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님이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곳입니다.
※첨부파일은 hwp, zip, jpg, gif 만 가능합니다.
게시물 혹은 댓글을 남기실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시기 바랍니다.
비속어, 욕설, 반말 등을 사용하면, 본 사이트의 방침과 맞지 않으므로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글 수 1,121

‘사대주의 사관 배격’씨. 귀하가 2주일 전 제 글(「▩벼농사와 원한국인」. 카테고리는 [기타])에 달아놓은 댓글을 읽고, 한 마디 해야겠다고 여겨 자판을 두드립니다.

 

먼저, 귀하가 저를 “사대주의 사관, 매족(賣族. 겨레를 팔아먹음) 사관에 절은 자”라고 부른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사대주의자라고요? 저는 두 달 전에 쓴 글(「▩가래떡이 증명하는 삼남 지방과 절강성의 교류」)에서 ‘절강성에서 삼남 지방으로 벼농사가 전파되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가, “소로리에서 1만 5천년 된 볍씨가 나왔다.”는 지적을 듣고 자료를 찾아본 뒤 글을 고쳤습니다. 제가 사대주의자라면 볍씨가 황토평원이나 황토고원(둘 다 북중국에 있으며, 한족의 고향임)에서 건너왔다고 하지 소로리에서 시작되었다고 썼겠습니까? 그리고 설령 절강성에서 볍씨가 건너왔다는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6~7천년 전의 절강성은 중국이 아니었는데 거기서 볍씨가 건너왔다고 말하는 게 왜 사대주의인가요? 벼농사가 소로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게 ‘사대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귀하는 제가 벼의 원산지는 한국이라고 주장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않은 걸 보니 사대주의자이고 “한반도를 무시하려고 하는 추악한” 놈이라는 거네요. 맞습니까? 제가 귀하의 말을 따르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소로리에서 나온 볍씨는 사람이 기르는 볍씨(재배벼)지 야생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 땅에서 연대가 1만 5000년 이전인 야생벼의 화석이 나왔다면 저도 벼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말을 믿겠지만, 제가 찾아본 자료에서는 야생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화석이라는 물증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원산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벼농사가 처음 시작된 곳을 한국으로 설정하되, 벼의 원산지는 백과사전의 설명대로 동(東) 인도라고 설명한 겁니다.

 

그리고 “빙하기가 지나고 간빙기인 1만 5천년 전에 한반도는 아열대처럼 따스했다.”고 하셨는데, 제가 1만 5천년 전의 날씨가 “빙기(빙하기)의 끝부분”이라고 설명한 것은 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거짓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제가 조사한 자료에서 인용한 “일부 학계”의 의견입니다. 저는 역사학을 전공했지 고고학이나 기후학을 전공한 게 아니고, 그래서 제 의견보다는 학계의 의견을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게 비난받을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화를 내고 싶다면, “일부 학계”에 화를 내십시오.

 

저를 “모든 것은 외국에서 들어오고 한반도에서 유래한 고유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중국이나 어디 다른 외국에서 들어와야 만족하는 사대매족사상이 머리 속에 뿌리박힌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낙인찍으셨는데, 그렇다면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이 한국에서 비롯되었고 인류도 한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토마토나, 고추나, 호박이나, 마늘이나, 수박이나, 고구마나, 감자나, 옥수수도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할까요? 저는 어디까지나 볍씨나 연대 측정 결과라는 ‘물증’ - 그러니까 조작할 수 없는 것들 - 을 바탕으로 벼농사의 시작을 고증했을 뿐인데, 벼의 원산지가 한국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은 물증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대 중국/사대 인디아에 쩔어서” 벼의 기원을 잘못 말했다고요? 제가 알기로 야생벼의 기원은 식물학자들이 추적해서 알아낸 건데 그게 “사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역사학자라면 편견에 빠져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유전자를 조사하는 학자나, 식물/동물의 기원을 추적하는 학자는 기록이 아니라 종자나 뼈 안에 들어있는 물증(따라서 조작을 할 수 없음)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을까요? 사람이나 종자가 다른 곳에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게 사대주의에 절은 증거라고 하시는데, 어떤 것이 사대주의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사대주의자라면 벼농사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끝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귀하는 볍씨를 가져오고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외부에서 건너왔다는 가설 때문에 저를 “머리속이 썩은 사람”이라고 부르시는데,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땅이 벼의 원산지이고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토착 구석기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증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생벼의 화석이라던가, 아니면 1만 5000년 이전에 살았던 구석기인 뼈 옆에 볍씨가 있다던가 하는 물증을 가르쳐 주시면 저도 그 때 가서 제 가설을 고치겠습니다.

