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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四六年(丙寅 二四六)三月乙亥朔◆       , 373년. 3월   (373- 246= 127년 편차)
四十六年春三月乙亥朔。遣斯摩宿禰于卓淳國。〈斯麻宿者。不知何姓人也。〉於是。卓淳王末錦旱岐斯摩宿禰曰。甲子年七月中。百濟人久氐。彌州流。莫古。三人到於我土曰。百濟王聞東方有日本貴國。而遣臣等令朝其貴國。故求道路以至于斯土。若能敎臣等令通道路。則我王必深德君王。時謂久氐等曰。本聞東有貴國。然未曾有通。不知其道。唯海達浪嶮。則乘大船僅可得通若雖有路津。何以得達耶。於是久氐等曰。然卽當今不得通也。不若更還之。備船舶而後通矣。仍曰。若有貴國使人來。必應告吾國。如此乃還。爰斯摩宿禰卽以■人爾波移與卓淳人過古二人。遣于百濟國慰勞其王。時百濟肖古王。深之歡喜而厚遇焉。仍以五色綵絹各一疋。及角弓箭。幷鐵鋌四十枚。幣爾波移。便復開寶藏。以示諸珍異曰。吾國多有是珍寶。欲貢貴國不知道路。有志無從。然猶今付使者。尋貢獻耳。於是爾波移奉事而還告志摩宿禰。便自卓淳還之也。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四七年(丁卯 二四七)四月◆          , 374년. 4월  (374- 247= 127년 편차)
四十七年夏四月。百濟王使久氐彌州流莫古令朝貢。時新羅國調使與久氐共詣。於是。皇太后。太子譽田別尊。大歡喜之曰。先王所望國人今來朝之。痛哉不逮于天皇矣群臣皆莫不流涕。仍檢校二國之貢物。於是新羅貢物者珍異甚多。百濟貢物者少賤不良。便問久氐等曰。百濟貢物不及新羅。奈之何。對曰。臣等失道至沙比新羅。則新羅人捕臣等禁囹圄。經三月而欲殺。時久氐等向天而咒詛之。新羅人怖其呪詛而不殺。則奪我貢物。因以爲己國之貢物。以新羅賤物。相易爲臣國之貢物。謂臣等曰。若誤此辭者。及于還日當殺汝等。故久氐等恐怖從耳。是以僅得達于天朝。時皇太后。譽田別尊。責新羅使者。因以祈天神曰。當遣誰人於百濟、將檢事之虛實。當遣誰人於新羅。將推問其罪。便天神誨之曰。令武內宿禰行議。因以千熊長彦爲使者。當如所願。〈千熊長彦者。分明不知其姓人。一云。武藏國人。今是額田部槻本首等之始祖也。百濟記云。職麻那那加比跪者。蓋是歟也。〉於是。遣千熊長彦于新羅。責以濫百濟之獻物。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四九年(己巳 二四九)三月◆      , 375년. 3월  (375- 249= 126년 편차)
四十九年春三月。以荒田別鹿我別爲將軍。則與久氐等共勒兵而度之。至卓淳國將襲新羅。時或曰。兵衆少之。不可破新羅。更復奉上沙白。盖盧。請增軍士。卽命木羅斤資沙沙奴跪。〈是二人不知其姓人也。但木羅斤資者。百濟將也。〉領精兵與沙白。盖盧共遣之。俱集于卓淳。擊新羅而破之。因以平定比自■。南加羅。喙國。安羅。多羅。卓淳。加羅七國。仍移兵西廻至古爰津。屠南蠻。枕彌多禮。以賜百濟。於是。其王肖古。及王子貴須。亦領軍來會。時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自然降服。是以百濟王父子。及荒田別木羅斤資等。共會意流村。〈今云州流須祇。〉相見欣感。厚禮送遣之。唯千熊長彦與百濟王。至于百濟國登辟支山盟之。復登古沙山。共居磐石上。時百濟王盟之曰。若敷草爲坐。恐見火燒。且取木爲坐。恐爲水流故居磐石而盟者。示長遠之不朽者也。是以自今以後。千秋萬歲。無絶無窮。常稱西蕃。春秋朝貢。則將千熊長彦。至都下厚加禮遇。亦副久氐等。而送之。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五十年(庚午 二五〇)二月◆   , 383년. 2월 (383- 250= 133년 편차)
