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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56
17
2004.02
2004.02
고려의 황도 개경
// Document: http://www.histopia.net/zbxe/797 2004.02.17 17:01:27 (*.214.7.202) 책소개0 Comments 1525 Views 192 Voted / 0 Devoted
| 도서명 | 고려의 황도 개경 |
|---|---|
| 저자명 | 한국역사연구회 |
| 출판사 | 창작과 비평사 |
| 발행일 | 2002 |
한국역사연구회, 2002, [고려의 황도 개경], 창작과 비평사.(15,000원)
목차 :
▷책머리에
▷1부 개경의 구조
개경의 풍수(김기덕)
개경의 자연지리
개경의 사신사
도참사상과 천도논의
개경을 에워싼 성곽(신안식)
황제의 성, 황성
서울을 지키는 성, 나성
개경의 조선 성곽, 내성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 궁궐과 관청(장지연)
고려 궁궐의 이름
본궐과 주요 이궁의 역사
본궐의 구조와 기능
고려 수도에 있던 조선 궁궐들
행정의 무대, 개경의 관청
국가의 상징, 태묘와 사직(장지연)
고려 태묘와 사직의 역사
태묘·사직의 위치
태묘와 사직의 제사들
'천자국' 고려의 태묘와 사직
조상숭배의 또다른 형태, 왕실 원당과 진전
개경의 절(강호선)
개경에 절이 들어서다
도시의 절
5부방리·4교·경기(홍영의·정학수)
도성민의 통제장치, 5부방리
개경의 '성저십리' 4교
나라의 배꼽, 경기
도시문제를 처리하던 행정관서와 관원들의 업무
▷2부 개경의 생활과 문화
모든 길은 개경으로(정요근)
개경의 제1의 번화가, 광화문에서 남대가를 거쳐 십자가로
고려 제1의 간선로, 금교역을 거쳐 서경으로
개경의 경제를 지탱한 길, 벽란도와 서강 방면
승천포를 거쳐 강화도로
임진나루의 명물, '배다리'를 건너 하삼도로
선죽교를 지나 동쪽으로
굽이굽이 경승지를 따라 박연폭포로
조운의 종착지, 동강과 서강
개경의 주거(서성호)
양반과 평민이 한동네에 살다
장사치와 쟁이들의 모여살기
사는 곳의 선택기준
돈 벌려면 시장통 가까이
개경의 시장(서성호)
시장의 위치
점포와 상인 그리고 고객
시장에서 팔리는 것들
시장에서 벌어진 일들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웠던 조세(박종진)
보통사람들의 부담, 3세
가진 자들의 부담, 과렴과 품종
허울뿐인 구휼제도의 실상(박종진)
구휼기관
구휼의 실태
구휼제도의 한계와 운영의 폐단
창곡의 보관과 관리
인재 양성과 관료 충원의 중심지(도현철)
고려의 정치이념, 유교의 특징
개경의 학교
출세의 지름길, 과거
개경의 축제, 연등회와 팔관회(강호선)
상원 연등회와 초파일 연등
천자국의 축제 팔관회
연등회·팔관회 날의 행사
연등회·팔관회 준비과정
개경의 변천과 미래의 개성(장지연)
한양 천도와 개성
조선 전기의 개성
개성의 위기와 상업의 발달
근대 이후 개성의 변천과 미래의 개성
▷부록 개성 문화재 맛보기(박종진)
개성의 문화재 현황과 지정문화재
성곽과 문루
만월대와 성균관
왕릉과 무덤
불교문화재
선죽교와 숭양서원
개경연표(정학수)
참고문헌
찾아보기
소개글 :
개경은 통일신라 멸망 이후 새롭게 부상한 통일제국의 패자 왕건이 919년 이곳을 수도로 정하면서 우리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이래 오백 년 고려사와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소장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역사연구회는 1996년 가을 개경사 연구반을 만들어 5년여 동안 꾸준히 공동연구를 진행해온 결과, 이 책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고려의 수도로서 개경의 구조를 각각 풍수, 성곽, 궁궐과 관청, 태묘와 사직, 절,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2부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하여 도로, 시장과 주거, 조세, 구휼제도, 교육, 연등회와 팔관회 등의 축제를 다루면서 고려시대 가장 높은 지적, 문화적 수준을 구가하며 고려 문화의 정점을 살았던 개경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있다.
미디어 소개(조선일보 2002. 2. 1)
서기 896년 후고구려 왕 궁예는 예성강 일대의 호족 왕건에게 송악산 일대에 성을 쌓게 했다. 그리고 2년 후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궁예는 7년 후 철원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왕건은 이듬해 다시 송악으로 돌아왔다. 사신사를 고루 갖춘 장풍국의 명당으로 꼽히던 송악은 이렇게 해서 개경이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에 화려하게 떠올랐다.
500년 가까이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이지만 개경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서 5년 전 고려시대를 전공하는 소장 학자 10명은 함께 ‘개경사 연구반’을 만들어 자료 정리·연구발표회 등을 가졌고, 이 책은 그 결과를 한데 모은 것이다.