 

하이에나 뼈가 나왔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냐고요? 미안하지만 저에게는 더 많은 물증이 필요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야생벼의 화석이고, 그 다음으로 결정적인 것은 1만 5000년 이전의 벼농사 유적입니다. 하이에나 뼈는 구석기 시대에 한국에서 하이에나가 살았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지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거나, 벼의 원산지라는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아열대 기후라고 해서 다 벼가 자라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족을 달자면 구석기 시대에는 인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국경도 없고 검문소도 없었기 때문에 - 그리고 농사처럼 사람들의 발목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사냥이나 고기잡이나 채집처럼 옮겨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로 먹고 살았기 때문에 -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었거든요. 그런 사실을 염두에 놓고 생각한다면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볍씨를 전했다는 박태식 박사의 가설 -「▩벼농사와 원한국인」참고 - 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저를 비난하시는 건 귀하의 자유고, 저를 욕하시는 것도 귀하의 ‘자유’지만, 그것이 제가 제 가설을 고쳐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는 걸 여기서 분명히 못박아두고자 합니다! 반박을 하고 싶으면 욕이나 비난을 빼고 하십시오. 그럼 저도 차분하고 담담하게 대답할 테니까요. 이상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공지 Q&A 새한국고대사 포럼 안내 주성지 2006-08-08 29306

백제사 왜 5왕의 관직요청 이유

  • 2010-09-04
  • 조회 수 87

5세기 송서에 나오는 왜 5왕(찬-진-제-흥-무)의 기록을 보면 어떤 이는 관직을 요청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관직을 요청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송서만 보아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1. 贊: 관직을 요청하지 않음...

백제사 ▩응신이 경상남도로 달아난 까닭 [2]

  • 2010-08-29
  • 조회 수 161

이야기의 초점을 고담덕(시호 국강상광개토경 평안호태왕. - 줄여서 ‘광개토왕’ 또는 ‘호태왕好太王’ -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는 그의 이름이 “담덕談德”으로 나오며, 고구려의 태왕太王들은 태조대왕 이후에는 모두 고高씨...

백제사 ▩임나가야가 야마도를 친 해와 그 명분 update

  • 2010-08-29
  • 조회 수 147

(이 글을 어떤 카테고리에 집어넣을 지 고민하다가, 임나가야는 의부가라를 점령한 백제인이 쓰기 시작한 이름이고, 임나는 가야와는 달리 백제의 일부로 존재했기 때문에 ‘백제사’에 집어넣기로 했습니다 : 조약돌) “3세기에 ...

백제사 ▩목협씨가 성을 바꾼 까닭

  • 2010-08-20
  • 조회 수 202

머리도 식힐 겸, 어찌 보면 곁가지에 가까운 역사 이야기를 해 보겠다. 나는 1주일 전(올해 8월 14일) 한국방송(KBS)에서 틀어준 <국권침탈 100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 - 제 1편 인연(因緣)>(이하 <인연>)을 보았다. 서기 645년에...

발해사 ▩대(大)씨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까닭

  • 2010-08-07
  • 조회 수 313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자. 대조영은 서기 698년에 진(훗날의 발해)을 세운다. 그러니까 그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만에 새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옛 땅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기타 ▩한국과 조선 공화국 사람들이 소를 기르기 시작한 해에 대한 고찰

  • 2010-08-07
  • 조회 수 266

한국 ․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특별시) 사람들이 기억하는 ‘토종 소’는 털이 황갈색이고 뿔이 짧다. 지난해 12월에 상영된 한국 영화 <워낭소리>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이 소는 농촌을 상징하는 짐승이기도 하다. 우리 겨레는 ...

기타 Re : 역사책 소개합시다

  • 2010-08-06
  • 조회 수 206

일도안사 님 뿐만 아니라 이 사이트에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제가 읽은 적이 있는 역사책들을 소개합니다. 1.『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리오 휴버먼 지음/장성환 옮김, 책벌레 펴냄) 2.『인도사 108 장면』(박금표 ...

기타 역사책 소개합시다 [1]

  • 2010-08-04
  • 조회 수 324

더운 여름을 독서삼매경 속에서 보낼 수 있도록 여러분들깨서 역사책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꼭 한국사 관련 책일 필요는 없고 동양사나 세계사라도 좋습니다. 고대사 아니라도 상관 없고,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라도 무...

기타 2개의 낙랑군 조선현 [2]

  • 2010-07-29
  • 조회 수 484

고조선 문제는 제가 아는 것이 부족하여 무엇이라 이야기할 정도가 못 되는데 풀어야 할 문제들이 숱하게 쌓여있습니다. 제가 책임있는 답변을 하기 어려우므로 고조선은 시간적 영역이 이 사이트의 논의 밖이기도 합니다. 그 ...