五十年春二月。荒田別等還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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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五十年(庚午 二五〇)五月◆  , 383년. 5월, (383- 250= 133년 편차).
夏五月。千熊長彦久氐等至自百濟。於是皇太后歡之。問久氐曰。海西諸韓旣賜汝國。今何事以頻復來也。久氐等奏曰。天朝鴻澤遠及弊邑。吾王歡喜踊躍不任于心。故因還使。以致至誠。雖逮萬世。何年非朝。皇太后勅云。善哉汝言。是朕懷也。增賜多沙城。爲往還路驒。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五十一年(辛未 二五一)三月◆   , 384년. 3월, (384- 251= 133년 편차).
五十一年春三月。百濟王亦遣久氐朝貢。於是皇太后語太子及武內宿禰曰。朕所交親百濟國者。是天所致。非由人故。玩好珍物。先所未有。不闕歲時。常來貢獻。朕省此款。每用喜焉。如朕存時。敦加恩惠。卽年以千熊長彦。副久氐等遣百濟國。因以垂大恩曰。朕從神所驗。始開道路。平定海西。以賜百濟。今復厚結好。永寵賞之。是時百濟王父子。並 致地。啓曰。貴國鴻恩重於天地。何日何時敢有忘哉。聖王在上。明如日月。今臣在下。固如山岳。永爲西蕃。終無貳心。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五十二年(壬申 二五二)九月丙子《十》◆  , 385년. 9월, (385- 252= 133년 편차)
五十二年秋九月丁卯朔丙子。久氐等從千熊長彦詣之。則獻七枝刀一口七子鏡一面。及種種重寶。仍啓曰。臣國以西有水源。出自谷那鐵山。其邈七日行之不及。當飮是水。便取是山鐵。以永奉聖朝。乃謂孫。枕流王曰。今我所通海東貴國。是天所啓。是以垂天恩。割海西而賜我。由是國基永固。汝當善脩和好。聚歛土物。奉貢不絶。雖死何恨。自是後每年。相續朝貢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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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1년, AD377년. (ver.1)
元年 丁丑 十一月 加耶君守克殂 慕訶立 以宣失爲太后 時加耶與倭相通 不遵朝廷之令 至是以倭王女爲妻 而不聽宣失之言 遣使責之
원년(AD377년) 丁丑(정축, AD377년) 11월, 加耶(가야)의 君(군) 守克(수극)이 죽고, 慕訶(모가)가 섰다. 宣失(선실)을 太后(태후)로 삼았다. 이때 加耶(가야)와 倭(왜)가 相通(상통)하여 朝廷(조정)의 令(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때 이르러 倭王(왜왕)의 딸을 妻(처)로 삼아, 宣失(선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신을 보내 책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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訖解尼今紀(흘해니금기) 5년, AD374년.
五年 木豕 二月 倭王移書絶交
5년(AD374년) 木豕(목시, 甲戌, AD374년) 2월, 倭王(왜왕)이 글을 보내와, 絶交(절교)하였다.

