면서 외삼문의 대문에 도안되어 있는 태극과 십자가 무늬가 시문되어있다. 이렇게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야만 성당에 이르게 되는데, 이 두 문은 속세의 찌든 때를 벗고 소위 성소(聖所)에 들어가기 위한 세속(洗俗)의 문인 것이다.

성공회 강화성당의 건물은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 성당에서 보는 것처럼 서양식의 형태를 지닌 것이 아니라 한옥의 형식을 따른 2층 건물에 십자가를 올린 독특한 형태이다. 이 건물은 서양의 전통적인 성당건축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을 한국적으로 변형한 것이라 한다. 사실 바실리카양식의 기본형식은 회랑풍의 앞뜰이 있고, 건물 내부에 전실(前室), 열주(列柱)로 구성된 내당(內堂), 내당의 양쪽에 측랑(側廊) 그리고 제단과 후진(後陣)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을 이러한 양식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바실리카양식을 한옥에 적용하여 지은 것이 바로 이 건물이다. 그것은 건물의 앞쪽에 툇마루를 만들어 전실의 효과를 두고 있고, 안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고주(高柱)를 열주로 하여 내당을 만들고 그 앞쪽에는 지성소를 모셨으며, 역시 뒤에 후진의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또한 내당을 좌우로 지나갈 수 있도록 측랑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바실리카 양식을 한옥화(韓屋化)한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 건물은 정면 기둥에 주련(柱聯)을 달고 있다. 하긴 우리나라 전통적 종교건물에서 주련이 달려있는 것은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적 종교건물이 대체로 사찰건물임을 생각한다면, 불교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 계통의 성공회 건물에서 주련이 달려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이 건물의 주련은 천주(天主)와 선교에 대한 성구(聖句)가 적혀져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 양식은 아주 새롭다. 뿐만아니라 정면의 지붕 바로 아래에는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져 있다. 대체로 현판의 내용은 그 건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건축물에서 보이는 것이지만, 서양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강화성당의 건물에서 재래의 전통적인 양식 채택되고 있는 점은 전반적인 건물의 외형과 함께 동‧서양 건축문화의 조화를 말한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하였던가? 혹 이 건물을 두고 서양건물을 흉내낸 볼품없는 건물이라고 폄하할 사람도 있겠다. 그렇지만 단순히 외형상의 모습에만 눈을 두어서는 않될 것이다. 건물이 만들어지는 배경과 당시의 정치‧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될 것이다. 성공회 강화성당이 건축되는 1900년은 19세기의 마지막 해이자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목전에 두었던 시기이며, 한말 서구열강과 일제 침략의 틈바구니에서 대한제국이 탄생한지 불과 4년밖에는 안되는 시기이다. 이렇게 혼란한 격변기에 이질적인 서양의 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고자 하였을때 그 거리감을 최소한으로 하고자 많은 노력이 경주되었을텐데, 이러한 건축양식도 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다시말해서 우리나라의 문화전통을 존중하고 있는 성공회의 겸손한 자세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성공회가 다른문화에 유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영국국교회인 성공회가 탄생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성공회는 1534년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독립하여 나온다. 이를 르네상스에 이어진 종교개혁의 과정이라고도 말하고 있으나,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헨리 8세의 개인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헨리 8세의 왕비는 스페인 아라곤 출신의 캐서린(Catherine)이었는데,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자 왕이 궁녀 출신인 안 부우린(Anne Boleyn)과 결혼하고자 교황인 클레멘스 7세에게 왕비와의 이혼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에서는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다고 성공회의 성립을 전적으로 헨리 8세의 개인적인 이유에서 탄생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헨리 8세 이후 영국의 종교개혁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공회의 교리적 권위를 나타내는 “39개조”의 성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공회는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탄생하고 있기도 하지만, 국왕의 로맨스가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카톨릭이 보수라면 성공회는 개혁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성격이 성공회를 타문화에 대하여 융통성있고 탄력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성공회 강화성당에서 보는 것처럼 고유의 전통을 간직하면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이점은 수없이 다양한 문화의 홍수에 휩싸여 있는 오늘날,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에 대하여 유연하고 탄력적이며 그러면서도 겸손하야할 우리의 문화수용 태도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성공회 강화성당의 남쪽 작은 문을 통해 나왔다. 필자가 우리나라의 여러 곳을 답사하고 경험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내가 볼 수 있는 시야를 한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도 필자가 전부터 습득하였던 건축사적 지식만을 이 건물에 대입하려 하였다면, 성공회 강화성당은 필자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들었던 노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문화재에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맞추려 하지말고, 가만히 그 앞에 서서 대화를 해라……” HISTOPIA™

[내외저널] 1월호. 20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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