고조선 ▩『규원사화』에 대한 고찰

  • 2010-07-28
  • 조회 수 400

한국 역사학의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서기 1976년, 재야 사학자들이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고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건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이른바 ‘국사교과서 정정 각종 소송’). 그리고 5년 후인 서기 1981...

기타 一道安士님에게 보여드립니다. file [1]

  • 2010-07-24
  • 조회 수 397

아래 파일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곳에 질문을 남기는 것의 동기가 된 글입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을 못 하실수도 있겠군요.

기타 一道安士님에게 질문드립니다. [2]

  • 2010-07-23
  • 조회 수 405

一道安士님께서는, 모용선비의 역사가 한국사라고 주장하셨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듣고 싶습니다. 한국고대사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가지고 계신 一道安士님에게만 들은 주장이라 아주 흥미가 갑니다. 부탁드립니다. ...

Q&A ▩비난에 대한 반박 - 한국이 야생벼의 원산지가 아니라고 한 까닭

  • 2010-07-07
  • 조회 수 446

‘사대주의 사관 배격’씨. 귀하가 2주일 전 제 글(「▩벼농사와 원한국인」. 카테고리는 [기타])에 달아놓은 댓글을 읽고, 한 마디 해야겠다고 여겨 자판을 두드립니다. 먼저, 귀하가 저를 “사대주의 사관, 매족(賣族. 겨레를 ...

백제사 [日本書紀] 신공 46년 ~ 52년 연도추정. [1]

  • 박규호
  • 2010-06-23
  • 조회 수 625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四六年(丙寅 二四六)三月乙亥朔◆ , 373년. 3월 (373- 246= 127년 편차) 四十六年春三月乙亥朔。遣斯摩宿禰于卓淳國。〈斯麻宿禰者。不知何姓人也。〉於是。卓淳王末錦旱岐告斯摩宿禰曰。甲子年七月中。百濟人久...

기타 ▩벼농사와 원한국인 [3]

  • 2010-06-19
  • 조회 수 599

동아시아에서 맨 처음 벼농사가 시작된 곳이 충청북도 내륙(소로리)이라는 가설(「▩[고침]가래떡이 증명하는 삼남 지방과 절강성의 교류」참고. 카테고리는 [기타])을 접한 독자는, ‘조사결과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신라사 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1년, 11월, AD377년. (ver.1) imagefile [2]

  • 박규호
  • 2010-06-18
  • 조회 수 484

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1년, 11월, AD377년. (ver.1) 元年 丁丑 十一月 加耶君守克殂 慕訶立 以宣失爲太后 時加耶與倭相通 不遵朝廷之令 至是以倭王女爲妻 而不聽宣失之言 遣使責之 원년(AD377년) 丁丑(정축, AD377년) 11월...

기타 공개강연을 마치고 [8]

  • 2010-06-13
  • 조회 수 590

마립간신라의 기원에 관한 공개강연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비가 와서인지 월드컵이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예상보다 적게 오셨습니다. 포럼 설비 사정상 1시간 가량 늦게 시작하였습니다. 1부는 그림으로, 2부는 삼...

백제사 [日本書紀] 신공 52년, 七枝刀(칠지도) 기사의 해석 오류. imagefile [1]

  • 박규호
  • 2010-06-12
  • 조회 수 456

http://www.wul.waseda.ac.jp/kotenseki/html/ri05/ri05_01940/index.html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i05/ri05_01940/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i05/ri05_01940/ri05_01940_0005/ri05_01940_0005.html http://archive.wul.was...

신라사 [日本書記] 기사의 月 표시도 바꾸어 놓았다. [1]

  • 박규호
  • 2010-06-11
  • 조회 수 441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前紀 仲哀天皇 九年(庚辰 二〇〇)九月己卯《十》◆ 秋九月庚午朔己卯。令諸國集船舶練兵甲。時軍卒難集。皇后曰。必神心焉。則立大三輪社以奉刀矛矣。軍衆自聚。於是使吾瓮海人烏摩呂出於西海。令察有國耶。還曰。國不...

신라사 基臨尼今紀(기림니금기) 2년, AD365년. imagefile [2]

  • 박규호
  • 2010-05-31
  • 조회 수 534

二年 靑牛 正月 宝己伊伐飡 登末稟主 登末末仇公女也 與帝同虎 得帝寵故也 以長昕爲六軍頭上 大西知將欲致仕 故讓于長昕曰 “兵權不可與人 汝可爲之” 長昕曰 “大任不可禪解 而不受” 后聞之 知長昕之公 而仍授之 賜衣酒于長昕 母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