*신라본기 흘해이사금 36년, AD345년.
三十六年 春正月 拜康世爲伊伐湌 二月 倭王移書絶交
36년(AD345년) 봄 1월에 강세(康世)를 이벌찬으로 삼았다. 2월에 왜왕이 글을 보내와 국교를 끊었다.

*AD374년- AD345년= 29년 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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訖解尼今紀(흘해니금기) 6년, AD375년.
六年 靑豕 四月 倭寇風島進圍金城 待其食盡 康世出擊大破之 虜其酋夫妻 而獻之 禮生宮生帝子河期
6년(AD375년) 靑豕(청시, 乙亥, AD375년) 4월, 倭(왜)가 風島(풍도)를 침입하여, 나와서 金城(금성)을 포위하였다. 그들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康世(강세)가 出擊(출격)하여 大破(대파)시켰다. 그 우두머리 夫妻(부처)를 사로잡아 바쳤다. 禮生宮(례생궁)이 帝(제)의 아들 河期(하기)를 낳았다.

*신라본기 흘해이사금 37년, AD346년.
三十七年 倭兵猝至風島 抄掠邊戶 又進圍金城急攻 王欲出兵相戰 伊伐湌康世曰 賊遠至 其鋒不可當 不若緩之待其師老 王然之 閉門不出 賊食盡將退 命康世率勁騎 追擊走之
37년(AD346년) 왜의 군사가 갑자기 풍도(風島)에 이르러 변방의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또 진군하여 금성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하였다. 왕이 군사를 내어 상대하여 싸우고자 하였으나, 이벌찬 강세(康世)가 말하였다. 적은 멀리서 왔으므로 그 칼날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 그것을 늦추었다가 그 군사가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왕이 그렇다고 여겨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니 적은 식량이 떨어져 장차 물러가려 하였다. 강세에게 명하여 날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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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375년- AD346년= 29년 편차. 

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version 1) 3년, AD379년.
三年 己卯 四月 倭兵大至 誣檍乃芥拒之 造草偶數千于吐含山下 伏勇士一千於斧峴東原 倭果中計大敗 追擊盡獲之 自是倭與加耶相通 遂秊來求
3년(AD379년) 己卯(기묘, AD379년) 4월, 倭兵(왜병)이 크게 이르러, 강제로 登檍(등억)과 乃芥(내개)이 막도록 하였다. 吐含山(토함산) 아래에 풀로 허수아비 수천을 만들어, 斧峴(부현) 東原(동원)에 勇士(용사) 1천명을 매복시켰다. 倭(왜)가 과연 계책에 맞아 크게 敗(패)하였다. 追擊(추격)하여 모두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倭(왜)와 加耶(가야)가 相通(상통)하여 遂秊(수년, 해마다) 찾아왔다.

*신라본기 내물이사금 9년, AD364년
九年 夏四月 倭兵大至 王聞之 恐不可敵 造草偶人數千 衣衣持兵 列立吐含山下 伏勇士一千於斧峴東原 倭人恃衆直進 伏發擊其不意 倭人大敗走 追擊殺之幾盡
9년(AD364년) 여름 4월, 왜의 군사가 대거 이르렀다. 왕이 듣고서 대적할 수 없을까 두려워, 풀로 허수아비 수천 개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무기를 들려서 토함산 아래에 나란히 세워 두었다. 그리고 용맹한 군사 1천 명을 부현(斧峴)의 동쪽 들판에 숨겨놓았다. 왜인이 자기 무리가 많음을 믿고 곧바로 나아가자, 숨어 있던 군사가 일어나 불의에 공격하였다. 왜군이 크게 패하여 달아나므로, 추격하여 그들을 거의 다 죽였다.

*AD379년- AD364년= 15년 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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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version 1) 4년, AD380년.
四年 正月 行白龍祭
4년(AD380년) 정월 백룡(白龍=庚辰)제를 행하였다.

三月 夫余入貢 公兌等還京
3월 부여(夫余)가 공물을 바쳤다. 공태(公兌) 등이 경도로 돌아왔다.

*신라본기 내물이사금 11년, AD366년.
十一年 春三月 百濟人來聘 夏四月 大水 山崩十三所
11년(AD366년) 봄 3월에 백제인이 와서 예방하였다. 여름 4월에 홍수가 나서 산 13곳이 무너졌다.

*AD380년- AD366년= 14년 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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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version 1) 5년, AD381년.
五年 金蛇 三月 夫余獻良馬一雙
3월 부여(夫余)가 良馬(량마) 한 쌍을 바쳤다.

*신라본기 내물이사금 13년, AD368년.
十三年 春 百濟遣使 進良馬二匹
13년(368) 봄, 百濟(백제)가 사신을 보내 良馬(량마) 두 필을 바쳤다.

*AD381년- AD368년= 13년 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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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7년, AD383년.
七年 正月 行水羊祭 光臣伊伐飡 白花稟主
7년(AD383년) 1월, 水羊(수양, 癸未, AD383년)祭(제)를 행하였다. 光臣(광신)을 伊伐飡(이벌찬)으로, 白花(백화)를 稟主(품주)로 삼았다.