필자들은 먼저 1부에서 풍수·성곽·궁궐, 관청·태묘와 사직·사찰·행정조직 등 개경의 구조를 정리한다. 이어 2부에서는 도로·주거·시장·조세·구휼·학교·축제 등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과 문화를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황제의 나라’를 자부한 고려 사람들이 개경을 황도의 위상에 걸맞게 체계적으로 만들어 간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또 개경 주위에 300여 개의 절이 있었으며, 왕실을 비롯한 백성들의 모든 의례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등 불교도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 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 )
목차 :
▷책머리에
▷1부 개경의 구조
개경의 풍수(김기덕)
개경의 자연지리
개경의 사신사
도참사상과 천도논의
개경을 에워싼 성곽(신안식)
황제의 성, 황성
서울을 지키는 성, 나성
개경의 조선 성곽, 내성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 궁궐과 관청(장지연)
고려 궁궐의 이름
본궐과 주요 이궁의 역사
본궐의 구조와 기능
고려 수도에 있던 조선 궁궐들
행정의 무대, 개경의 관청
국가의 상징, 태묘와 사직(장지연)
고려 태묘와 사직의 역사
태묘·사직의 위치
태묘와 사직의 제사들
'천자국' 고려의 태묘와 사직
조상숭배의 또다른 형태, 왕실 원당과 진전
개경의 절(강호선)
개경에 절이 들어서다
도시의 절
5부방리·4교·경기(홍영의·정학수)
도성민의 통제장치, 5부방리
개경의 '성저십리' 4교
나라의 배꼽, 경기
도시문제를 처리하던 행정관서와 관원들의 업무
▷2부 개경의 생활과 문화
모든 길은 개경으로(정요근)
개경의 제1의 번화가, 광화문에서 남대가를 거쳐 십자가로
고려 제1의 간선로, 금교역을 거쳐 서경으로
개경의 경제를 지탱한 길, 벽란도와 서강 방면
승천포를 거쳐 강화도로
임진나루의 명물, '배다리'를 건너 하삼도로
선죽교를 지나 동쪽으로
굽이굽이 경승지를 따라 박연폭포로
조운의 종착지, 동강과 서강
개경의 주거(서성호)
양반과 평민이 한동네에 살다
장사치와 쟁이들의 모여살기
사는 곳의 선택기준
돈 벌려면 시장통 가까이
개경의 시장(서성호)
시장의 위치
점포와 상인 그리고 고객
시장에서 팔리는 것들
시장에서 벌어진 일들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웠던 조세(박종진)
보통사람들의 부담, 3세
가진 자들의 부담, 과렴과 품종
허울뿐인 구휼제도의 실상(박종진)
구휼기관
구휼의 실태
구휼제도의 한계와 운영의 폐단
창곡의 보관과 관리
인재 양성과 관료 충원의 중심지(도현철)
고려의 정치이념, 유교의 특징
개경의 학교
출세의 지름길, 과거
개경의 축제, 연등회와 팔관회(강호선)
상원 연등회와 초파일 연등
천자국의 축제 팔관회
연등회·팔관회 날의 행사
연등회·팔관회 준비과정
개경의 변천과 미래의 개성(장지연)
한양 천도와 개성
조선 전기의 개성
개성의 위기와 상업의 발달
근대 이후 개성의 변천과 미래의 개성
▷부록 개성 문화재 맛보기(박종진)
개성의 문화재 현황과 지정문화재
성곽과 문루
만월대와 성균관
왕릉과 무덤
불교문화재
선죽교와 숭양서원
개경연표(정학수)
참고문헌
찾아보기
소개글 :
개경은 통일신라 멸망 이후 새롭게 부상한 통일제국의 패자 왕건이 919년 이곳을 수도로 정하면서 우리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이래 오백 년 고려사와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소장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역사연구회는 1996년 가을 개경사 연구반을 만들어 5년여 동안 꾸준히 공동연구를 진행해온 결과, 이 책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고려의 수도로서 개경의 구조를 각각 풍수, 성곽, 궁궐과 관청, 태묘와 사직, 절,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2부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하여 도로, 시장과 주거, 조세, 구휼제도, 교육, 연등회와 팔관회 등의 축제를 다루면서 고려시대 가장 높은 지적, 문화적 수준을 구가하며 고려 문화의 정점을 살았던 개경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있다.
미디어 소개(조선일보 2002. 2. 1)
서기 896년 후고구려 왕 궁예는 예성강 일대의 호족 왕건에게 송악산 일대에 성을 쌓게 했다. 그리고 2년 후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궁예는 7년 후 철원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왕건은 이듬해 다시 송악으로 돌아왔다. 사신사를 고루 갖춘 장풍국의 명당으로 꼽히던 송악은 이렇게 해서 개경이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에 화려하게 떠올랐다.
500년 가까이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이지만 개경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서 5년 전 고려시대를 전공하는 소장 학자 10명은 함께 ‘개경사 연구반’을 만들어 자료 정리·연구발표회 등을 가졌고, 이 책은 그 결과를 한데 모은 것이다.
필자들은 먼저 1부에서 풍수·성곽·궁궐, 관청·태묘와 사직·사찰·행정조직 등 개경의 구조를 정리한다. 이어 2부에서는 도로·주거·시장·조세·구휼·학교·축제 등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과 문화를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황제의 나라’를 자부한 고려 사람들이 개경을 황도의 위상에 걸맞게 체계적으로 만들어 간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또 개경 주위에 300여 개의 절이 있었으며, 왕실을 비롯한 백성들의 모든 의례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등 불교도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 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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