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주의 사관 배격’씨. 귀하가 2주일 전 제 글(「▩벼농사와 원한국인」. 카테고리는 [기타])에 달아놓은 댓글을 읽고, 한 마디 해야겠다고 여겨 자판을 두드립니다.
먼저, 귀하가 저를 “사대주의 사관, 매족(賣族. 겨레를 팔아먹음) 사관에 절은 자”라고 부른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사대주의자라고요? 저는 두 달 전에 쓴 글(「▩가래떡이 증명하는 삼남 지방과 절강성의 교류」)에서 ‘절강성에서 삼남 지방으로 벼농사가 전파되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가, “소로리에서 1만 5천년 된 볍씨가 나왔다.”는 지적을 듣고 자료를 찾아본 뒤 글을 고쳤습니다. 제가 사대주의자라면 볍씨가 황토평원이나 황토고원(둘 다 북중국에 있으며, 한족의 고향임)에서 건너왔다고 하지 소로리에서 시작되었다고 썼겠습니까? 그리고 설령 절강성에서 볍씨가 건너왔다는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6~7천년 전의 절강성은 중국이 아니었는데 거기서 볍씨가 건너왔다고 말하는 게 왜 사대주의인가요? 벼농사가 소로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게 ‘사대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귀하는 제가 벼의 원산지는 한국이라고 주장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않은 걸 보니 사대주의자이고 “한반도를 무시하려고 하는 추악한” 놈이라는 거네요. 맞습니까? 제가 귀하의 말을 따르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소로리에서 나온 볍씨는 사람이 기르는 볍씨(재배벼)지 야생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 땅에서 연대가 1만 5000년 이전인 야생벼의 화석이 나왔다면 저도 벼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말을 믿겠지만, 제가 찾아본 자료에서는 야생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화석이라는 물증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원산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벼농사가 처음 시작된 곳을 한국으로 설정하되, 벼의 원산지는 백과사전의 설명대로 동(東) 인도라고 설명한 겁니다.
그리고 “빙하기가 지나고 간빙기인 1만 5천년 전에 한반도는 아열대처럼 따스했다.”고 하셨는데, 제가 1만 5천년 전의 날씨가 “빙기(빙하기)의 끝부분”이라고 설명한 것은 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거짓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제가 조사한 자료에서 인용한 “일부 학계”의 의견입니다. 저는 역사학을 전공했지 고고학이나 기후학을 전공한 게 아니고, 그래서 제 의견보다는 학계의 의견을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게 비난받을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화를 내고 싶다면, “일부 학계”에 화를 내십시오.
저를 “모든 것은 외국에서 들어오고 한반도에서 유래한 고유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중국이나 어디 다른 외국에서 들어와야 만족하는 사대매족사상이 머리 속에 뿌리박힌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낙인찍으셨는데, 그렇다면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모든 동물과 식물이 한국에서 비롯되었고 인류도 한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토마토나, 고추나, 호박이나, 마늘이나, 수박이나, 고구마나, 감자나, 옥수수도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할까요? 저는 어디까지나 볍씨나 연대 측정 결과라는 ‘물증’ - 그러니까 조작할 수 없는 것들 - 을 바탕으로 벼농사의 시작을 고증했을 뿐인데, 벼의 원산지가 한국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은 물증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대 중국/사대 인디아에 쩔어서” 벼의 기원을 잘못 말했다고요? 제가 알기로 야생벼의 기원은 식물학자들이 추적해서 알아낸 건데 그게 “사대”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역사학자라면 편견에 빠져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유전자를 조사하는 학자나, 식물/동물의 기원을 추적하는 학자는 기록이 아니라 종자나 뼈 안에 들어있는 물증(따라서 조작을 할 수 없음)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을까요? 사람이나 종자가 다른 곳에서 들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게 사대주의에 절은 증거라고 하시는데, 어떤 것이 사대주의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사대주의자라면 벼농사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갔다고 이야기하겠습니까?
끝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귀하는 볍씨를 가져오고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외부에서 건너왔다는 가설 때문에 저를 “머리속이 썩은 사람”이라고 부르시는데,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땅이 벼의 원산지이고 벼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토착 구석기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증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생벼의 화석이라던가, 아니면 1만 5000년 이전에 살았던 구석기인 뼈 옆에 볍씨가 있다던가 하는 물증을 가르쳐 주시면 저도 그 때 가서 제 가설을 고치겠습니다.
하이에나 뼈가 나왔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냐고요? 미안하지만 저에게는 더 많은 물증이 필요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야생벼의 화석이고, 그 다음으로 결정적인 것은 1만 5000년 이전의 벼농사 유적입니다. 하이에나 뼈는 구석기 시대에 한국에서 하이에나가 살았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지 벼농사가 시작되었다거나, 벼의 원산지라는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아열대 기후라고 해서 다 벼가 자라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족을 달자면 구석기 시대에는 인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국경도 없고 검문소도 없었기 때문에 - 그리고 농사처럼 사람들의 발목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사냥이나 고기잡이나 채집처럼 옮겨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로 먹고 살았기 때문에 - 사람들이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었거든요. 그런 사실을 염두에 놓고 생각한다면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볍씨를 전했다는 박태식 박사의 가설 -「▩벼농사와 원한국인」참고 - 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저를 비난하시는 건 귀하의 자유고, 저를 욕하시는 것도 귀하의 ‘자유’지만, 그것이 제가 제 가설을 고쳐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는 걸 여기서 분명히 못박아두고자 합니다! 반박을 하고 싶으면 욕이나 비난을 빼고 하십시오. 그럼 저도 차분하고 담담하게 대답할 테니까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