三月 夫余流民三十戶又來降 夫余與倭相通 年年受其民 散置都鄙 倭臣熊彦美而善辯 與阿尒相通 多聽其言 故國人異反 或歸于我 亦歸于麗 休禮太后生長昕子勿昕 始立戶口典 禁民子母相婚
3월, 夫余(부여)의 流民(유민) 30호가 또 來降(래항)하였다. 夫余(부여)와 倭(왜)가 相通(상통)하니, 해마다 그 백성들을 받아서, 도읍과 시골에 散置(산치)시켰다. 倭(왜)의 신하 熊彦(웅언)은 잘 생겼고 말을 잘 하여, 阿尒(아이)와 相通(상통)하니, 그의 말을 많이 따랐다. 그래서 國人(국인)들은 異反(이반)하여, 혹은 우리에게, 혹은 고구려에게 귀속하였다. 休禮太后(휴례태후)는 長昕(장흔)의 아들 勿昕(물흔)을 낳았다. 戶口典(호구전)을 처음 세웠다. 백성들이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혼인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倭臣熊彦美而善辯 與阿尒相通 多聽其言
= 倭(왜)의 신하 熊彦(웅언)은 잘 생겼고 말을 잘 하여, 阿尒(아이)와 相通(상통)하니, 그의 말을 많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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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五十二年(壬申 二五二)九月丙子《十》◆
五十二年秋九月丁卯朔丙子。久氐等從千熊長彦詣之。則獻七枝刀一口。七子鏡一面。及種種重寶。仍啓曰。臣國以西有水源。出自谷那鐵山。其邈七日行之不及。當飮是水。便取是山鐵。以永奉聖朝。乃謂孫。枕流王曰。今我所通海東貴國。是天所啓。是以垂天恩。割海西而賜我。由是國基永固。汝當善脩和好。聚歛土物。奉貢不絶。雖死何恨。自是後。每年相續朝貢焉。

= 久氐(구저)등이 千熊長彦(천웅장언)을 따라서 이르러, 즉시 七枝刀(칠지도) 一口(1구), 七子鏡(칠자경) 一面(1면)과 여러가지 重寶(중보)를 바쳤다. (千熊長彦이) 이내 啓(계)하길, "臣(신)의 나라 서쪽에 水源(수원)이 있는데, 谷那鐵山(곡나철산)에서 나옵니다. 그 먼 곳은 7일동안 가더라도 도달하지 못합니다. 마땅히 이 물을 마셔 보고, 즉시 이 山鐵(산철)을 取(취)하였습니다. 오직 聖朝(성조)를 영원히 받드는 것은 곧 孫(손, 道理)을 말합니다." 枕流王(침류왕)이 말하길, "지금 내가 海東(해동)의 貴國(귀국)과 通(통)하는 바는 하늘이 啓(계)하는 바이다. 이리하여 (天皇이) 天恩(천은)을 베풀어, 海西(해서)를 떼어서 나에게 하사하였다. 이 때문에 나라의 기초가 영원히 단단해졌다. 그대는 일찍이 和好(화호) 닦기를 잘 하였고, 土物(토물)을 聚歛(취렴)하여, 奉貢(봉공)이 끊어지지 않으니, 비록 죽더라도 어찌 恨(한)스럽겠는가?" 이후부터 매년 서로 朝貢(조공)을 이었다.


댓글 '1'

라디오

2010.08.07 20:06:00
*.128.196.124

三十年 秋七月 高句麗來攻北鄙水谷城陷之 王遣將拒之 不克 王又將大擧兵報之 以年荒不果 冬十一月 王薨 古記云 『百濟開國已來 未有以文字記事 至是得博士高興 始有書記』 然高興未嘗顯於他書 不知其何許人也
30년(375) 가을 7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의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해 와서 함락시켰다. 왕이 장수를 보내 막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왕이 다시 군사를 크게 일으켜 보복하려 하였으나 흉년이 들어 실행하지 못하였다. 겨울 11월에 왕이 죽었다.
고기(古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는 나라를 창건한 이래 문자로 일[事]을 기록함이 없었다. 이 때에 이르러 박사(博士) 고흥(高興)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흥은 일찍이 다른 책에는 나타나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백제본기 近仇首王(근구수왕) 원년, AD375년.
近仇首王 一云諱須 近肖古王之子 先是 高句麗國岡王斯由 親來侵 近肖古王遣太子拒之 至半乞壤將戰 高句麗人斯紀 本百濟人
誤傷國馬蹄 懼罪奔於彼 至是還來 告太子曰 “彼師雖多 皆備數疑兵而已 其驍勇唯赤旗 若先破之 其餘不攻自潰” 太子從之 進擊大敗之 追奔逐北 至於水谷城之西北 將軍莫古解諫曰 “嘗聞道家之言 ‘知足不辱 知止不殆’ 今所得多矣 何必求多” 太子善之止焉 乃積石爲表 登其上 顧左右曰 “今日之後 疇克再至於此乎” 其地有巖石 罅若馬蹄者 他人至今 呼爲太子馬迹 近肖古在位三十年薨 卽位

근구수왕(近仇首王)<또는 수(須)라고도 하였다.>은 근초고왕의 아들이다. 이에 앞서 고구려의 국강왕(國岡王)
사유(斯由)[고국원왕]가 친히 쳐들어 왔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이를 막게 하였다. [태자가] 반걸양(半乞壤)에 이르러 장차
싸우려 하였다.

고구려 사람 사기(斯紀)는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잘못하여 왕이 쓰는 말[國馬]의 발굽을 상하게 하였다. [그는]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고구려로 도망하였다가 이때 돌아와 태자에게 말하였다.“저쪽의 군사가 비록 많기는 하나 모두 숫자만을 채운 허위의 군사[疑兵]일 뿐입니다. 날래고 용감한 자들은 오직 붉은 깃발의 부대뿐입니다. 만일 먼저 이를 깨뜨리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태자가 그 말을 좇아 나아가 쳐서 크게 이기고는 도망쳐 달아나는 자들을 추격하여 수곡성(水谷城)의 서북에 이르렀다.

장군 막고해(莫古解)가 간하여 말하였다.“일찍이 도가(道家)의 말을 들으니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얻은 바도 많은데 어찌 기필코 많은 것을 구합니까?”
태자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추격하기를 중지하고는 이에 돌을 쌓아 표지(標識)를 만들었다. [태자는] 그 위에 올라가 좌우를 돌아다보며 말하기를 “지금 이후에 누가 다시 여기에 이를 수 있을까?” 하였다. 그 곳에는 말발굽 같이 틈이 생긴 바위가 있는 데 사람들이 지금[고려]까지도 ‘태자의 말발자국’이라고 부른다.

근초고왕이 재위 30년에 죽자 왕위에 올랐다.

*백제본기 近仇首王(근구수왕) 10년, AD384년.
十年 春二月 日有暈三重 宮中大樹自拔 夏四月 王薨
10년(384) 봄 2월에 해 무리[暈]가 세 겹으로 둘러졌다. 궁중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혔다. 여름 4월에 왕이 죽었다.

枕流王 近仇首王之元子 母曰阿尒夫人 繼父卽位 秋七月 遣使入晉朝貢 九月 胡僧摩羅難陁自晉至 王迎1)之致宮內 禮敬焉 佛法始於此
침류왕(枕流王)은 근구수왕의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아이부인(阿尒夫人)이다.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가을 7월에 사신을 진(晉)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9월에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陁)가 진나라에서 왔다. 왕이 그를 맞이하여 궁궐 안으로 모셔 예우하고 공경하니, 불교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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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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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학의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서기 1976년, 재야 사학자들이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고칠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건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이른바 ‘국사교과서 정정 각종 소송’). 그리고 5년 후인 서기 1981...

기타 一道安士님에게 보여드립니다. file [1]

  • 2010-07-24
  • 조회 수 406

아래 파일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곳에 질문을 남기는 것의 동기가 된 글입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을 못 하실수도 있겠군요.

기타 一道安士님에게 질문드립니다. [2]

  • 2010-07-23
  • 조회 수 417

一道安士님께서는, 모용선비의 역사가 한국사라고 주장하셨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듣고 싶습니다. 한국고대사에 대한 독특한 접근을 가지고 계신 一道安士님에게만 들은 주장이라 아주 흥미가 갑니다. 부탁드립니다. ...

Q&A ▩비난에 대한 반박 - 한국이 야생벼의 원산지가 아니라고 한 까닭

  • 2010-07-07
  • 조회 수 457

‘사대주의 사관 배격’씨. 귀하가 2주일 전 제 글(「▩벼농사와 원한국인」. 카테고리는 [기타])에 달아놓은 댓글을 읽고, 한 마디 해야겠다고 여겨 자판을 두드립니다. 먼저, 귀하가 저를 “사대주의 사관, 매족(賣族. 겨레를 ...

백제사 [日本書紀] 신공 46년 ~ 52년 연도추정. [1]

  • 박규호
  • 2010-06-23
  • 조회 수 639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四六年(丙寅 二四六)三月乙亥朔◆ , 373년. 3월 (373- 246= 127년 편차) 四十六年春三月乙亥朔。遣斯摩宿禰于卓淳國。〈斯麻宿禰者。不知何姓人也。〉於是。卓淳王末錦旱岐告斯摩宿禰曰。甲子年七月中。百濟人久...

기타 ▩벼농사와 원한국인 [3]

  • 2010-06-19
  • 조회 수 606

동아시아에서 맨 처음 벼농사가 시작된 곳이 충청북도 내륙(소로리)이라는 가설(「▩[고침]가래떡이 증명하는 삼남 지방과 절강성의 교류」참고. 카테고리는 [기타])을 접한 독자는, ‘조사결과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신라사 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1년, 11월, AD377년. (ver.1) imagefile [2]

  • 박규호
  • 2010-06-18
  • 조회 수 494

奈勿大聖神帝紀(내물대성신제기) 1년, 11월, AD377년. (ver.1) 元年 丁丑 十一月 加耶君守克殂 慕訶立 以宣失爲太后 時加耶與倭相通 不遵朝廷之令 至是以倭王女爲妻 而不聽宣失之言 遣使責之 원년(AD377년) 丁丑(정축, AD377년) 11월...

기타 공개강연을 마치고 [8]

  • 2010-06-13
  • 조회 수 599

마립간신라의 기원에 관한 공개강연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비가 와서인지 월드컵이 시작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예상보다 적게 오셨습니다. 포럼 설비 사정상 1시간 가량 늦게 시작하였습니다. 1부는 그림으로, 2부는 삼...

백제사 [日本書紀] 신공 52년, 七枝刀(칠지도) 기사의 해석 오류. imagefile [1]

  • 박규호
  • 2010-06-12
  • 조회 수 461

http://www.wul.waseda.ac.jp/kotenseki/html/ri05/ri05_01940/index.html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i05/ri05_01940/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i05/ri05_01940/ri05_01940_0005/ri05_01940_0005.html http://archive.wul.was...

신라사 [日本書記] 기사의 月 표시도 바꾸어 놓았다. [1]

  • 박규호
  • 2010-06-11
  • 조회 수 450

●『日本書紀』卷九 神功皇后 攝政前紀 仲哀天皇 九年(庚辰 二〇〇)九月己卯《十》◆ 秋九月庚午朔己卯。令諸國集船舶練兵甲。時軍卒難集。皇后曰。必神心焉。則立大三輪社以奉刀矛矣。軍衆自聚。於是使吾瓮海人烏摩呂出於西海。令察有國耶。還曰。國不...

신라사 基臨尼今紀(기림니금기) 2년, AD365년. imagefile [2]

  • 박규호
  • 2010-05-31
  • 조회 수 540

二年 靑牛 正月 宝己伊伐飡 登末稟主 登末末仇公女也 與帝同虎 得帝寵故也 以長昕爲六軍頭上 大西知將欲致仕 故讓于長昕曰 “兵權不可與人 汝可爲之” 長昕曰 “大任不可禪解 而不受” 后聞之 知長昕之公 而仍授之 賜衣酒于長昕 母乳...